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동의 「국물 이야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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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우리의 밥상에는 밥과 함께 국이 주인이다. 봄이면 냉이 국이나 쑥국의 향긋한 냄새가 좋고, 여름엔 애호박국이 감미로우며, 가을엔 뭇국이 시원하다. 그리고 겨울이면 시래깃국과 얼큰한 배추 김칫국이 있어서 철따라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가을 뭇국은 반드시 간장을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나고, 겨울 시래깃국은 된장을 풀어야 구수한 맛이 돈다. 사람들이 지닌 성품과 애정(愛情)도 이처럼 사계절의 국물맛과 같지 않을까? | {{Blockquote| 우리의 밥상에는 밥과 함께 국이 주인이다. 봄이면 냉이 국이나 쑥국의 향긋한 냄새가 좋고, 여름엔 애호박국이 감미로우며, 가을엔 뭇국이 시원하다. 그리고 겨울이면 시래깃국과 얼큰한 배추 김칫국이 있어서 철따라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가을 뭇국은 반드시 간장을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나고, 겨울 시래깃국은 된장을 풀어야 구수한 맛이 돈다. 사람들이 지닌 성품과 애정(愛情)도 이처럼 사계절의 국물맛과 같지 않을까? | ||
− | 조선 시대 왕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왕이 친히 선농단까지 나갔던 것이다.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니 백성들도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궁궐에서만 사는 왕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고, 또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도 해서였다. 흉년이 든 다음 해는 백성들이 더 많았는데, 그 까닭은 그 곳에 가면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농단의 | + | 조선 시대 왕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왕이 친히 선농단까지 나갔던 것이다.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니 백성들도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궁궐에서만 사는 왕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고, 또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도 해서였다. 흉년이 든 다음 해는 백성들이 더 많았는데, 그 까닭은 그 곳에 가면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농단의 국물https://www.youtube.com/embed/KXNfCpeA1ug]에는 은혜와 감사, 또는 마음 속 깊은 기원(祈願)이나 따듯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선농단에서 백성들에게 국물을 나누어 주다가 갑자기 사람이 더 늘어나면 물을 더 붓는다. 그리고 간을 다시 맞추어 나누어 먹는다. 물을 더 부으면 그만큼 영양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 지난날 우리가 영양가를 따져 가며 먹고 살아왔던가? 가난을 나누듯 인정(人情)을 사이좋게 실어 나르던 고마운 국물이었던 것이다. | 선농단에서 백성들에게 국물을 나누어 주다가 갑자기 사람이 더 늘어나면 물을 더 붓는다. 그리고 간을 다시 맞추어 나누어 먹는다. 물을 더 부으면 그만큼 영양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 지난날 우리가 영양가를 따져 가며 먹고 살아왔던가? 가난을 나누듯 인정(人情)을 사이좋게 실어 나르던 고마운 국물이었던 것이다. |
2019년 11월 25일 (월) 00:06 판
학습목표
* 글쓴이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 내 생각과 글쓴이의 생각을 비교하여 자신의 생각을 담은 한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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