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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32 기준 최신판
Meta Data
타입 : 문화유산 한글항목명 : 규장각 한자항목명 : 奎章閣 편자 : 자운서원팀 김소희
내용
설립일 | 17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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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목적 | 정치, 경제, 사회 등 현실문제의 학문적 해결 |
주요활동/업무 | 국립도서관 |
요약 | 조선시대의 관아 |
내각(內閣)이라고도 한다. 정조(正祖)가 즉위한 1776년 궐내(闕內)에 설치,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王世譜)·보감(寶鑑) 등을 보관 관리하던 곳이다. 규장각의 명칭은 1464년(세조 10) 양성지(梁誠之)가 헌의(獻議)한 일이 있고, 1694년(숙종 20)에는 종부시(宗簿寺)에 예속된 어제(御製)·어필(御筆)을 보관하는 한 소각(小閣)의 각명(閣名)으로 쓰기도 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 정조는 즉위하자 곧 창덕궁(昌德宮)의 북원(北苑)에 새로 집을 짓고 고사(故事)를 따라 규장각이라 명명(命名), 직제(職制)를 갖춘 한 독립된 기구로서 국립도서관의 기능을 가지게 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당시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리(戚里)·환관(宦官) 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건국 이래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곧 학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 간행하는 데 있었다.
정조는 당색(黨色)을 초월하여 학식이 높은 사람을 모아 우대하였고, 그들 학자들은 조선왕조가 지니고 있던 구조적(構造的)인 모순에 대한 비판과 재검토를 하였다. 정조는 세손(世孫)으로 있을 때부터 정색당(貞賾堂)이라는 서고(書庫)를 지어 도서수집에 전념하였으며, 명나라에서 기증해 온 중국본을 모았으며, 또 입연사절(入燕使節)을 통하여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부속기구로서 서고(西庫)와 열고관(閱古館)을 두었으며, 서고에는 조선본, 열고관에는 중국본을 나누어 보관하였고, 열고관의 도서가 늘어남에 따라 다시 개유와(皆有窩)라는 서고를 증축하였다.
규장각의 도서는 1781년(정조 5)경에 장서 정리가 되면서 총 3만여 장서의 도서목록이 서호수(徐浩修)에 의하여 작성되어 이를 《규장총목(奎章總目)》이라 하였다. 규장각은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도서를 편찬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 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그 중에서도 매일매일의 정사(政事)를 기록한 《일성록(日省錄)》은 대표적인 것으로, 정조 때 편찬하기 시작한 이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는 한말(韓末)까지 계속되었다.
규장각은 1894년 갑오개혁 때 궁내부(宮內府)에 두었다가 이듬해인 1895년 규장원(奎章院)으로 고쳐 이때 한·중 양국본의 도서와 각종 왕가 전보(傳寶)를 보관하였으며, 1897년(고종 34) 다시 규장각으로 이름을 환원시켰다. 규장각에는 제학(提學:종1∼정2품) 2명, 직제학(直提學:종2품∼정3품 당상관) 2명, 직각(直閣:정3∼종6품) 1명, 대교(待敎:정7∼9품) 1명 외에 검서관(檢書官) 4명 등의 관원이 있었다. 이 중에서 특히 검서관에는 종래 임용되지 못하던 서얼(庶孼)도 등용하여 서적의 교정과 서사(書寫)를 맡기어 5품에 해당하는 군직(軍職)을 주었다.
규장각은 교서관(校書館)을 외각(外閣)으로 편입시켜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인쇄·반포하였으며, 1907년 제실(帝室)의 문한(文翰)·기록을 보관하였다.
1908년 근대적인 직제(職制)를 편성하여 전모(典謀)·도서·기록·문서 등 4과가 사무를 집행하였으며, 이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각 관서의 일기 및 등록과 정족(鼎足)·태백(太白)·오대(五臺)·적상(赤裳) 등의 사고(史庫) 장서까지 관할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로 그 이름이 없어지고, 소장되어 있던 도서는 한때 이왕직(李王職)에 도서실을 두어 보관하고 있었으나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으로 넘어갔다. 이때 넘어간 도서는 5,353부 10만 187책, 각종 기록은 1만 730책에 달하였다.
그러나 1912년 총독부에 참사관실(參事官室)이 설치되어 이들 도서와 관련된 사무는 참사관실로 이관되었고, 1922년 학무국으로 이관되었다가, 다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이관되었는데, 이때 15만 1519권의 책이 이 대학의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이 책들은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서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