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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1=수고로우면 쉴 생각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군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인은 힘을 수고롭게 하며, 만물은 기를 수고롭게 한다. 마음은 쉬는 때가 없으나, 힘은 쉬는 때가 있고, 기는 쉴 때가 있고 쉬지 않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새 중에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가며 6개월을 가서야 쉬는 것이 있다. 솔개는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때로 숲에서 멈추기도 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은 낮과 밤을 쉬지 아니하며, 바다에 이르지 아니하면 멈추지 않는다. (이런 것은 사람에도 있는데,) 농부는 가을에 쉬고, 나그네는 저녁에 쉬고, 선비는 날마다 부지런히 배움에 힘쓰고, 벼슬할 때에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하다, 그 생을 다 마친 후에야 그친다. 그러하니, 벼슬길에 나가 어두운 길 가는 자들은 벼슬살이를 한다는 비웃음이 있으며, 용감히 물러난 자에게는 강호의 근심이 있으니, 이에 쉬는 것이 힘이고, 쉬지 못하는 것은 마음임을 알겠다. | |번역1=수고로우면 쉴 생각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군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인은 힘을 수고롭게 하며, 만물은 기를 수고롭게 한다. 마음은 쉬는 때가 없으나, 힘은 쉬는 때가 있고, 기는 쉴 때가 있고 쉬지 않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새 중에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가며 6개월을 가서야 쉬는 것이 있다. 솔개는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때로 숲에서 멈추기도 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은 낮과 밤을 쉬지 아니하며, 바다에 이르지 아니하면 멈추지 않는다. (이런 것은 사람에도 있는데,) 농부는 가을에 쉬고, 나그네는 저녁에 쉬고, 선비는 날마다 부지런히 배움에 힘쓰고, 벼슬할 때에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하다, 그 생을 다 마친 후에야 그친다. 그러하니, 벼슬길에 나가 어두운 길 가는 자들은 벼슬살이를 한다는 비웃음이 있으며, 용감히 물러난 자에게는 강호의 근심이 있으니, 이에 쉬는 것이 힘이고, 쉬지 못하는 것은 마음임을 알겠다. | ||
|원문2=丞相蓉庵公枚卜數月。力辭去位。退居于東墅舊築。有泉一絃。有峰數笏。有書一束。怡然有出塵之想。以書命章錫曰吾日日休於此。以是名吾堂。子其記之。 | |원문2=丞相蓉庵公枚卜數月。力辭去位。退居于東墅舊築。有泉一絃。有峰數笏。有書一束。怡然有出塵之想。以書命章錫曰吾日日休於此。以是名吾堂。子其記之。 | ||
− | |번역2={{TagPerson|승상 용암공 (金炳始)]}}은 몇 달간 매복(枚卜)되어 있었으나, 애써 사양하고 그 자리를 떠나고 물러서서 동쪽의 옛 별장에서 지냈다. 한 줄기 샘이 있고, 몇 개의 홀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있고, 한 묶음의 책이 있었기에, 기쁘게 세속 세계를 벗어난 생각이 있었으니, 이에 편지글을 써서 {{TagPerson|나]}}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날마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니, 이것으로서 내 집 이름으로 하고자 하네. 자네가 기문을 써 주게." 라 하시었다. | + | |번역2={{TagPerson|승상 용암공 (金炳始)]}}은 몇 달간 매복(枚卜)되어 있었으나, 애써 사양하고 그 자리를 떠나고 물러서서 동쪽의 옛 별장에서 지냈다. 한 줄기 샘이 있고, 몇 개의 홀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있고, 한 묶음의 책이 있었기에, 기쁘게 세속 세계를 벗어난 생각이 있었으니, 이에 편지글을 써서 {{TagPerson|나]}} <ref>일휴당기2의 저자, 한장석(韓章錫)</ref>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날마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니, 이것으로서 내 집 이름으로 하고자 하네. 자네가 기문을 써 주게." 라 하시었다. |
