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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屯月夜沼上作'''== | =='''北屯月夜沼上作'''== | ||
+ | 북둔의 달밤 못가에서 짓다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류인태, 진태현)</div>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류인태, 진태현)</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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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Trans4 | {{OriginTrans4 | ||
|원문1=照水花如動。流雲月與飛。 | |원문1=照水花如動。流雲月與飛。 | ||
− | |번역1= | + | |번역1=물에 비추니 꽃이 흔들리는 듯하고, 구름 흐르자 달이 함께 날아가네 |
|원문2=山樓當此夜。林壑有餘輝。 | |원문2=山樓當此夜。林壑有餘輝。 | ||
− | |번역2=산 속 | + | |번역2=산 속 누정에서 이런 밤을 만나, 숲 골짜기엔 아스라이 빛이 감도네 |
|원문3=狂甚無端至。情多未便歸。 | |원문3=狂甚無端至。情多未便歸。 | ||
− | |번역3= | + | |번역3=광기 심해 무단히도 이르건만, 정이 많아 돌아가질 못한다네 |
|원문4=傾城萬人出。淸賞似吾稀。 | |원문4=傾城萬人出。淸賞似吾稀。 | ||
− | |번역4= | + | |번역4=빼어난 외모는 수없이 많은 이 나왔으나, 청아한 정취는 나 같은 이 드물구나 |
}} | }} | ||
=='''出東小門有述'''== | =='''出東小門有述'''== | ||
+ | 동소문을 나와 술회가 있어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 +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류인태, 진태현)</div>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087A_0050_010_0810_2012_B090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087A_0050_010_0810_2012_B090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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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Trans4 | {{OriginTrans4 | ||
− | |원문1=瘦馬崚𡾓屢渡川。烏巾白袷意飄然。 | + | |원문1=瘦馬崚𡾓屢渡川。烏巾白袷意飄然。 |
− | |번역1= | + | |번역1=여윈 말로 험한 산 넘고 거듭 개울 건너자, 흑건과 백단령 나부끼며 팔랑거린다 |
− | + | |원문2=閉門愁髮千莖雪。出郭澄懷萬里天。 | |
− | |원문2=閉門愁髮千莖雪。出郭澄懷萬里天。 | + | |번역2=문 닫자 시름어린 머리칼 천 갈래 흰 눈 같더니, 성을 나오자 맑은 마음 아득한 저 하늘같구나 |
− | |번역2= | + | |원문3=東道烟霞期信宿。北屯桃李記前年。 |
− | + | |번역3=동쪽 길 이내와 안개로 이틀 밤을 묵으며, 북둔의 복사꽃 오얏꽃에 지난해가 기억난다 | |
− | |원문3=東道烟霞期信宿。北屯桃李記前年。 | + | |원문4=主人病起多幽事。藜杖相須菊樹邊。 |
− | |번역3= | + | |번역4=주인 병든 몸 일으키자 한가한 일 많은데<ref>정약용의 동명의 시 '幽事'에서는 조용한 일이라 번역했고, 허균 한정록 10권에서는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을 幽事라 정의하였기에 한가롭게 지내는 것으로 번역하였다.</ref>, 지팡이 짚고 서로 의지해 국화 길을 거닌다. |
− | |||
− | |원문4=主人病起多幽事。藜杖相須菊樹邊。 | ||
− | |번역4= | ||
}} | }} | ||
=='''與文初 公會遊北屯'''== | =='''與文初 公會遊北屯'''== | ||
+ | 문초와 공회와 북둔에서 노닐다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 + | <div align="right">담당자: 진태현(번역자: 류인태, 진태현)</div> |
