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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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中宗)의 계비(繼妃)

내용

조선 중종의 두 번째 계비(繼妃)로,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윤지임(尹之任)과 전성부부인(全城府夫人) 이씨(李氏)의 딸이며,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의 누나이다. 아들은 명종이며, 딸은 의혜공주(懿惠公主)·효순공주(孝順公主)·경현공주(敬顯公主)·인순공주(仁順公主)가 있다.[1]

1515년(중종 10)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가 원자(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문정왕후는 17세 때인 1517년 계비로 간택되어 왕비로 책봉되었고 1534년(중종 29) 경원대군(慶源大君, 명종)을 낳았다. 1545년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죽고 친아들인 명종이 12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母后)로서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했다.[2]

수렴청정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윤원로(尹元老)를 해남(海南)으로 귀양 보내고 윤임 등을 사사하였다.[3]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했으며, 많은 승려를 뽑고 전국 300여 개의 절을 공인하는 등 불교 중흥을 도모하였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승려 보우(普雨)를 맞아들여 봉은사(奉恩寺) 주지로 임명하고, 봉은사 근처로 중종의 능을 옮겼다. 자신이 죽은 후에 합장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봉은사 앞 넓은 공간에서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승과(僧科) 시험을 부활시켜 많은 승려를 선발했는데 이때 선발된 승려 가운데는 서산대사사명대사 같은 인물도 있다.[4]

지식 관계망

  • 허응당 보우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문정왕후 왕비 A의 유형은 B이다 A dcterms:type B
조선 중종 문정왕후 A는 B의 남편이다 A ekc:hasWife B
문정왕후 윤원로 A는 형제 B가 있다
문정왕후 윤원형 A는 형제 B가 있다
문정왕후 조선 명종 A는 B의 어머니이다
문정왕후 보우(조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주석

  1. 나종현, "문정 왕후",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나종현, "문정 왕후",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유병용, "문정왕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이상배, "문정 왕후",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나종현, "문정 왕후",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유병용, "문정왕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상배, "문정 왕후",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