|원문3=嗚呼。公契合明良。身都將相。憂虞之會。百責埤益。盖未甞一日休也。而亦未甞一日忘退也。今几舃少暇而戀主之心。如川流之赴海。憂世之志。如農夫之望秋。顧安能浩然若行旅之得歸乎。況公之不宜休者有五。年未至矣。時方艱矣。用未究矣。主知隆矣。蒼生之望切矣。將恐謝傅之棊局。未了於東山。而君實之手板。蹶然於中夜。心之勞矣。休於何有。 | |원문3=嗚呼。公契合明良。身都將相。憂虞之會。百責埤益。盖未甞一日休也。而亦未甞一日忘退也。今几舃少暇而戀主之心。如川流之赴海。憂世之志。如農夫之望秋。顧安能浩然若行旅之得歸乎。況公之不宜休者有五。年未至矣。時方艱矣。用未究矣。主知隆矣。蒼生之望切矣。將恐謝傅之棊局。未了於東山。而君實之手板。蹶然於中夜。心之勞矣。休於何有。 | ||
|번역3= 하아. 공께서는 자신을 알아주시는 어진 임금을 만나서 몸소 장수와 재상을 다 하시어, 근심과 걱정이 모이며 많은 책임이 더해졌으니 대개 일찍이 하루도 쉰 날이 없었지만, 또한 일찍이 하루도 물러날 생각을 잊은 적이 없으셨다. 지금 궤석(정승 벼슬아치가 신는 신발)에서도 잠깐 한가할 때가 있을 때에도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냇물이 흘러 바다로 향해 가는 것과 같고, 세상에 대해 걱정하는 뜻은 농부가 가을때(추수)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생각컨데 어찌 능히 호연하게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게다가) 공께서 쉬시기가 마땅하지 않은 이유가 다섯이 있다. 나이가 아직 때(물러나야 할 때)에 다다르지 않았고, 시국이 바야흐로 어려우며, 자신의 도를 다 쓰지 못하였으며, 임금님으로부터 대우를 성대하게 받고 계시고, 백성들이 거는 기대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장차 아마도 사부의 바둑이, 동산에서 끝나기도 전에, 군실의 수판이 한밤중에 뛰어 벌떡 일어날 것인데, 마음을 수로곱게 하심에 쉼이 어디 있으시겠는가? | |번역3= 하아. 공께서는 자신을 알아주시는 어진 임금을 만나서 몸소 장수와 재상을 다 하시어, 근심과 걱정이 모이며 많은 책임이 더해졌으니 대개 일찍이 하루도 쉰 날이 없었지만, 또한 일찍이 하루도 물러날 생각을 잊은 적이 없으셨다. 지금 궤석(정승 벼슬아치가 신는 신발)에서도 잠깐 한가할 때가 있을 때에도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냇물이 흘러 바다로 향해 가는 것과 같고, 세상에 대해 걱정하는 뜻은 농부가 가을때(추수)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생각컨데 어찌 능히 호연하게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게다가) 공께서 쉬시기가 마땅하지 않은 이유가 다섯이 있다. 나이가 아직 때(물러나야 할 때)에 다다르지 않았고, 시국이 바야흐로 어려우며, 자신의 도를 다 쓰지 못하였으며, 임금님으로부터 대우를 성대하게 받고 계시고, 백성들이 거는 기대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장차 아마도 사부의 바둑이, 동산에서 끝나기도 전에, 군실의 수판이 한밤중에 뛰어 벌떡 일어날 것인데, 마음을 수로곱게 하심에 쉼이 어디 있으시겠는가? |
2022년 5월 20일 (금) 10:28 판
遊北渚洞記
甲辰春 同幼選...(하략)
與樊巖公 會游北屯
北屯月夜沼上作
出東小門有述
오건(=문라건)과 흰옷이 나부끼어 팔랑거린다.
성곽을 나서니 마음이 맑아져 아득히 높은 하늘 같구나
북둔의복숭아와 자두꽃이 지난날을 기억하는구나
與文初 公會遊北屯
積雨初霽 爲看瀑布 出惠化門 行至貞陵遇雨 入奉國寺 得三絶
廵審都城。登木覓
秋日。與菊軒,一之,趙景瑞 㻐,克卿,族叔求玉 球。出鐘巖。歷訪孫庄
北渚洞
北屯桃花下拈韻 同泠齋諸子
北屯看桃花
日休堂記
日休堂記2
日休堂記3
日休堂記3
人之恒言曰:“老則休”. 此以休身而言, 非休其心之謂也. 心之休, 何待乎老, 而苟得其休, 亦可以樂而忘老矣. 傳云:‘仁者壽’, 又云:‘愷悌君子, 求福不回’, 其道未嘗不由於休其心, 而其身之休不休, 固不足論也.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늙으면 쉰다”고들 한다. 그것은 몸을 쉬는 것에 대한 말이지 마음을 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쉼이 어찌 늙음을 기다리겠으며, 진실로 그 쉼을 얻으면 또한 즐기면서 늙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 전하는 말로,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고, 또 『시경』에 이르기를 ‘용모와 기상이 화평하고 단아한 군자는, 복을 구하는 것이 간사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 도는 일찍이 마음을 쉬게 하는 데서 연유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그 몸의 쉼과 쉬지 않음은 진실로 (도를) 논하기에 부족하다.
