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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영화에서 주인공을 서로 찾기 위해 방송국, 시민회관, 워커힐등의 여러 공간을 찾아가지만 워커힐을 영화제목에서 내세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형모 감독은 영화 속에서 매니저겸 스폰서(구봉서)가 워커힐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서 톱스타만이 오를 수 있는 꿈의 무대임을 부각시킨다. 실제로 성공의 징표로 여겨졌던 이 무대에서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 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출연료를 높여나갔다(김형찬, 2013, 문화일보). ''감독은 흥행을 위한 전략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워커힐이라는 최고급 휴양시설을 영상에 적극적으로 담아 대리만족을 시켜주었으며, 이는 동시에 정부 주도로 설립된 워커힐 호텔의 홍보역할을 하였다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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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s://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111559 *김주희. (2017). 한형모 감독의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를 중심으로 본 워커힐 쇼의 문화예술사적 의미. 대한무용학회논문집, 75(3), 37-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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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0일 (수) 15:32 판
개요
한형모 (1917~1999), 평안북도 녕변군 출신이다. 영화인, 감독이다.
저작
저작성벽을 뚫고(1949), 운명의 손(1954), 자유부인(1956), 청춘쌍곡선(1956), 순애보(1957), 여사장(1959), 돼지꿈(1961),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 엘레지의 여왕(1967)
주요경력
- 제4대 영화감독협회 회장 역임
- 한형모프로덕션 설립
- 1962년 대종상 편집상 수상
논문에서 나온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서로 찾기 위해 방송국, 시민회관, 워커힐등의 여러 공간을 찾아가지만 워커힐을 영화제목에서 내세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형모 감독은 영화 속에서 매니저겸 스폰서(구봉서)가 워커힐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서 톱스타만이 오를 수 있는 꿈의 무대임을 부각시킨다. 실제로 성공의 징표로 여겨졌던 이 무대에서 펄시스터즈, 윤복희, 김상희, 패티김, 정훈희, 조애희, 쟈니 브라더스 등도 워커힐호텔 무대를 이용해 자신의 출연료를 높여나갔다(김형찬, 2013, 문화일보). 감독은 흥행을 위한 전략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워커힐이라는 최고급 휴양시설을 영상에 적극적으로 담아 대리만족을 시켜주었으며, 이는 동시에 정부 주도로 설립된 워커힐 호텔의 홍보역할을 하였다 볼 수 있다.
*김주희. (2017). 한형모 감독의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를 중심으로 본 워커힐 쇼의 문화예술사적 의미. 대한무용학회논문집, 75(3), 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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