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論語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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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원 KU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4월 5일 (화) 20:40 판 (三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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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佾」


一章



○“八佾舞於庭” ‘八佾舞’連讀. 世人佾下斷句, 非也. 『春秋』隱公五年九月, “考仲子之宮, 初獻六羽.” 『左氏傳』, “公問羽數於衆仲, 對曰, ‘天子用八, 諸侯用六, 大夫四, 士二. 夫舞所以節八音, 而行八風, 故自八以下.’, 公從之, 於是初獻六羽, 始用六佾也.”, 『公羊傳』, “初者何? 始也. 六羽者何? 舞也. 初獻六羽, 何以書? 譏, 何譏爾? 譏始僭諸公也. 六羽之爲僭奈何? 天子八佾, 諸公六. 諸侯四. 諸公者何? 諸侯者何? 天子三公稱公, 王者之後稱公, 其餘大國稱侯, 小國稱伯子男. 始僭諸公, 昉於此乎? 前此矣. 前此則曷爲始乎此? 僭諸公, 猶可言也, 僭天子, 不可言也.”『穀梁傳』, “穀梁子曰, ‘舞夏, 天子八佾, 諸公六佾, 諸候四佾. 初獻六羽, 始僭樂矣.’ 尸子曰, ‘舞夏, 自天子, 至諸侯, 皆用八佾. 初獻六羽, 始厲樂矣.’” 何休杜預皆謂, “八八六十四人, 六六三十六人, 四四十六人, 二二四人.” 服虔謂, “六八四十八人, 四八三十二人, 二八十六人.” 服虔蓋以, “襄十一年, 鄭人賂晋侯以女樂二八”, 誤爲一佾也. 何杜以爲舞勢宜方, 是或然矣. 且天子六十四人, 則大夫三十二人, 爲太過矣. 况士豈能辨十六人乎? 故何杜於理爲優. 諸公六佾, 諸侯四佾, 恐傳譌也. 『左傳』尸子爲可據已. 杜預曰, “魯惟文王周公廟得用八, 而他公遂因仍僭而用之. 今隱公特立此婦人之廟, 詳問衆仲, 因明大典, 故傳亦因言始用六佾. 其後季氏舞八佾於庭, 知惟在仲子廟用六.”由比觀之, 他公僭用, 而季氏遂僭之也. 但「明堂位」無文王, 則杜預亦誤矣.

○“於庭”, 古來無解. 邢昺以爲“家廟之庭”, 殊爲不通. 竊疑成王賜伯禽, 以天子禮樂祀周公. 天子之廟, 八佾舞於庭, 伯禽迺造臺以舞之, 所以尊天子之樂也. 後世有舞臺, 或昉于是邪? 是誠臆說, 別無所據. 然於庭二字, 非此不通, 姑錄以俟後君子也.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邢昺曰, “季氏以陪臣, 而僭天子, 最難容忍.” 『集註』范氏因之, 是於忍字之義爲得之, 然非聖人之言矣. 小人唆人激變者, 其言率如此, 不可從也. 謝氏曰, “季氏忍此矣, 則雖弒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 是忍字, 本諸孟子. 孟子創言性善, 而與楊氏之徒爭仁內外. 故引不忍人之心, 以爲仁之端, 遂又有不忍人之政. 然求諸古言, 以忍爲美德, 而未有以不忍爲貴者矣. 求諸理, 聖人亦有不忍之心, 而聖人之思深遠焉, 故未有以不忍爲教者矣. 蓋其究必成婦人之仁故也. “小不忍, 亂大謀.” 此先王之法言. 『孝經』曰, “非先王之法言不敢道”, 故知非孔子之言矣. 且責季氏以心術, 豈不妄哉?

◎此章之義, 蓋爲昭公發之. 昭公亦小不忍, 以致乾候之禍, 故云爾. 季氏之僭, 不啻一世, 從前魯君所忍, 是尙可忍也, 僭之大者, 尙可忍也, 則無不可忍之事矣. 魯君能以此爲心, 季氏之僭可正, 而魯可治焉. 聖人之言, 皆有作用, 宋儒迺以理以心而已矣, 不可不察.



二章



○“三家者”, 者字語助, 無意義, 如三子者[1]之者. 古者歌詩, 皆有所取其義, 而「雍」詩於三家之堂, 莫有所取焉, 於魯君之堂, 亦莫有所取焉. 孔子不斥其非禮, 但以詩言之, 若訝之者然, 所以開喩也. 『集註』迺曰“譏其無知妄作, 以取僭竊之罪. ”大失聖人之辭氣也. 且“無知妄作”, 本作者之謂聖之作[2], 豈可引於此乎? 相, 儐相也, 訓助者, 字義耳. 其實相自相, 助自助, 不可混矣. 辟公, 王肅以爲國君諸公, 爲是. 鄭玄以辟爲卿士, 公謂諸侯, 『書』“惟辟玉食[3]”, 豈卿士之謂乎? 邢昺疏, “毛萇以爲諸侯及二王之後”, 然『毛傳』無之, 可謂妄矣. 「曲禮」“天子穆穆”, 『爾雅』“穆穆、美也”. 穆穆蓋深遠意. 天子行禮, 有辟公, 爲之儐相, 則天子迺若無所爲者, 唯見其穆穆然美已, 是「雍」詩之義也.