<div align="right">[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087A_0050_010_1000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div align="right">[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087A_0050_010_1000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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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Trans4 | {{OriginTrans4 | ||
|원문1=衫袂飄然吹向東。東門路轉北屯通。 | |원문1=衫袂飄然吹向東。東門路轉北屯通。 | ||
− | |번역1= | + | |번역1=옷소매 팔랑이며 동쪽으로 부는 바람, 동소문 길을 돌아 북둔으로 통한다네 |
|원문2=莫敎人老花隨老。誤認山窮水未窮。 | |원문2=莫敎人老花隨老。誤認山窮水未窮。 | ||
− | |번역2= | + | |번역2=사람이 진다 하여 꽃 따라 져서야 되겠는가, 산은 다하지만 물은 끝없는 줄 안다네 |
|원문3=已息塵機禽欲下。不勝幽事酒頻中。 | |원문3=已息塵機禽欲下。不勝幽事酒頻中。 | ||
− | |번역3= | + | |번역3=속세 인연 사라지니 새가 내려앉으려 하는데, 한가한 틈 견디질 못해 술잔 자주 기울이네 |
|원문4=家家慣識栽培術。密揷荊籬護晩風。 | |원문4=家家慣識栽培術。密揷荊籬護晩風。 | ||
− | |번역4= | + | |번역4=집집마다 식물 심어 기르는 일 잘 알거니와, 촘촘히 꽂은 울타리로 저녁 바람을 막는다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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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2=相携郭外眈獀勝, 來坐林中快歇凉 | |원문2=相携郭外眈獀勝, 來坐林中快歇凉 | ||
|번역2=선의 기쁨이 참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한 가닥 향 연기가 불당에 피어나네 | |번역2=선의 기쁨이 참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한 가닥 향 연기가 불당에 피어나네 | ||
+ | }} | ||
+ | |||
+ | |||
+ | =='''遊東小門外 '''==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151A_0050_010_0020_2002_A033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春事將已闌, 九十其虛過 | ||
+ | |번역1=봄도 어느덧 다하려하니, 석 달을 헛되이 보냈구나 | ||
+ | |원문2=諸君執我手, 出城幽趣多 | ||
+ | |번역2=여러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성을 나서니 그윽한 풍취가 다채롭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路遠欲徑還, 亦未遺松蘿 | ||
+ | |번역1=길이 멀어 미리 돌아오려 해도, 또한 송라(은자의 산림)를 남겨두지 않았다네. | ||
+ | |원문2=飄飄賞春袂, 溪水翻輕波 | ||
+ | |번역2=바람에 나부끼는 상춘의 옷차림, 계곡물은 가벼운 물결로 찰랑거리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臨流此踟躕, 設筵坐靑莎 | ||
+ | |번역1=계곡물에 임해 서성거리다, 자리 갖추어 푸른 잔디에 앉네. | ||
+ | |원문2=張弓射小的, 酒羞紛前羅 | ||
+ | |번역2=얹은활로 작은 표적을 쏘고, 술과 음식을 어지럽게 펼쳐 즐기네.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日西未言歸, 醉面花爭酡 | ||
+ | |번역1=서쪽 해는 아직 돌아가란 말이 없고, 취한 얼굴은 꽃과 다툴 정도로 붉네. | ||
+ | |원문2=林泉固吾志, 役役終奈何 | ||
+ | |번역2=전원은 진실로 내 마음 둘 곳이니, 열심히 일한다 하여 끝내 무슨 소용이리. | ||
+ | |원문3=做却一日歡, 作此遊春歌 | ||
+ | |번역3=그저 하루를 즐길 따름이니, 이처럼 봄을 즐기는 노래를 짓노라. | ||
+ | }} | ||
+ | |||
+ | =='''出東小門'''==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452A_0030_010_0530_2004_A175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秋山帶墟落, 處處夕陽明 | ||
+ | |번역1=가을 산 마을을 둘렀는데, 곳곳에는 석양이 밝네. | ||
