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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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가을 답사

이성무(李成茂)
대표명칭 이성무
한자표기 李成茂
출생일 1370년
사망일 1436년
본관 강릉(江陵)
눌재(訥齋)
성시(聖始)
시대 조선
국적 조선
이장밀(李長密)
강릉최씨 호장(戶長) 최하(崔河)의 딸


이성무(李成茂, 1370년 ~ 1436년)은 강릉 십이향현 중 일인인 조선의 문신이다.

생애

이성무의 자는 성시(聖始), 호는 눌재(訥齋)이다. 부친은 이장밀(李長密)이고, 모친은 강릉최씨 호장(戶長) 최하(崔河)의 딸이다. 이장밀은 고려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에 따라 처가가 있는 강릉으로 퇴거하였다. 이성무는 강릉 호가리(虎街里:현 옥천동)에서 태어났는데,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지만,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부친을 본받아 과거에는 응시하지 않고 독서와 효우(孝友)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신하의 도리는 어긋남 없이 이행하였는데, 태조와 정종이 승하했을 당시 부모상과 같이 3년 동안 상주의 예를 갖추었다.

일화

효행이 지극하여 74세의 모친이 중한 병으로 눕게 되자, 한겨울에 잉어를 잡아 대접하여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자(出天之孝子)’라 칭송한 일화가 전한다. 태종은 그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1417년(태종 17) 이씨 가문의 네 형제에게 효자정려(孝子旌閭)와 사정(司正)의 벼슬을 내리고, 특별히 이성무에게는 사헌부 감찰 벼슬을 하사하였으나 분에 넘치는 처사라 하여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이성무의 행실에 감동한 태종은 특별히 삼강행실시(三綱行實詩) 2수를 내렸다.

사후 추모사업

이성무 관련 유적으로는 강릉시 교동 군정교(郡丁橋) 옆에 이성무 네 형제와 이성무의 후손 이당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旌閭閣)이 있는데, ‘영해이씨 2세6효지려(二世六孝之閭)’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정려각 안에는 이성무 네 형제의 행적을 적은 〈사효행적(四孝行蹟)〉과 후손인 이당·이민 형제의 효행을 기록한 〈이효행적(二孝行蹟)〉이 전한다. 또 묘가 전하지 않아 단(壇)을 위촌리 선산에 설치하고 1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낸다.

참고

도서

  • 박도식, 『강릉의 12향현 자료집』, 강릉문화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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