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論語古今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red

(十章 ME0310)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5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595번째 줄: 595번째 줄:
 
'''補曰''' 季氏,公子季友之後也。【桓公庶子三人,長曰'''仲'''慶父,次曰'''叔'''牙,次曰'''季'''友】 ○'''朱子曰''':“佾,舞列也。” ○'''馬曰''':“<font color="orangered">天子八佾,諸侯六,卿ㆍ大夫四,士二</font color="orangered"><ref>[傳]九月에 考仲子之宮하고 將萬焉하야 公問羽數於衆仲한대 對曰 '''天子用八하고 諸侯用六하고 大夫四하고 士二니이다 夫舞는 所以節八音而行八風이라 故自八以下니이다''' 公從之하야 於是初獻六羽하니 始用六佾也라</ref>。【隱五年《左傳》文】 <font color="orangered">八人爲列,八八六十四人</font color="orangered">。” ○'''朱子曰''':“此事尙忍爲之,則何事不可忍爲?”
 
'''補曰''' 季氏,公子季友之後也。【桓公庶子三人,長曰'''仲'''慶父,次曰'''叔'''牙,次曰'''季'''友】 ○'''朱子曰''':“佾,舞列也。” ○'''馬曰''':“<font color="orangered">天子八佾,諸侯六,卿ㆍ大夫四,士二</font color="orangered"><ref>[傳]九月에 考仲子之宮하고 將萬焉하야 公問羽數於衆仲한대 對曰 '''天子用八하고 諸侯用六하고 大夫四하고 士二니이다 夫舞는 所以節八音而行八風이라 故自八以下니이다''' 公從之하야 於是初獻六羽하니 始用六佾也라</ref>。【隱五年《左傳》文】 <font color="orangered">八人爲列,八八六十四人</font color="orangered">。” ○'''朱子曰''':“此事尙忍爲之,則何事不可忍爲?”
 
<br/>
 
<br/>
'''馬曰''':“魯以周公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季桓子僭於其家廟舞之。” ○'''毛曰''':“予作《大小宗通繹》,得解此書。蓋魯爲宗國,以周公爲武王母弟,得稱別子<ref>"별자(別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제후의 별자 외에 처음 터전에 옮겨 온 별자와 처음 벼슬을 받은 별자가 있다. 처음 옮겨 왔다는 것은 여러 성씨 중에 타지(他地)에서 옮겨 온 자를 본국의 옮겨 오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다. 처음 벼슬을 받았다는 것은 서인(庶人)이 이 지역에서 발신(發身)하여 경대부가 된 이를 벼슬하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니 모두 별자라고 칭한다. 소(疏)에서는 갖추어 설명하지 않았으나 이는 모두 백대토록 신위를 옮기지 않는 불천위(不遷位) 시조(始祖)가 되니, 마땅히 보충하여야 한다." [別子有三。諸侯別子之外。有始遷始爵。始遷者庶姓之移自佗方者。別於本國不來者也。始爵者庶人之起於是邦爲卿大夫。別於不仕者。皆稱別子也。疏說未備。此皆爲百世不遷之始祖也。當補。]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ref>,爲文王之宗。《禮》,‘別子立宗,當祀別子所自出。’【見〈大傳〉】 因立文王廟于魯,【見《史記》】 爲周公之所自出,名出王廟。【見《左傳》】 夫祭文王而可以不用天子禮樂也乎?其用天子禮樂者,以出王故,其祭出王者,以宗子故也。三桓爲魯桓公子,<font color="orangered">季友以適子而爲宗卿</font color="orangered">,亦得祭所自出,而立桓公一廟。漢儒不解,有謂公廟設于私家者。【〈郊特牲〉】 此正三桓所自出之廟,以三桓並桓出,故稱三家之堂,以季氏爲大宗,故又獨稱季氏。其所以用天子禮樂者,以桓公故,而桓公得用之者,以文王用之,而群公以下皆相沿用之。” ○'''駁曰''' 毛說半是半非也。其云‘三家之僭,由於祭桓’,可也。其云‘魯公之僭,由祭文王’,未必然也。蕭山於大小宗之學,自以爲發前人之所未發,而稽之經典,左乖右舛,一不相合。其言曰:“慶父ㆍ叔牙妾出,故年雖長,而不得爲大宗,季友嫡出,故序雖末,而得爲大宗,爲三家之所共宗。” 其言似是,實則非也。〈大傳〉曰:“有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 此謂公子,雖有多人,各自爲宗,不相統攝,故公子之子ㆍ公子之孫,得以其後公子者,奉之爲宗。而當公子之身,貴不相降,無可爲宗,故曰‘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font color="orangered">特用鄭玄誤注〈大傳〉,此義不明。【詳見余《禮箋》<ref>大宗ㆍ小宗之辨 ○已下十條,與喪期無涉。然立後一事,須通古今之變,故牽連編錄 [https://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870_020_0080&solrQ=query%E2%80%A0%E7%84%A1%E5%AE%97$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GO_AA$solr_toalCount%E2%80%A051$solr_curPos%E2%80%A042$solr_solrId%E2%80%A0BD_ITKC_MP_0597A_0870_020_0080 喪禮四箋 卷十一 / 喪期別 五]</ref>】</font color="orangered"> 然不必據經,直以事理推究之,亦其說立破,何也?公子有三人,其一嫡二庶,如三桓者,立其嫡爲大宗,如蕭山之說可也。若三人皆庶,則孰爲大宗?其將曰立長乎,則庶固有大宗者矣。《禮》曰:“爲人後者,後大宗也。” 先儒謂‘小宗無後當絶’<ref>"〔변의〕 대종(大宗)은 군도(君道)와 같아서 비록 백대 이후라도 후사를 세워야 하지만, 소종(小宗)은 조(祖)가 위에서 신위가 옮겨지면 종(宗)이 아래에서 바뀌니 4대 이후에는 마땅히 파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자식으로 후사를 세우는 것은 인륜의 큰 변례이니 진실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하지 말아야 한다. 종이 비록 끊어지더라도 차장(次長)의 후손이 그 제사를 맡아 받들면 바로 종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증손이나 현손이 들어가 대를 잇는다면 그 부친과 조부는 비록 태어나서 종자가 된 적이 없다 할지라도 통서가 이미 옮겨지게 된다. 곁가지가 줄기가 된다는 의론 같은 것은 단지 서자가 종자가 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전문(傳文)에서는 단지 “대종의 후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하휴(何休)의 설은 다시 평할 가치도 없다. 후세에 이 의리를 깨닫지 못하고 대종, 소종을 막론하고 모두 양자를 들여 후사를 세우니 잘못이다. 《통전》에서 “적손이 죽은 뒤에 차자(次子)의 아들이 조부의 통서를 전중(傳重)받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의리를 잘 터득한 것이다." [大宗如君道。雖百世當立後。至小宗。祖遷於上則宗易於下。四世之後當罷者也。立後。人倫之大變。苟非不獲已者。不必爲也。宗雖絶。次長之後當奉其祀。而便成宗孫。若曾玄入承則其父若祖雖未嘗生爲宗子。統旣移矣。如旁枝達榦。只視作宗子而已矣。傳文只云後大宗則何休之說無容改評也。後世不達此義。無論大小宗。皆立後則誤矣。通典云嫡孫亡後次子之子可得傳祖重。深得此義。]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ref>,則孟孫ㆍ叔孫皆無後,當絶。仲嬰齊ㆍ叔孫豹又何爲紛然立後乎?<font color="orangered">庶固有大宗者矣</font color="orangered">,何況天子之子?各受其封,各自爲國,立一大宗,使自統率,則凡諸侯多小宗也。國君猶不得爲大宗,有是理乎?且其說有必不可通者,周旣以周公適子,立之爲大宗,及至隱公之世,妾子承統,蔡ㆍ衛ㆍ曹ㆍ滕,其肯尊之爲大宗乎?魯以季友爲適子,立之爲大宗,及至悼子之世,【季孫叔之庶子紇】 妾子承統,孟孫ㆍ叔孫,其肯尊之爲大宗乎?貴嫡賤庶,旣若是其已甚,則庶之承嫡,猶奉爲宗,無是理矣。滕人曰:“吾宗國魯先君。”【見《孟子》】 蕭山據此,謂諸姬以魯爲宗。然同姓之國,皆稱爲宗,故滕ㆍ薛爭長,公使羽父請曰:“周之宗盟,異姓爲後。”【隱十一】 同姓之盟,謂之宗盟,則同姓之國,豈非宗國乎?【〈晉語〉,舟之僑以虞爲宗國】 至於出王之廟,國國有之,故衛 莊公禱于祖曰‘敢昭告于皇祖文王’,【見〈晉語〉】 衛亦有文王廟矣。鄭祭厲王,夔祀鬻熊,【僖廿六】 鄫祭夏 相,【僖三十一】 豈必此輩盡屬嫡出?天子之子,雖不分封,但有采邑,祭其出王,故《周禮》,都宗人祭其祖王,致福于國。鄭注云:“王子弟立其祖王之廟。” 祖王者,出王也。何必嫡出,而後方立出王之廟乎?至漢,猶有此義,漢法,諸侯王各於其國立帝廟。【見《漢書》】 其非嫡出者,未嘗禁也。蔡ㆍ衛ㆍ曹ㆍ滕,旣宗大周,退又宗魯,則是二天子也。孟孫ㆍ叔孫,旣宗公室,又宗季氏,則是二國君也。亂天下者,非此法乎?三桓之家,各有桓廟,皆以〈雍〉徹,故曰 ‘三家者以〈雍〉徹’。若惟季氏祭桓,則書之曰‘三家者以〈雍〉徹’,有是理乎?特以季氏之僭甲於三家,旣以〈雍〉徹,又八其佾,故孔子先誅其所獨,後譏其所同。今乃以季氏爲三家,三家爲季氏,混同汨亂,無所區別,可乎?然所謂佾舞ㆍ〈雍〉徹,又非特祭桓用之,仲慶ㆍ叔牙ㆍ季友之祭,亦皆用之,故孔子之言慘怛如此。若惟祭桓用之,則三家之罪無所浮於魯君矣。孔子之義本諱國惡,焉敢曰‘是可忍,孰不可忍’?成王令魯祭周公以天子之禮,故魯人於其群公之廟,僭用八佾,群公之廟,僭用八佾,故季氏於桓公之廟,亦用八佾,而遂以是舞舞於季友之庭。蕭山之說,豈不半是而半非乎?其云三家之僭由祭出公,可也。其云魯邦之僭由祭文王,非也。
+
'''馬曰''':“魯以周公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季桓子僭於其家廟舞之。” ○'''毛曰''':“予作《大小宗通繹》,得解此書。蓋魯爲宗國,以周公爲武王母弟,得稱別子<ref>"별자(別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제후의 별자 외에 처음 터전에 옮겨 온 별자와 처음 벼슬을 받은 별자가 있다. 처음 옮겨 왔다는 것은 여러 성씨 중에 타지(他地)에서 옮겨 온 자를 본국의 옮겨 오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다. 처음 벼슬을 받았다는 것은 서인(庶人)이 이 지역에서 발신(發身)하여 경대부가 된 이를 벼슬하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니 모두 별자라고 칭한다. 소(疏)에서는 갖추어 설명하지 않았으나 이는 모두 백대토록 신위를 옮기지 않는 불천위(不遷位) 시조(始祖)가 되니, 마땅히 보충하여야 한다." [別子有三。諸侯別子之外。有始遷始爵。始遷者庶姓之移自佗方者。別於本國不來者也。始爵者庶人之起於是邦爲卿大夫。別於不仕者。皆稱別子也。疏說未備。此皆爲百世不遷之始祖也。當補。]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ref>,爲文王之宗。《禮》,‘別子立宗,當祀別子所自出。’【見〈大傳〉】 因立文王廟于魯,【見《史記》】 爲周公之所自出,名出王廟。【見《左傳》】 夫祭文王而可以不用天子禮樂也乎?其用天子禮樂者,以出王故,其祭出王者,以宗子故也。三桓爲魯桓公子,<font color="orangered">季友以適子而爲宗卿</font color="orangered">,亦得祭所自出,而立桓公一廟。漢儒不解,有謂公廟設于私家者。【〈郊特牲〉】 此正三桓所自出之廟,以三桓並桓出,故稱三家之堂,以季氏爲大宗,故又獨稱季氏。其所以用天子禮樂者,以桓公故,而桓公得用之者,以文王用之,而群公以下皆相沿用之。” ○'''駁曰''' 毛說半是半非也。其云‘三家之僭,由於祭桓’,可也。其云‘魯公之僭,由祭文王’,未必然也。蕭山於大小宗之學,自以爲發前人之所未發,而稽之經典,左乖右舛,一不相合。其言曰:“慶父ㆍ叔牙妾出,故年雖長,而不得爲大宗,季友嫡出,故序雖末,而得爲大宗,爲三家之所共宗。” 其言似是,實則非也。〈大傳〉曰:“有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 此謂公子,雖有多人,各自爲宗,不相統攝,故公子之子ㆍ公子之孫,得以其後公子者,奉之爲宗。而當公子之身,貴不相降,無可爲宗,故曰‘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font color="orangered">特用鄭玄誤注〈大傳〉,此義不明。【詳見余《禮箋》<ref>大宗ㆍ小宗之辨 ○已下十條,與喪期無涉。然立後一事,須通古今之變,故牽連編錄 [https://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870_020_0080&solrQ=query%E2%80%A0%E7%84%A1%E5%AE%97$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GO_AA$solr_toalCount%E2%80%A051$solr_curPos%E2%80%A042$solr_solrId%E2%80%A0BD_ITKC_MP_0597A_0870_020_0080 喪禮四箋 卷十一 / 喪期別 五]</ref>】</font color="orangered"> 然不必據經,直以事理推究之,亦其說立破,何也?公子有三人,其一嫡二庶,如三桓者,立其嫡爲大宗,如蕭山之說可也。若三人皆庶,則孰爲大宗?其將曰立長乎,則庶固有大宗者矣。《禮》曰:“爲人後者,後大宗也。” 先儒謂‘小宗無後當絶’<ref>"〔변의〕 대종(大宗)은 군도(君道)와 같아서 비록 백대 이후라도 후사를 세워야 하지만, 소종(小宗)은 조(祖)가 위에서 신위가 옮겨지면 종(宗)이 아래에서 바뀌니 4대 이후에는 마땅히 파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자식으로 후사를 세우는 것은 인륜의 큰 변례이니 진실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하지 말아야 한다. 종이 비록 끊어지더라도 차장(次長)의 후손이 그 제사를 맡아 받들면 바로 종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증손이나 현손이 들어가 대를 잇는다면 그 부친과 조부는 비록 태어나서 종자가 된 적이 없다 할지라도 통서가 이미 옮겨지게 된다. 곁가지가 줄기가 된다는 의론 같은 것은 단지 서자가 종자가 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전문(傳文)에서는 단지 “대종의 후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하휴(何休)의 설은 다시 평할 가치도 없다. 후세에 이 의리를 깨닫지 못하고 대종, 소종을 막론하고 모두 양자를 들여 후사를 세우니 잘못이다. 《통전》에서 “적손이 죽은 뒤에 차자(次子)의 아들이 조부의 통서를 전중(傳重)받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의리를 잘 터득한 것이다." [大宗如君道。雖百世當立後。至小宗。祖遷於上則宗易於下。四世之後當罷者也。立後。人倫之大變。苟非不獲已者。不必爲也。宗雖絶。次長之後當奉其祀。而便成宗孫。若曾玄入承則其父若祖雖未嘗生爲宗子。統旣移矣。如旁枝達榦。只視作宗子而已矣。傳文只云後大宗則何休之說無容改評也。後世不達此義。無論大小宗。皆立後則誤矣。通典云嫡孫亡後次子之子可得傳祖重。深得此義。]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ref>,則孟孫ㆍ叔孫皆無後,當絶。仲嬰齊ㆍ叔孫豹又何爲紛然立後乎?<font color="orangered">庶固有大宗者矣</font color="orangered">,何況天子之子?各受其封,各自爲國,立一大宗,使自統率,則凡諸侯多小宗也。國君猶不得爲大宗,有是理乎?且其說有必不可通者,周旣以周公適子,立之爲大宗,及至隱公之世,妾子承統,蔡ㆍ衛ㆍ曹ㆍ滕,其肯尊之爲大宗乎?魯以季友爲適子,立之爲大宗,及至悼子之世,【季孫叔之庶子紇】 妾子承統,孟孫ㆍ叔孫,其肯尊之爲大宗乎?貴嫡賤庶,旣若是其已甚,則庶之承嫡,猶奉爲宗,無是理矣。滕人曰:“吾宗國魯先君。”【見《孟子》<ref>然友ㅣ 反命하야 定爲三年之喪한대 父兄百官이 皆不欲曰 吾宗國魯先君도 莫之行하시고 吾先君도 亦莫之行也하시니 至於子之身而反之ㅣ 不可니이다 且志[애] 曰 喪祭 從先祖ㅣ라하니 曰 吾有所受之也ㅣ니이다 《孟子 滕文公 上》</ref>】 蕭山據此,謂諸姬以魯爲宗。然同姓之國,皆稱爲宗,故滕ㆍ薛爭長,公使羽父請曰:“周之宗盟,異姓爲後。”【隱十一】 同姓之盟,謂之宗盟,則同姓之國,豈非宗國乎?【〈晉語〉,舟之僑以虞爲宗國】 至於出王之廟,國國有之,故衛莊公禱于祖曰‘敢昭告于皇祖文王’,【見〈晉語〉】 衛亦有文王廟矣。鄭祭厲王,夔祀鬻熊,【僖廿六】 鄫祭夏 相,【僖三十一】 豈必此輩盡屬嫡出?天子之子,雖不分封,但有采邑,祭其出王,故《周禮》,都宗人祭其祖王,致福于國。鄭注云:“王子弟立其祖王之廟。” 祖王者,出王也。<font color="orangered">何必嫡出,而後方立出王之廟乎</font color="orangered">?至漢,猶有此義,漢法,諸侯王各於其國立帝廟。【見《漢書》】 其非嫡出者,未嘗禁也。蔡ㆍ衛ㆍ曹ㆍ滕,旣宗大周,退又宗魯,則是二天子也。孟孫ㆍ叔孫,旣宗公室,又宗季氏,則是二國君也。亂天下者,非此法乎?三桓之家,各有桓廟,皆以〈雍〉徹,故曰 ‘三家者以〈雍〉徹’。若惟季氏祭桓,則書之曰‘三家者以〈雍〉徹’,有是理乎?特以季氏之僭甲於三家,旣以〈雍〉徹,又八其佾,故孔子先誅其所獨,後譏其所同。今乃以季氏爲三家,三家爲季氏,混同汨亂,無所區別,可乎?然所謂佾舞ㆍ〈雍〉徹,又非特祭桓用之,仲慶ㆍ叔牙ㆍ季友之祭,亦皆用之,故孔子之言慘怛如此。若惟祭桓用之,則三家之罪無所浮於魯君矣。孔子之義本諱國惡,焉敢曰‘是可忍,孰不可忍’?成王令魯祭周公以天子之禮,故魯人於其群公之廟,僭用八佾,群公之廟,僭用八佾,故季氏於桓公之廟,亦用八佾,而遂以是舞舞於季友之庭。蕭山之說,豈不半是而半非乎?其云三家之僭由祭出公,可也。其云魯邦之僭由祭文王,非也。
 
