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D200692

song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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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출토_백자철화_제기명_접시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 송정동출토_백자철화_제기명_접시
제작시기 조선



상세설명

광주읍에서 번천리로 가기 전 송현 아래에 송정리 마을이 있다. 송정리는 1914년 송정松亭과 수하水下를 합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릇 안 바닥에는 간지(제작연도) 그리고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1] 1649년 초봄 무렵, 송정동(옛 송치松峙) 가마는 선동리에서 옮겨와 10여년간 어기御器 생산을 지속하였다. 송정동의 가마터 8곳 가운데 두 차례 조사된 5호·6호 가마는 조선중기 관요의 구조를 규명하는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5호 가마는 경사도 16°의 바닥을 조성한 뒤 점토로 벽체와 천정을 축조하여 총길이 22.5m, 최대너비 255cm의 반지하식의 등요를 만들었다. 부채꼴 모양의 이 가마는 경사면을 따라 아궁이와 3개의 번조실, 굴뚝을 배치하고 번조실 앞쪽 우측에 출입구를 두었다. 특히, 불턱과 3줄의 고래가 있는 아궁이 위로 불턱과 3개의 불기둥으로 번조실의 경계를 만들어 불의 흐름에 효율을 더하였다. 가마주변으로는 추정 지붕시설을 두고 가마의 안전을 비는 진단구鎭壇具를 아궁이 옆에 묻어 특이 할만하다. 6호에 비해 갑발이 많이 발견되는 5호는 회청색 백자를 중심으로 사군자문, 포도문, 시 등이 그려져 있는 철화백자와 청자가 함께 출토되었으며 반상기외에 호, 병, 합, 향로, 마상배, 제기, 명기 등 다양한 기종이 제작됐다. 한편, 굽 안바닥에 새겨진 <左/右+간지>, <左/右+간지+숫자> 명문은 5호에서 己丑(1649년)~甲午(1654년)까지, 6호에서는 己丑(1649년)~壬辰(1652년)까지의 간지가 확인되어 운영시기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였다[2]
제물을 담는 제례용 백자접시로 굽 안바닥에 '제기'라는 글자를 철화로 써넣어 용도를 표기하였다. 회백색 태토에 담청색 유약을 시유하였으며, 그릇의 형태는 동체 하단에서 곡선으로 올라가고 내저면에 큰 원각이 있는 조선전기 양식의 접시이다. 제례용 백자접시는 일상기명에 '祭'자를 단독 표기한 경우가 16-18세기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그릇의 명칭을 명확하게 표기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이다.[3]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
  2.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
  3.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21책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