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D200680

song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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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출토_백자철화_운문_뚜껑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대표명칭 송정동출토_백자철화_운문_뚜껑
제작시기 조선



상세설명

광주읍에서 번천리로 가기 전 송현 아래에 송정리 마을이 있다. 송정리는 1914년 송정松亭과 수하水下를 합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릇 안 바닥에는 간지(제작연도) 그리고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1] 1649년 초봄 무렵, 송정동(옛 송치松峙) 가마는 선동리에서 옮겨와 10여년간 어기御器 생산을 지속하였다. 송정동의 가마터 8곳 가운데 두 차례 조사된 5호·6호 가마는 조선중기 관요의 구조를 규명하는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5호 가마는 경사도 16°의 바닥을 조성한 뒤 점토로 벽체와 천정을 축조하여 총길이 22.5m, 최대너비 255cm의 반지하식의 등요를 만들었다. 부채꼴 모양의 이 가마는 경사면을 따라 아궁이와 3개의 번조실, 굴뚝을 배치하고 번조실 앞쪽 우측에 출입구를 두었다. 특히, 불턱과 3줄의 고래가 있는 아궁이 위로 불턱과 3개의 불기둥으로 번조실의 경계를 만들어 불의 흐름에 효율을 더하였다. 가마주변으로는 추정 지붕시설을 두고 가마의 안전을 비는 진단구鎭壇具를 아궁이 옆에 묻어 특이 할만하다. 6호에 비해 갑발이 많이 발견되는 5호는 회청색 백자를 중심으로 사군자문, 포도문, 시 등이 그려져 있는 철화백자와 청자가 함께 출토되었으며 반상기외에 호, 병, 합, 향로, 마상배, 제기, 명기 등 다양한 기종이 제작됐다. 한편, 굽 안바닥에 새겨진 <左/右+간지>, <左/右+간지+숫자> 명문은 5호에서 己丑(1649년)~甲午(1654년)까지, 6호에서는 己丑(1649년)~壬辰(1652년)까지의 간지가 확인되어 운영시기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였다[2]
국가의 중요의례에 사용되는 용준의 뚜껑으로 추정된다. 뚜껑의 형태는 곡선으로 올라가서 봉긋하게 솟아있는 상단부 중앙에 손잡이를 붙였던 흔적이 있고 접지면이 반전되어 위로 말려있다. 상면에는 철화안료로 변형된 이중연판문으로 보조문양대를 그려넣고 아래로 꼬리가 가늘게 좁아지는 형태의 운문을 장식하였다. 내면에 받침을 받쳐 번조한 흔적이 남아있다.[3]


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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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195363 조선시대 백자용준의 양식변천고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001833 조선후기 궁원제와 명문기명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061166 16-17세기 朝鮮 白磁祭器의 새로운 경향

주석

  1.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 13책 김영훈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6
  2.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 2014 경기도자박물관 발굴유물특별전 >, 광주: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14
  3.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자박물관 학술총서 ; 제21책 이상기선생 기증도편 자료집>, 광주 :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