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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골동품』 역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간행되었다.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하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시집 『방가』와 『골동품』에 묶인 두 권 분량의 시를 쓴 것이다.<br/> | 두 번째 시집 『골동품』 역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간행되었다.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하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시집 『방가』와 『골동품』에 묶인 두 권 분량의 시를 쓴 것이다.<br/> | ||
『골동품』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응시의 눈길을 재치 있게 표착한 시편들을 동물, 식물, 정물 등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 『골동품』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응시의 눈길을 재치 있게 표착한 시편들을 동물, 식물, 정물 등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
2020년 6월 16일 (화) 21:04 판
작품
문예주기
- 1931년
황순원은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아들아 무서워 말라」라는 시 역시 동광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황순원의 작품 세계는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동아일보에 발표한 동요 「이슬」,「봄밤」,「수양버들」,「봄이 왔다고」,「봄싹」 등과 단편소설 「추억」을 2010년에 권영민 서울대 교수가 발굴해내면서 "동요와 함께 단편소설과 희곡이 초기 습작기에 이미 신문에 발표됐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동안 우리 문단에서는 황순원 선생의 문필활동이 1931년 시 창작활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번 발굴로 그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단편 소설 「추억」은 소년소설=>중학생 소년 영일이 젊은 처녀의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다가 동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등 주인공의 유년기 체험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 1932년
함께 발굴된 것 중 단편 희곡 「직공생활」도 있다. 1932년 6월 27일-29일 조선일보 '독자문예'란에 실렸다.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남매와 병든 어머니에게 닥친 궁핌과 고통을 다루는 작품이다.
1932년에 나온 시들은 대부분 첫 시 「나의 꿈」과 같이 동광에서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 1934년
황순원은 와세다 대학 제2학원에 입학하여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였다. 그 시기에 그의 첫 시집 『방가』가 간행되었으며 시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시집은 나의 세상을 향한 첫 부르짖음이다. 나는 이 부르짖음을 보다 더 크게, 힘차게, 또한 깊게 울리게 할 앞날을 가져야 하겠다.”
=> 일제 식민시대, 굴복하지 말고 이겨내자는 외침
- 1935년
삼사문학의 동인이 되어 시 「새로운 행진」 「歸鄕(귀향)의 노래」 「거지애」 「새出發(출발)」 「밤車(차)」 「街路樹(가로수)」 「굴뚝」 「故鄕(고향)을 향해」 「午後(오후)의 한 一片(일편)」 「고독」 「찻속에서」 「무덤」 「개미」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였다. 시집 『방가』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위해 동경에서 간행했다 하여 여름방학 때 귀성했다가 평양 경찰서에 붙들려 들어가 29일간 구류 당한다.
- 1936년
파일:문예08.png
두 번째 시집 『골동품』 역시 동경학생예술좌에서 간행되었다.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하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시집 『방가』와 『골동품』에 묶인 두 권 분량의 시를 쓴 것이다.
『골동품』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응시의 눈길을 재치 있게 표착한 시편들을 동물, 식물, 정물 등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 1937년
첫 번째 단편 소설이라고 알려진 「거리의 부사」 를 발표했다. 이는 시에서 소설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 1940년
첫 단편집 『늪』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늪』 에는 집필시기가 기록되지 않은 단편들이 묶여있다. 대표적으로 늪, 소라, 갈대 등이 있고 거리의 부사(1937, 첫 소설 작품)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1942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이 시작되면서 황순원은 평양의 빙장리로 낙향, 은둔하게 되고 1945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이 기간에 「독 짓는 늙은이」를 썼다고 알려진다. 또한 1945년 8월에는 해방을 맞이하여 세번째 시집인 『목탄화』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