蓉庵傅相於東山別墅, 新搆小堂, 顔之以日休. 或疑之曰:“今吾君待公而爲政, 吾民恃公而爲生, 使公而年已至, 尙不可以言休, 况年未至乎? 且以公體國之誠, 處調元之地, 宜其急病讓夷, 以光世篤之業, 而乃反謙退不居, 以休爲志, 甚非朝野所望於公者也.”
재상 용암(蓉庵) 김병시는 동쪽 산의 별서에 작은 집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일휴(日休)’라고 하였다. 혹자는 의구심이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공을 의지해 정사를 펼치고 계시며, 우리나라 백성들은 공에게 기대어 살아가기에, 공이 연세가 이미 많음에도 오히려 쉰다는 말을 못하게 하였으니, 하물며 연세가 지극하지 않았을 때에라야? 장차 나라를 제 몸처럼 여기는 정성에 공변됨과 국정을 주관하는 재상의 위치에 처함으로, 의당 그 어려운 일을 해소하고 쉬운 일은 남에게 양보하여 대대로 두터운 업적을 빛냈음에도, 곧 도리어 겸손히 물러나 거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그 뜻을 삼았으니, 조야(朝野)가 공에게 바라는 바는 절대 아니다.”
昌煕曰:
“否. 今夫晝而作者夕而休, 春而作者冬而休, 作與休相爲循環. 其作也勞, 其休也怠, 而不得其節, 皆凡民也. 賢士大夫亦多不能免焉, 惟公則不然, 其平居無日而不休, 亦無日而不作也. 進思贊襄, 而自守恬靜, 故有至淸不撓之德, 退思調養, 而常存憂愛, 故有至誠無息之功. 凡所以彌綸默運, 匡濟時艱者, 其爲術莫不本之於作與休爲一致也. 是以銓衡絲綸金穀卒乘之泛應曲當, 而未嘗爲勞, 則公雖作焉而其休固自在也. 圖書琴尊園林泉石之隨境取適, 而亦不足爲佚, 則公雖休焉而其作尙未已也. 且公之優閒於此堂, 晩節淸福之所由完也, 可以模楷一世而坐鎭雅俗矣. 公之安慮於此堂, 嘉猷碩畫之所由得也, 可以膏澤斯民而對揚聖化矣. 噫, 子之謂公志已决於釋負而已者, 淺之乎知公之日休也夫。
나(창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 않다. 지금 대저 낮에 일하는 자는 저녁이 되어 쉬고, 봄에 일하는 자는 겨울이 되어 쉬니, 무언가를 하는 것과 쉬는 것은 서로 순환한다. 일함은 수고로움이고 쉼은 게으름인데, 그 알맞은 정도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평범한 인민들이다. 현사와 대부 역시 대부분 그것을 면치 못하는데, 오직 공께서는 그렇지 않아서, 그 평소 거처하심에 쉬지 않으시는 날이 없으며, 또한 일하지 않으시는 날이 없다.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보좌함에 여념 없으면서도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지켰기에, 지극히 맑고 흔들리지 않는 덕이 있었으며, 조정에서 물러나서는 자신의 몸을 보살피는 데 여념 없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늘 품었으므로,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과 쉼 없는 공이 있다. 무릇 미륜(彌綸)하고 묵운(默運)하여 세상의 어려움을 바로잡고 구제하는 것은, 그 방술됨이 일함과 쉼이 일치가 되는 것으로부터 근본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조정에 계시면서) 이조(銓衡)와 승정원(絲綸)과 호조(金穀)와 병조(卒乘)의 업무에 널리 응하고 세세히 잘 대처하시면서도 일찍이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공께서 비록 일을 하시는 와중에도 그 쉼은 참으로 자유자재했던 것이다. (조정에서 나와) 도서(圖書)와 금준(琴尊)과 원림(園林)과 천석(泉石) 사이에서 선경을 따라 유유자적하시면서도 또한 편안히 여기시기에 충분치 않았으니, 공께서 비록 쉬시는 와중에도 그 일함이 오히려 그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장차 공께서 이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심은 만년의 청복이 완연할 연유라, 당세의 모범으로 가만히 앉아서 아속을 진정 시키실만 하다. 공께서 이 집에 편안히 계시면서도 세속을 걱정하심은 훌륭한 계책을 터득하실 연유라,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려 성상의 교화를 널리 알리실만 하다. 아! 그대가 공의 뜻이 의정(議政)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공이 의도하신 ‘일휴(日休)’의 뜻을 겉핥기 정도로 아는 것일 뿐이다.”
