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화양이론
Meta Data
- 타입 : 대외정책
- 한글항목명 : 존화양이론
- 한자항목명 : 尊華攘夷論
- 편자 : 김소희
내용
- 요약 : 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해 취한 대외정책.
그대로 풀이하면, 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줄여서 화이론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화(華)는 중국을 뜻한다. 이 말은 원래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인《춘추(春秋)》에서 나온 말로, 공자(孔子)가 주(周)나라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 존주론(尊周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를 춘추대의(春秋大義)라 하여 중요한 명분으로 삼았다.
한국에서는 고려 말 신진사대부들이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을 주장하였는데, 한국에서 존화양이론이 실질적으로 대두된 것은 이 때부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어 조선이 유교(儒敎)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인 뒤, 존화양이론은 조선의 대외정책의 하나로 굳어졌다.
당시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조선은 소중화(小中華:작은 중국)라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중국을 존중한다는 화이론이 곧 세계관이었으므로, 유교적 명분론을 중시하는 조선 역시 이 존화양이론에 바탕을 두고 국제관계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예는 17세기 서인(西人)들을 중심으로 인조(仁祖)가 취한 친명배금정책, 곧 존명배청정책과 효종(孝宗)의 북벌계획에서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고려 말에는 최영(崔瑩)이 요동정벌론으로 맞섰고, 17세기에는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실학자들의 북학론이 맞섰다. 그 뒤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보수적 유생들을 중심으로 다시 존화양이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가 중심이 된 이 사상은 기존의 존화양이에서 벗어나 서양 오랑캐들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자는 자주적인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존왕양이론(尊王攘夷論)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최익현(崔益鉉), 이지호(李贄鎬), 이항로(李恒老), 김평묵(金平默), 기정진(奇正鎭), 이강년(李康존화양이론 본문 이미지 1) 등이다.
존왕양이 사상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뜻으로 세운 척화비(斥和碑)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존왕양이는 왕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