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나와 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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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으로 영문학 과목을 듣는 1학년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 분석법을 가르칠 때 나는 ‘역할 바꾸기’를 역설한다. 이번 학기 영문학 개론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윌리엄 | + | 처음으로 영문학 과목을 듣는 1학년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 분석법을 가르칠 때 나는 ‘역할 바꾸기’를 역설한다. 이번 학기 영문학 개론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https://namu.wiki/w/윌리엄%20포크너 윌리엄 포크너]의 [http://blog.naver.com/naiad6/220006980053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라는 작품을 읽혔다. 남부 귀족 가문의 마지막 혈통인 에밀리 그리어슨은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도시 속에서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산다. 그러다가 북부에서 온 십장 호머 배론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떠나려는 그를 붙잡기 위해 그에게 극약을 먹인다는, 아주 기괴한 이야기이다. |
− | 작품 분석을 하면서 에밀리의 성격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보통,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지요.”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토론이고 분석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작품에서 작중 인물이 그저 ‘남’이고, 그의 행위는 괴팍스러운 성향을 가진 ‘남’의 일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나’와 ‘남’ 사이에 공존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을 공부하는 문학은 애당초 의미를 잃는다. 학생들 말마따나 에밀리의 경우는 단지 하나의 정신병 사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 | 작품 분석을 하면서 에밀리의 성격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보통,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지요.”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토론이고 분석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작품에서 작중 인물이 그저 ‘남’이고, 그의 행위는 괴팍스러운 성향을 가진 ‘남’의 일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https://ceri.knue.ac.kr/pds/2015_01_language.pdf ‘나’와 ‘남’ 사이에 공존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을 공부하는 문학은 애당초 의미를 잃는다.] 학생들 말마따나 에밀리의 경우는 단지 하나의 정신병 사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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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우리들, 앞뒤로 보따리 하나씩 메고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앞 보따리를 뒤적거려 보지만, 결국은 앞 보따리나 뒤 보따리나 속에 들어 있는 건 매한가지이다. 이렇게 보면 장점이 저렇게 보면 단점이고, 저렇게 보면 단점이 이렇게 보면 장점이다. 결국 장단점이 따로 없지만, 어차피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제각각 나에게 맞는 도수의 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을 보니,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희미하고 탐탁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못생겼다고 흉보며 사는 세상이 항상 시끄러운 것도 당연하다. |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우리들, 앞뒤로 보따리 하나씩 메고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앞 보따리를 뒤적거려 보지만, 결국은 앞 보따리나 뒤 보따리나 속에 들어 있는 건 매한가지이다. 이렇게 보면 장점이 저렇게 보면 단점이고, 저렇게 보면 단점이 이렇게 보면 장점이다. 결국 장단점이 따로 없지만, 어차피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제각각 나에게 맞는 도수의 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을 보니,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희미하고 탐탁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못생겼다고 흉보며 사는 세상이 항상 시끄러운 것도 당연하다. | ||
− | 가끔 누군가 내게 행한 일이 너무나 말도 안 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며칠 동안 가슴앓이하고 잠 못 자고 하다가도 문득 ‘만약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 + | [https://www.youtube.com/embed/B_XY-B62Iv8 가끔 누군가 내게 행한 일이 너무나 말도 안 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며칠 동안 가슴앓이하고 잠 못 자고 하다가도 문득 [http://andameero.com/archives/523 ‘만약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https://www.youtube.com/embed/vuiJ4qDYebU 그러면 꼭 이해하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심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그 대상이 나였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까짓껏, 그냥 용서해 버리자.’라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https://twitter.com/general_nuke/status/1001034104253526018 ‘남’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헤아릴 때 생기는 기적이다.] |
2019년 10월 14일 (월) 19:26 기준 최신판
본문
아주 옛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빚으면서, 각자의 목에 두 개의 보따리를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보따리 하나는 다른 사람의 결점으로 가득 채워 앞쪽에, 또 다른 보따리는 자신들의 결점으로 가득 채워 등 뒤에 달아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앞에 매달린 다른 사람의 결점들은 잘도 보고 시시콜콜 이리 뒤지고 저리 꼬투리 잡지만, 뒤에 매달린 보따리 속의 자기 결점은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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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영희, 『내 생애 단 한 번』(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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