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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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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정보
|기관대표명칭 = 삼군부 총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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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삼군부 총무당
|한자명칭 = 三軍府淸憲堂
+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37호
|영문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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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78년 12월 18일
|설립시기 = 고려 말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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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명칭 = 삼군부 총무당
|설립주체 = 이성계
+
|한자명칭 = 三軍府總武堂
|기관역할 = 군무(軍務)를 관장
+
|영문명칭 = Samgunbu Chongmudang
|시대 = 조선시대
+
|분류 = 유적, 목조건물
|사진 = 총무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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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제작 = 1868년 (고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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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 1가 303, 1-1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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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 37.58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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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 = 127.008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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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삼군부 총무당_2016062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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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
 
}}
  
 
== 개요 ==
 
== 개요 ==
조선의 군사업무를 담당하던 삼군부의 청사건물이다. 고종 5년(1868)에 덕의당·청헌당과 함께 지어졌다. 원래 광화문 남쪽 현재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던 것을 삼군부 청사의 중심이 되는 총무당은 1930년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 옆에 1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그 옆에는 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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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고종 5)에 지은 목조건물로 조선 말기에 설치된 [[삼군부]]의 청사(청헌당, 총무당, 덕의당) 가운데 중심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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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위치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남서쪽(현재의 광화문 남서쪽 정부종합청사 위치)에 위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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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865년 (고종 2) 정부와 군부를 분립시켰던 국초의 전통을 되살려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였다. 삼군부는 군무를 통솔하고 변방에 관한 일까지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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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에는 1870년 4월에 발생한 화재로 청사의 건물 79칸이 소실되고, 같은 해 윤 10월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총무당까지 화재를 입어 다시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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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로 이용하던 당시에는 정청인 총무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규모가 작은 [[삼군부 청헌당|청헌당]]과 [[삼군부 덕의당|덕의당]]이 나란하게 있었다. 총무당은 좌우 두 청사와 복도각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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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삼군부가 혁파된 뒤에는 [[통리기무아문]], 시위대청사로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사령부]] 건물로 쓰였고, 1930년대에 현재 자리로 옮겨졌으나, 덕의당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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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 옆에 1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그 옆에는 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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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기둥머리는 익공으로 짜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만들었다. 이는 조선 말기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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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당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이때 주변에 조성한 공원이 [[삼선공원]]이다. 총무당의 오른편으로는 [[한성대학교]] ROTC 제196학군단 건물이 보인다.
  
 
=='''갤러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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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육조거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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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육조거리.png |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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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군부 사진.png | 삼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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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헌당_old.png | 청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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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헌당_19670401_동아일보.jpg  | 청헌당 철거 당시 신문기사 196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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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5일 (토) 23:04 기준 최신판


개요

1868년 (고종 5)에 지은 목조건물로 조선 말기에 설치된 삼군부의 청사(청헌당, 총무당, 덕의당) 가운데 중심건물이다. 당시 위치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남서쪽(현재의 광화문 남서쪽 정부종합청사 위치)에 위치했었다.

조선은 1865년 (고종 2) 정부와 군부를 분립시켰던 국초의 전통을 되살려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였다. 삼군부는 군무를 통솔하고 변방에 관한 일까지 관장했다. 고종실록에는 1870년 4월에 발생한 화재로 청사의 건물 79칸이 소실되고, 같은 해 윤 10월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총무당까지 화재를 입어 다시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군부로 이용하던 당시에는 정청인 총무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규모가 작은 청헌당덕의당이 나란하게 있었다. 총무당은 좌우 두 청사와 복도각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1880년 삼군부가 혁파된 뒤에는 통리기무아문, 시위대청사로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사령부 건물로 쓰였고, 1930년대에 현재 자리로 옮겨졌으나, 덕의당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 옆에 1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그 옆에는 광이 있다. 건물의 기둥머리는 익공으로 짜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만들었다. 이는 조선 말기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준다.

총무당의 현판 글씨는 강화도조약 때 조선의 대표였던 신헌이 썼다. [1]

총무당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이때 주변에 조성한 공원이 삼선공원이다. 총무당의 오른편으로는 한성대학교 ROTC 제196학군단 건물이 보인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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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삼군부 총무당 A는 B가 원래 위치이다. 육조거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삼군부 총무당 A은 현재 B내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시상상어린이공원

기여

출처

  1. 삼군부총무당,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