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넙성동(城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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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넙성동(芿城洞523)) 具門世築芿城中구씨 가문 넙성리에 대를 이어 사는데, 現使今人想古風오늘날 우리에게 옛 풍모를 생각게 하네. 楣上紅旌兵判字문 이마의 정려 글씨 병조판서 쓰였으니, 海天星日貫貞忠바다 하늘 해와 별에 충정으로 통했네. ○ 능성 구씨인 구원일(具元一)524)은 강암공(江菴公)의 7대손이다. 병조참의를 지낸 구신충(具信忠)525)의 6세손이다. 호조의 낭관을 지 낸 구유관(具有寬)의 고손이다. 병자년 난리에 순절한 일은 충렬사 주(註)에 보인다. ○ 그 자손들은 문학을 세습하여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523) 불은면 넙성리이다. 524) 구원일(1582∼1637)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선(汝先). 병자호란 때 강 화좌부천총(江華左部千摠)으로서 휘하 수십명을 거느리고 갑곶나루로 나아 갔으나, 강화유수 장신(張紳)이 싸울 뜻이 없음을 보고 항의하다 바다에 빠져 자결하였다.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525) 구신충(생몰년 미상) 1444년 식년시(式年試) 정과(丁科) 15위로 합격하였다. 불은면(佛恩面) 257 246. 둔랑촌(芚浪村526)*) 芚浪村中朴列墻둔랑촌엔 박씨 담장이 열 지어 있는데, 勤耕餘暇對書床부지런히 밭을 갈고 시간 내어 책을 읽네. 指言銀杏峩峩樹높다란 은행나무 가리키며 하는 말, 傍植先公小舍廊작은 사랑방 옆에다가 선조가 심은 거라네. ○ 둔랑(芚浪)은 넙성(芿城)의 작은 지명이다. 주계 박씨(朱溪朴氏) 가 많이 살고 있으며 내가 일찍이 이곳을 지났는데 박씨 성을 가진 벗이 그 집 뒤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8대 조 할아버지인 판서공이 집 앞에 심은 나무이다.”라고 했다. 247. 오두동(鰲頭洞527)) 一村花樹列成庄꽃나무로 동산 이룬 오두리 마을에선, 於讀於耕日月長글 읽기와 농사일로 세월을 보내네. 最愛此中丹桂籍그중에서 소중한 일은 과거에 급제한 일이니, 永承雨露放餘光나라 은혜 길이 이어 큰 빛을 발하리. ○ 오두동(鰲頭洞)에는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많이 살고 있는데, 나와 같이 영곡공(靈谷公)과 관란재공(觀瀾齋公)의 후손이다. 문중의 조카 고영중(高永中)528)이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 526) 불은면 넙성리 북성 서쪽 마을이다. 일명 뒷낭. 527) 불은면 오두리 터진개 서북쪽 안산이 마을이다. 528) 고영중(1867년 출생) 본관은 제주(濟州), 1892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48 258 譯註 沁都紀行 정자(正字)가 되었으나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 영곡공은 이름이 고득종(高得宗)529)인데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 으며 문과에 합격하여 대종백·대제학까지 이르렀고, 효로써 정려문 을 내려받았다. ○ 관란재공은 이름이 고회(高晦)인데 은일(隱逸)로 시직(侍直)했 고, 학행으로 우암 송시열(宋時烈)·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선생의 문 인이 되었다. 동춘당 선생의 무고함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 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 248. 오두어화(鰲頭漁火) 碧鰲頭上白鷗翩오두리 푸른 하늘에 백구가 날아오르고, 漁火如星海色鮮고기잡이불 별처럼 빛나니 바다색이 선명하네. 認是權公開別墅권율 장군 세운 별장 있음을 알게 하니, 疎松晩翠舊堂前만취당 앞에는 큰 소나무가 서있네. ○ 도원수 권율(權慄)530)의 별장이 오두정(鰲頭亭)에 있었는데 그 당의 이름을 만취당(晩翠堂)이라고 하였다. ○ 오두의 고기잡이불도 강화부 10경(景)의 하나이다. 위로 합격하였다. 529) 고득종(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 傅), 호는 영곡(靈谷). 14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나간 후 예조참 의 동지중추원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530) 권율(1537∼1599) 조선 중기의 문신·명장.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晚翠堂)·모악(暮嶽). 불은면(佛恩面) 259 249. 오두동 평양조씨(平壤趙氏) 馬峯東走更回頭마봉이 동쪽으로 흐르다 다시 머리를 돌린 곳에, 趙友居之起小樓조씨 친구 거기 살며 작은 누각 지었네. 松山檜谷承承業송산 회곡의 가업을 이어받아, 倚床531)先問野登秋상에 기대어 가을 수확 물어보네. ○ 송산(松山) 회곡(檜谷)의 후손인 평양조씨 조희봉(趙羲鳳) 형제 가 조카들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250. 사복포(司僕浦) 司僕浦中水漲橋사복포 가운데에 물넘이 다리가 있는데, 早移秧色漸抽苗일찍이 모를 내고 뽑아 심는 곳이라네. 靜聽農老勤勞語부지런히 일하는 농부 노인의 말 들어보니, 旱必懸橰澇守潮가물면 용두레 걸고 큰물 지면 조수 막아야 한 다네. ○ 사복포(司僕浦)에는 돌다리가 있다. 주민들이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