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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문예시평」(『조선중앙일보』1933.3)을 통해 백철이 소개하여 창작방법논쟁을 촉발했음. |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문예시평」(『조선중앙일보』1933.3)을 통해 백철이 소개하여 창작방법논쟁을 촉발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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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방법논쟁=== | ===창작방법논쟁=== |
2020년 6월 24일 (수) 22:42 판
인물
- 1908년 3월 18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1985년 10월 13일 사망했다. 본명이 백세철(白世鐵), 필명이 백철(鐵)이며, 창씨개명한 이름이 시라야 데세이데쯔(白矢世鐵), 시라야 데쯔오(白矢鐵雄), 시라야 데쯔(白矢鐵)다.
업적
-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문예시평」(『조선중앙일보』1933.3)을 통해 백철이 소개하여 창작방법논쟁을 촉발했음.
창작방법논쟁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해산을 전후하여 문단에서 벌어진 문학의 세계관과 창작방법에 관한 논쟁.
- 기존 카프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집착한 창작방법을 비판하고, 사상성 외 문학성의 결합을 추진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제시함.
- 임화를 포함한 많은 문인들이 논쟁에 참여했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부하자는 측으로 김남천, 안함광, 김두용 등이 있었고, 안막, 이기영, 이동규, 한효 등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용하자는 측이었음.
- 프로문학 진영의 해체와 전향의 지렛대 구실을 하고 말았다는 평과 프로문학을 극복하여 기교주의적 모색 비평의 길을 열게 하였다는 상반된 평이 공존. 그러나 정작 구체적인 작품관은 제시하지 못한 근원적인 한계를 지님.
논란
- 임종국선생의 「친일문학론」과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문인으로 실렸음.
- 「시대적 우연의 수리」(『조선일보』 1938년 12월 2~7일)부터 친일적인 글을 쓰기 시작해서 이후 대동아공영권과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조선인의 징병 혹은 학병을 독려하고, ‘대동아공영권’건설을 위한 문학과 문화의 창조를 역설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
황순원과의 관계
- 황순원과 함께 국민보도연맹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가입.[1]
각주
- ↑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부산·경남지역」 24p 인용: “1949년 11월 한 달을 좌익세력 자수전향기간으로 설정하고 11월 30일로 마감한 결과, 전향자수는 전국적으로 약 4만 명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양주동(국어학자), 정인택(문학가동맹), 김용환(화가), 신막(음악가동맹), 황순원(소설가), 김기림(시인), 백철(문학평론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았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