<br/>
 
<br/>
'''邢云''':“經但云季氏,馬知是桓子者,以孔子與桓子同時。” ○'''駁曰''' 非也。季氏之僭,不自桓子始也。昭二十五年《左傳》云:“秋,將禘於襄公,〈萬〉者二人,【舞於公者,只二人】 其衆〈萬〉於季氏。【舞工皆往季氏家】” 子家駒之論八佾,亦在是年,昭公之孫于齊,亦在是年,【孔子亦於是年適齊】 當是年者,季平子也。【即季孫意如】 孔子之歎,明在是年,豈可以桓子當之乎?【桓子即平子之子季孫斯】
+
'''邢云''':“經但云季氏,馬知是桓子者,以孔子與桓子同時。” ○'''駁曰''' 非也。季氏之僭,不自桓子始也。昭二十五年《左傳》云:“秋,將禘於襄公,〈萬〉者二人,【舞於公者,只二人】 其衆〈萬〉<ref>碩人俁俁 公庭萬舞 《詩 邶風 簡兮》</ref>於季氏。【舞工皆往季氏家】” 子家駒之論八佾,亦在是年,昭公之孫于齊,亦在是年,【孔子亦於是年適齊】 當是年者,季平子也。【即季孫意如】 孔子之歎,明在是年,豈可以桓子當之乎?【桓子即平子之子季孫斯】
 
<br/>
 
<br/>
'''邢曰''':“諸侯用六者,六六三十六人,大夫四者,四四十六人,士二者,二二四人。【杜預ㆍ何休說如此】 服虔以用六爲六八四十八人,大夫四爲四八三十二人,士二爲二八十六人。今以舞勢宜方,行列旣減,即每行人數亦宜減,故同何ㆍ杜之說。” ○'''駁曰''' 非也。魯 衆仲之言曰:“舞者,所以節八音而行八風。”【隱五年】 不以八列,無以應八音。故六者,六八也,四者,四八也,二者,二八也。鄭人以女樂二八賂晉侯,非其驗乎?〈招魂賦〉云:“二八侍宿,射遞代些。” 又云:“二八齊容,起鄭舞些。” 二二四人,何以舞矣?
+
'''邢曰''':“諸侯用六者,六六三十六人,大夫四者,四四十六人,士二者,二二四人。【杜預ㆍ何休說如此】 服虔以用六爲六八四十八人,大夫四爲四八三十二人,士二爲二八十六人。今以舞勢宜方,行列旣減,即每行人數亦宜減,故同何ㆍ杜之說。” ○'''駁曰''' 非也。魯衆仲之言曰:“舞者,所以節八音而行八風。”【隱五年】 不以八列,無以應八音。故六者,六八也,四者,四八也,二者,二八也。鄭人以女樂二八賂晉侯,非其驗乎?〈招魂賦〉云:“二八侍宿,射遞代些。” 又云:“二八齊容,起鄭舞些。” 二二四人,何以舞矣?
 
