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쌍봉사
쌍봉사 | |
---|---|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 |
지정일 | 2014년 12월 26일 |
지정 명칭 | 화순 쌍봉사 |
한자 명칭 | 和順 雙峯寺 |
영문 명칭 | Ssangbongsa Temple, Hwasun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
건립·제작 | 839년 이전으로 추정(후기신라)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쌍산의로 459 (이양면, 쌍봉사) |
위도 | 34° 53′ 14″ |
경도 | 127° 3′ 35″ |
웹사이트 | http://www.ssangbongsa.org/ |
개요
화순 쌍봉사는 3층 목탑형 불전인 대웅전과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 및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탑비 등이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도윤(道允, 798~868)과 함께 구산조사(九山祖師)의 한 사람인 혜철(惠哲, 785~861)이 839년[1]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하는 점[2]을 고려할 때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쌍봉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앞뒤로 산봉우리가 쌍봉인 데에 근거하는데, 847년(문성왕 9)에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이 쌍봉(雙峰)으로 자신의 도호를 정하고 사찰명도 쌍봉사로 지었다고 한다.[3] 다만 창건 연대와 비교하자면, 사찰명을 철감선사가 지었는지 여부와 그 시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웅전은 상륜(相輪) 부분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층목탑의 모습을 전하는 건물(보물 제163호)이었는데, 1984년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실되면서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복원한 것이다.[4]
철감선사탑은 868년(경문왕 8)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기묘하고 아름다운 우수작으로 손꼽히며,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首)만 남아 있으나 그 조각의 우아함은 당대의 명작이라고 한다.[5]
위치
Virtual Pavilion
이번 답사의 촬영 결과물로 제작해서 넣을 예정.
전경
건조물 배치도
갤러리
관련 항목
이 문서 | 관계 | 관련 문서 |
---|---|---|
화순 쌍봉사 | 보유 문화재 | 철감선사탑, 철감선사탑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쌍봉사 극락전,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지장전 지장보살상일괄 |
화순 쌍봉사 | 관련 인물 | 철감선사 도윤, 적인선사 혜철 |
화순 쌍봉사 | 관련 공간 | 계당산, 송광사 |
기여
- 서동신: 처음 작성
주석
- ↑ 839년은 후기신라(통일신라) 민애왕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바로 다음 해이자, 민애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신무왕의 원년이며, 신무왕의 병사로 왕위에 오른 그의 태자 문성왕의 원년이다. 그 해의 상황이 얼마나 복잡다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여기서 원년이라 함은 칭원법(稱元法)상 훙년칭원법(薨年稱元法) 중 삼국시대의 유월칭원법(踰月稱元法)에 의거한 것이다.
- ↑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비문에 나와 있다. 태안사 적인선사탑(泰安寺寂忍禪師塔)은 태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泰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또는 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 ↑ 쌍봉사 홈페이지 참조.
- ↑ 위키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