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닌자
일본의 닌자
인게임 : 겐지
겐지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복장이 일본의 닌자들과 매우 유사하다.
겐지의 무기인 용검을 등에 둘러메고 있다. 이 방식은 흔히 닌자들의 방식이라고 알려져있다.
겐지는 주된 무기로 수리검을 사용한다.
아웃게임 : 일본의 닌자[1]
- 개념
일본의 전통시대에 있어서 첩보조직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조직 속에서 별도의 독립조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닌자(忍者)가 독립된 조직으로서 형성되어 있다. 닌자는 전국시대 명문가에 소속되어 인술(忍術)을 사용하여 탐정, 모략, 후방교란, 암살 등을 행한 사람을 일컫는데, 忍びの者라고도 한다.
닌자는 전쟁사에 있어서 종종 완벽한 전투기계로 묘사되기도 하였는데, 검은 복장을 입은 이들은 죽음과 혼돈이 난무했던 일본의 거친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한 장을 장식했다.
윤리라는 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어떤 두려움이나 흔들림없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자를 위해 살인을 했다.
닌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탐, 무장 전투, 비무장전투, 독 그리고 심리전의 기술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훈련을 계속하였고, 이런 기술들은 닌자가 잠행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입수한 모든 것을 상급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였다.
닌자들과 인술은 근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600년 이상을 번창했다. 근대 이후 닌자는 정부조직에 일부가 편입되어 첩보조직으로 활동하였다.
- 닌자의 배경
닌자와 그들의 무술인 인술(忍術)은 아직까지 고대의 신비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의 초기 태동에 관해 많은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일본의 전설 속의 존재인 덴구(天狗)의 후예일 것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닌자라는 조직은 일본의 중세부터 근세까지에 걸친 정치적, 종교적인 혼란기에 탄생하였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최초의 닌자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기원은 중국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기원전 6세기경, 중국의 전국시대에 전략가로 활동하고 있던 손자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이라는 병서를 집필했다.
이 책은 공격적인 전략, 적의 약점과 힘, 지형의 활용, 스파이의 운용, 게릴라전술, 이러한 것들의 취약점 등 각 주제를 매우 정밀하고 논리적인 분석과 접근을 통해 기술해놓았다.
《손자병법》은 당시의 지식인과 군부의 장교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졌으며, 심지어 도가나 불가의 인물들도 최소한 그 대략적인 내용을 상식으로 습득하고 있었다.
손자는 전투라는 행위는 단순히 무장한 군대가 부딪혀 싸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병법서를 통해, 단순히 수적 우세는 아무런 이점도 제공하지 못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또 그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의 작전에 관한 바른 정보수집과 적절한 전략의 사용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가장 으뜸으로 지향하는 것은 “훌륭한 전략을 짜서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도 적군을 진압하고, 공성전없이 도시를 장악하며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 없이도 땅을 정복한다.”였다.
손자는 언제나 자신의 군주에게 군사력만을 믿고 안주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는 전문적인 정탐조직의 결성과 잠복활동의 시작을 주창하고, 자신의 전술이 눈앞에 닥친 전쟁에서 빠른 효과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이 조직은 당시에 떠돌이 승려로 널리 알려진 집단을 모태로 삼아 태어났다.
1500년전, 상당수의 산적집단이 중국 북부에 위치한 거대한 삼림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숲의 악마들이라 불렀다.
여행자들은 도적단들이 활개를 치는 밤이 다가오면 몸을 숨길만한 피신처를 찾아야 했다. 도적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숲에서 제공받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이들의 수법은 갈수록 전문화되어 적대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 숲속에 은신하는 법에서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들이 인가로 내려갈 때는 약탈을 하거나 근처 성이나 도시의 영주들로부터 첩자로 고용되기 위할 때 뿐이었다.
이 시기의 중국은 극심한 내부 혼란에 의해 수많은 폭동과 반란이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수나라는 돌궐의 침입과 고구려와의 전쟁 등 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지식인 층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많은 식자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여 본국으로 부터 나와 일본으로 도피하기 시작했고, 앞서 말했던 숲속의 악마들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불가와 함께 당시 중국 종교계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던 도가의 도사들은 도교 자체의 기복 신앙적 관점과 비밀리에 전수되는 가르침에 수세기동안 깊게 빠져 들었다.
이런 가르침의 대부분은 티베트와 인도의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었으며, 선택된 소수에게만 전해졌다.
도사들은 부적을 만들어 부리는 마술과 연금술을 익혔고, 특별한 호흡법과 명상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수련했다. 이러한 비전(秘傳)들은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세대를 거듭하며 전수되었다. 이를 통틀어 선술(仙術)이라 불렀다.
선술을 수련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주로 동굴이나 산꼭대기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도사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우주와 하나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온갖 종류의 고행 속으로 던진 뒤 이를 견뎠다. 고통어린 수련 끝에 도사들은 각종 약초와 연단법(鍊丹法)의 도움으로 이 세상의 어떤 이들과도 구분되는 정신세계와 물리적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정신적인 능력을 계발하여 그 영향력을 더욱 넓히고 깊은 명상을 통해 이를 강하게 단련시켜서, 독립된 존재로서 다른 동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미미하고 가늘게 이어지는 호흡과 그 조절을 통한 인내심의 수련은, 어리석고 미신에 쉽게 동요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도사들이 사후에도 부활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불사의 소문이 곧 널리 퍼지게 되자, 근처 주민들은 그들의 수행에 충분히 넓고 알맞은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그 당시 장사치들이 신기한 이야기들을 이곳 저곳에 전하고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하늘과 통하며 불멸이고 동식물들과 공존하는 도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소재거리였다.
소문은 황제에게도 퍼졌다. 도사들의 성취에 경외심을 품은 황제는 그들이 정적들에게 도움을 줄 것을 걱정하며 불편해했다. 이 때문에 은거지에서 떠나 하산한 도사들은 발견되는 즉시 살해되었다.
군대의 지휘관들은 제대로 죽이지 않으면 도사들이 마술을 쓰거나 귀신을 부려 도망쳐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황제는 도사들을 죽인 후에 그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불태우라고 추가로 명령했다.
무지한 사람들은 미신을 쉽게 믿었고 그에 관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에도 쉽게 수긍했다. 이 점은 수세기가 지난 후 닌자들에 의해 심리적 전술로 즐겨 사용되었다.
박해 때문에 산속에서 은거하여 수행하고 있던 도사들은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나라를 벗어나 신천지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일본의 사원으로 눈을 돌렸다. 도사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지식을 축적했고, 또한 원래 교리와 신조를 포함해 일본의 전통 종교, 신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각주
기여
- 임효정: 처음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