+ | |원문2=野老獨看圃, 樵歌爭入城 | ||
+ | |번역2=마을 노인 홀로 밭을 보고, 노래하는 나무꾼들 앞다퉈 성으로 들어가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松晴崖氣秀, 沙白水流平 | ||
+ | |번역1=소나무 맑고 벼랑 서슬 빼어난데, 하얀 모래와 물길이 고르구나. | ||
+ | |원문2=久滯塵喧裏, 歸來意若驚 | ||
+ | |번역2=떠들썩한 세속에 오래 머물러, 돌아올 마음은 그저 두렵네. | ||
+ | |||
+ | |||
+ | =='''出東小門2'''==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017A_0020_010_0240_2012_B070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騎驘出東郭, 滿眼對春岑 | ||
+ | |번역1=노새를 타고 동소문을 나와, 눈 안 가득 봄 산 마주하네 | ||
+ | |원문2=麗日行原陸, 微風憇石林 | ||
+ | |번역2=고운 햇살과 들길을 내딛고, 산들바람과 바위 숲에 쉬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芳菲連野闊, 煙火抱村深 | ||
+ | |번역1=풀 향기 탁 트인 들판 잇고, 취연은 깊이도 마을 휘감네 | ||
+ | |원문2=浮世堪愁思, 長途一散襟 | ||
+ | |번역2=뜬세상 견뎌 온 시름마저도, 긴긴 여정 모두 흩어버리네 | ||
+ | |||
+ | |||
+ | =='''出惠化門'''==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205A_0010_010_0610_2017_B126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我自塵機少, 遊仙一夢回 | ||
+ | |번역1=나 자신은 속된 마음 거의 없으니, 선경에서 노닒이 한바탕 꿈이라네 | ||
+ | |원문2=三山舟可到, 九月鴈初來 | ||
+ | |번역2=삼신산에 배를 타고 이를 수 있고, 구월이면 기러기 처음 찾아오리니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野漲參差落, 岸花瑣細開 | ||
+ | |번역1=들판 든 물은 흩어 갈라져 흐르고, 강변의 꽃은 가냘프게 피어났다네 | ||
+ | |원문2=吟鞭雲外指, 千里接蓬萊 | ||
+ | |번역2=말 타고 시 읊으며 가리킨 구름 밖, 천리너머 봉래산에 접해 있으리니 | ||
+ | |||
+ | |||
+ | =='''北渚村歸後 拙搆五七各一律 求和同遊諸丈人'''==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226A_0010_010_0180_2019_B132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惠化門前柳色斜, 晩來風日更淸和 | ||
+ | |번역1=혜화문 앞 버들 빛깔 햇살에 비끼는데, 석양녘 풍광이 재차 맑고 화창하네 | ||
+ | |원문2=無名草覆依山道, 不整門開傍岸家 | ||
+ | |번역2=이름 모를 더부룩한 풀들이 산길을 따라 있고, 비스듬히 열린 문은 언덕 집에 붙어있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僧與白雲還暮壑, 客隨流水下晴沙 | ||
+ | |번역1=중은 흰 구름과 함께 저물녘 골짜기로 돌아오는데, 객은 개울을 따라 맑은 모래톱을 찾아가네 | ||
+ | |원문2=偸閒不是機心絶, 歸袖還慚伴夕鴉 | ||
+ | |번역2=한가한 틈이란 억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돌아오는 길 저녁 까마귀 벗함 되려 부끄럽다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偶聞北渚勝, 攜手出東門 | ||
+ | |번역1=북저동이 승경이라 우연히 듣고선, 서로 손잡고 동소문을 나섰네 | ||
+ | |원문2=彌勒寺前路, 七星峯下村 | ||
+ | |번역2=미륵사 앞길을 걸어, 칠성봉 아래 마을에 이르렀네 | ||
+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脫巾仍臥石, 躡屐更尋源 | ||
+ | |번역1=두건을 벗고 그대로 바위에 누웠다가, 신발을 끌고 재차 무릉도원 찾아가네 | ||
+ | |원문2=竟日忘歸去, 林鴉已夕喧 | ||
+ | |번역2=온종일 돌아갈 것을 잊었는데, 숲속 까마귀 저녁울음 이미 시끄럽네. | ||
+ | }} | ||
+ | |||
+ | |||
+ | =='''尹令永基葬其親于惠化門外三仙㙜 余會葬感作一截以輓之'''==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1247A_0040_010_0440_2021_B141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樹木猶知護吉岡, 路傍藏在閱千霜 | ||
