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문학에 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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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그 진의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문제를 먼저 짚어 보기로 한다. 디지털 인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에게 이미 ‘디지털’과 ‘인문학’의 관계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것이 디지털 인문학의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그 선입견이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 ⓵ 디지털 인문학 = 연구 자료의 디지털화
  • ⓶ 디지털 인문학 = 연구 결과의 온라인 서비스
  • ⓷ 디지털 인문학 = 계량적 연구 방법
  • ⓸ 디지털 인문학 = 디지털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적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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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디지털 인문학이 아닌 것은 없다. 하지만 그 하나 또는 일부만을 가지고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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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

디지털 인문학 = 연구 자료의 디지털화 or 연구 결과의 온라인 서비스

적지 않은 인문학자들이 이미 당연시 하고, 또 그 유용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⓵과 ⓶이다.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디지털화 해서 쉽고 편리하게 찾아본 다음, 자신이 쓴 논문이나 저술을 인터넷상에 유통시킴으로서 연구 성과를 확산시킨다는 것. 그것의 긍정적인 기능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⓵과 ⓶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전통적인 인문학의 영역이며 거기에 디지털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추구하는 디지털 인문학은 ⓵에서 출발하여 ⓶에 이르는 그 중간의 ‘연구’ 과정에서 더 많은 부분이 디지털 환경에 의존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디지털 인문학 = 계량적 연구 방법

반면, 연구 방법 면에서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⓷의 입장도 적지 않은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인문학 영역의 연구 중에는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부터 컴퓨터의 계산 기능을 도구로 활용해 오던 분야가 있어 왔다. 언어처리 분야에서 사용하는 어휘 데이터 분석 프로세스나 역사사회학 등에서 통계적 방법론을 적용할 때 썼던 프로그램은 대체로 데이터의 계량적 분석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여전히 의미있고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디지털 인문학이 추구하는 세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인문학은 계량, 비계량의 경계를 넘어서서 인문학 세계에서 의미있게 논의되던 다양한 층위의 과제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더 정밀하게 탐구되는 것을 추구한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인문학 연구는 분명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을 줄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늘려 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을 버리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떠한 전제에서 볼 때 무엇이 명확하고 무엇이 불명확한지, 다른 시각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다 선명하게 보임으로써 미지의 지식 세계를 더 깊고 넓게 탐구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디지털 인문학이다.

디지털 인문학 = 디지털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적 담론

⓸의 화두는 그것이 디지털 인문학인가를 논하기 이전에 ‘현대 인문학’의 중요한 주제이다. 또한 디지털 인문학은 현대의 인문학임을 표방하기에 그 주제역시 디지털 인문학이 궁극적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의가 전통적인 사고의 틀에 머물면서 디지털 세계를 타자화 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머문다면, 그것은 디지털 인문학의 발전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전통학문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디지털 인문학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미숙하고 불완전한 실험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발견하게 될 문제점에 대한 해법은 그 실험의 현장에서 더욱 치열한 실천의 노력을 기울 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