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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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의 창시자 방정환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격상시키고, 아동문제연구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했으며, 어린이의 날을 제정했다.

  • 출생-사망 : 1899.11.9 - 1931.7.23
  • 호 : 소파(小波)
  • 활동분야 : 문학
  • 출생지 : 서울
  • 성격 : 아동문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71년 청년운동단체인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1년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鎬)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같은 해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童話口演大會)를 개최하였다. 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번안물이 대부분이다. 번안은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친다는 뜻이다. 그는 원문의 뜻과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외국어의 장벽을 무난히 돌파하여 동화 번안 작가로서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그가 번안 내지 개작한 동화들이 지닌 일관된 특징은 풍자와 해학의 정신과 교훈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종래의 유교도덕에 얽매어 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아동문화운동가요, 사회운동가였다.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의 조직과 3·1독립운동 참가, ‘천도교소년회’결성 및 육성이나,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늙은이’·‘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일 및 아동문제연구단체인 ‘색동회’ 조직, ‘어린이의 날’ 제정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는 아동들을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하게 보고 감상적·관념적·권선징악적인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현실적·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종래의 전통적인 부당한 대우를 시정하여 감성 해방(동심 회복)을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이 국민들에게 주목받게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와서이다. 이때부터 어린이날은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방정환이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어린이>를 창간했으며, 어린이를 위해 한국 최초의 동화집을 펴내고 어린이날을 만들어 준분으로서 칭송받기 시작했다.

방정환의 호인 ‘소파(小波)’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하나는 일본의 아동문학자인 이와야 사자나미(嚴谷小波)의 호를 본떠서 지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운동을 전개한 김기전의 호인 ‘소춘(小春)’과 연관지어 천도교 사상을 담아낸 것으로 해석한 설이다. 어느 날 방정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내에게 김기전과 함께 호를 지었다고 말하면서, 김기전은 소춘으로 자신은 작은 물결이라는 뜻인 소파라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린이 날 제정

1923년은 방정환에게 특별한 해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가 본격적인 아동문학과 문화운동을 전면에서 전개했다. 1923년 3월 16일 도쿄 하숙집에서 어린이 운동단체인 ‘색동회’ 창립을 위한 모임을 가졌고, 도쿄에서 편집한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개벽사에서 3월 20일 창간하였다. 색동회는 3월 30일 창립되었고, 5월 1일 서울 시내 소년단체들의 연합조직인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은 ‘천도교소년회’의 창립일이었기 때문이다. 1922년 5월 1일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날로 제정할 것이 선창 되었고, 1923년 5월 1일 색동회 발대식과 함께 어린이날 기념식이 최초로 열렸다. 어린이날은 이후 천도교 중심의 민족주의 소년운동과 오월회 중심의 무산소년운동으로 통합되고 분열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의 날짜가 변경된 것은 1928년이다. 경찰의 탄압을 받았던 메이데이 날과 공교롭게 겹치자 이를 피하기 위해 해마다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이날 행사가 매년 지속되었지만,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일제의 탄압으로 1937년에 금지됨과 동시에 소년단체도 강제 해산을 당했다.

어린이날은 해방 이후 1946년 5월 5일로 공식 제정되면서 부활하였다. 5월 첫 일요일이었던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바뀌게 된 것은 1946년 해의 첫 일요일이 마침 5월 5일이고,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5월 5일로 날짜를 고정시킨 것이다. 해방 이후 첫 어린이날 기념행사는 휘문중학교에서 거행되었다. 이후 1975년 법정공휴일로 지정될 때까지 방정환이 만든 색동회를 중심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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