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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0월 2일 (금) 01:23 판 (예조의 건립: 15세기, 성현(成俔)의 글)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Quote-left.png 「남소(南所)[1]에서 감회를 쓰다(南所寫懷)」


궁궐에 새벽빛 밝아오니 고관들 조정으로 달려가네.
晨光騰紫闕, 峩弁趨彤墀

老卒鉥前塗, 舍我南廂陲
늙은 병졸이 앞길을 인도하여 나를 남쪽 전각 끝에 두었네.

懸盾警夜所, 植鎩句陳司
야간 경계하는 처소에서 방패 들고 궁궐 호위하는 관소[2]에서 창을 세웠네.

列帥盡虎頭, 酣戰眞雄姿
줄지어 선 장수는 모두 범의 두상[3]이요 싸움에 익숙하니 참으로 씩씩한 자태로다.

駑材眷蒭豆, 僚底摧雙眉
노둔한 사람은 말먹이나 돌보며 동료들 밑에서 두 눈썹 내렸네

東瞻騎省峙, 北矖粉署危
동쪽을 바라보면 병조가 우뚝하고 북쪽을 바라보면 분서(粉署)[4]가 높다랗네.

銅龍狀蠖略, 金馬光陸離
동룡문(銅龍門)[5]은 나아갈 듯한 모습이요 금마문(金馬門)[6]은 눈부시게 번쩍거리네.

昔我雲翮矯, 今何金骨緇
나도 예전엔 높이 나는 새처럼 굳셌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승려처럼 나약해졌나.

將星耀華髮, 擁甲如貙貔
대장은 백발이 빛나고 맹수 같은 갑사를 거느리네.

平生嗜文術, 浪讀古人詩
나는 평생 문장 좋아하여 그저 고인의 시만 읽었네.

從此學投筆, 六弢綜正奇
이제부터 투필(投筆)[7]을 배워서 『육도(六韜)』의 정기(正奇)[8]를 다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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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於于集後集』卷二 「南所寫懷」


호조 서리 이윤선의 업무와 일상

예조 낭관 권상일의 장생전 수리 일지

병조에서 이조의 낭관으로, 윤기의 이상과 현실

육조 당상, 그 빛과 그늘

봉심과 회창 그리고 가옥조사, 출장을 빙자한 외유

연지(蓮池)와 누정(樓亭), 휴식과 위안의 공간


병조의 누정: 16세기, 윤두수(尹斗壽)의 시
Quote-left.png 「병조의 작은 누대에서 우연히 시를 짓다(兵曹小樓偶題)」

별을 보고 갔다가 별을 보고 돌아오니, 봄이 다 저물도록 술 한 잔 할 겨를 없네.
見星而往見星來, 春暮何曾把一杯

서둘러 작은 누대에 올라 물색을 감상하니, 실버들 늘어진 곳에 녹음이 아른거리네.
急上小樓探物色, 柳絲垂處綠徘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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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梧陰先生遺稿』卷一 「兵曹小樓偶題」


병조의 연지: 17세기, 이수광(李睟光)의 시
Quote-left.png 「병조 청사 뒤쪽 작은 못이 깊고 검푸른데, 거기에 연꽃 몇 송이가 있어(騎曹廳後小池深黑中有種荷數朶)」

누가 섬돌 앞 한 자락 사초를 파헤쳤나, 못 속에 담긴 물이 웅덩이도 못 채우네.
誰破階前一席莎, 池中貯水不盈科

멀리 흘러가[9] 바다로 들어가진 못 해도, 실버들 늘어진 곳에 녹음이 아른거리네.
朝宗縱隔滄溟路, 咫尺潛通太液波

칠흑빛 깊이 고여 옛 거울 잠긴 듯하고, 은빛 물고기 부침하매 여린 연잎 흔들리네.
漆色深泓涵古鏡, 銀鱗瀺灂動新荷

여기에 무한한 강호의 뜻 있을지니, 만 리의 가을바람 저물녘에 세차구나.
此間無限江湖意, 萬里西風日夕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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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芝峯先生集』卷四 「騎曹廳後小池深黑中有種荷數朶」