+ | |번역1=수목이 되려 길한 언덕을 지킬 것을 알았기에, 길가에 숨겨진 곳이 오랜 세월을 버텼네 | ||
+ | |원문2=若言風水非虛假, 此地惟應福慶長 | ||
+ | |번역2=만일 풍수가 거짓된 것이 아니라면, 이 땅은 생각건대 복됨과 경사스러움이 길이 이어지리 | ||
+ | }} | ||
+ | |||
+ | |||
+ | =='''出惠化門, 循城而卥二里, 有倉曰城北屯. 居民皆種桃, 紅霧蒸成. 隔岡有破寺, 所謂北寺洞者.'''==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black; width:100%; height:3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 | <div align="right">담당자: 유지훈(번역자: 류인태, 유지훈)</div> | ||
+ | <div align="right">[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83A_0030_010_0360_2007_A261_XML 【한국고전종합DB 원문보기】]</div>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一雨郊原麗矚新, 春天數騎踏芳塵 | ||
+ | |번역1=비 한 번 오자 교외 들판의 아름다움 새롭고, 봄 하늘 몇몇 말을 타고 향기로운 자취를 밟네 | ||
+ | |원문2=桃花地僻空倉晩, 洴澼僧稀古寺貧 | ||
+ | |번역2=복숭아꽃 핀 궁벽진 곳 빈 창고에 해가 지고, 빨래하는 중들 드문드문 오래된 절은 빈한하네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碧樹園中尋水響, 亂山高處見城身 | ||
+ | |번역1=뜰 가운데 푸른 나무 물소리를 찾는데, 높은 곳에 어지러운 산봉우리 성곽에 현신하네 | ||
+ | |원문2=莫嫌灌圃生涯拙, 我輩十年無此人 | ||
+ | |번역2=밭에 물주는 삶이 보잘 것 없다 혐의치 말리니, 우리들 중 10년간 이런 삶 사는 이 없었네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閒來耳目一時新, 埜客鬚眉不染塵 | ||
+ | |번역1=한가함 찾아오니 눈과 귀가 일시에 새롭고, 야객이라 수염과 눈썹 세속 티끌에 물들지 않네 | ||
+ | |원문2=滿地飛花驚節暮, 出城嬴馬笑官貧 | ||
+ | |번역2=온 데 휘날리는 꽃인데 저물녘에 놀라고, 파리한 말로 성을 나오니 가난한 관원이라고 비웃네 | ||
+ | }} | ||
+ | {{OriginTrans2 | ||
+ | |원문1=溪頭亂石留殘墨, 山頂流雲擁半身 | ||
+ | |번역1=산사의 시냇가 어지러운 바위에 옅은 글씨 남기고, 산꼭대기 떠가는 구름에 반쪽 몸을 기대네 | ||
+ | |원문2=最是夕陽光景絶, 白沙堤外醉歸人 | ||
+ | |번역2=무엇보다 석양 무렵 최고의 풍광은, 흰 모래 둑 저편으로 술 취해 돌아오는 이라네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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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4=구경하는 이들도 시끄러운 온종일, 모두가 행복한 태평성대라네 | |번역4=구경하는 이들도 시끄러운 온종일, 모두가 행복한 태평성대라네 | ||
}} | }} | ||
+ | |||
=='''北屯桃花下拈韻 同泠齋諸子'''== | =='''北屯桃花下拈韻 同泠齋諸子'''== |
2022년 6월 8일 (수) 09:06 기준 최신판
목차
- 1 성북동과 직접 관련된 작품
- 1.1 遊北渚洞記
- 1.2 甲辰春。同幼選,公會,季受及諸兒輩賞花北渚洞。仍宿屯舍。
- 1.3 與樊巖公 會游北屯
- 1.4 北屯月夜沼上作
- 1.5 出東小門有述
- 1.6 與文初 公會遊北屯
- 1.7 積雨初霽 爲看瀑布 出惠化門 行至貞陵遇雨 入奉國寺 得三絶
- 1.8 廵審都城。登木覓
- 1.9 秋日。與菊軒,一之,趙景瑞 㻐,克卿,族叔求玉 球。出鐘巖。歷訪孫庄
- 1.10 甲戌閏月二十五日暫還鄕
- 1.11 送春日 與僚丈兪司禦 漢雋 申翊衛 大羽 宋翊衛 時淵 尹衛率 守翼 往向曹溪, 至惠化門, 歷貞陵宋洞賞花, 歸路得花字共賦
- 1.12 丁卯六月六日 與梁文伯 尹士宗 金學淵 裵君甫 金周卿 期宿孫家庄 出惠化門得收字
- 1.13 次新興寺二韻
- 1.14 遊東小門外
- 1.15 出東小門
- 1.16 出東小門2
- 1.17 出惠化門
- 1.18 北渚村歸後 拙搆五七各一律 求和同遊諸丈人
- 1.19 尹令永基葬其親于惠化門外三仙㙜 余會葬感作一截以輓之
- 1.20 出惠化門, 循城而卥二里, 有倉曰城北屯. 居民皆種桃, 紅霧蒸成. 隔岡有破寺, 所謂北寺洞者.