<br/>
 
<br/>
 
'''邢曰''':“人之僭禮,皆當罪責,不可容忍。季氏以陪臣僭天子,最難容忍。故曰‘是可容忍,他人更誰不可忍也’?” ○'''駁曰''' 非也。章首曰‘孔子謂季氏’,明所怪者季氏心術,非人之所忍爲也。若如邢說,當云子曰。
 
'''邢曰''':“人之僭禮,皆當罪責,不可容忍。季氏以陪臣僭天子,最難容忍。故曰‘是可容忍,他人更誰不可忍也’?” ○'''駁曰''' 非也。章首曰‘孔子謂季氏’,明所怪者季氏心術,非人之所忍爲也。若如邢說,當云子曰。
608번째 줄: 608번째 줄:
 
<br/>
 
<br/>
 
'''引證''' 《晉書》云:“庾亮欲黜王導,謀之郗鑒。鑒不從。亮啓鑒曰,‘是而可忍,孰不可忍?’”【又崇德大后,廢帝爲東海王,其詔亦云:“是而可忍,孰不可懷?”】 ○'''《隋書》''',煬帝征高句麗,詔曰:“擁塞道路,拒絶王人,無事君之心,豈爲臣之禮?此而可忍,孰不可容?” ○'''《明史》''',正德間,司空張巓,以三關良民倚宦官作盜,上封事曰:“是可隱忍不發,則誰當發者?” ○'''案''' 此說久有師承,然謬矣。
 
