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현진건의 「불국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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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8월 26일 (월) 02: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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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left.png 장난감 기차는 반 시간이 못 되어 불국사역까지 실어다 주고, 역에서 등대했던(기다리고 있던) 자동차는 십릿길을 단숨에 껑청껑청 뛰어서 불국사에 대었다. 뒤로 토함산을 등지고 왼편으로 울창한 송림을 끌며 앞으로 광활한 평야를 내다보는 절의 위치부터 풍수쟁이 아닌 나의 눈에도 벌써 범상치 아니했다. 더구나 돌 층층대를 쳐다볼 때에 그 굉장한 규모와 섬세한 솜씨에 눈이 어렸다.

초창 당시엔 낭떠러지로 있던 곳을 돌로 쌓아올리고, 그리고 이 돌 층층대를 지었음이리라. 동쪽과 서쪽으로 갈리어 위아래로 각각 둘씩이니 전부는 네 개인데, 한 개의 층층대가 대개 열일곱 여덟 계단이요, 길이는 오십칠팔 척으로 양 가에 놓인 것과 가운데에 뻗친 놈은 돌 한 개로 되었으니, 얼마나 끔찍한 인력을 들인 것인가를 짐작할 것이요, 오늘날 돌로 지은 대건축물에도 이렇듯이 대팰 민 듯한 돌은 못 보았다 하면, 얼마나 그 때 사람이 돌을 곱게 다루었는가를 깨달을 것이다.

돌 층층대의 이름은, 동쪽 아래의 것은 청운교(靑雲橋), 위의 것은 백운교(白雲橋)요, 서쪽 아래의 것은 연화교(蓮花橋), 위의 것은 칠보교(七寶橋)라 한다. 층층대라 하였지만, 아래와 위가 연락되는 곳마다 요새말로 네모난 발코니가 되고 그 밑은 아치가 되었는데, 인도자의 설명을 들으면 옛날에는 오늘날의 잔디밭 자리에 깊은 연못을 팠고, 아치 밑은 맑은 물이 흐르며 그림배가 드나들었다 하니, 돌 층층대를 다리라 한 옛 이름의 유래를 터득할 것이다. 층층대 상하에는 손잡이 돌이 우뚝우뚝 서고 쇠사슬인지 은사슬인지 둘러 꿴 흔적이 아직도 남았다. 귀인이 이 절을 찾을 때엔 저 편 못가에 내려 그림배를 타고 들어와 다시 보교를 타고 이 돌 층층대를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단다. 너른 못에 연꽃이 만발한데 다리 밑으로 돌아드는 맑은 흐름엔 으리으리한 누각과 석불의 그림자가 용의 모양을 그리고 그 위로 소리 없이 떠나가는 그림배! 나는 당년의 광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스스로 황홀하였다. 활동 사진에서 본 물의 도시 베니스의 달빗긴 바닷가에 그림배를 저어 가는 청춘 남녀의 광경이 선하게 나타난다.

이 돌 층층대를 거치어 문루를 지나 서니,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두 탑은 물론 돌로 된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만져 보아도 돌이요, 두들겨 보아도 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석가탑은 오히려 그만둘지라도 다보탑이 돌로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하여도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연한 나무가 아니요, 물씬물씬한 밀가루 반죽이 아니고, 육중하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저다지도 곱고 어여쁘고 의젓하고 아름답고 빼어나고 공교롭게 잔손질을 할 수 있으랴. 만일, 그 탑을 만든 원료가 정말 돌이라면, 신라 사람은 돌을 돌같이 쓰지 않고 마치 콩고물이나 팥고물처럼 마음대로 뜻대로 손가락 끝에 휘젓고 주무르고 하는 신통력을 가졌던 것이다. 귀신조차 놀래고 울리는 재주란 것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름이리라.

탑의 네 면엔 자그마한 어여쁜 층층대가 있고, 그 층층대를 올라서니 가운데는 위층을 떠받치는 중심 기둥이 있고, 네 귀에도 병풍을 겹쳐 놓은 듯한 돌기둥이 또한 섰는데, 그 기둥과 두 층대의 석반(石盤)을 받은 어름에는 나무로도 오히려 깎아 내기가 어려울 만한 소로(접시받침)가 튼튼하게 아름답게 손바닥을 벌리었다. 지붕 위에 이중의 네모난 돌 난간이 둘러 쟁반 같은 이층 지붕을 받들었고, 그 위엔 8모난 돌 난간과 세상에도 진기한 꽃잎 모양을 수놓은 듯한 돌쟁반이 탑의 8모난 난간을 받들었다. 석공이 기절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기상 천외의 의장(물건의 겉을 꾸미는 도안)은 또 어디서 온 것인고! 바람과 비에 시달린 지 천여 년을 지낸 오늘날에도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고, 옛 모양이 변하지 않았으니, 당대의 건축술 또한 놀랄 것이 아니냐!

들으매 이 탑의 네 귀에는 돌 사자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동경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 오려면 5백만 원을 주어야 내어놓겠다 한다던가? 소중한 물건을 소중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굴리며, 어느 틈에 도둑을 맞았는지도 모르니, 이런 기막힐 일이 또 있느냐? 이 탑을 이룩하고 그 사자를 새긴 이의 영(영혼)이 만일 있다 하면 지하에서 목을 놓아 울 것이다.

석가탑은 다보탑 서쪽에 있는데, 다보탑의 혼란한 잔손질과는 딴판으로, 수법이 매우 간결하나마 또한 정중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 미인(盛裝美人-화려하게 치장한 미인)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 미인(淡粧美人-엷은 단장한 미인)이라 할까? 높이 27척, 층은 역시 3층으로 한 층마다 수려한 돌병풍을 두르고, 병풍 네 귀에 병풍과 한데 어울러 놓은 기둥이 있는데, 설명자의 말을 들으면 이 탑은 한 층마다 돌 하나로 되었다 하니, 그 웅장하고 거창한 규모에 놀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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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진건, 『고도순례 경주(古都巡禮慶州)』(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