- 1.21 北渚洞
- 1.22 北屯桃花下拈韻 同泠齋諸子
- 1.23 北屯看桃花
- 1.24 北屯賞花 出郭口號
- 1.25 北屯看桃花
- 1.26 日休堂記
- 1.27 日休堂記2
- 1.28 日休堂記3
- 1.29 城北洞泉石亭 幷引
- 1.30 題三人臺 幷序
- 1.31 引水爲小池
- 1.32 北渚幽景 二首
- 1.33 閒居賦懷 三首
- 1.34 春興
- 1.35 出東小門
- 1.36 出東小門
- 1.37 題惠上人房
- 1.38 北寺洞次諸人韻
- 1.39 北屯看花學兒有作次其韻
- 1.40 北渚洞
- 1.41 權醴泉正郞兄弟約游北渚關雨不果
- 1.42 北渚賞桃
- 2 성북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작품
- 3 주석
성북동과 직접 관련된 작품
遊北渚洞記
甲辰春。同幼選,公會,季受及諸兒輩賞花北渚洞。仍宿屯舍。
갑진년 봄 유선, 공회, 계수 및 여러 아이들과 북저동에서 꽃 구경을 하고, 그대로 북둔에서 유숙하다
與樊巖公 會游北屯
번암공과 북둔에서 만나 노닐다
北屯月夜沼上作
북둔의 달밤 못가에서 짓다
出東小門有述
동소문을 나와 술회가 있어
與文初 公會遊北屯
문초와 공회와 북둔에서 노닐다
積雨初霽 爲看瀑布 出惠化門 行至貞陵遇雨 入奉國寺 得三絶
廵審都城。登木覓
秋日。與菊軒,一之,趙景瑞 㻐,克卿,族叔求玉 球。出鐘巖。歷訪孫庄
甲戌閏月二十五日暫還鄕
送春日 與僚丈兪司禦 漢雋 申翊衛 大羽 宋翊衛 時淵 尹衛率 守翼 往向曹溪, 至惠化門, 歷貞陵宋洞賞花, 歸路得花字共賦
丁卯六月六日 與梁文伯 尹士宗 金學淵 裵君甫 金周卿 期宿孫家庄 出惠化門得收字
次新興寺二韻
遊東小門外
{{OriginTrans2
|원문1=臨流此踟躕, 設筵坐靑莎
|번역1=계곡물에 임해 서성거리다, 자리 갖추어 푸른 잔디에 앉네.
|원문2=張弓射小的, 酒羞紛前羅
|번역2=얹은활로 작은 표적을 쏘고, 술과 음식을 어지럽게 펼쳐 즐기네.
出東小門
{{OriginTrans2
|원문1=松晴崖氣秀, 沙白水流平
|번역1=소나무 맑고 벼랑 서슬 빼어난데, 하얀 모래와 물길이 고르구나.
|원문2=久滯塵喧裏, 歸來意若驚
|번역2=떠들썩한 세속에 오래 머물러, 돌아올 마음은 그저 두렵네.
出東小門2
{{OriginTrans2
|원문1=芳菲連野闊, 煙火抱村深
|번역1=풀 향기 탁 트인 들판 잇고, 취연은 깊이도 마을 휘감네
|원문2=浮世堪愁思, 長途一散襟
|번역2=뜬세상 견뎌 온 시름마저도, 긴긴 여정 모두 흩어버리네
出惠化門
{{OriginTrans2
|원문1=野漲參差落, 岸花瑣細開
|번역1=들판 든 물은 흩어 갈라져 흐르고, 강변의 꽃은 가냘프게 피어났다네
|원문2=吟鞭雲外指, 千里接蓬萊
|번역2=말 타고 시 읊으며 가리킨 구름 밖, 천리너머 봉래산에 접해 있으리니
北渚村歸後 拙搆五七各一律 求和同遊諸丈人
尹令永基葬其親于惠化門外三仙㙜 余會葬感作一截以輓之
出惠化門, 循城而卥二里, 有倉曰城北屯. 居民皆種桃, 紅霧蒸成. 隔岡有破寺, 所謂北寺洞者.
