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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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언어(言語)를 연구함으로써 문장을 바르게 해석하고 고전(古典) 본래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학문.
내용
- 중국의 경서(經書) 연구로부터 일어났으며, 좁은 의미로는 한(漢) ·당(唐) 및 청대(淸代)의 훈고학을 일컫는다. ‘訓’은 언어라는 뜻, ‘詁’는 옛 언어를 말한다.
- 어느 나라에서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고전의 탐독은 어려워지게 마련이지만, 특히 중국에서는 진(秦)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BC 213∼BC 212) 사건과, 한초(漢楚)의 흥망(BC 209∼BC 202), 그리고 진(秦)에서 한초(漢初)에 걸쳐 한자(漢字)의 일대 변혁이 있어 짧은 기간 동안 학문적 단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 이전의 서적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한나라 때는 유교가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나갔고 중국의 학문은 유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한나라(漢:BC 202∼AD 8)에 들어서 사라진 유교경전의 내용을 발굴하고 그 뜻을 밝히는 학문이 발달했는데 이를 훈고학이라고 한다.
- 《시경(詩經)》의 〈모전(毛傳)〉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아(爾雅)》는 자전(字典)의 원시적인 것으로서 문자의 학문인 소학(小學)의 전문서이다. 후한(後漢:25∼220)에서는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져 마융(馬融) ·정현(鄭玄) ·가규(賈逵) 등이 나타났고,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소학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이와 같이 한의 훈고학은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밝혀 원래의 의미를 밝혔는데 이런 훈고학의 흐름은 삼국 ·육조(六朝)를 거쳐 당나라까지 이어졌으며, 당나라의 공영달(孔穎達) 등이 칙명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집하므로(640) 큰 성과를 올렸다. 그 후 유심적(唯心的) 경향이 강한 송학(宋學)의 유행으로 훈고학은 일시 쇠퇴하였으나, 청나라(淸:1644∼1911)에 이르러는 서양과학의 영향을 받게 되어 실증적인 고증학(考證學)이 일어났으며, 한학 부흥을 목표로 내걸었다. 청의 훈고학 특징은 《설문해자》를 기초로 하는 소학을 존중한 점에 있으며, 대진(戴震) ·단옥재(段玉裁) ·왕염손(王念孫) ·왕인지(王引之) ·유월(兪樾) 등이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