104. 오종도비(吳宗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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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串津西石立 (갑곶진서석립)     갑곶진 서쪽에 한 비석이 우뚝하니, 
壬辰天將紀吳 (임진천장기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오종도공을 기념했네.
峩峩浩浩山河氣 (아아호호산하기) 높고 넓은 강산 같은 당시의 기백,
永世同傳撫綏 (영세동전무수) 위무해준 공로를 영원토록 전하리니.

○ 선조 임진년(1592) 난리에 중국 절강(浙江)의 소흥부(紹興府)사람 오종도(吳宗道)가 흠차관(欽差官)으로서 황명을 받들어 동쪽으로 왔다. 정유년(1597) 왜가 다시 침략하였을 때에 형개(邢玠)의 군문에 소속되어 수병을 이끌고 강화에 머물면서 주민을 보살피니 섬의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고 편안하게 여겼다. 그가 돌아갈 때에 강화도 사람들이 그를 생각해서 갑곶나루 위에 비석을 세워 떠나는 사람의 은혜를 표현하였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於鑠王師 聿遵海澨 (어삭왕사 율준해서)     아아, 천군(天軍)의 강성함은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 
顯允吳公 實掌其旅 (현윤오공 실장기려) 오공(吳公)의 밝고 정성스러움은 실로 그 군사를 장악하였도다.
仁涵義鬯 護譊歌謳 (인함의창 호뇨가구) 인의(仁義)가 가득 차고 울창하여 큰 소리로 노래 부르니,
譬彼靑颸 是吹是煦 (비피청시 시취시후) 푸르고 서늘한 바람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음과 같음이라.
拯我燎灊 措之袵席 (증아료첨 조지임석) 우리를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어 목전(目前)에 두었으며,
帲幪乍輟 飊馭莫及 (병몽사철 표어막급) 덮은 장막을 걷고 폭풍을 부려서 미치지 못하게 하였도다.
嵽嵲龜趺 表玆達路 (체얼구부 표자달로) 높은 귀부(龜趺)는 대로(大路)에 드러나 보이고,
尼山峨峨 河水浩浩 (니산아아 하수호호) 마니산은 높고 늠름하며 강물은 장대하다.
繄公之烈 萬世之慕 (예공지렬 만세지모) 아아, 공의 아름다움을 만세에 걸쳐 사모하리라.


인물

참고

  • 오종도비(吳宗道碑) : 본래 갑곶나루 진해루 안쪽 언덕 위에 있었으나, 2000년에 강화역사관 비석군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