'''引證''' 《晉書》云:“庾亮欲黜王導,謀之郗鑒。鑒不從。亮啓鑒曰,‘是而可忍,孰不可忍?’”【又崇德大后,廢帝爲東海王,其詔亦云:“是而可忍,孰不可懷?”】 ○'''《隋書》''',煬帝征高句麗,詔曰:“擁塞道路,拒絶王人,無事君之心,豈爲臣之禮?此而可忍,孰不可容?” ○'''《明史》''',正德間,司空張巓,以三關良民倚宦官作盜,上封事曰:“是可隱忍不發,則誰當發者?” ○'''案''' 此說久有師承,然謬矣。
 +
</big>
 +
<br/><br/>
 +
 +
==='''二章 ME0302'''===
 +
 +
<big>
 +
'''馬曰''':“三家,謂仲孫ㆍ叔孫ㆍ季孫。” ○朱子曰:“〈雍〉,〈周頌〉篇名。” ○'''補曰''' 徹,祭畢而去器也。《周禮》云:“卒食,以樂徹。”【〈天官ㆍ膳夫〉文】 ○'''朱子曰''':“天子宗廟之祭,歌〈雍〉以徹,是時三家,僭而用之。相,助也。辟公,諸侯也。” ○'''包曰''':“穆穆,天子之容貌。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邢云:“《周禮ㆍ樂師》云,‘及徹,帥學士而歌徹。’ 鄭玄云,‘徹者,歌〈雍〉。’ 又〈小師〉云,‘徹歌。’ 鄭云,‘於有司徹而歌〈雍〉。’ 是知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也。”】
 +
<br/>
 +
'''毛曰''':“季氏是宗卿,爲大宗所自出,亦立桓公一廟,名出公廟,遂于祭桓公時,亦歌此詩。蓋但知祭所自出,而不知所出之有不同也。”【又云:“慶父ㆍ叔牙一酖一縊,皆季友一人所爲。季文ㆍ季武,何人肯以成季與共仲ㆍ僖叔並坐而擬三天子?亦必無之事。”】 ○'''駁曰''' 非也。若三家共一廟,以奉桓公,則謂其廟曰‘三家之堂’,猶之可也。先叙其事曰‘三家者以〈雍〉徹’,非文例也。且佾舞ㆍ〈雍〉徹,其事相同,而於佾則專責季氏,於〈雍〉則並擧三家,筆法乎,變例乎?斯皆求其說而不得,胡乃堅執乖拗之論,重言複說,不知止乎?始云‘妾子不得立出公廟’,猶恐其說之不立,終又云‘慶父ㆍ叔牙一酖一縊,不得有廟’,【見毛氏他說】 此又麤豪強觜,非多學人之言也。據《左傳》,成季使鍼季酖之,曰:“飮此,則有後於魯國。不然,死且無後。” 飮之,歸及逵泉而卒,立叔孫氏。【莊末年】 閔公旣弑,共仲乃縊。然季子推親親之恩,欲同之叔牙,存孟氏之族,故略其罪,不書殺。慶父子孫終爲孟氏。【閔二年孔疏】 故公孫敖得嗣爲世卿,【即穆伯】 公孫敖旣卒,魯人立文伯,【公孫敖之子穀】 傳于惠叔,【文伯之弟難】 以傳于仲孫蔑。【文十四】 兩家子孫,嗣位世爵,繩繩不絶,具在史冊。夫惟慶父ㆍ叔牙有廟有家,而後孟孫ㆍ叔孫得爲世卿,今乃曰‘一酖一縊,不得立廟’,可乎?公孫敖之歸葬也,魯固不許以卿禮葬矣,孟孫之以〈雍〉徹也,亦豈必魯人許之乎?【毛云:“卿葬且不許,許其作天子祭耶?”】 斯皆無理雜話,不足辨也。若惟桓公之祭,纔以〈雍〉徹,而慶父ㆍ叔牙ㆍ季友之祭,不敢用之,則雖亦竊禮而不中,孔子必不至譏罵如此。
 +
<br/>
 +
'''引證''' 〈郊特牲〉曰:“諸侯不敢祖天子,大夫不敢祖諸侯,而公廟之設於私家,非禮也。由三桓始也。” ○'''案''' 公族之祭出公,不獨三桓然也。孔悝有出公之祏,【見《左傳》】 子期有平王之祀,【祭出王也。見〈楚語〉】 人皆然也。魯有周廟,而疑三家之有桓廟,可乎?〈郊特牲〉,非信文也。
 +
<br/>
 +
'''質疑''' 成王令以天子之禮祭周公,未嘗以天子之禮賜魯邦。【《呂氏春秋》云:“魯 惠公使宰讓請郊廟之禮樂于周,周 平王使史角往賜之。”】 楊升菴作〈魯之郊禘辯〉,其言明核,不可易也。【見余《春秋說》】 ○又按 無知妄作者,愚夫ㆍ愚婦之謂也。三家之罪,豈可曰無知妄作乎?孔子之言,慘怛嚴峻,無所恕也。
 +
<br/>
 +
'''引證''' 子曰:“兩君相見,【節】 客出以〈雍〉,徹以〈振羽〉。”【見〈仲尼燕居〉。疏云:“客出,歌〈雍〉詩,徹器,歌〈振鷺〉之詩。”】 ○'''案''' 古人用樂,雖天子之詩,或爲諸侯之用,此三家之所以僭也。
 +
</big>
 +
<br/><br/>
 +
 +
==='''三章 ME0303'''===
 +
 +
<big>
 +
'''補曰''' 仁者,人倫之成德。仁爲之本,而禮樂由之以生。【〈儒行〉云:“禮節者,仁之貌也。歌樂者,仁之和也。<ref>溫良者,仁之本也;敬慎者,仁之地也;寬裕者,仁之作也;孫接者,仁之能也;禮節者,仁之貌也;言談者,仁之文也;歌樂者,仁之和也;分散者,仁之施也;儒皆兼此而有之,猶且不敢言仁也。其尊讓有如此者。 《禮記》〈儒行〉</ref>”】 不仁則其本亡矣,【孟子以孝弟爲仁義,曰:“禮之實,節文斯二者。樂之實,樂斯二者。”<ref>孟子曰:「仁之實,事親是也;義之實,從兄是也。智之實,知斯二者弗去是也;禮之實,節文斯二者是也;樂之實,樂斯二者,樂則生矣;生則惡可已也,惡可已,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 《孟子》〈離婁上〉</ref>】 奈此禮樂何?○'''邢曰''':“如,奈也。”
 +
<br/>
 +
'''包曰''':“言人而不仁,必不能行禮樂。”【邢云:“禮樂資仁而行。” 】 ○'''案''' 仁者,忠孝之成名。禮自履此而生,樂自樂此而生,仁爲之質,而禮樂爲之文也。【曾子曰:“仁者,仁此者也。禮者,履此者也。樂自順此生,刑自反此作。”<ref>曾子曰:「身也者,父母之遺體也。行父母之遺體,敢不敬乎?居處不莊,非孝也;事君不忠,非孝也;蒞官不敬,非孝也;朋友不信,非孝也;戰陳無勇,非孝也;五者不遂,災及於親,敢不敬乎? 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眾之本教曰孝,其行曰養。養,可能也,敬為難;敬,可能也,安為難;安,可能也,卒為難。父母既沒,慎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仁者,仁此者也;禮者,履此者也;義者,宜此者也;信者,信此者也;強者,強此者也。樂自順此生,刑自反此作。」 《禮記》〈祭義〉</ref>】 如季氏者,躬蹈不仁,猶欲行禮而奏樂,以成其文,而可得乎?【謂旅泰山,舞佾,歌〈雍〉類】 如此何者,末如之何也。謂不仁者之於禮樂,雖欲襲而取之,末如之何也。【文例如桓魋其如予何<ref>子曰:「天生德於予,桓魋其如予何?」 《論語》〈述而〉</ref>】
 +
</big>
 +
<br/><br/>
 +
 +
==='''四章 ME0304'''===
 +
 +
<big>
 +
'''鄭曰''':“林放,魯人。” ○'''補曰''' <font color="orangered">本,謂制作之本意也</font color="orangered">。禮,通指吉凶也。喪,專指凶禮也。○'''包曰''':“易,和也。” ○'''補曰''' 禮本何爲而作也?民生有欲,不以禮節之,則奢侈亡度,故權於奢儉之中,爲之禮。邪淫之人,朝死而夕忘之,故權於易戚之中,爲之喪禮。【使不肖者企而及之】 過儉過戚,雖亦不中,制禮者之本意,在此而不在彼也。故曰‘得中則大善,如不得中,寧儉寧戚’。○'''案''' <font color="orangered">林放問禮,亦以三家僭禮而發</font color="orangered">。蓋佾舞ㆍ〈雍〉徹,皆禮也。三家惟知盛禮以尊祖,不知制禮之本意,此林放之所以問也。季氏之佾舞ㆍ〈雍〉徹,皆由於不能抑奢,此孔子之所以答也。<font color="orangered">附言喪禮者,以此喻彼,非雙言之也</font color="orangered">。
 +
<br/>
 +
정현: 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 보충: '본'은 (예를) 제작한 본뜻을 이른다. '예'는 길례와 흉례를 통틀어 가리키고, '상'은 흉례만을 전적으로 가리킨다.
 +
<br/>
 +
포함: '이'는 화락함이다. 보충: 예는 본래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가? 사람이 살아감에 욕심이 있으므로 예로써 이를 절제하지 않으면 사치하여 법도를 잃게 된다. 때문에 사치와 검소의 중도를 저울질하여 예를 만든 것이다; 간사하고 음탕한 사람은 (부모가) 아침에 돌아가셔도 저녁이면 이를 잊어버린다. 때문에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짐과 슬퍼함의 중도를 저울질하여 상례를 만든 것이다. [불초한 자로 하여금 발돋움하여 미치도록 한 것이다] 지나치게 검소함과 지나치게 슬퍼함은 비록 역시 중도에 맞지 않지만, 예를 제작한 자의 본뜻은 여기(儉戚)에 있지 저기(奢易)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중도를 얻는다면 가장 훌륭하고, 만일 중도를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검소하고 차라리 슬퍼한다.'라고 한 것이다.
 +
<br>
 +
<font color="orangered">내 생각에</font color="orangered">, 임방이 예를 물은 것은 역시 삼가가 예를 참람하였기에 (이러한 물음이) 나온 것이다. 대개 팔일무와 '옹'을 연주하면서 철상하는 것은 모두 예이다. 삼가는 오직 예를 성대히 하여 조상을 높이는 것만 알고, 예를 제작한 본뜻은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임방이 질문한 까닭이다. 계씨가 팔일무를 추고 '옹'으로 철상한 것은 모두 사치를 억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니, 이것이 공자께서 답하신 바이다. 사예를 덧붙여 말한 것은 이것으로 저것을 비유한 것이지, 쌍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
<br/><br/>
 +
'''質疑''' 奢與易,未必爲文。儉與戚,未必爲質。惟制禮者之本意,憂在奢ㆍ易,而不在儉ㆍ戚,故夫子明之。<font color="orangered">且林放問禮之本,非問禮之質也。況周之方衰,禮壞樂崩,憂在文滅,不在文勝。又從而抑其文,則文無遺矣,豈聖人之志乎?</font color="orangered">
 +
<br/>
 +
질의: '사'와 '이'는 꼭 '문'이 되는 것은 아니며, '검'과 '척'은 꼭 '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제작한 자의 본뜻은, 근심하는 바가 '사'와 '이'에 있지 '검'과 '척'에 있지 않다. 때문에 공자께서 이를 밝히신 것이다. 또한 임방이 예의 '본'을 물은 것은 예의 '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하물며 주나라가 바야흐로 쇠퇴하여 예와 악이 붕괴하였으니, 근심은 '문'이 사라지는 데 있었지 '문'이 우세해지는 데 있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이어서 '문'을 억제한다면 '문'은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어찌 성인의 뜻이었겠는가?
 +
<br/><br/>
 +
'''引證''' 《易》曰:“山上有雷,小過。君子以行過乎恭,喪過乎哀,用過乎儉。” ○'''案''' 過乎哀,過乎儉,未嘗非過。是故曰與曰寧。寧也者,執兩非而擇其輕之辭。
 +
<br/>
 +
인증: 《주역》에서 "산 위에 우레가 치는 것이 '소과'이다. 군자는 이로써 행동은 공손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상례는 슬퍼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씀씀이는 검소함에서 지나치게 한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슬퍼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검소함에서 지나치게 하는 것도 '지나침'이 아닌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보다는'이라고 하시고, '차라리'라고 하신 것이니, '차라리'라는 것은 두 가지 잘못된 것을 가지고서 그 중에 덜한 것을 고르는 말이다.
 +
<br/><br/>
 +
'''引證''' 子路曰:“吾聞諸夫子,喪禮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祭禮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檀弓〉文】 ○'''案''' 子路之言,別是一義。非此經之所宜引,范氏誤引之。【楊氏引汙尊抔飮,亦非此經之本旨】
 +
<br/>
 +
인증: 자로가 말하길, "내가 선생님께 들으니, 상례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는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남음이 있는 것이 나으며; 제례는 공경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는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공경이 남음이 있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예기 단궁의 문장이다] 내 생각에, 자로의 말은 별도로 하나의 의미이니 이 경문에 마땅히 끌어다 붙여야 하는 바는 아니다.  범씨(범조우)가 잘못 가져온 것이다. [양씨(양시)는 '와준부음(웅덩이를 동이로 삼고 손으로 물을 떠마신다)'을 인용하였는데, 역시 이 경문의 본뜻이 아니다]
 +
</big>
 +
<br/><br/>
 +
 +
==='''五章 ME0305'''===
 +
 +
<big>
 +