城北洞泉石亭 幷引
城北洞泉石亭 幷引
城北洞泉石亭, 謁容齋尹議政告退. 相公挽執携筇, 同翫泉石之勝, 指點景槩. 亭之北扁萬松窩, 水閣曰不盈閣. 閣之前, 大石平舖, 可十餘間. 石之南, 詎巖特立, 高數丈, 廣可六七間. 巖之上, 老松二株大可數抱, 長亦數十丈, 枝幹廣達, 全覆石面. 杜鵑躑躅之屬, 雜錯於萬松之間, 閣下溪流, 水通石罅. 鏦錚之韻, 與松籟合奏笙簧琵琶之聲, 眞別洞天也。
성북동(城北洞) 천석정(泉石亭)에서 조정에서 물러난 용재(容齋) 윤 의정(尹議政, 윤용선)을 배알하였다. 상공은 지팡이를 짚는 것을 만류하고, 전원의 승경을 함께 완상하며 그림 같은 경치를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정자의 북쪽 편액은 만송와(萬松窩)이고, 물가의 누각은 불영각(不盈閣)이라 이름 하였다. 누각 앞에는 큰 돌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데, 10여 칸 즈음 된다. 돌 남쪽에는 얼마큼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높이는 몇 장이며 넓이는 6~7칸 즈음 된다. 바위 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크기가 몇 아름은 되고 길이도 수십 장은 되며, 가지와 줄기가 넓게 뻗어 돌 표면을 모조리 덮고 있다. 두견과 척촉 따위가 온갖 소나무 사이에 섞여 있고, 누각 아래로는 시내가 흐르며 물은 돌 틈으로 통한다. 잘그랑 잘그랑대는 울림과 함께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생황과 비파와 합주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별세계 그 자체다.
城闉咫尺闢桃源。丞相菟裘爰處爰。 一道飛泉松底出。千羣啼鳥石頭喧。 桑楡縱趁懸車限。葵藿猶應戀闕恩。 爲賀玆區遭遇盛。偏因卜築世知尊。
성곽의 지척에 무릉도원이 열렸으니, 승상이 은거해 여기 산다네 한 줄기 폭포아래 소나무 돋아났는데, 뭇 모여 우는 새들은 돌머리에 지저귀네 뽕나무와 느릅나무 현거(懸車)의 경계를 좇는데, 해바라기 오히려 연궐(戀闕)의 은덕에 응하네 (*해석: 늙어버린 몸뚱이는 은거하길 바라는데, 임금님 향한 마음은 대궐로 향하도록 하네) 이 터를 만나 성대해질 것을 경하드리니, 여기 집을 지었기에 세상이 높일 줄 알게 되리라.
題三人臺 幷序
題三人臺 幷序
臺在城北洞品石山房之後, 壁鐫三人臺三字, 傍有辛亥二字. 傳說正廟時有新進學士三人, 讀書于此, 各欲占宅於此, 末乃以三人名臺而刻之云. 園今爲宜石金尙書別業. 壬戌秋。宜石公邀海藏及冕, 徜徉泉石之間, 冕率題焉.
삼인대(三人臺)는 성북동 품석산방 뒤에 있는데, 벽에 ‘삼인대(三人臺)’ 세 글자를 새기고, 옆에는 ‘신해(辛亥, 1791)’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전하는 말로는, 정조 임금 때 새로 벼슬에 오른 학사 세 사람이 여기서 글을 읽다가 각자 이곳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나중에는 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대(臺)로 삼아 새겼다고 한다. 지금은 의석(宜石) 김 상서(金尙書, 김응근)의 별업이다. 임술년(1862) 가을, 의석공이 해장(海藏, 신석우)과 나(조면호)를 맞이해 이곳 전원에서 노닐었는데, 내가 삼인대로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近廓塵無到, 入山境愈新.
主翁與海叟, 對我成三人.
가까이에 먼지조차 닿지 않는데, 산 속이라 경계가 더욱 새롭구나. 주인옹과 해장옹 그리고, 나까지 마주하니 딱 세 사람이 되었구나.
주석
- ↑ 목만중睦萬中. 幼選은 그의 字.
- ↑ 이정운(李鼎運). 公會는 그의 字.
- ↑ 이익운(李益運). 季受는 그의 字.
- ↑ 정약용의 동명의 시 '幽事'에서는 조용한 일이라 번역했고, 허균 한정록 10권에서는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을 幽事라 정의하였기에 한가롭게 지내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 ↑ 桃花
- ↑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
- ↑ 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
- ↑ 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
- ↑ 서로 격절된 산
- ↑ 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
- ↑ 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
- ↑ 마땅히, 장차
- ↑ 김병시(金炳始). 용암蓉庵은 그의 호號.
- ↑ 개인이 가지고 있는 논밭
- ↑ 별장. 사는 집이 아닌, 경치 좋은 곳에다 짓고 때때로 와서 묵고 쉬는 집
- ↑ 『중용장구』 제14장,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
- ↑ 일휴당기2의 저자, 한장석(韓章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