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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201 Story 조선의_우백호,_인왕산
 
S0-201 Story 조선의_우백호,_인왕산
E0-201A Episode Episode_1:태조_이성계의_양팔,_산으로_설전을_벌이다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hanyang2021&project=hanyang&key=E0-20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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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201A Episode Episode_1:태조_이성계의_양팔,_산으로_설전을_벌이다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Class2022&project=hanyang&key=E0-201A
E0-201B Episode Episode_2:_물소리가_끊이지_않는_인왕산의_수성동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hanyang2021&project=hanyang&key=E0-20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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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201B Episode Episode_2:_물소리가_끊이지_않는_인왕산의_수성동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Class2022&project=hanyang&key=E0-201B
E0-201C Episode Episode_3:_맑은_바람이_부는_청풍계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hanyang2021&project=hanyang&key=E0-20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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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201C Episode Episode_3:_맑은_바람이_부는_청풍계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Class2022&project=hanyang&key=E0-201C
E0-201D Episode Episode_4:_봄날_꽃이_흩날리는_필운대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hanyang2021&project=hanyang&key=E0-20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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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201D Episode Episode_4:_봄날_꽃이_흩날리는_필운대 http://dh.aks.ac.kr/~hanyang2/cgi-bin/Story03.py?db=Class2022&project=hanyang&key=E0-20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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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30일 (수) 00:18 판


Theme

조선의 우백호, 인왕산을 그리다.

Synopsis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인왕산은 예로부터 조선시대 한양인들도 조선의 우백호라 부르며 즐겨 찾는 장소였다.[1]

인왕산이 조선의 우백호가 된 이유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결정하고 도읍을 정할 때 무악대사와 정도전이 설전을 벌인 것과 관련이 있다.

맑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수성동(水聲洞), 산수의 풍광도 빼어나지만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별장으로 충절을 상징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간이 된 청풍계(淸風溪) [2],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집터이자 봄날 꽃 구경의 명소로 기록된 필운대(弼雲臺) 등 인왕산에는 수많은 명소가 존재한다.

현실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화를 통하여 300년 전 옛 한양인들이 사랑한 명소를 살펴보도록 한다.

Storyline

Episode 1: 태조 이성계의 양팔, 산으로 설전을 벌이다

  • 무악대사(인왕산 주산) -정도전(백악산 주산)

Episode 2: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인왕산의 수성동

Episode 3: 맑은 바람이 부는 청풍계

Episode 4: 봄날 꽃이 흩날리는 필운대

Storytelling Network


주석

  1.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1.21 사태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다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2. 애초의 이름은 ‘푸른 단풍나무이 우거진 골짜기’라는 뜻의 ‘청풍계’(靑楓溪) 였으나, 김상용이 이 곳에 별장을 꾸민 이후 선조가 ‘맑은 바람’, ‘충절’이라는 뜻이 담긴 청풍계(淸風溪)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그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강화도에서 자결했고, 김상용의 동생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거부했다. 이것으로 인조는 훗날 김상용을 충신으로 인정하며 장동김씨의 가세는 강해졌고, 덕분에 청풍계는 서인과 노론의 성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