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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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민족 고유의 옷이다.

내용

개요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으로 한복에는 두루마기, 포, 바지, 마고자 등 착용 시 가장 기본부터 입는 옷부터 맨 위에 걸치는 두루마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이들 중 가장 기본적으로 저고리, 치마, 바지, 포, 조끼와 마고자가 있다.[1]

현대의 한복은 보통 조선 시대에 착용했던 한복과 유사성이 크며 명절이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 입는 경우가 많다. 개량한복은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하고 있어 20세기 동안 그 외형이 여러 변화를 겪었다.한복도 의복이므로 기성복처럼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색과 소재, 특징 등을 새롭게 접목하며 이러한 시도는 여러 한복 디자이너들에 의해 현재에도 시도되고 있다.[2]

한복의 고유한 특징[3]

  • 색상

다채로운 치마와 저고리의 색깔

상류층이 입었던 한복은 색감이 아주 다양했으며 보통 어린 아이들이 다홍색이나 노란색 등 밝은 색을 많이 입고 중년층은 더 중후한 색상을 즐겨 입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시 흰색 한복만을 입었고 황색은 황제의 색이라 하여 사용이 금기시 되었으며 금박, 자수 등도 궁중가례복 등에서 쓰여 서민복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복의 색상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저고리와 치마, 저고리와 바지의 배색을 맞춘 경우가 많으며 저고리 색은 보통 치마와 같거나 더 옅게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삼국시대부터 왕궁의 단청과 복식, 계급을 드러내는 데 사용된 오방색은 상생과 상극 속에서 색의 배합과 조화를 나타냈다. 또한 백의민족이라는 별칭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래전부터 흰 옷을 숭상했으므로 한복의 색상은 흰색을 중심으로 밝은 원색과 아주 어두운 색깔이 공존하였기 때문에 맑고 짙은 색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나타내는 명조의 대비는 두드러졌다.

  • 문양

한복은 신분에 따라 문양도 다양하여 금박을 한 당의를 비롯해 식물, 동물, 기하학의 형상을 한 무늬 등 여러 종류가 나타났고 문양마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결혼 한복에는 주로 모란꽃, 장미, 당초 문양을 사용했다. 각 문양은 하나하나가 각기의 독특한 의미를 지니며 일례로 학은 고고하고 청초한 이미지를 나타내 길상을 상징하였고 호랑이나 용은 학과 더불어 신분의 고귀함을 나타냈다. 문양은 자수, 금박, 조각잇기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여러 종류의 문양은 한복 뿐 아니라 한국 문화의 한 획을 차지하고 있다.

장신구[4]

한복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신구가 존재했다. 한복의 장신구에는 가락지, 귀고리, 노리개, 비녀, 뒤꽂이, 단추 등이 있으며 그 화려함이 진주와 산호에 이르기까지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고려 시대 때에도 귀금속을 사용한 장신구가 발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 종류도 팔찌와 옥으로 만든 단추형 장신구, 목걸이, 장식편 등으로 화려했다.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귀족계급 사녀들은 허리띠에 금방울, 금 향낭을 패용했다."고 쓰여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장신구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17세기를 넘어가면서 장신구의 사용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게 된다.

  • 비녀

비녀는 여인들이 머리를 지탱하여 올리기 위해 머리를 뒤로 묶어 둥그렇게 말아 꽂던 장신구이다. 비녀는 한자로는 잠(簪)이라 썼으며 기혼 여성들은 혼인을 올렸다는 증거로 착용했기 때문에 여인에게 비녀는 정절과 품위의 표현이었다. 형태도 다양하여 그 모양에 따라 완두콩 모양이나 호도의 모양, 국화의 모양, 대나무의 모습, 석류 등 다양한 형태가 등장했다. 특별히 왕비는 봉황의 형상을 함 비녀를 착용하여 봉황잠이라고 불렀다. 금이나 주옥은 상류층에게만 사용이 허락되었고 칠보나 은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용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는 용잠이나 봉잠도 있다.

  • 노리개

가장 흔히 알려진 한복의 장신구는 노리개로서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는 여성 장신구이다. 그 속뜻은 "소중한 물건", "사랑하고 즐기며 아끼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노리개는 신분에 관계 없이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착용했으며 신라 시대와 고려 왕조 동안에는 허리띠 쪽에 찼던 것이 조선시대에는 저고리가 짧아지면서 저고리 아래 부분으로 그 위치가 올라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리개는 고유 의상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어 단조로울 수 있는 의복을 치장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 색조는 홍·남·황 삼원색을 비롯해 자주, 보라, 옥색 등 열두 색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으며 왕실에서부터 부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노리개를 착용했다.

현재의 한복 그리고

한복은 일상에서 입는 옷이 아니라 결혼식이나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특별한 옷이 되었다. 한복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80년대였는데 당시는 경제적 안정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국제적인 문화교류도 증가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졌다.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전후로 해서 한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 옷 입기 운동’도 전개되었다. 이때의 한복은 전통적인 형태 그대로가 아니라 모양을 단순화하고 실용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착용하기 편한 생활한복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한복과 달리 저고리의 고름이 착용에 용이하도록 단추로 대체됐고 부피가 큰 치마를 서양식 의복과 접목하여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또 두루마기의 깃을 올려 외투와 같은 형태를 취했으며 소매도 짧게 디자인 해 한복의 불편한 점을 개량해 입었다. 1990년대에는 생활한복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패션 아이템으로 수용되기도 했으며 이를 교복으로 채택하는 학교도 생겨나 한복이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7년에는 한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복의 우수성과 산업적,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정했다. ‘한복의 날’에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5]

멀티미디어

이미지

동영상

Asia Model Festival | 2016 Asia Model Festival "한류한복패션쇼(K- Wave Hanbok fashion show)"

시선뉴스 YouTube|우리의 옷 한복, 긴 역사 속 한복의 변천사

기여

주석

  1. [1]
  2. 한복진흥센터
  3. 두산백과 한복
  4. 위키백과 한복
  5.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