병조의 연지: 17세기, 김육(金堉)의 시
Quote-left.png 「달밤에 병조에 입직하다(月夜直騎省)」

백합꽃 피어 있고 파초잎 기다란데, 비 온 뒤라 못가 누각 여름에도 서늘하네.
百合花開蕉葉長, 雨餘池閣夏生凉

맑은 밤에 입직하니 일 없어 한가함에, 누운 채로 구름 가고 달빛 토함 바라보네.
淸宵禁直閑無事, 臥看流雲吐月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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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潛谷先生遺稿』卷二 「月夜直騎省」


병조의 연지: 18세기, 정간(鄭榦)의 시
Quote-left.png 「병조 당상대청 뒤에 네모진 못이 있고, 못에는 연꽃이 못가에는 창포가 둑에는 수양버들이 있어, 마침내 ‘淸’자 운으로 읊어 화답을 구하다(騎省正衙後有方塘 塘有芙蕖 渚有菖蒲 堤有垂柳 遂用淸字 詠以求和)」

(번역문 미비)
植物知無數, 憐渠抵死淸

(번역문 미비)
明波爲樂國, 君子錫嘉名

(번역문 미비)
露結珠團淚, 風撞玉散聲

(번역문 미비)
朱花將大發, 吾且製裳行

(번역문 미비)
右蓮


(번역문 미비)
根遇石逾怪, 葉抽泥更淸

(번역문 미비)
周菹稱美味, 軒草擅芳名

(번역문 미비)
廬岳聖賢態, 杏壇琴瑟聲

(번역문 미비)
何當長服餌, 羽化瞥天行

(번역문 미비)
右菖蒲


(번역문 미비)
裊裊池邊柳, 風來面上淸

(번역문 미비)
曾供程叔諫, 更助晉臣名

(번역문 미비)
濃暗夕烟色, 新靑朝雨聲

(번역문 미비)
絲長寧縶馬, 我自不南行

(번역문 미비)
右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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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鳴臯先生文集』卷一 「騎省正衙後有方塘 塘有芙蕖 渚有菖蒲 堤有垂柳 遂用淸字 詠以求和」


병조의 연지: 19세기, 임천상(任天常)의 시
Quote-left.png 「비오는 가운데 병조에 입직해 있으면서 장난삼아 ‘무와행’을 짓다(雨中直兵曹 戱爲無蛙行)」

(번역문 미비)
憲府有池無蛙聲, 暑潦令人耳根淸

(번역문 미비)
世傳昔時姜監察, 投檄戒蛙蛙不鳴

(번역문 미비)
蛙本水産性喜水, 得雨喧聒卽其理

(번역문 미비)
一片坳塘何所無, 兩部鼓吹隨處起

(번역문 미비)
我官兵曹直曹齋, 齋西有池亦無蛙

(번역문 미비)
夜來不眠但聽雨, 雨中無蛙理亦乖

(번역문 미비)
憲府無蛙固有說, 兵曹無蛙孰分別

(번역문 미비)
試看物理本不齊, 種種誠難爭口舌

(번역문 미비)
我姑推類一爲言, 潮鰐河虎感應存

(번역문 미비)
風稜憲府主禁亂, 職責兵曹掌禁喧

(번역문 미비)
禁喧禁亂威素立, 蛙雖蠢虫應有慴

(번역문 미비)
不然陰澇許大池, 安肯呑聲過不入

(번역문 미비)
却歎今人不如渠, 喙喙爭鳴反惱余

(번역문 미비)
爲私爲公何足問, 如蜩如螗莫能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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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窮悟集』卷四 「雨中直兵曹 戱爲無蛙行」


형조의 연지: 16세기, 신광한(申光漢)의 시
Quote-left.png 「형조의 연못에서 즉흥으로 읊어 송 정랑에게 보여주다(秋部官池卽事 示宋正郞)」

(번역문 미비)
渴雨池塘水暴盈, 新荷無數蓋相傾

(번역문 미비)
紅蕖一朶嫣然咲, 似爲郞官媚晩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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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企齋集』卷六 「秋部官池卽事 示宋正郞」


형조의 연지: 17세기, 홍석기(洪錫箕)의 시
Quote-left.png 「형조의 연못 누각을 이 참판의 부채에 제하다(秋曹池閣 題李侍郞扇)」

(번역문 미비)
水面風生纈, 荷心雨瀉珠

(번역문 미비)
携樽池閣晩, 夏熱十分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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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晩洲遺集』卷二 「秋曹池閣 題李侍郞扇」


