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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春堂後幾經春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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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九春堂後幾經'''春''' (<small>구춘당후기경'''춘'''</small>)    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br />碧桃紅杏尙一'''新''' (<small>벽도홍행상일'''신'''</small>)    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br />東岳先生題壁䪨 (<small>동악선생제벽운</small>)    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br />有心嘗許卯君'''親''' (<small>유심상허묘군'''친'''</small>)    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br />
碧桃紅杏尙一新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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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東岳先生題壁䪨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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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心嘗許卯君親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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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대사성 남궁침(南宮忱)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의 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시와 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草堂)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140)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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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 남궁침(南宮忱)141)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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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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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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崖闢園庭蹊鑿'''池''' (애벽원정혜착지)    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파니<br />草堂眞與主人'''宜''' (초당진여주인의)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 <br />赤楓黃菊九秋日 (적풍황국구추일)     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 <br />紅杏碧桃三月'''時''' (홍행벽도삼월시)     붉은 은행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br />去歲曾蒙置淸醥 (거세증몽치청표)     지난해엔 일찌감치 맑은 술을 두고서<br />今晨却要賦淸'''詩''' (금신각요부청시)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짓는구나.<br />風流岳壑有如此 (風流岳壑有如此)     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br />六十醉翁添一'''奇''' (육십취옹첨일기)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br />
안눌(李安訥)142)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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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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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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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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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府荒村少物'''華''' (강부황촌소물화)    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br />獨憐春晩卯君'''家''' (독련춘만묘군가)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 <br />自從二月及三月 (자종이월급삼월)     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 <br />新開一花仍百'''花''' (신개일화잉백화)     한 꽃이 새로 피니 모든 꽃이 따른다네. <br />素蘂壓籬晴擁雪 (소예압리청옹설)     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눈을 안고<br />紅葩映塢晩蒸'''霞''' (홍파영오만증하)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 <br />老夫乘興輒相訪 (노부승흥첩상방)     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 <br />素句不知山日'''斜''' (소구부지산일사)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 <br />
파니(崖闢園庭蹊鑿池)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草堂眞與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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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赤楓黃菊九秋日) 붉은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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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紅杏碧桃三月時) 지난해엔 일찌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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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술을 두고서(去歲曾蒙置淸醥)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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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다.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아들 남궁헌(南宮𨯶)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짓는구나.(今晨却要賦淸詩) 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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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壑有如此)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六十醉翁添一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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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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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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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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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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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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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내면(府內面)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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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府荒村少物華)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獨憐春晩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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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家) 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自從二月及三月) 한 꽃이 새로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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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꽃이 따른다네.(新開一花仍百花) 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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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안고(素蘂壓籬晴擁雪)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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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葩映塢晩蒸霞) 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老夫乘興輒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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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素句不知山日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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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143)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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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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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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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남궁헌(南宮金憲)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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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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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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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144)으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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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卯君)으로 일컬어졌다.
  
  
 
==기행지도==
 
==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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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647308, 126.525496, [[237.굴곶포(屈串浦)]] 현 불은면 덕성리 굴이포 일명 '구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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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7.733851, 126.476067, [[52. 남산동(南山洞_수록암)]] 현 강화읍 화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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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37.739427, 126.482456, [[53. 구춘당(九春堂*)]] 현 강화읍 남산리 산21
 +
(C) 37.738121, 126.482706, [[54. 청송심씨(靑松沈氏*)]] 현 강화읍 부조고개길
 +
(D) 37.742052, 126.487058, [[55. 부내12동(府內12洞*)]] 현 강화읍 남문로
 +
(E) 37.734451, 126.516065, [[56. 진보 돈대(鎭堡墩臺*)]] 현 강화읍 갑곳리 갑곶돈대
 +
(F) 37.744102, 126.487152, [[57. 충신 이춘일(李春一*)]] 강화산성남문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 일원
 +
(G) 37.739253, 126.474012, [[58. 남대제월(南臺霽月)]]강화읍 남산리 남산
 +
(H) 37.747762, 126.476693, [[59. 서문동(西門洞)]]강화읍 신문리 621-4 연무당 옛터
 +
(I) 37.741810, 126.459236, [[60. 국정동(國淨洞)]] 현 강화읍 국화리 349-2
  
