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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과 조선 기생 이야기

Synopsis

신라시대에 시작된 칼춤은 어떤 과정으로 조선후기 정재에 편입되었을까? 조선검무를 창시했다는 밀양기생 운심은 어떤 이야기를 남겼으며, 기명을 대물림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던 함흥기생 가련은 검무 외에 또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

Storyline

Episode 1: 칼춤 이야기

칼춤(劒舞)은 검기무(劒器舞)라고 불리기도 하며, 신라소년 황창이 백제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자,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추기 시작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창은 관창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고려말까지는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칼춤은 조선 초기에는 성행하지 않다가 조선후기에 다시 유행하면서 정재로 편입되었는데, 이전의 칼춤이 남성춤이었다면 조선후기에 유행한 칼춤은 기생춤으로 변화된 것이 특징이다. 밀양기생 운심에 의해 재창조된 칼춤은 동작과 도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전해지고 있는데, 오늘날 비교적 조선 후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칼춤은 <진주검무>로 알려지고 있다.

Episode 2: 조선검무의 창시자 밀양기생 운심

조선초기까지 성행하지 않던 칼춤이 조선후기에 다시 유행한 것은 밀양기생 운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궁중에서 큰 연회가 열리면 지방의 기생이 한양으로 올라와서 연행에 참가했는데 이를 선상기(選上妓)라 했고, 재능있는 선상기를 왕족이나 세도가 있는 양반들이 사욕으로 붙잡으려 했기에 조정에서는 궁중의 행사가 마무리되면 선상기를 강제로 지방에 돌려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이렇게 강제로 지방에 돌려보내지는 관행이 정착되기 전에는 선상기들이 한양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에서 밀양기생 운심의 활약이 돋보였다. 운심은 조선검무를 재창조하였고, 칼춤을 배운 관서기생 대부분은 그녀의 제자라고 하며, 의기(義妓)로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Episode 3: 지음을 기다린 함흥기생 가련

<출사표>를 잘 외웠으며, 술을 잘 마시고 노래를 잘 할 뿐만아니라 검무에도 능하고 온갖 잡기(악기, 바둑, 쌍륙 등)에도 달통했던 아름다운 함흥기생 가련이 있었다. 가련은 자신의 삶도 주체적으로 살았는데 맞수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관청의 중요한 연회 도중이라도 박차고 일어날 만큼 기개가 높은 기생이었다. 함흥기생 가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지면서, 많은 문인들의 작품에서 때로는 과장된 일화로 등장했는데, 맞수를 기다리던 가련이 드디어 평생의 지음을 만났지만 하필이면 그남자가 고자라서 밤새 통곡했다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가련은 87세까지 현역 기생으로 칭송받으며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사후에도 수많은 문인들의 우상으로 존재하면서 기명조차 대물림되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3년간이나 인연을 맺었던 함흥기생의 이름도 이전의 기명을 대물림한 가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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