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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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레
(褡𧞤 塔胡 搭胡 褡胡 褡複 褡穫 褡護)
출처 : 한복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자 (URL : https://m.blog.naver.com/yeon_119/220781824806)
대표명칭 더그레
한자표기 褡𧞤 塔胡 搭胡 褡胡 褡複 褡穫 褡護
이칭별칭 탑호 탑홀 전복 호의 쾌자
착용신분 王, 朝臣, 下級群俗
착용성별 남성





개요

더그레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내용

더그레・답호・전복・호의・쾌자의 상호관련성

더그레(Deogeure)란 褡護․戰服․號衣․快子가 모두 포함된 것으로 고려말 한자 학습서인『老乞大』에는 褡護를 언해한 명칭이었지만 조선 말기에는 덧 입는 의복인 褡護․戰服․號衣․快子가 동일한 형태가 되므로 포나 상의류 위에 덧입는 의복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정의한다.[1]


褡護

영조 재궁의대(梓宮衣襨)에 전복, 답호가 동시에 있는 것으로 보아 형태가 달랐음을 나타내며, 정조 재궁의대에는 답호(15着)와 쾌자(8着)의 기록이 있고, 순조 재궁의대는 쾌자(6着)만 있는 것으로 보아 순조 이후에 답호가 착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형태가 같아졌음을 고종 25년(1888) 직강(直講) 김영선(金榮善)이 답호와 전복은 그 제도가 달랐는데 답호령을 내리고 전복을 입으라고 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상소문으로 알 수 있다.말기의 실물과 사진을 보면 현재의 돌복으로 입혀지고 있는 전복과 같았는데, 이것은 『정리의궤 整理儀軌』의 좁은 소매 쾌자와도 같다. 순조 이후 형태는 쾌자 하나로 집약되었고, 용어는 답호, 전복, 쾌자가 혼용되었다. [2]


戰服

말기 전복의 형태는 대금이며 옷깃이 달리지 않은 둥근 형 혹은 ∨형이며, 어깨너비가 넓어 소매 같아 보이며 뒤트임과 옆트임이 있는 쾌자(快子)와 비슷한 옷이다.전복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영조 재궁의대(梓宮衣襨)에 전복 2점과 답호(褡護) 32점이 있고, 정조 재궁의대에는 답호와 쾌자가 기록되었고, 순조 재궁의대에는 쾌자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정조 이후 전복은 어깨좁은 쾌자와 같아져서 혼용되었다고 본다.호의는 더그레라고도 하며 하급군사들의 소속을 표시했던 3자락 옷이다. 대금에 옷깃을 Ⅴ자 혹은 둥글게 파준 옷으로 옆트임이 많아 활동이 많을 때에는 앞의 좌우 2자락을 뒤로 잡아 매었다. 품과 어깨너비가 같은 홑옷이며 말기에는 쾌자를 닮아갔다. [3]


號衣

각 영문(營門)의 군사, 마상재군(馬上才軍), 사간원 갈도(喝道), 의금부 나장들이 입던 세 자락의 웃옷.더그레라고도 하며 그 모양이 전복(戰服)과 비슷하므로 답호(褡護)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 옆이 완전히 터진 세 자락 옷인 점이 전복과 다르다. [4]


快子

군복의 하나로 왕 이하 서민, 하급군속·조례(皁隷)가 겉옷 위에 덧입는 옷.쾌자의 형태는 대금에 둥근옷깃이며 무가 있고 옆트임과 뒷트임이 있는 전복(戰服)과 비슷한 옷이나, 다른 점은 전복에 비해 어깨넓이가 좁은 점이다. 영조 재궁의대(梓宮衣襨)에는 답호와 전복이, 정조 재궁의대에는 답호와 쾌자가, 순조 재궁의대에는 쾌자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순조 때는 답호, 전복, 쾌자의 형태가 같아졌고 용어는 혼용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본다. 실물을 보면 한가지 형태인데 정리의궤의 괘자형이다. [5]


주석

  1. 변지연(2006). 더그레에 관한 연구. P82-83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답호(褡穫))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복(戰服))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호의(號衣))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쾌자(快子))


참고문헌

  • 변지연. (2006). 더그레에 관한 연구
  • 노걸대(老乞大)
  • 박통사(朴通事)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고종실록
  • 악학궤범(樂學軌範)
  • 「‘집사’에 나타난 몽고복식에 관한 연구」(김미자,『여성연구논총』 9,서울여자대학교여성연구소,1994)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답호와 전복 재고」(박성실,『학예지』,육군사관학교박물관,1994
  • 『한국복식사론』(이경자,일지사,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