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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남소(南所)[1]에서 감회를 쓰다(南所寫懷)」 궁궐에 새벽빛 밝아오니 고관들 조정으로 달려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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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於于集後集』卷二 「南所寫懷」 |
호조 서리 이윤선의 업무와 일상
예조 낭관 권상일의 장생전 수리 일지
병조에서 이조의 낭관으로, 윤기의 이상과 현실
육조 당상, 그 빛과 그늘
봉심과 회창 그리고 가옥조사, 출장을 빙자한 외유
연지(蓮池)와 누정(樓亭), 휴식과 위안의 공간
병조의 누정: 16세기, 윤두수(尹斗壽)의 시
「병조의 작은 누대에서 우연히 시를 짓다(兵曹小樓偶題)」 별을 보고 갔다가 별을 보고 돌아오니, 봄이 다 저물도록 술 한 잔 할 겨를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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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梧陰先生遺稿』卷一 「兵曹小樓偶題」 |
병조의 연지: 17세기, 이수광(李睟光)의 시
「병조 청사 뒤쪽 작은 못이 깊고 검푸른데, 거기에 연꽃 몇 송이가 있어(騎曹廳後小池深黑中有種荷數朶)」 누가 섬돌 앞 한 자락 사초를 파헤쳤나, 못 속에 담긴 물이 웅덩이도 못 채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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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芝峯先生集』卷四 「騎曹廳後小池深黑中有種荷數朶」 |
병조의 연지: 17세기, 김육(金堉)의 시
「달밤에 병조에 입직하다(月夜直騎省)」 백합꽃 피어 있고 파초잎 기다란데, 비 온 뒤라 못가 누각 여름에도 서늘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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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潛谷先生遺稿』卷二 「月夜直騎省」 |
병조의 연지: 18세기, 정간(鄭榦)의 시
「병조 당상대청 뒤에 네모진 못이 있고, 못에는 연꽃이 못가에는 창포가 둑에는 수양버들이 있어, 마침내 ‘淸’자 운으로 읊어 화답을 구하다(騎省正衙後有方塘 塘有芙蕖 渚有菖蒲 堤有垂柳 遂用淸字 詠以求和)」 (번역문 미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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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潛谷先生遺稿』卷二 「月夜直騎省」 |
주석
- ↑ 남소(南所): 오위(五衛)의 위장(衛將)이 숙위(宿衛)하던 위장소(衛將所)의 하나로,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과 경희궁의 개양문(開陽門) 안에 있었는데, 궁궐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남소라 불렸다.
- ↑ 궁궐 호위하는 관소: 원문의 '구진사(句陳司)'. 궁궐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을 말한다. '구진(句陳)'은 별자리 이름으로 자미궁(紫微宮)을 호위하는 별이다.
- ↑ 범의 두상: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어린 시절 관상가가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로 날아서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 ↑ 분서(粉署): 하얗게 벽을 칠한 관청이라는 뜻으로 중국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인데, 우리나라는 의정부 및 중앙 관서를 뜻한다.
- ↑ 동룡문(銅龍門): 창경궁 세자전 옆에 있던 문이다.
- ↑ 금마문(金馬門): 창덕궁 후원에 있던 문이다.
- ↑ 투필(投筆): 붓을 던진다는 말로, 종군(從軍)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명장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글씨를 써 주는 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붓을 던지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다면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에 나아가 공을 세워 봉후가 되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만 종사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니, 훗날 서역(西域)에 나아가 공을 세워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 ↑ 정기(正奇): 병법(兵法)의 용어로서, 정면으로 접전을 벌이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매복(埋伏)이나 기습(奇襲)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을 ‘기(奇)’라고 한다.
- ↑ 멀리 흘러가: 이에 해당하는 원문 ‘조종(朝宗)’은 원래 제후가 천자에게 가서 뵙는 것으로 봄에 뵙는 것을 조(朝)라 하고 여름에 뵙는 것을 종(宗)이라 하는데,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 역시 제후가 천자국에 가는 것과 같다 하여 조종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