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ects
red
「學而」, 학이
一章, 01장
원문
| |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
『논어집주(論語集註)』
○學之爲言은 效也라. 人性皆善이나 而覺有先後하니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라야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라.
○習은 鳥數飛也니 學之不已를 如鳥數飛也라.
○說은 喜意也니 旣學而又時時習之면 則所學者熟而中心喜說하여 其進이 自不能已矣리라.
○程子曰, "習은 重習也니 時復思繹하여 浹洽於中이면 則說也니라." 又曰, "學者는 將以行之也니 時習之면 則所學者在我라 故로 悅이니라."
○謝氏[1]曰, "時習者는 無時而不習이니 坐如尸는 坐時習也요 立如齊는 立時習也니라."[2]
○朋은 同類也니 自遠方來면 則近者可知니라
○程子曰, "以善及人하여 而信從者衆이라 故로 可樂이니라." 又曰, "說은 在心하고 樂은 主發散이니 在外니라."
○慍은 含怒意라. 君子는 成德之名이라.
○尹氏[3]曰, "學은 在己하고 知不知는 在人하니 何慍之有리오."
○程子曰, "雖樂於及人이나 不見是而無悶이라야 乃所謂君子니라. 愚謂 及人而樂者는 順而易하고, 不知而不慍者는 逆而難이라. 故로 惟成德者能之라. 然이나 德之所以成은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而不已焉耳니라."
○程子曰, "樂은 由說而後得이니 非樂이면 不足以語君子니라."
『논어고의(論語古義)』
○ 學, 效也, 覺也. 考諸古訓, 驗之見聞, 有所效法而覺悟也. 習, 溫習也. 說, 悅同, 喜也. 言旣學矣, 而時時溫習, 則智開道明, 猶大寐頓覺, 跛者忽起, 而有不堪其悅者矣. 蓋道之浩浩, 唯學得以盡之, 而非習, 則亦不能造其極, 故聖人以學爲貴, 而習爲要也.
○朋, 同類也. 其學足以被乎遠, 則君子善與人同之志得遂, 而足以見我德之不孤, 何樂如之.
○慍, 怒也. 君子, 成德之稱, 言德備於己, 則富貴爵祿, 毁譽得喪, 一切無所動乎其中, 故雖人不知而輕賤之, 毫無所怒, 學之至也. 蓋其道愈大, 則識之者愈少, 是君子之所以不慍也.
○此夫子自言其意中之事, 以勸勉人也. 言適其心則悅, 遂其願則樂, 皆人情之所同然, 而人未知誠悅樂也. 君子者, 人之所仰慕, 而人未知識君子也. 故學而時習, 則所得日熟, 是爲誠悅矣. 有朋自遠方來, 則善與人同, 是爲誠樂矣. 而至於上不怨天, 下不尤人, 無入而不自得焉, 則不啻免爲鄕人, 是爲誠君子矣. 而朋來之樂, 不慍之君子, 皆由學而得焉, 則學之爲功. 不其大乎. 夫子所以爲天地立道, 爲生民建極, 爲萬世開太平者, 亦學之功也. 故論語以學之一字, 爲一部開首, 而門人以此章置諸一書之首, 蓋一部小論語云.
『어맹자의(語孟字義)』
〈學, 凡四條 가운데 一條〉
○學字, 效也, 覺也. 有所效法而覺悟也. 按古學字卽今效字. 故朱子集註曰, "學之爲言, 效也." 白虎通曰, "學, 覺也. 覺悟所不知也." 學字之訓, 兼此二義, 而後其義始全矣.
○所謂效字, 猶學書者初只得臨摹法帖效其筆意點劃. 所謂覺字, 猶學書旣久, 而後自覺悟古人用筆之妙. 非一義之所能盡也.
○集註曰, "後覺者, 必效先覺之所爲." 又含覺字之意在, 學者多不察.
『논어혹문(論語或問)』
○或問, "學之爲效, 何也?" 曰, "所謂學者, 有所效於彼而求其成於我之謂也. 以己之未知, 而效夫知者, 以求其知, 以己之未能, 而效夫能者, 以求其能, 皆學之事也."
○曰, "習之爲鳥數飛, 何也?" 曰, "『說文』文也, 習之字, 從羽從白, 『月令』所謂, 鷹乃學習, 是也."
○"學而時習, 何以說也?" 曰, "言人旣學而知且能矣, 而於其所知之理, 所能之事, 又以時反復而溫繹之, 如鳥之習飛然, 則其所學者熟, 而中心悅懌也. 蓋人而不學, 則無以知其所當知之理, 無以能其所當能之事, 固若冥行而已矣. 然學矣而不習, 則表裏扞格, 而無以致其學之之道, 習矣而不時, 則工夫間斷, 而無以成其習之之功. 是其胸中雖欲勉焉以自進, 亦且枯燥生澁, 而無可嗜之味, 危殆杌𣕕, 而無可卽之安矣. 故旣學矣又必時習之, 則其心與理相涵, 而所知者益精, 身與事相安, 而所能者益固, 從容於朝夕俯仰之中, 凡其所學而知且能者, 必皆有以自得於心, 而不能以語諸人者, 是其中心油然悅懌之味, 雖芻豢之甘於口, 亦不足以喩其美矣, 此學之始也."