'''包曰''':“諸夏,中國。【公牧云:“中國之稱諸夏,猶外夷之稱諸夷。”】 亡,無也。” ○'''補曰''' <font color="orangered">夷狄,謂用夷狄之道也。諸夏,謂用諸夏之法也</font color="orangered">。君不君,臣不臣,是亦夷狄而已。安於夷狄,而苟保君位,不若遵先王之法,修華夏之禮,而不保其君位也。昭公二十五年,祭于襄公,舞列不備,【只二人】 而舞工盡赴季氏,以舞〈大武〉。【衆〈萬〉于季氏<ref>將褅於襄公,萬者二人,其眾萬於季氏。 《左傳ㆍ昭公二十五年》</ref>】 昭公怒,欲誅季氏,【議於子家駒】 事敗,公奔齊,【見《左傳》】 孔子亦適齊。【見《史記》】 魯遂無君,國人皆咎昭公。孔子明其不然曰:“<font color="orangered">與其君不君臣不臣,安於夷狄,而苟保君位,不若誅亂討賊,以修諸夏之法,而失其君位也</font color="orangered">。” 其在國人,與其安此賊而有君,反不若明此義而無君也。○'''紘父云''':“是篇自首章至此章,以及下章,皆孔子在齊,論季氏之罪者。”
 +
<br/>
 +
포함: '제하'는 중국이다. [公牧(尹鍾心)이 이르길, "'중국'을 '제하'라고 칭하는 것은 '외이'를 '제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무'는 없다이다.
 +
<br/>
 +
보충: '이적'은 이적의 도를 사용함을 가리키고, '제하'는 제하의 법을 사용함을 가리킨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이는 또한 '이적'일 따름이다. 이적(의 도)를 편안하게 여기면서 구차하게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선왕의 법을 준수하고 화하(중국)의 예를 닦으면서 군주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는 것만 못하다. 소공 25년에, 양공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춤추는 대열을 갖추지 못하였으니, [2명뿐이었다.] 무공들이 모두 계씨에게 가서 〈大武〉를 추었다. [무리가 계씨에게서 춤을 추었다] 소공이 노하여  계씨를 죽이려 하였는데, [子家駒에게 의논하였다] 일이 실패하자 소공이 제나라로 달아났으니, [《좌전》에 보인다 (소공27년)] 공자 또한 제나라로 갔다. [《사기》에 보인다 (공자세가)] 노나라가 마침내 군주게 없게 되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소공을 허물하였다. 공자가 그렇지 않음을 밝히며 말하길,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서 이적의 도를 편안히 여기며 구차히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난신적자를 벌하여 제하의 법을 닦다가 군주 자리를 잏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난신적자들을 편안히 여기며 군주가 있는 것은 도리어 이런 의리를 밝히고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한 것이다.
 +
<br/>
 +
紘父(李綱會): 이 편은 첫 장에서부터 이 장 및 다음 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자가 제나라에 있으면서 계씨의 죄를 논한 것이다.
 +
<br/><br/>
 +
'''邢曰''':“<font color="orangered">夷狄雖有君長,而無禮義,中國雖偶無君,若周ㆍ召共和之年<ref>召公、周公二相行政,號曰「共和」。共和十四年,厲王死于彘。 《史記ㆍ周本紀》</ref>,而禮義不廢</font color="orangered">。故曰‘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 ○'''駁曰''' 非也。孔子欲居九夷,夷狄非其所賤。況罪累不明,而無故斥之曰‘汝之有君,不如我之亡君’,豈有味之言乎?周ㆍ召共和,此是千百年僅一有之事。孔子據此以自多,有是理乎?
 +
<br/>
 +
형병: 이적은 비록 군장이 있기는 하더라도 예의가 없고, 중국은 비록 우연히 마치 주공ㆍ소공이 공화 정치를 하던 때처럼 군주가 없기는 하더라도 예의가 폐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적이 군주가 있는 것은 제하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
<br/>
 +
반박: 아니다. 공자는 구이에 거하고자 하였으니, 이적은 천하게 여기신 바가 아니다. 하물며 죄가 분명하지 않은데 무고하게 배척하여 말하기를, '너희가 군주가 있는 것은 우리가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어찌 의미 있는 말이겠는가? 주공ㆍ소공의 공화 정치는, 이는 천 년 백 년에 겨우 한 번 있었던 일인데, 공자가 이에 근거하여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신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
<br/><br/>
 +
'''質疑''' 程子曰:“夷狄<font color="orangered">且</font color="orangered">有君長,<font color="orangered">不如</font color="orangered">諸夏之僭亂,<font color="orangered">反</font color="orangered">無上下之分。” ○'''案''' 《史記》云:“刺繡文,不如倚市門。” 不如者,抑此美而羨彼醜之辭也。古人云:“不義之富貴,不如守道之貧賤。” 此經文例,正亦如此。若云‘夷狄之美,勝於諸夏之醜’,則不應以不如爲言。
 +
<br/>
 +
질의: 정자가 말하길, “이적조차도 군장이 있으니, 제하가 참란하여 도리어 상하의 구분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
<br/>
 +
내 생각에, 《史記》에 이르길, "수를 놓는 것이 시장에 의지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不如'라는 것은 아름다운 이쪽을 억누르고 못난 저쪽을 부러워하는 말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의롭지 못하게 부귀한 것은 도를 지키면서 빈천함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이 경문의 문법은 바로 이와 같다. 만일 "이적의 아름다움이 제하의 못남보다 낫다."는 말이었다면, '불여'를 가지고 말해서는 안 된다.
 +
<br/>
 +
'''王充《論衡》云''':“此言夷狄之難ㆍ諸夏之易也。” ○'''駁曰''' 非也。不知何說。
 +
<br/>
 +
왕충의 《論衡》: 이 말은 이적에서의 어려움과 제하에서의 쉬움을 말한 것이다.
 +
<br/>
 +
반박: 아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br/>
 +
'''《皇明大政紀》云''':“高皇帝曰,‘夷狄,禽獸也,無仁義禮智之道。孔子蓋謂中國雖無君長,人亦知有禮義,勝於夷狄之有君長者。宋儒乃謂中國之人不如夷狄,謬矣。’”
 +
<br/>
 +
《皇明大政紀》: 고황제가 이르길, '이적은 금수이니, 인의예지의 도가 없다. 공자는 대개 중국은 비록 군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또한 예의가 있음을 알기에 이적이 군장이 있는 경우보다 낫다고 하신 것인데, 송유들이 도리어 중국인이 이적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잘못되었다.'라고 하였다.
 +
<br/>
 +
'''陸聚岡云''':“夷狄有君,只是各部落有所約束號令,不要說得太好。諸夏之亡,指當時臣之僭上。言亡者,有而若亡也。” ○'''駁曰''' 非也。
 +
<br/>
 +
陸聚岡(陸伯明): 이적에게 임금이 있다는 것은 그저 각 부락에 약속과 호령이 있는 것이니, 너무 대단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제하에 임금이 없다는 것은 당시 신하들이 윗사람을 참람한 것을 가리킨 것이니, 없다고 말한 것은 있지만 없는 듯하다는 말이다.
 +
</big>
 +
<br/><br/>
 +
 +
==='''六章 ME0306'''===
 +
 +
<big>
 +
'''馬曰''':“旅,祭名。”【邢云:“《周禮》,‘國有大故,則旅上帝及四望。’ 鄭注云,‘故,謂凶災。旅,陳也,陳其祭事以祈焉,禮不如祀之備也。’”】 ○'''補曰''' 旅者,陳告也,如今之告由祭。【《書》云:“蔡ㆍ蒙旅平。” 又云:“九山刊旅。”】 ○'''馬曰''':“禮,諸侯祭山川在其封內者。今陪臣祭泰山,非禮也。【邢云:“陪,重也。”】 冉有,弟子冉求,【《史記》云:“冉求字子有,少孔子二十九歲。” 鄭玄曰:“魯人。”】 時仕於季氏。” ○'''朱子曰''':“救,謂救其陷於僭竊之罪。” ○包曰:“神不享非禮。林放尙知問禮,泰山之神反不如林放邪?欲誣而祭之。”
 +
<br/>
 +
마융: '旅'는 제사 이름이다. [형병: 《周禮》에서는 '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上帝 및 四望(五嶽, 四鎭, 四瀆)에게 旅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정현주에서는 '故는 흉재를 가리키고, 旅는 진설하는 것이다. 제사를 진설하여 비는 것인데, 사(祀)처럼 예가 갖추어지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보충: '旅'라는 것은 진설하여 아뢰는 것이니, 지금의 告由祭와 같다. [《書》에 이르기를, '蔡ㆍ蒙旅平'이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九山刊旅'라고 하였다.] ○마융: '禮'에 제후는 봉토 내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법인데, 지금 배신이 태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형병: '陪'는 '거듭'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 염구인데, [《史記》에 이르기를, '염구는 자는 자유이며, 공자보다 29세가 어렸다.'라고 하엿고, 정현은 '노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계씨에게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주자: '救'는 참람되이 훔치는 죄에 빠지는 것을 구한다는 말이다. ○포함: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는다. 임방도 오히려 예를 물을 줄 알았는데, 태산의 신이 도리어 임방만도 못하겠는가? 속여서 제사지내고자 한 것이다.
 +
<br/><br/>
 +
○'''補曰''' 曾謂泰山不如林放者,言季氏視泰山太輕也。【純云:“謂者,季氏謂也。”】 ○'''案''' 旅,亦禮也。有事而旅於山,其志欲行禮也。僭其君而行其禮,豈制禮之本意乎?林放於禮,猶求其本,泰山之神反不如乎?《周禮ㆍ大宗伯》云:“國有大故,則旅上帝及四望。” 是時魯邦別無大故,【冉子仕季氏,在定公十年以後】 惟墮費逐不狃,係季氏家大事,豈足以旅于望乎?大非禮也。
 +
<br/>
 +
보충: '태산이 임방만 못하다는 것인가'라는 것은 계씨가 태산을 너무 경시하였다는 말이다. [다자이 슌다이: '謂'라는 것은 계씨가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旅제사 또한 예이다. 일이 있어 산에 旅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 뜻이 예를 행하려는 것이다. 그 군주를 참람하여 그 예를 행한다면 어찌 예를 제정한 본뜻이겠는가? 임방은 예에 있어 오히려 그  근본을구하였는데 태산의 신이 도리어 그보다 못하겠는가? 《周禮ㆍ大宗伯》에 이르기를, "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上帝 및 四望(五嶽, 四鎭, 四瀆)에게 旅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이 때에 노나라는 별달리 大故가 없었고, [염구가 계씨에게 벼슬한 것은 정공 10년 이후이다.] <font color="orangered">다만 비읍을 함락하여 公山弗狃를 쫓아낸 것은 계씨 집안과만 관계된 대사이니,</font color="orangered"><ref>公山弗擾ㅣ 以費畔하야 召ㅣ어늘 子ㅣ 欲往이러시니 子路ㅣ 不說曰 末之也已니 何必公山氏之之也ㅣ시리잇고(ㅣ리잇고) 子[ㅣ] 曰 夫召我者(ㅣ) 而豈徒哉리오 如有用我者댄 吾其爲東周乎인뎌 《論語》〈陽貨〉</ref> 어찌 사망에 旅제사를 지내기에 충분하겠는가? 크게 예가 아닌 것이다.
 +
<br/><br/>
 +
'''荻云''':“魯有大故,當旅泰山,而魯君有疾若他故,不能親臨,使季孫攝主。於是季孫侈其禮物,故孔子非其奢也。” ○'''駁曰''' 非也。禮物豐薄,緦ㆍ小功之察也。以陪臣而祭山川,告其私故,非奢乎?若攝則非僭矣。
 +
<br/>
 +