○程子曰, “周公之功, 固大矣, 皆臣子之分所當爲. 魯安得獨用天子禮樂哉? 成王之賜, 伯禽之受,皆非也.[4] 弇州先生曰, “叔子之爲此語也, 語於秦之君臣也, 非三代之君臣也. 唐虞之世, 其爲帝者, 茅茨不剪, 土階三尺而已. 都兪吁咈于其內, 得一言則君臣交相拜而相咏嗟, 非截然而不相及也. 堯得舜而三載, 命之陟位受終, 類上帝, 禋六宗, 望山川, 徧群神, 輯五瑞, 狩四獄. 不聞其以疑堯議也. 舜得禹而命之終陟, 受命於神宗, 率百官, 若帝之初. 不聞其以疑舜義也. 堯舜之於舜禹, 臣之者也. 成王之於周公, 師之者也. 以尊則叔父也, 以親則爲其父弟者也. 存而負扆以行天子之事, 沒而崇以天子之禮樂. 夫誰曰不可? 且以周公之功與舜禹並, 而尊親過之. 不復子則禪而帝, 復子則祀而王[5] 聖人之所以崇德報功也. 而曰非者何也? 夫秦而始君朕也, 君父皇考也, 而臣弗與也. 其尊若天而臣若草芥也. 吾故曰, ‘叔子之爲此語也, 語於秦之君臣也. ’”

◎茂卿曰, “大氐後儒謂禮萬世不易者, 是其心有自以爲禮者. 故妄意成王伯禽皆非矣. 夫禮爲一代之典, 周禮周公作, 而成王伯禽親受之. 故成王伯禽非禮歟, 則孰爲禮? 豈不肆乎? 故孔子所謂非禮者, 謂其後也. ”



三章



○禮樂者, 先王之道也. 先王之道, 安民之道也. 仁, 安民之德也. 故苟非仁人, 則禮樂不爲之用. 故曰“如禮何? 如樂何? ”此以在上之人言之也.
○예악은 선왕의 도이고 선왕의 도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이며 인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덕이니 그러므로 진실로 인한 사람이 아니면 예악이 그에게 쓰임새가 없다. 그러므로 예로 무엇을 하며 악으로 무엇을 하겠는가라 하였으니 이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말한 것이다.[6]

○游氏曰, “人而不仁, 則人心亡矣. ”程子曰, “仁者天下之正理, 失正理, 則無序而不和. ”皆不知聖人之道爲先王之道也. 不知此章之言爲在上者發之也. 仁齋先生曰, “慈愛惻怛之心, 衆德之所由生, 萬事之所由立. 仁人之於天下, 何事不成, 何行不得? 況於禮樂乎? ”此不知而禮樂者之言已.
유초는 사람으로서 인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라 하였고 정자는 인이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니 바른 이치를 잃으면 질서가 없어져 조화롭지 못하게 된다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성인의 도가 선왕의 도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고 이 장의 말이 윗사람을 위해 말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진사이 선생은 자애 측달의 마음은 모든 덕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모든 일이 그로 말미암아 세워지니 인한 사람이 천하에 대하여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무슨 행동이든 결과를 얻지 못하겠는가? 하물며 예악은 어떠하겠는가? 라하니 이는 예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辟諸搏埴作器, 雖器皆埴也. 先王作而禮樂, 以仁而已矣. 故孔子曰, “夫仁者制禮者也.[7] ”又曰, “道二, 仁與不仁而已矣.[8] ”故不仁之人, 不能用禮樂也.
진흙을 치대 그릇을 만드는 것에 비교하자면 비록 그릇이지만 모두 진흙이기도 하다. 선왕이 예악을 만듬에 인을 가지고 할 뿐이니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대저 인으로 예를 제정하였다 하였고 또 도는 인과 불인 두 가지일 뿐이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인하지 못한 사람은 예악을 쓸 수 없다.



  1. 論語 先進에 증점이 "세 사람의 택함과는 다르다(異乎三子者之撰)"라 하였다.
  2. 禮記 樂記에 "(예악을) 만드는 사람을 성이라 하고 서술하는 사람을 명이라 하니(作者之謂聖, 述者之謂明)"라 하였다.
  3. 書經 弘範
  4. 近思錄에, "성왕이 어려 주공이 섭정하다가 주공이 죽으니 성왕이 그 훈덕을 생각하여 노나라에 천자의 예악을 내리고 주공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니 이에 대해 공자는 성왕이 하사한 것과 백금이 받은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成王幼, 周公攝政, 周公沒, 成王思其勳德, 錫魯以天子之禮樂, 使祀周公焉, 孔子曰, 成王之賜, 伯禽之受,皆非也.)”라 하였다.
  5. 앞에서 왕세정이 요순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書經 舜典, 大禹謨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復子는 周書 洛誥에 "주공이 배수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나는 그대 밝은 군주에게 복명한다(周公拜手稽首曰, 朕復子明辟.)에서 유래한 말이다.
  6. 인을 안민지덕이라 하여 통치술로 보아 이치를 논한 성리학과 궤를 달리하였으며, 1~3장에서 일관되게 공자의 말을 제언적인 강한 말이 아니라 청유하는 말이라 하였다.
  7. 孔子家語 曲禮子夏問
  8. 孟子 離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