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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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일 (금) 15:06 기준 최신판
19세기 도포(左); 이혁 도포 앞면(中); 이혁 도포 뒷면(右)
- 도포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포(袍)의 하나이다.
- 왕은 물론 왕세자의 관례와 사대부의 외출복 및 의례복, 유생들의 일상복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착용이 금지되어 있었던 하류 계층 사이에서도 착용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 도포에 대해 박지원과 서유구 등의 조선시대 학자들은 신라의 제도를 답습한 것으로 신라는 처음에 중국의 제도를 모방했으나, 세속에서 불교를 숭상했기 때문에 중국 승려들의 복장을 본받은 경우가 많았고, 지금까지 바꿀 줄을 모른다고 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포는 신라의 제도이나 중국 승려의 복장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직령(直領)에서 유래된 것이다.
- 직령에는 옆에 무가 붙어있는데, 이 무가 뒷자락 안으로 들어가서 고정되어 이중 뒷자락이 되면서 도포라는 옷이 만들어진 것이다.
- 도포는 조선시대에 입기 시작한 옷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런 옷이 없었고 중국 승려의 복장이 아니다.
관련 지식
분류 | 관련내용1 | 관련내용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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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유구 | 박지원 |
제목 | 임원경제지 | 열하일기 |
연관 복식
관련 내용
Writer: 차서연
도포
- 도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대부의 일상용 포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고관 상류층이 착용하는 신분복식으로서의 기능이 강한 편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하향전파 양상에 의해 유생과 사대부까지도 착용하는 생활복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면 도포의 착용이 이전보다 보편화되었고, 후대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까지 도포를 착용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의 신분제 문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도포는 깃이 곧고, 옆에 무가 있으며, 소매가 넓다. 도포가 다른 옷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뒷자락이 이중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중 뒷자락의 겉자락은 옷의 뒷길이 되는데 그 명칭은 문헌에 ‘후수(後垂)’, ‘후폭(後幅)’, ‘뒷자락’ 등으로 나타난다. 뒷자락의 안자락 명칭은 문헌에 ‘전삼(殿衫)’으로 나타난다. 이 전삼은 앞길 좌․우의 무가 뒤로 돌아가 뒷길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이 뒤로 돌아 들어간 무 때문에 마치 뒷길이 한 자락 더 달려 있는 듯한 형상을 갖게 되었다. 뒷자락이 달려 있어 트임이 벌어져도 하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도포의 특징이다.
- 도포에는 갓을 쓰고, 허리에는 세조대를 띠며, 안에는 창의를 받쳐 입어 평상복의 차림을 이룬다.
관련 지식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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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 주, 배행 | 안릉신영도에 도포를 착용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직책 |
복식1 | 갓 | 주가 도포와 함께 착용한 복식 |
복식2 | 복건 | 배행이 도포와 함께 착용한 복식 |
연관 복식
갑옷, 동다리, 까치등거리, 중치막, 소창의, 전복, 철릭, 전립, 말군, 투구, 전모, 쓰개치마, 화관, 저고리, 치마, 장옷, 속바지
Writer: 김아람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상견례 참여자의 도포
- 도포 안에는 창의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지식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
인물 | 학생, 동자, 시동 | 도포를 입었다. |
복식 | 치포건, 창의, 세조대, 혜, 댕기 | 도포 착용자의 복식 구성 |
회화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 문효세자와 원자보양관의 상견례 행사 그림 |
문헌 | 경국대전 | 복식 규정 |
Writer: 김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