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의 「담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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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나는 이 글을 쓰려고 종이를 펴놓고 붓을 들 때까지 ‘담요’란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꽃 이야기를 써 볼까, 요새 이 내 살림살이 꼴을 적어 볼까, 이렇게 뒤숭숭한 생각을 거두지 못하다가, 일전에 누가 보내준 어떤 여자의 일기에서 몇 절 뽑아 적으려고 하였다. 그래 그 일기를 찾아서 뒤적거려 보고 책상과 마주 앉아서 펜을 들었다. ‘○○과○○’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몇 줄 내려쓰노라니, 딴딴한 장판에 복사뼈가 어떻게 박히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놈이 따끔따끔해서 견딜 수 없고, 또 겨우 빨아 입은 흰 옷이 까만 장판에 뭉개져서 걸레가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 {{Blockquote|나는 이 글을 쓰려고 종이를 펴놓고 붓을 들 때까지 ‘담요’란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꽃 이야기를 써 볼까, 요새 이 내 살림살이 꼴을 적어 볼까, 이렇게 뒤숭숭한 생각을 거두지 못하다가, 일전에 누가 보내준 어떤 여자의 일기에서 몇 절 뽑아 적으려고 하였다. 그래 그 일기를 찾아서 뒤적거려 보고 책상과 마주 앉아서 펜을 들었다. ‘○○과○○’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몇 줄 내려쓰노라니, 딴딴한 장판에 복사뼈가 어떻게 박히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놈이 따끔따끔해서 견딜 수 없고, 또 겨우 빨아 입은 흰 옷이 까만 장판에 뭉개져서 걸레가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 ||
− | [https:// | + | 따스한 봄볕이 비치고 [https://m.post.naver.com/viewer/image.nhn?src=https%3A%2F%2Fpost-phinf.pstatic.net%2FMjAxODAyMDhfMjQw%2FMDAxNTE4MDE2NjE2Mzc4.2RVw1R0AlwoalJmuJpm-jc19A189ZUnURHyOYNbhzSgg.EW0kvN386uc7AYIqPmeEFBHhHju8DSDVwr0wvz4M1s4g.JPEG%2Fimage_651442841518016608553.jpg 사지는 나른하여 졸음이 오는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신경이 들먹거리고 게다가 복사뼈까지 따끔거리니 쓰려던 글도 써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기일이 급한 글을 맡아 놓고, 그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한 계책을 생각하였다. 그것은 별 계책이 아니라 담요를 깔고 앉아서 쓰려고 한 것이다. 담요야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요, 깨끗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나마 깔고 앉으면 복사뼈도 따끔거리지 않을 것이요, 또 의복도 장판에서 덜 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
이불 위에 접어놓은 담요를 내려서 네 번 접어서 깔고 보니, 너무 엷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펴서 길이로 세 번 접고 옆으로 세 번 접었다. 이렇게 좁혀서 여섯 번을 접을 때, 내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생각과 같이 내 눈앞을 슬쩍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나는 담요 접던 손으로 찌르르한 가슴을 부둥켜 안았다. 이렇게 멍하니 앉은 내 마음은, 때(時)라는 층계를 밟아 멀리멀리 옛적으로 달아났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달아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놓쳐버리기는 너무도 아쉬워서 그대로 여기에 쓴다. 이것이 지금 '담요'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동기이다. | 이불 위에 접어놓은 담요를 내려서 네 번 접어서 깔고 보니, 너무 엷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펴서 길이로 세 번 접고 옆으로 세 번 접었다. 이렇게 좁혀서 여섯 번을 접을 때, 내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생각과 같이 내 눈앞을 슬쩍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나는 담요 접던 손으로 찌르르한 가슴을 부둥켜 안았다. 이렇게 멍하니 앉은 내 마음은, 때(時)라는 층계를 밟아 멀리멀리 옛적으로 달아났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달아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놓쳐버리기는 너무도 아쉬워서 그대로 여기에 쓴다. 이것이 지금 '담요'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동기이다. |
2019년 10월 6일 (일) 19:0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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