○曰,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若何而樂耶?" 曰, "理義人心之所同然, 非有我之得私也. 向也吾獨得之, 雖足以爲說矣. 然以之告人而人莫之信, 以之率人而人莫之從, 則是獨擅乎此理, 而擧世倀倀不得於其心之所同也. 是猶十人同食, 一人旣飽而九人不下咽, 則吾之所說雖深, 亦曷爲而能達於外耶? 今吾之學所以得於已者旣足以及人, 人之信而從者又如此其衆也, 則將皆有以得其心之所同然者, 而吾之所得不獨爲一己之私矣.
『논어정의(論語精義)』
○伊川解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 乃所謂君子." 又語錄曰, "所以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習如禽之習飛." 又曰, "鷹力學習之義,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說在心, 樂主發散, 在外." 又曰, "說先於樂者, 樂由說而後得, 然非樂, 不足以語君子."
○范[4]曰, “學先王之道, 將以行之也. 學而習之, 知所以修身, 知所以治人, 則說矣. 習之言, 試也.
二章, 02장
「爲政」, 위정
데이터
Ontology
Class
Book, 문헌
Part, 편
Chapter, 장
Section, 절
Concept, 개념
Character, 글자
Person, 인물
Relation
태그
문헌 태그
주석
- ↑ 謝氏: 사량좌(謝良佐). 1050∼1103. 자(字)는 顯道, 이정(二程)의 문하에서 배웠다. 유초(游酢), 여대림(呂大臨), 양시(楊時)와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일컬어졌으며, 상채학파(上蔡學派)의 비조이며 상채선생(上蔡先生)으로 불렸다.
- ↑ 坐如尸, 立如齊: 『禮記』「曲禮」
- ↑ 尹氏: 윤순? 윤돈?(尹焞). 1071-1142년. 북송 하남(河南) 사람. 자는 언명(彦明) 또는 덕충(德充)이고, 호는 화정(和靖)이며, 윤원(尹源)의 손자다. 젊었을 때 정이(程頤)를 사사(師事)했다. 원우(元祐) 4년(1089) 거인(擧人)이 되어 응거(應擧)했는데, 시제(試題)가 원우(元祐)의 제신(諸臣)들을 주륙(誅戮)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와 다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흠종(欽宗) 정강(靖康) 초에 종사도(種師道)가 천거하여 경사(京師)에 와 화정처사(和靖處士)란 호를 하사받았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초에 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와 예부시랑(禮部侍郞) 겸 시강(侍講), 휘유각대제(徽猷閣待制) 등을 역임했다. 상서하여 금나라와의 화의를 극력 반대하다가 치사(致仕)를 요청했다. 학문적으로는 내성함양(內省涵養)을 중시하고 박람(博覽)을 추구하지 않았다. 저서에 『논어맹자해(論語孟子解)』와 『화정집(和靖集)』, 『문인문답(門人問答)』이 있다. -임종욱, 김해명(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 ↑ 范: 범조우(范祖禹). 1041-1098년. 북송 성도(成都) 화양(華陽) 사람. 자는 순보(淳甫) 또는 몽득(夢得)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8년(1063) 진사(進士)가 되었다. 사마광(司馬光) 밑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수했고, 책이 완성되자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에 임명되었다.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저작좌랑(著作佐郞)이 되어 『신종실록(神宗實錄)』 편찬의 검토관을 맡았고, 급사중(給事中)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했다. 철종이 친정(親政)하자 섬주지주(陜州知州)로 나갔다. 소성(紹聖) 초에 그가 지은 『실록』이 신종을 비난하고 사마광이 신법(新法)을 변경한 사실을 두둔했다는 여론이 일자 무안군절도부사(武安軍節度副使)로 폄적(貶謫)되어 소주별가(昭州別駕)를 거쳐 영주(永州)에 안치되었다. 젊어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를 사사했으며, 사마광의 학문을 추종했다. 『중용(中庸)』을 중시하여 성(誠)과 성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인 충서(忠恕)를 강조했다. 또한 노장학(老莊學)은 충서의 도에 위배된다고 하여 배척했다. 저서에 『논어설(論語說)』과 『당감(唐鑑)』이 있는데, 이정(二程)의 설을 수용한 것이 많다. 『당감』은 당나라 고조에서 소선제(昭宣帝)까지 3백 년 동안의 정치적 득실을 논한 책이다. 그 밖의 저서에 『중용론(中庸論)』과 『범태사집(范太史集)』이 있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임종욱, 김해명(2010), 『중국역대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