北渚洞
北屯桃花下拈韻 同泠齋諸子
北屯看桃花
北屯賞花 出郭口號
北屯看桃花
日休堂記
日休堂記2
日休堂記3
日休堂記3
人之恒言曰:“老則休”. 此以休身而言, 非休其心之謂也. 心之休, 何待乎老, 而苟得其休, 亦可以樂而忘老矣. 傳云:‘仁者壽’, 又云:‘愷悌君子, 求福不回’, 其道未嘗不由於休其心, 而其身之休不休, 固不足論也.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늙으면 쉰다”고들 한다. 그것은 몸을 쉬는 것에 대한 말이지 마음을 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쉼이 어찌 늙음을 기다리겠으며, 진실로 그 쉼을 얻으면 또한 즐기면서 늙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 전하는 말로,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고, 또 『시경』에 이르기를 ‘용모와 기상이 화평하고 단아한 군자는, 복을 구하는 것이 간사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 도는 일찍이 마음을 쉬게 하는 데서 연유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그 몸의 쉼과 쉬지 않음은 진실로 (도를) 논하기에 부족하다.
蓉庵傅相於東山別墅, 新搆小堂, 顔之以日休. 或疑之曰:“今吾君待公而爲政, 吾民恃公而爲生, 使公而年已至, 尙不可以言休, 况年未至乎? 且以公體國之誠, 處調元之地, 宜其急病讓夷, 以光世篤之業, 而乃反謙退不居, 以休爲志, 甚非朝野所望於公者也.”
재상 용암(蓉庵) 김병시【인물】 는 동쪽 산의 별서에 작은 집【장소】 을 새로 짓고, 그 이름을 ‘일휴(日休)’라고 하였다. 혹자는 의구심이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공을 의지해 정사를 펼치고 계시며, 우리나라 백성들은 공에게 기대어 살아가기에, 공이 연세가 이미 많음에도 오히려 쉰다는 말을 못하게 하였으니, 하물며 연세가 지극하지 않았을 때에라야? 장차 나라를 제 몸처럼 여기는 정성에 공변됨과 국정을 주관하는 재상의 위치에 처함으로, 의당 그 어려운 일을 해소하고 쉬운 일은 남에게 양보하여 대대로 두터운 업적을 빛냈음에도, 곧 도리어 겸손히 물러나 거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그 뜻을 삼았으니, 조야(朝野)가 공에게 바라는 바는 절대 아니다.”
昌煕曰:
“否. 今夫晝而作者夕而休, 春而作者冬而休, 作與休相爲循環. 其作也勞, 其休也怠, 而不得其節, 皆凡民也. 賢士大夫亦多不能免焉, 惟公則不然, 其平居無日而不休, 亦無日而不作也. 進思贊襄, 而自守恬靜, 故有至淸不撓之德, 退思調養, 而常存憂愛, 故有至誠無息之功. 凡所以彌綸默運, 匡濟時艱者, 其爲術莫不本之於作與休爲一致也. 是以銓衡絲綸金穀卒乘之泛應曲當, 而未嘗爲勞, 則公雖作焉而其休固自在也. 圖書琴尊園林泉石之隨境取適, 而亦不足爲佚, 則公雖休焉而其作尙未已也. 且公之優閒於此堂, 晩節淸福之所由完也, 可以模楷一世而坐鎭雅俗矣. 公之安慮於此堂, 嘉猷碩畫之所由得也, 可以膏澤斯民而對揚聖化矣. 噫, 子之謂公志已决於釋負而已者, 淺之乎知公之日休也夫。
나(창희)【인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 않다. 지금 대저 낮에 일하는 자는 저녁이 되어 쉬고, 봄에 일하는 자는 겨울이 되어 쉬니, 무언가를 하는 것과 쉬는 것은 서로 순환한다. 일함은 수고로움이고 쉼은 게으름인데, 그 알맞은 정도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평범한 인민들이다. 현사와 대부 역시 대부분 그것을 면치 못하는데, 오직 공께서는 그렇지 않아서, 그 평소 거처하심에 쉬지 않으시는 날이 없으며, 또한 일하지 않으시는 날이 없다.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보좌함에 여념 없으면서도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지켰기에, 지극히 맑고 흔들리지 않는 덕이 있었으며, 조정에서 물러나서는 자신의 몸을 보살피는 데 여념 없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늘 품었으므로,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과 쉼 없는 공이 있다. 