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두두미동(斗頭尾洞)"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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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두두미동(斗頭尾洞)<ref> | + | ○ 두두미동(斗頭尾洞)은 강화부 관아로부터 남쪽으로 20리 떨어 진 곳에 있으며 인정면(仁政面)에 속한다.<ref>인정면(仁政面)은 두두미동을 비롯하여 백운동, 삼동암동, 서문동, 마장동, 석성동 등이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불은면에 통합되었다. 두두미동(斗頭尾洞)은 현재의 두운1리이다. 두두미동의 ʻ두ʼ자와 백운동의 ʻ운ʼ 자를 합하여 1914년부터 두운리라 하였다. 두도미라고도 한다.<br /> |
− | 지명 유래[http://www.incheon.go.kr/board/288/1516545] | + | * 지명 유래[http://www.incheon.go.kr/board/288/1516545][https://blog.naver.com/wyindwyind/221336092526][https://blog.naver.com/ntashin/221490035514]</ref> |
− | [https://blog.naver.com/wyindwyind/221336092526][https://blog.naver.com/ntashin/221490035514] | + | 우리 집안이 대대로 살아 온 곳이다. 병오년(1906) 봄에 내가 비록 병이 있는 몸이지만 강화부 전체의 산천을 다시 관람하면서 고적을 살펴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으니, 두두미를 출발하여 다시 두두미로 돌아오려는 계획이었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 구(具)씨 집에서 술을 몇 잔 마신 후에 서쪽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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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씨 친구는 능성(綾城)의 세족(世族)으로, 문과(文科)를 거쳐 한림 전랑<ref>한림 전랑(翰林 銓郞)[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404&cid=41826&categoryId=4182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375&cid=46622&categoryId=46622] </ref>과 대각<ref>대각(臺閣)[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7047&cid=41826&categoryId=41826] </ref>을 역임한 강암공(江菴公) 구강(具綱)의 후손이다. 강암공은 판안동공(判安東公) 구성량(具成亮)의 아들이다. | ○ 구씨 친구는 능성(綾城)의 세족(世族)으로, 문과(文科)를 거쳐 한림 전랑<ref>한림 전랑(翰林 銓郞)[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404&cid=41826&categoryId=4182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375&cid=46622&categoryId=46622] </ref>과 대각<ref>대각(臺閣)[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7047&cid=41826&categoryId=41826] </ref>을 역임한 강암공(江菴公) 구강(具綱)의 후손이다. 강암공은 판안동공(判安東公) 구성량(具成亮)의 아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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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37.684039, 126.482895, [[1.두두미동(斗頭尾洞)]] 현 불은면 두운1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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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 37.692012, 126.467022, [[4. 삼동암동(三同岩洞)]] 현 삼동암리 | ||
+ | (B) 37.704532, 126.440659, [[5. 서문동(西門洞)]] 현 불은면 삼성2리 | ||
+ | (B) 37.714667, 126.451343, [[6. 마장동(馬場洞)]] 현 불은면 삼성1리 매재이마을 | ||
+ | (B) 37.714287, 126.455219, [[7. 석성동(石城洞)]] 현 불은면 삼성1리 돌성마을 중앙로 | ||
+ | (B) 37.690235, 126.519417, [[8. 대청교(大淸橋)]] 현 불은면 화도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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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삼동암동(三同岩洞)]] | ||
+ | [[5. 서문동(西門洞)]] | ||
+ | [[6. 마장동(馬場洞)]] | ||
+ | [[7. 석성동(石城洞)]] | ||
+ | [[8. 대청교(大淸橋)]] | ||
+ | 인천광역시 불은면 37.684039, 126.482895 | ||
==인물== | ==인물== | ||
*[[高在亨 |''' 고재형(高在亨)''']] | *[[高在亨 |''' 고재형(高在亨)''']] | ||
− | * '''[[구강|구강(具綱)]]''' | + | * ''' [[구강|구강(具綱)]]''' |
* '''[[구성량|구성량(具成亮)]]''' | * '''[[구성량|구성량(具成亮)]]''' | ||
2019년 4월 10일 (수) 07:22 기준 최신판
斗頭我步帶春風 (두두아보대춘풍)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一府山川兩眼中 (일부산천양안중)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 (명월녹양제구탑)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 (만배곡미사인웅)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 두두미동(斗頭尾洞)은 강화부 관아로부터 남쪽으로 20리 떨어 진 곳에 있으며 인정면(仁政面)에 속한다.[1]
우리 집안이 대대로 살아 온 곳이다. 병오년(1906) 봄에 내가 비록 병이 있는 몸이지만 강화부 전체의 산천을 다시 관람하면서 고적을 살펴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으니, 두두미를 출발하여 다시 두두미로 돌아오려는 계획이었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 구(具)씨 집에서 술을 몇 잔 마신 후에 서쪽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 구씨 친구는 능성(綾城)의 세족(世族)으로, 문과(文科)를 거쳐 한림 전랑[2]과 대각[3]을 역임한 강암공(江菴公) 구강(具綱)의 후손이다. 강암공은 판안동공(判安東公) 구성량(具成亮)의 아들이다.
두두미동
1.두두미동(斗頭尾洞)
2. 백운동(白雲洞)①
3. 백운동(白雲洞)②
4. 삼동암동(三同岩洞)
5. 서문동(西門洞)
6. 마장동(馬場洞)
7. 석성동(石城洞)
8. 대청교(大淸橋)
인천광역시 불은면 37.684039, 126.482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