예조의 낭관청: 17세기, 이정귀(李廷龜)의 시
Quote-left.png 「예부에서 낭관청을 중건하고 풍악을 연주한 후 간소한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낭료들과 즉흥적으로 읊다(禮部重建郞官廳 閱樂後仍作小酌 酒席與郞僚口占)」

남궁에서 잔치 풍악 울리며 인청(寅淸)[10]이 모이니, 절후는 삼원(三元)[11]에 가까워서 고운 햇살이 밝아라.
南宮演樂會寅淸, 節近三元麗景明

이 늙은이는 십 년을 이제 여섯 번 보태었고, 이 작은 관청은 해를 넘겨 이제야 중건되었네.[12]
老子十年今六忝, 小堂經歲始重營

연못과 누대에는 아직도 잡초 자취 남았으니, 북과 피리 소리 도리어 서글픈 감회를 일으키네.
池臺尙帶蓬蒿迹, 鼓篴還挑感念情

공무를 마치고 우연히 모여 한바탕 취하노니, 이 잔치를 이대로 낙성식으로 삼은들 어떠리.
衙罷偶然拚一醉, 不妨仍作落新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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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月沙先生集』卷十七 「禮部重建郞官廳 閱樂後仍作小酌 酒席與郞僚口占」


예조의 풍경: 17~18세기, 홍세태(洪世泰)의 시
Quote-left.png 「김참봉, 홍진사와 함께 예조 뒷산에 오르다(同金參奉 洪進士。登南宮後岡)」

(번역문 미비)
崇岡龍虎抱南宮, 御氣樓臺北極通

(번역문 미비)
暗向池心窺雪水, 高攀樹杪坐春風

(번역문 미비)
孤峰忽在斜陽外, 萬戶平沉沓靄中

(번역문 미비)
采采滿盤新艾綠, 飯香羹滑飽衰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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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柳下集』卷三 「同金參奉 洪進士。登南宮後岡」


예조의 풍경: 18세기, 이시항(李時恒)의 시
Quote-left.png 「예조 낭관으로 옮겨 임명되어 본사(本司)에서 숙직하다(移拜春曹郞 直宿本司)」

(번역문 미비)
十年重入舊南宮, 老吏依俙記是翁

(번역문 미비)
昔者紅顔今白首, 向來員外此郞中

(번역문 미비)
池㙜柳亞微風撼, 庭院苔荒澹月空

(번역문 미비)
持被西廳仍閱案, 卷中名錄弟兄同

(번역문 미비)
-仲汲吾後亦題名。故結句及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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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和隱集』卷三 「移拜春曹郞 直宿本司」


예조의 풍경: 18세기, 윤기(尹愭)의 시
Quote-left.png 「예조에 근무하며 우연히 읊다(直禮曹偶吟)」

광화문 앞이 바로 예조이니, 낭관의 재미는 극히 쓸쓸하네.
光化門前是禮曹, 郞官况味極蕭騷

전교를 받들 때엔 바삐 말을 몰고, 초기를 올릴 때엔 급히 도포 입네.
聽傳敎際忙驅馬, 呈草記時急整袍

봉인이 옆에 있으나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눈앞의 담장은 어찌 그리 높은지.
封印在傍非自用, 築墻當面一何高

단지 북창 아래로 옮겨 앉아, 멀리 맑은 이내 바라보면 흥이 문득 호쾌할 뿐.
只應移席北窓下, 遙看晴嵐興却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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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無名子集詩稿』冊三 「直禮曹偶吟」


예조의 풍경: 18세기, 윤기(尹愭)의 시
Quote-left.png 「예조에 입직한 날, 인왕산을 마주해 한가로이 4수를 짓다(直春曹日 對仁王山 漫成四絶)」