오규 소라이: 노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마땅히  태산에 旅제사를 지내야 하고, 노나라 군주에게 질병 및 다른 변고가 있어 직접 임할 수 없으면 계손씨로 하여금 대신하여 주관하게 한 것이다. 이에 계손씨가 예물을 사치스럽게 하였으므로, 공자께서 그 사치스러움을 잘못이라 여긴 것이다. ○반박: 아니다. 예물의 풍성함과 소박함은 (상복에 있어서) 緦麻인지 小功인지에서 드러나는 문제이니,  배신으로서 산천에 제사지내면서 사사로운 변고를 고유하는 것이 사치가 아니겠는가마는, 만일 대신 주관한 것에 해당한다면 참람은 아닐 것이다.
 +
<br/><br/>
 +
'''揚子《方言》云''':“曾,何也。湘ㆍ潭之原,荊之南鄙,謂何爲曾。” ○'''案''' 曾者,舒辭。在有意無意之間,《方言》未必與此經合。
 +
<br/>
 +
양웅의 《方言》: '曾'은 '어찌'이다. 湘水ㆍ潭水의 原濕 지대와 荊 땅 남쪽 변방에서는 '何'를 일러 '曾'이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曾'이라는 것은 어조사이니 뜻이 있는 것과 뜻이 없는 것의 중간에 있어 《方言》이 꼭 이 경문과 합치된다고 할 수는 없다.
 +
</big>
 +
<br/><br/>
 +
 +
==='''七章 ME0307'''===
 +
 +
<big>
 +
'''朱子曰''':“揖讓而升者,〈大射〉之禮,耦進三揖而後升堂也。”【邢云:“〈大射〉云,‘耦進竝行,當階揖,及階揖,升堂揖。’”】 ○'''補曰''' 下,謂不勝也。凡軍事,勝曰下之。【〈樂毅傳〉云:“下齊七十餘城,惟莒ㆍ即墨未下。” 〈項羽本紀〉云:“外黃未下。”】 射禮,不勝者飮酒,是下而飮也。爭者,讓之反。今升而讓其階,飮而讓其爵,君子之爭也。【馬云:“多算飮少算,君子之所爭。”】
 +
<br/>
 +
주자: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간다는 것은, 《儀禮ㆍ大射》의 예에, ‘짝을 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후에 당에 오른다.’라는 것이다. [형병: 《儀禮ㆍ大射》에서 이르기를, '짝을 지어 나란히 나아가되, 섬돌을 마주해 읍하고, 섬돌에 이르러 읍하고, 당에 올라 읍한다.‘라고 하였다.]
 +
<br/>
 +
보충: <font color="orangered">'하(下)'는 이기지 못한 것이다.</font color="orangered"> 무릇 군사에 있어, 이기는 것을 '下之'라고 한다. [《史記ㆍ樂毅列傳》에 이르기를,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시켰는데, 오직 莒ㆍ即墨은 함락되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史記ㆍ項羽本紀》에 이르기를, "外黃은 함락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射禮에 있어, 이기지 못한 자는 술을 마시니, 이것이 지면 마신다는 것이다. '다툼(쟁)'이라는 것은, '양(사양함)'의 반대인데, 지금 올라가면서는 계단(에 먼저 오르기를) 사양하고, 마시면서는 술잔을 사양하는 것이 군자의 다툼이다. [마융이 이르기를, "점수가 많은 사람이 점수가 적은 사람더러 마시게 하는 것이 군자가 다투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
<br/><br/>
 +
'''王曰''':“射於堂,升及下,皆揖讓而相飮。”【邢云:“飮射爵之時<ref>三耦及衆射者皆升飲射爵於西階上。 《儀禮ㆍ大射》</ref>,揖讓升降。”】 ○'''侃曰''':“〈射儀〉云,‘禮初,主人揖賓而進,交讓而升堂。及射竟,勝負旣決,下堂猶揖讓,不忘禮。’ 故云‘揖讓而升下’也。” ○'''駁曰''' 非也。七字一句,詞不成文。【升降之謂之升下,亦無文例】 ○'''又按''' 射禮有升而飮,無降而飮,則下而飮,非降而飮也。變降言下,亦無是理。
 +
<br/>
 +
왕숙: 당에서 활을 쏨에,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모두 읍하고 사양하면서 서로 마시게 한다. [형병: 射爵을 마실 때 읍하고 사양하며 오르고 내린다.] ○황간: 〈射儀〉에 이르기를, "활쏘는 예에서 처음에 주인이 손님에게 읍하여 나아가고, 서로 사양하며 당에 오른다. 활쏘기가 끝나 승부가 결정된 후에 당을 내려와서도 여전히 읍양하여 예를 잊지 않는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font color="orangered">읍하고 사양하며 오르내린다.</font color="orangered">"라고 한 것이다. ○반박: 아니다. 일곱 글자가 한 구절이 되면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르고 내리는 것을 일러 升下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런 식으로 글을 짓는 법이 없다.] ○또 내 생각에, 활 쏘는 예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는 것은 있지만 내려와서 마시는 것은 없으니, '下而飮'은 내려와서 마신다는 것이 아니다. '降'을 바꾸어 '下'라고 할 리가 없다.
 +
<br/><br/>
 +
'''質疑''' 或問:“下而飮,是下堂飮否?” 程子曰:“古之罰爵,皆在堂下。” 又問:“唯不勝,下飮否?” 曰:“恐皆下堂,但勝者飮不勝者也。”【見《二程全書》】
 +
<br/>
 +
질의: 어떤 사람이 묻기를, "'下而飮'은 당을 내려와서 마셨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옛날의 벌작은 모두 당 아래에서 하였다."라고 하셨으며, (어떤 사람이) 또 묻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만 내려와서 마시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font color="orangered">아마도 모두 당을 내려오긴 하는데, 다만 이긴 사람이 이기지 못한 사람을 마시게 하였을 것이다.</font color="orangered">"라고 하셨다. [《二程全書》에 보인다.]
 +
<br/><br/>
 +
○'''案''' 射禮ㆍ投壺禮,凡勝飮不勝,本是奉養,不是罰責。故飮者奉觴曰:賜灌。勝者跪請曰敬養。<ref>命酌曰:「請行觴。」酌者曰:「諾。」當飲者皆跪奉觴,曰:「賜灌」;勝者跪曰:「敬養」。 《禮記ㆍ投壺》</ref>其意若曰 ‘射之不中,恐有疾病,以此酒奉養也。’ 《詩》云:“發彼有的,以祈爾爵。”【〈賓筵〉詩】 此之謂也。勝者方奉養之不暇,遑云罰乎?《周禮ㆍ春官》:“小胥掌學士之徵令,觵(굉)其不敬者。” 此方是罰爵。《詩》云:“兕觥其觩。”【〈周頌ㆍ絲衣〉文】 鄭箋謂之罰爵。古之王者,與君臣燕飮,陳其兜觥,以警失禮者。然且罰爵,未嘗飮之於堂下。故晉平公飮酒,杜蕢入寢,歷階而升,酌曰 ‘曠飮斯,’ 又酌曰 ‘調飮斯。’ 又酌,堂上北面坐飮之。降,趨而出。【見〈檀弓〉】 罰爵之必升飮如是也。惟鄭注〈鄕射禮〉其‘卒觶ㆍ受觶’之節,有‘罰爵’二字。此謬誤之甚者,何足爲據?
 +
<br/>
 +
내 생각에, 활 쏘는 예와 투호의 예에서 무릇 이긴 사람이 이기지 못한 사람을 술을 마시게 하는데, 본래 이는 봉양이지 벌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시는 사람은 술잔을 받들어 말하기를 賜灌이라고 하고 이긴 사람은 무릎을 꿇고 청하기를 敬養이라고 하니, 그 뜻은 마치 "활을 쏘아 맞히지 못하면 혹시 병이 날까 두려워 이 술로 봉양합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詩ㆍ小雅ㆍ賓之初筵》에 이르길, "저 과녁을 맞혀 네게 술을 마시게 할 수 있기를."이라고 한 것은 이를 가리킨다. 이긴 사람은 바야흐로 봉양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벌할 겨를이 있겠는가? 《周禮ㆍ春官》에서는 "小胥의 職은 학사들의 징벌을 관장하니, 불경한 자에게 술을 내린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벌작이다. 《詩ㆍ周頌ㆍ絲衣》에 "외뿔소 술잔이 굽어 있네."라고 하였는데, 鄭箋에서는 이것을 일러 벌작이라고 하였다. 옛날의 王者들은 군신과 더불어 연회를 하며 술을 마실 때 외뿔소 술잔을 진설해두어 이로써 예를 잃는 자를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font color="orangered">벌작은 당하에서 마신 적이 없다.</font color="orangered"> 그러므로 晉平公이 술을 마실 때 杜蕢가 침소에 들어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술을 따르며 말하기를, "師曠아, 이 술을 마셔라."라고 하고는, 또 술을 따라 말하기를, "李調야, 이 술을 마셔라."라고 하고는, 또 술을 따라 당상에서 북쪽을 향해 앉아 이 술을 마시고는 내려와서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간 것이다. [《禮記ㆍ檀弓》에 보인다.] 벌작은 반드시 (당에) 올라 마셨음이 이와 같다. 오직 정현의 〈鄕射禮〉 주에서만 "卒觶ㆍ受觶" 두 구절에 주석을 달면서 ‘罰爵’ 두 글자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오류가 심한 것이니 어찌 족히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
</big>
 +
<br/><br/>
 +
 +
==='''八章 ME0308'''===
 +
 +
<big>
 +
'''朱子曰''':“此,逸詩也。”【謂非〈衛風ㆍ碩人〉篇】 ○'''補曰''' 倩,美好也。【《說文》云:“若草木之葱蒨。”】 盼,目黑白分明也。【《玉篇》云】 ○'''朱子曰''':“素,粉地,畫之質也。絢,采色,畫之飾也。”【馬云:“絢,文貌。”】 ○'''補曰''' 姿色本美,故巧笑ㆍ美目,皆成華采,若素地以爲絢也。○'''朱子曰''':“繪畫之事,後於素。〈考工記〉曰,‘繪畫之事,後素功。’” ○'''朱子曰''':“禮必以忠信爲質,猶繪事必以粉素爲先。” ○'''楊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禮器〉文】 苟無其質,禮不虛行,此繪事後素之說也。” ○'''補曰''' 起,猶興也,謂其言足以興起也。
 +
<br/>
 +
주자: 이것은 일시이다. [〈衛風ㆍ碩人〉 <ref> <br/>碩人其頎、衣錦褧衣。<br/>齊侯之子、衛侯之妻、東宮之妹、邢侯之姨、譚公維私。<br/><br/>手如柔荑。<br/>膚如凝脂。<br/>領如蝤蠐。<br/>齒如瓠犀。<br/>螓首蛾眉。<br/>巧笑倩兮。<br/>美目盼兮。<br/><br/>碩人敖敖、說于農郊。<br/>四牡有驕、朱幩鑣鑣、翟茀以朝。<br/>大夫夙退、無使君勞。<br/><br/>河水洋洋、北流活活。<br/>施罛濊濊、鱣鮪發發、葭菼揭揭。<br/>庶姜孽孽、庶士有朅。</ref>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보충: 倩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초목이 울창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盼은 눈의 흑백이 분명한 것이다. [《玉篇》의 말이다.] ○주자: 素는 색칠하는 지면으로 그림의 바탕이며, 絢은 채색으로 그림의 꾸밈이다. [마융: 絢은 문채나는 모양이다.] ○보충: 자태와 빛깔이 본래 아름답기에, 巧笑ㆍ美目이 모두 華采를 이루는 것이니,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하는 것과 같다. ○주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바탕보다 뒤에 온다. 《周禮ㆍ考工記》에 이르기를, '繪畫之事,後素功'이라고 하였다.<ref>凡畫繢之事,後素功。</ref> ○주자: 예는 반드시 충신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니, 그림 그리는 일은 반드시 흰 바탕을 우선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시: 단맛은 조미를 받아들이고 흰 색은 채색을 받아들인다. 충신한 사람은 예를 배울 수 있다. [《禮器ㆍ禮器》의 글이다.<ref>君子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茍無忠信之人,則禮不虛道。是以得其人之為貴也。</ref>] 만일 그 바탕이 없다면 예가 공으로 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이 繪事後素가 말하는 바이다. ○보충: 起는 興과 같으니, 그 말이 족히 흥기시킬 만하다는 것이다.
 +
<br/><br/>
 +
'''馬曰''':“上二句在〈衛風ㆍ碩人〉,下一句逸。” ○'''或曰''':“下一句,夫子所刪。” 朱子曰:“此句最有意義,反見刪哉?且〈碩人〉四章皆七句,不應此章獨多一句,必別自一詩,今逸矣。” ○'''案''' 衣錦褧衣,無逝我梁,《詩》之同句者多矣。