무릇 미륜(彌綸)하고 묵운(默運)하여 세상의 어려움을 바로잡고 구제하는 것은, 그 방술됨이 일함과 쉼이 일치가 되는 것으로부터 근본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조정에 계시면서) 이조(銓衡)와 승정원(絲綸)과 호조(金穀)와 병조(卒乘)의 업무에 널리 응하고 세세히 잘 대처하시면서도 일찍이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공께서 비록 일을 하시는 와중에도 그 쉼은 참으로 자유자재했던 것이다. (조정에서 나와) 도서(圖書)와 금준(琴尊)과 원림(園林)과 천석(泉石) 사이에서 선경을 따라 유유자적하시면서도 또한 편안히 여기시기에 충분치 않았으니, 공께서 비록 쉬시는 와중에도 그 일함이 오히려 그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장차 공께서 이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심은 만년의 청복이 완연할 연유라, 당세의 모범으로 가만히 앉아서 아속을 진정 시키실만 하다. 공께서 이 집에 편안히 계시면서도 세속을 걱정하심은 훌륭한 계책을 터득하실 연유라,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려 성상의 교화를 널리 알리실만 하다. 아! 그대가 공의 뜻이 의정(議政)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공이 의도하신 ‘일휴(日休)’의 뜻을 겉핥기 정도로 아는 것일 뿐이다.”
城北洞泉石亭 幷引
城北洞泉石亭 幷引
城北洞泉石亭, 謁容齋尹議政告退. 相公挽執携筇, 同翫泉石之勝, 指點景槩. 亭之北扁萬松窩, 水閣曰不盈閣. 閣之前, 大石平舖, 可十餘間. 石之南, 詎巖特立, 高數丈, 廣可六七間. 巖之上, 老松二株大可數抱, 長亦數十丈, 枝幹廣達, 全覆石面. 杜鵑躑躅之屬, 雜錯於萬松之間, 閣下溪流, 水通石罅. 鏦錚之韻, 與松籟合奏笙簧琵琶之聲, 眞別洞天也。
성북동(城北洞)【장소】 천석정(泉石亭)【장소】 에서 조정에서 물러난 용재(容齋) 윤 의정(尹議政, 윤용선)【인물】을 배알하였다. 상공은 지팡이를 짚는 것을 만류하고, 전원의 승경을 함께 완상하며 그림 같은 경치를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정자의 북쪽 편액은 만송와(萬松窩)이고, 물가의 누각은 불영각(不盈閣)【장소】이라 이름 하였다. 누각 앞에는 큰 돌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데, 10여 칸 즈음 된다. 돌 남쪽에는 얼마큼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높이는 몇 장이며 넓이는 6~7칸 즈음 된다. 바위 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크기가 몇 아름은 되고 길이도 수십 장은 되며, 가지와 줄기가 넓게 뻗어 돌 표면을 모조리 덮고 있다. 두견과 척촉 따위가 온갖 소나무 사이에 섞여 있고, 누각 아래로는 시내가 흐르며 물은 돌 틈으로 통한다. 잘그랑 잘그랑대는 울림과 함께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생황과 비파와 합주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별세계 그 자체다.
城闉咫尺闢桃源。丞相菟裘爰處爰。 一道飛泉松底出。千羣啼鳥石頭喧。 桑楡縱趁懸車限。葵藿猶應戀闕恩。 爲賀玆區遭遇盛。偏因卜築世知尊。
성곽의 지척에 무릉도원이 열렸으니, 승상이 은거해 여기 산다네 한 줄기 폭포아래 소나무 돋아났는데, 뭇 모여 우는 새들은 돌머리에 지저귀네 뽕나무와 느릅나무 현거(懸車)의 경계를 좇는데, 해바라기 오히려 연궐(戀闕)의 은덕에 응하네 (*해석: 늙어버린 몸뚱이는 은거하길 바라는데, 임금님 향한 마음은 대궐로 향하도록 하네) 이 터를 만나 성대해질 것을 경하드리니, 여기 집을 지었기에 세상이 높일 줄 알게 되리라.