인왕산 솟은 바위 서울을 진무하니, 구름 속 기봉이 그림처럼 산뜻해라.
仁王矗石鎭王京, 雲裏奇峯畫裏明

본디 서산에 상쾌한 기운 많아, 늘 바라보매 돌아가고픈 정 없어라.[13]
自是西山多爽氣, 長看不必有歸情


깎아지른 봉우리는 하늘을 찌르고, 빙 두른 성곽엔 초목이 우거졌네.
高峯戍削與天參, 粉堞周遭草樹毿

빼어난 기운은 세속에 물들지 않아, 아침마다 저녁마다 남기 절로 맑아라.
秀氣不爲塵土染, 朝朝暮暮自晴嵐


예조에 숙직하는 것이 시름겹지만, 산색이 홀연히 눈길 가득 새롭구나.
南宮鎖直足愁顰, 嶽色忽然滿目新

인왕산 보노라면 산야의 흥취 일어, 이 몸이 홍진에 있는 줄을 잊노라.
對此却生山野思, 不知身在軟紅塵


성근 버들 줄지어 있고 산색은 새로운데, 맑은 바람에 느긋이 누웠노라니 정신이 상쾌해.
疎柳成行山色新, 淸風高卧爽精神

연명이 어찌 천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랴, 나 또한 희황 이전의 사람[14]이로다
淵明千古寧專美, 我亦羲皇以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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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無名子集詩稿』冊三 「直春曹日 對仁王山 漫成四絶」


예조의 건립: 15세기, 성현(成俔)의 글
Quote-left.png 「예조의 건립에 대한 이야기」

지금 예조는 바로 예전의 삼군부(三軍府)이다. 정삼봉(鄭三峯)이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을 맡았을 때 의정부의 제도를 보고 말하기를, "정부와 군부는 일체이다." 라고 하고 드디어 그 제도에 의하여 만드니 높다랗게 동서가 상대가 되어 그 청사가 굉장한 것이 다른 관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뒤에 삼군부를 혁파하고 중추원(中樞院)을 설치하여 군무를 맡기지 않고, 예조로써 오례(五禮)를 맡아보게 하고 또 다른 나라의 사신을 대접하게 하니, 그 임무가 중대하여 그 부(府)를 예조로 삼고, 중추원은 도리어 예조의 남쪽 곁채에 우거(寓居)하였다. 경복궁 서쪽 가에 수맥(水脈)이 많은데, 경회루의 연못 물은 비록 옛날 중국의 곤명지(昆明池)ㆍ태액지(太液池)라도 이보다 좋지 못할 것이다. 서문 밖에 샘이 있어 넘쳐 흐르니, 얼음과 같이 맑고 차가워 사람들이 모두 쪽[藍]을 물들이기 때문에 쪽샘[藍井]이라 불렀다. 예조의 우물도 또한 맑고 깨끗하고 마르지 않아 흘러서 큰 못을 이루니 비록 몹시 가물어도 한결같았다. 못 남쪽에 조그마한 땅이 중추부로 뻗어서, 수초가 우거지고 더럽더니 금상(今上) 기미년에 중추부에서 아뢰기를, “개 이빨처럼 우리 관아에 들어오니, 마땅히 분할하여 우리 못으로 해야겠습니다.” 하니, 예조가 이르기를, “외국 사람을 대접하는 곳을 좁게 해서는 안 된다.” 하여 서로 다투었다. 임금이 승지와 내관 등에게 물어서 쪼개어 나누어주니, 중추부에서 그 땅을 파서 서지(西池)를 만들고, 대청을 개축하고 대청에 연이어 서헌(西軒)을 만들고, 돌기둥을 물 속에 세우니 아로새겨지는 그림자가 물결 위에 떨어지고, 서쪽은 산봉우리가 높고 집들이 좋고 나무가 빽빽하여 풍경이 서울에서 제일이었다. 그 밑에 있는 사헌부와 옛 병조ㆍ형조ㆍ공조ㆍ장예원(掌隸院)에도 모두 못이 있어 연꽃을 심었고, 동쪽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에는 비록 못이 있으나 서쪽 못보다는 훌륭하지 못하였다.
今禮曹是古三軍府 鄭三峯 掌軍國重事 見議政府所搆之制 乃曰 政府軍府一體 遂依其制而搆之 屹然東西相對 其棟宇宏壯 非他官府之比 其後革三軍府 而置中樞院 不任軍務 以禮曹掌五禮 且接異國之使 其任重大 以其府爲禮曹 而中樞院反寓曹之南廊 景福宮西邊多水脉 慶會樓池水 雖古之昆明太液不能過也 西門外有泉濫出 淸冷如氷 人皆染藍 故謂之藍井 禮曹之井 亦澄澄不竭 流爲大池 雖盛旱如舊 池南尺地 斗入中樞府 沮洳荒穢 今上己未年樞府啓曰 犬牙入吾司 宜割爲吾池 禮曹曰 外夷接待之處 不可狹隘 相爭不已 上命承旨內豎等審之 割分與之 樞府鑿其池爲西池 改搆大廳 連廳作西軒 樹石柱於水中 彫欄影落波上 西望峯巒崷崒 人家甲第 樹木蔥鬱 風景甲於都中 其下司憲府古兵曹刑曹工曹掌隷院皆有池種蓮 東邊議政府吏曹漢城府戶曹 雖有池 不如西池之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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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慵齋叢話』卷十


