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인화동(寅火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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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0일 (월) 00:1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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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인화동(寅火洞346)) 寅火中流石虎雄석호의 웅장한 기운 인화리서 흘러서, 西通延海與喬桐서쪽의 연안 해주와 교동까지 통하네. 渚雲野屋黃忠節물안개 낀 들판 집이 황충신의 집이니, 甲串千年海日紅갑곶에서 천년토록 바다 태양처럼 붉으리.


○ 인화석진(寅火石津)은 서해 중에 범처럼 생긴 바위가 남방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인화석(寅火石)이라고 이름 하였다. 수로로 10여 리에 교동·연안·해주 등을 교통하니 진실로 서해의 요충지이다. 효종 병신년(1656)에347) 유수 홍중보(洪重普)348)가 진을 설치하여 별장(別將)을 두었다. 기미년(기해, 1659)에는 윤이제(尹以濟)349)가 아 뢰어서 만호(萬戶)로 승격시켰고 황상의 조정에서 아뢰어서 권관으로 승격시켰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그 위 저운야(渚雲野)에 평해 황씨(平海黃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정축호란 때에 순절한 황대곤(黃大坤)350)의 집이 이곳에 있다. 자세한 것은 충렬사순절록(忠烈祠 殉節錄)에 보인다. ○ 남익문(南益文)의 시는 다음과 같다. “형승은 악양루라 예전에 들었는데(舊聞形勝岳陽樓) 이 정자에 와서 보니 주변 경치 훌륭하 네.(今到斯亭八景優) 인화의 격한 조수에 옥두를 단장하고(寅火激潮粉玉斗) 각산에서 작을 하니 오두에서 춤추네.(角山當汋舞鰲頭) 은관 에 요새 설치 천참을 이루고(銀關設險成天塹) 정포로 못을 삼아 땅끝을 맺는구나.(井浦爲池括地陬) 열기 올라 말 세우고 감상한 것 많으 니(乘熱停驂多所賞) 어느날에 다시 와서 맑은 흐름 이룰까.(重來何日作淸流)” 346) 양사면 인화리이다. 범바위 즉, 인화석(寅火石)이 있어 인화성, 인애성이라고도 한다. 347) 원문에는 ʻ숙종 병신년(1716)ʼ으로 되어 있으나, 홍중보 강화유수 재임기간이 1655년 5월~1657년 1월이므로, ʻ효종 병신년(1656)ʼ이 맞다. 348) 홍중보(1612~1671)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백(遠伯), 호는 이천(梨川). 349) 윤이제(1628~1701)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 350) 황대곤(1577~1637) 조선 중기의 무인. 본관은 평해(平海), 호는 송포(松圃), 자는 자후(子厚).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파총(把摠)으로 갑곶진을 방어 하다가 이삼(李參), 안몽상(安夢祥)과 함께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