(M)[[250.사복포(司僕浦)]] 현 불은면 덕성리
+
(J) , [[61. 맥현제단(麥峴祭壇)]] 현  
(N)[[251.능촌동(陵村洞)]] 현 불은면 덕성리
+
(K) , [[62. 사직단(社稷壇)]]
(O) 37.677455, 126.496196, [[252.능촌(陵村)]] 현 불은면 두운리 1482 능촌입구
+
(L) 37.754031, 126.477765, [[63. 문묘(文廟)]] 현 강화읍 관청리 936-1 강화향교내 대성전
(P) 37.687287, 126.501630, [[253.고잔동(高盞洞)]] 현 불은면 고능리 710-4
+
(M) 37.753860, 126.478324, [[64. 명륜당(明倫堂)]] 현 향교길 강화군 강화읍 강화향교
(Q) 37.688276, 126.501549, [[254.지천(芝川)]] 현 불은면 고릉리 (고잔마을 지레)
+
(N) 37.754014, 126.478194, [[65. 강당(講堂) 안연재(安燕齋)]] 현 강화읍 관청리 936-3
(R) 37.692192, 126.495413, [[255.곶내동(串內洞)]] 현 불은면 고릉리 고능로262번길(아침가리마을)
+
(O) 37.755553, 126.482822, [[66. 북문(北門)]] 강화산성북문 강화읍 국화리 산3
(S) 37.683937, 126.491910, [[256.두두미(斗頭尾)]]현 불은면 두운리 712-2(두두미마을)
+
(P) 37.763184, 126.484513, [[67. 여제단(厲祭壇)]]?? 강화읍 대산리 1195
</google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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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7.759656, 126.476231, [[68. 당주동(唐州洞)]] 현 강화군 송해면 당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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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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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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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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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b_1606_007710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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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2644&cid=46644&categoryId=46644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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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군(卯君): 묘년(卯年)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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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섭(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열(咸悅).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修)의 아들로 강화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뒤 흥해군수(興海郡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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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b_1648_011490 남궁민(南宮𤇜)] [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UV_6JOc_9999_005932&curSetPos=0&curSPos=2&category=dirSer&isEQ=true&kristalSearchArea=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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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제(南宮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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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헌(南宮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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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철(南宮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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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빈(南宮贇)[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786_026096 ]
  
==인물==
 
*
 
 
==참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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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춘당_집안_가계도.lst]]
 +
{{NetworkGraph | title=구춘당_집안_가계도.lst}}

2019년 5월 10일 (금) 06:45 기준 최신판

九春堂後幾經 (구춘당후기경)     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碧桃紅杏尙一 (벽도홍행상일) 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
東岳先生題壁䪨 (동악선생제벽운) 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
有心嘗許卯君 (유심상허묘군) 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

○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대사성 남궁침(南宮忱)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의 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시와 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草堂)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崖闢園庭蹊鑿 (애벽원정혜착지)     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파니
草堂眞與主人 (초당진여주인의)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
赤楓黃菊九秋日 (적풍황국구추일) 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
紅杏碧桃三月 (홍행벽도삼월시) 붉은 은행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
去歲曾蒙置淸醥 (거세증몽치청표) 지난해엔 일찌감치 맑은 술을 두고서
今晨却要賦淸 (금신각요부청시)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짓는구나.
風流岳壑有如此 (風流岳壑有如此) 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
六十醉翁添一 (육십취옹첨일기)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

○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江府荒村少物 (강부황촌소물화)     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
獨憐春晩卯君 (독련춘만묘군가)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
自從二月及三月 (자종이월급삼월) 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
新開一花仍百 (신개일화잉백화) 한 꽃이 새로 피니 모든 꽃이 따른다네.
素蘂壓籬晴擁雪 (소예압리청옹설) 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눈을 안고
紅葩映塢晩蒸 (홍파영오만증하)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
老夫乘興輒相訪 (노부승흥첩상방) 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
素句不知山日 (소구부지산일사)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


○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다.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아들 남궁헌(南宮𨯶)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卯君)으로 일컬어졌다.


기행지도

인물

  •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유하였다.
  •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 묘군(卯君): 묘년(卯年)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 남궁섭(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열(咸悅).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修)의 아들로 강화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뒤 흥해군수(興海郡守)를 지냈다.
  • 남궁민(南宮𤇜) [1]
  • 남궁제(南宮埞)
  • 남궁헌(南宮𨯶)
  • 남궁철(南宮澈)
  • 남궁빈(南宮贇)[2]

참고

구춘당_집안_가계도.l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