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구춘당(九春堂*)"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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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春堂後幾經春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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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春堂後幾經春 (구춘당후기경춘)    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碧桃紅杏尙一新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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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桃紅杏尙一新 (벽도홍행상일신)    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
東岳先生題壁䪨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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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岳先生題壁䪨    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
有心嘗許卯君親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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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心嘗許卯君親    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
○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140)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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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대사성 남궁침(南宮忱)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의 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시와 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草堂)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사성 남궁침(南宮忱)141)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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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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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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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눌(李安訥)142)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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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파니(崖闢園庭蹊鑿池)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草堂眞與主人宜)  
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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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赤楓黃菊九秋日) 붉은 은행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紅杏碧桃三月時)  
)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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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일찌감치 맑은 술을 두고서(去歲曾蒙置淸醥)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짓는구나.(今晨却要賦淸詩)  
○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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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風流岳壑有如此)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六十醉翁添一奇)
파니(崖闢園庭蹊鑿池)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草堂眞與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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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赤楓黃菊九秋日) 붉은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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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紅杏碧桃三月時) 지난해엔 일찌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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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맑은 술을 두고서(去歲曾蒙置淸醥)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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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구나.(今晨却要賦淸詩) 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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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江府荒村少物華)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獨憐春晩卯君家)
岳壑有如此)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六十醉翁添一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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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自從二月及三月) 한 꽃이 새로 피니 모든 꽃이 따른다네.(新開一花仍百花)  
○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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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눈을 안고(素蘂壓籬晴擁雪)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紅葩映塢晩蒸霞)  
140)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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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老夫乘興輒相訪)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素句不知山日斜)
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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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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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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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다.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아들 남궁헌(南宮金憲)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부내면(府內面)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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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府荒村少物華)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獨憐春晩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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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家) 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自從二月及三月) 한 꽃이 새로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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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꽃이 따른다네.(新開一花仍百花) 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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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안고(素蘂壓籬晴擁雪)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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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葩映塢晩蒸霞) 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老夫乘興輒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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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素句不知山日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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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143)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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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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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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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남궁헌(南宮金憲)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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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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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卯君)으로 일컬어졌다.
君)144)으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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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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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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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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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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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2019년 4월 27일 (토) 00:46 판

九春堂後幾經春 (구춘당후기경춘) 구춘당 떠나신지 몇 해가 지났는가, 碧桃紅杏尙一新 (벽도홍행상일신) 푸른 복사 붉은 살구 더욱더 새롭구나. 東岳先生題壁䪨 동악 선생 지은 시 벽에다 써붙이니, 有心嘗許卯君親 마음으로 허락한 동갑내기 친구였네. ○ 구춘당(九春堂) 남궁수(南宮樇)는 자가 자구(子久)였는데 대사성 남궁침(南宮忱)의 손자이다. 일찍이 학업을 폐지하고 강화부의 남산 바깥 수록암(壽祿菴)에 집을 짓고 화초를 많이 심었으며 시와 술로써 스스로 즐겨서 매우 은거하는 뜻이 있었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아홉 수의 시를 지어서 걸었으며 ≪동악집(東岳集)≫에 전하는데 ʻ남궁자구(南宮子久)의 초당(草堂)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궁벽한 곳 뜰에다가 길가에 못을 파니(崖闢園庭蹊鑿池) 초당이 진실로 주인과 걸맞구나.(草堂眞與主人宜) 붉은 단풍 노란 국화 가을날을 알리고(赤楓黃菊九秋日) 붉은 은행푸른 복숭아 삼월의 때이로세.(紅杏碧桃三月時) 지난해엔 일찌감치 맑은 술을 두고서(去歲曾蒙置淸醥) 오늘 새벽엔 문득문득 참신한 시 짓는구나.(今晨却要賦淸詩) 바람은 산골로 흐르는게 이와 같아(風流岳壑有如此) 육십의 취한 노인 또 한잔을 기울이네.(六十醉翁添一奇)


○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강화는 황량한 고을이라 물산 적어(江府荒村少物華) 벗님의 집에서 늦은 봄을 어엿버하네.(獨憐春晩卯君家) 스스로 이월부터 삼월까지(自從二月及三月) 한 꽃이 새로 피니 모든 꽃이 따른다네.(新開一花仍百花) 흰 꽃이 울에 가득 맑은 것이 눈을 안고(素蘂壓籬晴擁雪) 붉은 꽃 담에 비춰 느지막히 노을 지네.(紅葩映塢晩蒸霞) 늙은이가 수레 타고 문득이 방문하니(老夫乘興輒相訪) 글귀를 찾느라고 해지는 줄 모르네.(素句不知山日斜)


○ 구춘당의 아들 남궁섭(南宮爕)은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 아들 남궁민(南宮火民)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냈다. 남궁섭의 아들 남궁제(南宮埞)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남궁제의 아들 남궁헌(南宮金憲)은 정려문을 내려주었다.(위에 보인다.) ○ 남궁헌의 아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에 합격하였다. ○ 남궁철의 아들 남궁빈(南宮贇)은 인동 부사를 지냈다. ○ 동악은 구춘당과 함께 형제의 의리를 맺었기 때문에 묘군(卯君)으로 일컬어졌다.


기행지도



인물

  • 남궁수(생몰년 미상) 본관 함열(咸悅), 자는 자구(子久), 동악 이안눌과 교유하였다.
  • 남궁침(1513∼1567)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