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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거부하고 싶은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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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거부감을 일으키는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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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2일 (금) 10:42 판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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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901B	일본_서구식_문관대례복_제정	hasContextualE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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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S0-901.Story

Theme

Episode 2: 거부감을 일으키는 예복

Synopsis

조선은 일본과 교린(交隣) 관계를 맺고 있었고, 대마도는 조선이 수여한 인장(印章)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은 일본 스스로를 황실로 칭하고, 대마도 도주의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조선으로부터 받은 인장을 쓰지 않고 새로운 인장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변경된 정책을 조선에 알리고자 새로운 형식의 서계(書契)를 보내오지만, 조선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고, 서계 접수를 거부하며 갈등을 빚게 된다.
이 갈등은 고종의 친정 시작과 함께 우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면서 덮어지는 듯 하다가 1875년 바다를 건너온 일본측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연향 준비 과정에서 예복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일본은 새로 제정한 서구식 대례복을 입고 참석하고자 하였으나, 조선에서는 의상을 바꾸어 착용하는 것은 이전의 규례와 어긋나는 것이라며 계속해 거부하면서 결국 정상적인 교섭은 중단되고 만다.
이후 일본측이 결렬된 협상 결과를 가지고 부산을 떠나 귀국하는 당일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사실 교린상의 연향의례에서 일본의 복색에 대해서는 특별히 규정한 바가 없었다. 그런데 개항 직전 시기의 조선은 일본측이 착용하겠다고 하는 서구식 예복에 대해서 유독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 도굴 시도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울 정도로 서양문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형성된 것에서 기인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에 서양복을 입고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일본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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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