 +
<br/>
 +
마융: 위의 두 구는 《詩經ㆍ衛風ㆍ碩人》에 있고, 아래 한 구는 일시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아래 한 구를 공자께서 산삭하신 것이다."라고 하니, 주자가 말하길, "이 구가 가장 의의가 있는데 도리어 산삭을 당했단 말인가? 또한 〈衛風ㆍ碩人〉 편의 네 장은 모두 일곱 구로 되어 있는데 이 장만 유독 한 구가 더 많을 리 없으니 틀림없이 따로 하나의 시였다가 지금은 없어진 것일 것이다." ○내 생각에, '衣錦褧衣'<ref>〈衛風ㆍ碩人〉, 〈鄭風ㆍ丰〉</ref>나 '無逝我梁'<ref>〈邶風ㆍ谷風〉, 〈小雅ㆍ小弁〉</ref>처럼 《시경》에는 구절이 같은 것이 많다.
 +
<br/><br/>
 +
'''鄭曰''':“繪,畫文也。凡繪畫,先布衆色,然後以素分布其間,以成其文。喻美女雖有倩盻美質,亦須禮以成之。” ○'''駁曰''' 非也。此是鄭本來謬義,旣誤〈考工〉,又誤此經。朱子是改是正,而鄭注之誤,未及辨破。今淺學小儒,乃以〈考工〉鄭注奉之爲經,以擊朱子之說,不亦妄乎?
 +
<br/>
 +
정현: 繪는 무늬를 그리는 것이다. 무릇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여러 색깔을 칠한 다음 흰 색을 그 사이에 분포시켜서 무늬를 완성한다.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여성이 비록 예쁜 입맵시와 흑백이 또렷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더라도 역시 예로써 완성해야 하는 것과 같다. ○반박: 아니다. 이는 정현이 본래 뜻을 오해한 것이다. 이미 《周禮ㆍ考工記》의 '繪畫之事,後素功'의 뜻을 오해하였고, 또 이 경문의 뜻도 오해한 것이다. 주자가 이를 고쳐서 바로잡았지만 정현 주석의 잘못을 변론하여 깨뜨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요즘 세상의 학문이 얕은 변변찮은 유생들이 마침내 《周禮ㆍ考工記》의 정현 주를 받들어 경으로 삼아 주자의 설을 공격하니 망령된 것이 아니겠는가?
 +
<br/><br/>
 +
'''引證''' 〈考工記〉云:“畫繢之事,雜五色。【節】 靑與赤謂之文,赤與白謂之章,白與黑謂之黼,黑與靑謂之黻,五采備謂之繡。【節】 凡畫繢之事,後素功。” ○'''鄭曰''':“素,白采也。後布之,爲其易漬汚也。” ○'''鄭司農'''說以《論語》曰:“繢事後素。” ○'''案''' 素功者,今之所謂粉本也。每見畫工將施靑赤美采,必先作粉地,然後乃用丹碧,古今不能異也。〈考工記〉,白采曰白,素功曰素,兩相分別,字法不混,鄭乃以素功爲白采,非誤註乎?畫工之畏漬汚,最在靑赤,蓋以其色彌鮮者,其惜彌切也。今有人敎畫工以繪畫之事,曰‘先靑赤而後粉白’,未有不投觚擲筆而去者,鄭注而可宗乎?
 +
<br/>
 +
인증: 《周禮ㆍ考工記》에 이르길, "그림 그리는 일은 오색을 섞어서 한다. (중략) 청색과 적색을 섞은 것을 文이라고 하고, 적색과 백색을 섞은 것을 章이라고 하고, 백색과 흑색을 섞은 것을 黼라고 하고, 흑색과 청색을 섞은 것을 黻이라고 하며, 五采를 갖춘 것을 繡라고 한다. (중략) <font color="orangered">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마련한 뒤에 한다./흰색을 나중에 한다.</font color="orangered">" ○정현: 素는 흰색인데, 나중에 바르는 것은 쉽게 물들기 때문이다. ○정사농(鄭司農, ?~83)은 (주례 고공기의 이 구절을) 《論語》에서 繢事後素라고 했다는 것을 가져와서 설명했다. ○내 생각에, 素功이라는 것은 지금 말하는 粉本(흰색 분을 칠한 바탕)이라는 것이다. 화공들이 청색, 적색 등의 아름다운 채색을 칠하려고 할 때를 보면, 반드시 먼저 흰 바탕을 만들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붉거나 푸른 안료를 사용하니 고금이 다르지 않다. <font color="orangered">〈考工記〉에서는 흰색 채색은 白이라고 하고 흰색 분칠한 바탕은 素라고 하여 두 가지가 서로 분별되어 글자의 용법이 혼동되지 않고 있는데</font color="orangered">, 정현이 오히려 素功을 白采로 여겼으니 잘못 주석한 것이 아니겠는가? 화공들이  물들까 걱정하는 것이 제일 심한 것은 푸른색과 붉은색이니 어떤 것의 색깔이 더욱 석명할 수록 아끼는 것이 더욱 절실한 법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화공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가르치면서 '먼저 청색, 적색을 칠하고 나중에 흰색을 칠해라.'라고 한다면 붓을 던지고 가버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정현의 주석을 종주로 삼을 수가 있겠는가?
 +
<br/><br/>
 +
'''引證''' 〈禮器〉曰:“先王之立禮也,有本有文。忠信,禮之本也。義理,禮之文也。無本不立,無文不行。”
 +
<br/>
 +
인증: 《禮器ㆍ禮器》에서는 "선왕이 예를 세울 때 근본이 있고 무늬가 있었으니 충신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무늬이다. 근본이 없으면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행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
</big>
 +
<br/><br/>
 +
 +
==='''九章 ME0309'''===
 +
 +
<big>
 +
'''朱子曰''':“杞,夏之後。【東樓公,禹之苗裔也。武王封之於杞】 宋,殷之後。【微子,紂之庶兄。武王封之於宋】 徵,證也。文,典籍也。獻,賢也。”【〈虞書〉云:“萬邦黎獻。”】 ○'''補曰''' 能言,明世無能言之者。孔子博學,故能言之,然無徵不信。若使杞ㆍ宋有文有獻,則必與夫子所言相合。故曰‘吾能徵之’。吾能徵者,自信之辭也。
 +
<br/>
 +
'''包曰''':“徵,成也。” ○鄭曰:“我不以禮成之者,以此二國之君文章ㆍ賢才不足故也。”【邢云:“杞ㆍ宋之君闇弱,故不足以成之。”】 ○'''駁曰''' 非也。
 +
<br/>
 +
'''藤曰''':“兩之字,連下爲句。” ○駁曰 非也。之杞ㆍ之宋,蓋據〈禮運〉然,而非也。
 +
<br/>
 +
'''引證''' 子曰:“吾說夏禮,杞不足徵也,吾學殷禮,有宋存焉,吾學周禮,今用之,吾從周。”【〈中庸〉文】 ○'''子曰''':“我欲觀夏道,是故之杞,而不足徵也。吾得《夏時》焉。我欲觀殷道,是故之宋,而不足徵也。吾得《坤乾》焉。”【〈禮運〉文】
 +
</big>
 +
<br/><br/>
 +
 +
==='''十章 ME0310'''===
 +
 +
<big>
 +
'''補曰''' 禘,宗廟時祭之名,【〈祭義〉云:“春禘秋嘗。”】 本是王者之禮,【義見下】 魯僭而用之也。灌與祼通,【六書之諧聲】 將迎牲,酌鬱鬯灌於地,以求神也。○'''補曰''' 禘祭之禮,旣灌,升歌〈淸廟〉,朱干ㆍ玉戚以舞〈大武〉,【〈明堂位〉ㆍ〈祭統〉】 此天子之歌舞也。旣灌而往,此僭乃著,孔子不欲觀也。
 +
<br/>
 +
보충: 禘는 종묘에서 지내는 時祭의 명칭이니, [《禮記・祭義》에서는 "봄에는 禘제사, 가을에는 嘗제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본래는 王者의 예인데, [의미가 아래에 보인다] 노나라가 참람하여 이를 사용하였다. 灌은 祼와 통하니, [<font color="orangered">六書의 諧聲에 해당한다.</font color="orangered">] 희생을 맞이하려 할 때 울창주를 따라 땅에 부어 신을 구하는 것이다. ○보충: 禘제사의 예는 울창주를 부어 강신한 뒤에, 당에 올라가 《詩・周頌・淸廟》<ref>於穆清廟、肅雝顯相。濟濟多士、秉文之德。對越在天、駿奔走在廟。不顯不承、無射於人斯。</ref>를 노래하고서 朱干과 玉戚으로 〈大武〉를 춤추니, [《禮記・明堂位》<ref>季夏六月,以禘禮祀周公於大廟,牲用白牡;尊用犧象山罍;郁尊用黃目;灌用玉瓚大圭;薦用玉豆雕篹;爵用玉琖,仍雕,加以璧散璧角;俎用梡嶡;升歌《清廟》,下管《象》;'''朱干玉戚,冕而舞《大武》''';皮弁素積,裼而舞《大夏》。昧,東夷之樂也;《任》,南蠻之樂也。納夷蠻之樂於大廟,言廣魯於天下也。</ref>《禮記・祭統》] 이것은 천자의 가무이다. 울창주를 따른 이후로 이러한 참람함이 이에 드러났으므로 공자가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
<br/><br/>
 +
'''孔曰''':“禘祫之禮,爲序昭ㆍ穆。故毀廟之主及群廟之主,皆合食於太祖。【邢云:“鄭玄曰,‘魯禮,三年喪畢,而祫於太祖。明年春,禘於群廟。’”】 旣灌之後,列尊卑,序昭穆。【邢云:“降神之後,始列木主,以尊卑陳列,太祖東鄕,昭南鄕,穆北鄕。”】 而魯逆祀,躋僖公,亂昭穆,故不欲觀之。【邢云:“〈魯語〉云,‘將躋僖公。宗有司曰,「非昭穆也。」弗忌曰,「我爲宗伯,明者爲昭,其次爲穆,何常之有?」’”】”
 +
<br/>
 +
공안국: 禘제사와 祫제사의 예는 昭穆을 차서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毀廟의 신주 및 群廟의 신주를 모두 태조의 묘에서 합사하는 것이다. [형병: "정현은 '노나라의 예에 삼년상이 끝나면 태조에게 祫제사를 지내고, 이듬해 봄에 群廟에 禘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울창주를 부은 후에 尊卑의 차례에 따라 昭穆을 차서하는데, [형병: "강신한 후에 비로소 木主를 차례로 두기를 존비에 따라 진열하는데, 태조는 동향, 소는 남향, 목은 북향이 된다."] <font color="orangered">노나라는 순서를 거슬러 제사지내어 僖公을 올려 昭穆을 어지럽혔으므로 (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다.</font color="orangered"> [형병: 《國語・魯語》에서는 "희공을 올리려 하니 宗伯의 有司가 말하길 '昭穆(의 예가) 아닙니다.'라고 하니, 대부인 弗忌가 말하길, '내가 宗伯인데, (덕이) 밝은 자가 昭가 되고 그 다음이 穆이 되는 것이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br/><br/>
 +
○'''駁曰''' 非也。(...) 孔說,非矣。○然則孔子之不欲觀,何哉?禘之旣灌,將迎牲矣,牲旣繭栗,不欲觀者一也。【僭】 將升鼎矣,鼎又全烝,不欲觀者二也。【僭】 饗之以樂,【〈祭義〉云:“禘有樂而嘗無樂。”】 升歌淸廟,【見〈祭統〉】 其詩曰‘濟濟多士,秉文之德’,不欲觀者三也。【僭】 朱干ㆍ玉戚以舞〈大武〉,【見〈祭統〉】 不欲觀者四也。【僭】  (...)
 +
<br/>
 +
○ 반박: 아니다. (...) 공안국의 설은 잘못되었다. ○<font color="orangered">그렇다면 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font color="orangered"> 禘제사에서 술을 따라 강신하고 난 뒤에 희생을 맞이하려 할 때, 희생에 繭栗(소의 뿔이 밤이나 누에고치만큼 나온 소)을 사용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이고, [참람된 것이다] 장차 당에 올라 鼎(희생을 담아 올리는 제기의 일종)을 올릴 때에 鼎은 또 全烝으로 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이며, [참람된 것이다] 풍악을 울려 흠향하게 하고 [《禮記・祭義》에서는 "禘제사는 음악을 연주하고 嘗제사는 연주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당에 올라가 淸廟를 노래하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훌륭한 선비들이 문왕의 덕을 잡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세 번째 이유이며, [참람된 것이다] 朱干과 玉戚으로 〈大武〉를 추었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네 번째 이유이다. [참람된 것이다]
 +
<br/><br/>
 +
'''質疑''' 灌之爲禮,在迎尸之前,則祭之始也。魯之君臣,雖無誠意,未必甫灌而即懈。且懈怠之人,無祭不懈,則不必禘之旣灌,其懈特甚。孔子之不欲觀,恐不在是也。
 +
<br/>
 +
질의: 灌이라는 예는 尸位를 맞이하기 전에 하는 것이니 제사의 시작인 것이다. 노나라의 군신들이 비록 誠意가 없었다 하더라도 겨우 灌을 하자마자 곧바로 나태해졌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또한 나태한 사람이라면 어느 제사에서건 나태하지 않음이 없으니 꼭 禘제사에서 灌을 이미 했기 때문에 나태함이 특히 심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font color="orangered">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font color="orangered">
 