題三人臺 幷序
題三人臺 幷序
臺在城北洞品石山房之後, 壁鐫三人臺三字, 傍有辛亥二字. 傳說正廟時有新進學士三人, 讀書于此, 各欲占宅於此, 末乃以三人名臺而刻之云. 園今爲宜石金尙書別業. 壬戌秋。宜石公邀海藏及冕, 徜徉泉石之間, 冕率題焉.
삼인대(三人臺)【장소】는 성북동【장소】 품석산방【장소】 뒤에 있는데, 벽에 ‘삼인대(三人臺)’ 세 글자를 새기고, 옆에는 ‘신해(辛亥, 1791)’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전하는 말로는, 정조 임금 때 새로 벼슬에 오른 학사 세 사람이 여기서 글을 읽다가 각자 이곳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나중에는 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대(臺)로 삼아 새겼다고 한다. 지금은 의석(宜石) 김 상서(金尙書, 김응근)【인물】의 별업이다. 임술년(1862) 가을, 의석공이 해장(海藏, 신석우)【인물】과 나(조면호)【인물】를 맞이해 이곳 전원에서 노닐었는데, 내가 삼인대로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近廓塵無到, 入山境愈新.
主翁與海叟, 對我成三人.
가까이에 먼지조차 닿지 않는데, 산 속이라 경계가 더욱 새롭구나. 주인옹【인물】과 해장옹【인물】 그리고, 나【인물】까지 마주하니 딱 세 사람이 되었구나.
引水爲小池
北渚幽景 二首
一首
二首
閒居賦懷 三首
三首
春興
出東小門
出東小門
題惠上人房
北寺洞次諸人韻
北屯看花學兒有作次其韻
北渚洞
權醴泉正郞兄弟約游北渚關雨不果
北渚賞桃
성북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작품
石瓊樓 次犀翁韻
石瓊樓與諸公分韻
與黃山東籬 宿石瓊樓
重興寺次黃山
水落山寺1
水落山寺2
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
題海鵬大師影
淸溪山樵人得靈稏[44]戲作
書示金君奭準
與金君 奭準
題丹鄽冠嶽山詩
주석
- ↑ 정약용의 동명의 시 '幽事'에서는 조용한 일이라 번역했고, 허균 한정록 10권에서는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을 幽事라 정의하였기에 한가롭게 지내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 ↑ 桃花
- ↑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
- ↑ 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
- ↑ 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
- ↑ 서로 격절된 산
- ↑ 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
- ↑ 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
- ↑ 마땅히, 장차
- ↑ 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
- ↑ 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
- ↑ 음력 4월
- ↑ 桃花
- ↑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
- ↑ 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
- ↑ 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
- ↑ 서로 격절된 산
- ↑ 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
- ↑ 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
- ↑ 마땅히, 장차
- ↑ 김병시(金炳始). 용암蓉庵은 그의 호號.
- ↑ 개인이 가지고 있는 논밭
- ↑ 별장. 사는 집이 아닌, 경치 좋은 곳에다 짓고 때때로 와서 묵고 쉬는 집
- ↑ 『중용장구』 제14장,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
- ↑ 일휴당기2의 저자, 한장석(韓章錫)
- ↑ '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
- ↑ 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
- ↑ 번뇌없는 고요함.
- ↑ 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
- ↑ 가볍게 나부낌.
- ↑ 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
- ↑ 불교 용어, 번뇌
- ↑ 바람을 다스리는 신.
- ↑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
- ↑ 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
- ↑ 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
- ↑ 곳곳, 온 나라 땅, 우주
- ↑ 태고의 땅
- ↑ 화려한 환영
- ↑ 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
- ↑ 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
- ↑ 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
- ↑ 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
- ↑ 산삼
- ↑ 지팡이와 신발
- ↑ 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
- ↑ 불교 제단의 휘장
- ↑ 서화 모사의 한 방법
- ↑ 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
- ↑ 속된 사람
- ↑ 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