주석


  1. 남소(南所): 오위(五衛)의 위장(衛將)이 숙위(宿衛)하던 위장소(衛將所)의 하나로,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과 경희궁의 개양문(開陽門) 안에 있었는데, 궁궐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남소라 불렸다.
  2. 궁궐 호위하는 관소: 원문의 '구진사(句陳司)'. 궁궐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을 말한다. '구진(句陳)'은 별자리 이름으로 자미궁(紫微宮)을 호위하는 별이다.
  3. 범의 두상: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어린 시절 관상가가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로 날아서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4. 분서(粉署): 하얗게 벽을 칠한 관청이라는 뜻으로 중국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인데, 우리나라는 의정부 및 중앙 관서를 뜻한다.
  5. 동룡문(銅龍門): 창경궁 세자전 옆에 있던 문이다.
  6. 금마문(金馬門): 창덕궁 후원에 있던 문이다.
  7. 투필(投筆): 붓을 던진다는 말로, 종군(從軍)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명장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글씨를 써 주는 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붓을 던지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다면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에 나아가 공을 세워 봉후가 되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만 종사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니, 훗날 서역(西域)에 나아가 공을 세워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8. 정기(正奇): 병법(兵法)의 용어로서, 정면으로 접전을 벌이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매복(埋伏)이나 기습(奇襲)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을 ‘기(奇)’라고 한다.
  9. 멀리 흘러가: 이에 해당하는 원문 ‘조종(朝宗)’은 원래 제후가 천자에게 가서 뵙는 것으로 봄에 뵙는 것을 조(朝)라 하고 여름에 뵙는 것을 종(宗)이라 하는데,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 역시 제후가 천자국에 가는 것과 같다 하여 조종이라 한다.
  10. 인청(寅淸): 『서경』 「순전(舜典)」에서 후대의 예조(禮曹)에 해당하는, 종묘(宗廟) 제관(祭官)의 장(長)인 질종(秩宗)에게 "밤낮으로 공경히 일을 하되 마음이 곧아야 정신이 맑아서 일을 잘할 수 있으리라(夙夜惟寅 直哉惟淸)."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언행이 신중하고 마음가짐이 청정한 사람을 가리킨다.
  11. 삼원(三元): 음력 정월 초하루로.
  12. 이 작은 관청은 해를 넘겨 이제야 중건되었네: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가 다시 중건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13. 본디 서산에 상쾌한 기운 많아 늘 바라보매 돌아가고픈 정 없어라: 원문의 '歸情'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고 싶은 마음이다. 곧 인왕산을 늘 가까이 대하고 있으므로 서울 한복판에 있음에도 탈속의 정취가 많기 때문에 굳이 전야로 돌아갈 마음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서산의 상쾌한 기운'은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의 고사이다. 왕휘지는 성품이 본디 잗단 세속 일에 전혀 얽매임이 없었다. 그가 일찍이 환충(桓沖)의 기병 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적에 한번은 환충이 그에게 말하기를 "경(卿)이 부(府)에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요즘에는 의당 사무를 잘 알아서 처리하겠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쳐들고 수판으로 뺨을 괴고는 엉뚱하게도 "서산이 이른 아침에 상쾌한 기운을 불러온다(西山朝來 致有爽氣耳)."라고 했다. 이 고사에서 만들어진 말로, 전하여 세속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히 유유자적하는 풍도를 가리킨다. 『晉書』卷80 「王徽之列傳」
  14. 연명이 어찌 천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랴 나 또한 희황 이전의 사람: 도연명이 자엄등에게 주는 글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내 나이 쉰이 넘었는데, 젊어서는 곤궁하였다. 늘 집안 일로 동분서주하였으며, 성미는 강직하고 재주는 졸렬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긋남이 많았다.……오뉴월 중에 북창 아래 누워 시원한 바람이 선들 부는 때를 만나면 스스로 복희 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吾年過五十 少而窮苦 每以家弊 東西遊走 性剛才拙 與物多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고 한 말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陶淵明集』卷7 「與子儼等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