</big>
 
</big>
 
<br/><br/>
 
<br/><br/>

2022년 6월 7일 (화) 19:49 기준 최신판

『논어』 페이지로 가기

「學而」 ME01


  • 古今注/正義 공통인용
인용 문헌 인용 내용 古今注 인용 맥락 正義 인용 맥락
學而 1 1 邢昺注疏 稱師曰子 동의 동의
學而 1 1 說文解字 學,覺也 부적절한 인용
然此亦造字之原義,非此經之所宜引
學의 본의로 인정
學而 1 1 皇侃義疏 學有三時 반박
時習=時時習之
동의
時=日中時
學而 1 1 何晏集解
(王肅)
誦習 반박 중립
學而 1 2 何晏集解
(包咸)
同門曰朋 반박
朋=志同而意合者
동의
朋=即指弟子
同門=同處一師門
學而 1 3 何晏集解 凡人有所不知, 君子不怒 반박 반박
此即注(집해)義
此注所云,不與經旨應也
學而 1 2(고금주)
3(정의)
中庸 誠者,非自成己而已也,所以成物也 此章乃成己成物之全體, 首節成己之事也 此文「時習」是「成己」, 「朋來」是「成物」


一章 ME0101

邢曰:“稱師曰子。【《公羊傳》曰:“子沈子『公羊傳』。” 何休云:“稱子冠氏上者,著其爲師也。”】 直言子曰者,以其聖德著聞,師範來世,不須言其氏,人盡知之也。”【荻云:“孔門稱夫子曰子者,內辭也。如《春秋》稱魯君曰公。”】 ○補曰 學,受敎也。習,肄業也。時習,以時習之也。說,心快也。【皇云:“懷抱欣暢也『論語義疏』。”】 兌卦上開,夬卦亦然,悅ㆍ快,義相近也。【兌卦〈彖傳〉云:“說以先民『易經』。”】 ○補曰 朋,同道者也。【坤卦注】 自遠方來,則其人必豪傑,致之者,亦賢哲也。樂,深喜也。【朱子曰:“悅是感於外而發於中,樂是充於中而溢於外。”】 人不知,謂人不知我之學成也。慍,心有所蘊結也。【《詩ㆍ檜風》云:“我心蘊結兮。”】 《易》曰:“不見是而无悶。”【程子云】 ○補曰 君子,有德之稱。鄭玄〈玉藻〉注曰:“君子,大夫ㆍ士『禮記』。”【又云:“君子,士已上『禮記』。”】 〈少儀〉注曰:“君子,卿ㆍ大夫『禮記』。”【孟子云:“非野人,莫養君子『孟子』。”】 君子云者,大君之子也,猶王者之稱天子也。古惟有德者得在位,故後世雖無位,凡有德者稱君子。
或曰:“學者,業道之名。”【賈誼《新書》引《逸禮》:“小學業小道,大學業大道『賈誼新書』。”】 ○駁曰 非也。〈學記〉曰:“人不學,不知道『禮記』。” 孔子曰:“吾十有五志于學『論語』。” 此方是業道之名。《說文》曰:“學,覺也『說文解字』。” 謂先覺覺後覺也。然此亦造字之原義,非此經之所宜引。
侃曰:“學有三時,一,身中時,【〈學記〉云:“時過然後學,則勤苦而難成『禮記』。”】 二,年中時,【〈王制〉云:“春秋敎以禮樂,冬夏敎以詩書『禮記』。”】 三,日中時。【〈學記〉云:“藏焉,脩焉,息焉,游焉『禮記』。” 是日日所習也】” ○駁曰 非也。時習者,時時習之也。【朱子云】 學晨省昏定,便自是日習晨省昏定,學日乾夕惕,便自是日習日乾夕惕,學祭禮,習祭禮,學鄕禮,習鄕禮,【飮射投壺等】 學樂,習樂,【〈月令〉云:“孟春命樂正,入學習舞,季秋命樂正,入學習吹。”】 學誦,習誦,學射御,習射御,【〈月令〉云:“孟冬習射御。”】 學書數,習書數,皆所以肄業也。學所以知也,習所以行也,學而時習者,知行兼進也。後世之學,學而不習,所以無可悅也。
王曰:“學者,以時誦習之。” ○駁曰 非也。誦習而已者,後世之學也。禮樂射御,可習者多,奚但誦而已?《易》曰:“朋友講習。”【兌〈大象〉】 講者,論辨也,無所不包。誦則《詩》ㆍ《書》而已,學止是哉?
引證 《大戴禮》曰:“君子旣學之,患其不博也,旣博之,患其不習也。”【〈曾子立事〉篇】
包曰:“同門曰朋。” ○駁曰 非也。《公羊傳》注云:“同門曰朋。”【兌卦疏】 《周禮》注云:“同師曰朋。”【〈大司徒〉聯朋友之注】 《集注》云:“同類曰朋。” 總之,朋者,志同而意合者也。何必同門?
何曰:“凡人有所不知,君子不怒。”【邢云:“古之學者爲己,含章內映,他人不知,而我不怒也。” 一云:“若有人鈍根不能知解者,君子恕之而不怒也。”】 ○或曰:“夫子一生學不厭,敎不倦。此正指‘誨人’一節。故魏文靖講學余山,有學者辨論不釋,怫形于色。文靖曰,‘人不自知,于我何慍?’ 正得此意。” ○駁曰 非也。此章乃成己成物之全體,首節成己之事也。旣成己矣,人知之而從我則樂,人不知之而不宗我則不慍。明成物之權不在己也。邢氏鈍根之說,豈足述乎?



  • 참조: 論語正義

子曰:「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注】馬曰:「子者,男子之通稱,謂孔子也。」王曰:「時者,學者以時誦習之。誦習以時,學無廢業,所以爲說懌。」 => 하안의 집해
正義曰:「曰」者,皇疏引說文云:「開口吐舌謂之為曰。」邢疏引說文云: 「曰,䛐也。從口,乙聲,亦象口气出也。」所引說文各異。段氏玉裁校定作「從口乙,象口氣出也」。又引孝經釋文云:「從乙在口上,乙象氣,人將發語;口上有氣,故曰字缺上也。」「學」者,說文云:「斅,覺悟也。从教从冂。冂,尚朦也,臼聲。學,篆文斅省。」白虎通辟雍篇:「學之為言覺也,以覺悟所未也。」與說文訓同。荀子勸學篇:「君子博學而日参省乎己, 則知明而行無過矣。故不登高山,不知天之高也;不臨深谿,不知地之厚也;不聞先王之遺言,不知學問之大也。」又云:「學惡乎始?惡乎终?曰:其數則始乎誦經,终乎讀禮;其義則始乎為士,終乎爲聖人。真積力久則入,學至乎沒而後止也。」:王制言「樂正崇四術,立四教,顺先王詩書禮樂以造士,春秋教以禮樂,冬夏教以詩書,王太子、王子、羣后之太子、卿大夫元士之適子,國之俊選,皆造焉。」是詩書禮樂,乃貴賤通習之學,學已大成,始得出仕,所謂先進於禮樂者也。春秋時,廢選舉之務,故學校多廢,禮樂崩壞,職此之由。夫子十五志學,及後不仕,乃更刪定諸經。史記孔子世家言孔子當定公五年已修詩書禮樂,即謂此也。刪定之後,學業復存。凡篇中所言爲學之事,皆指夫子所刪定言之矣。「時習」者,說文:「時,四時也。」此謂春、夏、秋、冬。而日中晷刻亦得名「時」。引申之義也。皇疏云:「凡學有三時:一是就人身中爲時。內則云:『六年教之數目,十年學書計,十三年學樂、詩、舞勺,十五年成童舞象。』並是就身中爲時也。二就年中爲時。王制云:『春夏學樂,秋冬學書禮。』三就日中爲時。前身中、年中二時,而所學並日日修習,不暫廢也。今云『學而時習之』者,『時』是日中之『時』」。「之」者,詩蓼莪鄭箋云:「之,猶是也。」此常訓。「不亦說乎」者,孟子滕文公上:「不亦善乎!」趙岐注:「不亦者,亦也。」爾雅釋詁:「說,樂也。」皇本凡「說」皆作「悅」。說文有「說」無「悅」,「悅」是俗體。 夫子自言「發憤忘食,樂以忘憂」,又稱顏閭好學,雖貧不改其樂,皆是說學有然也。「乎」者,說文云:「乎,語之餘也。」 廣雅釋詁:『乎,詞也。」 此用爲語助。=> 경문 풀이
「子者」至「說懌」。
正義曰: 白虎通號篇:「子者,丈夫之通稱也。」與此注義同。言尊卑皆得稱「子」,故此孔子門人稱師亦曰「子」也。邢疏云:「書傳直言『子曰』者,皆指孔子。以其聖德著聞,師範來世,不須言其氏,人盡知之故也。」「誦習」者,說文:「誦,諷也。諷,誦也。」周官大司樂注:「倍文曰『諷』,以聲節之曰『誦』。」「諷」、「誦」皆是口習,故此注言「誦習」也。但古人爲學,有操縵、博依、雜服、興藝諸事,此注專以「誦習」言者,亦舉一端以見之也。說文:「習,鳥數飛也。」引申爲凡重習、學習之義。呂覽審己注:「習,學也。下章「傳不習乎」,訓義亦同。「學不廢業」者,廢者,棄也。說文:「業,大版也。所以飾縣鐘鼓,捷業如鋸齒。」簡册亦用竹爲版,故亦名「業」。曲禮云:「請業則起。」注「業謂篇卷也」是也。「說懌」者,說文新附:『懌,說也。」注重言以曉人。=> 집해에 대한 풀이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注】包曰:「同門曰朋。」
正義曰:宋氏翔鳳樸學齋札記:「史記世家:『定公五年,魯自大夫以下,皆僭離於正道,故孔子不仕,退而修詩書禮樂,弟子彌衆,至自遠方,莫不受業焉。』弟子至自遠方,即『有朋自遠方來』也。『朋』即指弟子,故白虎通辟雝篇云:『師弟子之道有三, 論語曰「朋友自遠方來」,朋友之道也。』又孟子子濯孺子曰:『其取友必端矣』,亦指『友』為弟子。」:宋說是也。釋文云:「有或作友,非。」考白虎通引「有朋」作「朋友」,疑白虎通本「友朋」,即釋文所載或本,後人乃改作「朋友」耳。隸釋載漢婁壽碑「有朋自遠」,亦作「有朋」。盧氏文昭釋文考證云:「吕氏春秋貴直篇『有人自南方來』,句法極相似。陸氏謂『作友非是』也。」「自遠方來」者,廣雅釋詁:「自,從也。」爾雅釋詁:「遠,遐也。」淮南兵略訓「方者,地也。」禮表記注:「方,四方也。」爾雅釋詁:「來,至也。」並常訓。學記言:「學至大成,足以化民易俗,近者說服,而遠者懷之,此大學之道。」然則朋來,正是學成之驗。「不亦樂乎」者,蒼頡篇:「樂,喜也。」與「說」義同。易象傳:「麗澤, 兑。君子以朋友講習。」「兌」者,說也。禮中庸云:「誠者,非自成己而已也,所以成物也。」此文「時習」是「成己」,「朋來」是「成物」。但「成物」亦由「成己」,既以驗己之功修,又以得教學相長之益,人才造就之多,所以樂也。孟子以「得天下英才而教育之」爲樂,亦此意。
:「同門曰朋。」
正義曰:文選古詩十九首注引鄭注此文,與包同。「同門」者,謂同處一師門也。禮學記云:「古之教者,家有塾。」注:「古者仕焉而已者,歸教於閭里,朝夕坐於門,門側之堂謂之塾。」孔流:「周禮,百里之内,二十五家爲閭,同共一巷,巷首有門,門邊有塾。」當夫子時,學校已廢,仕焉而已者多不任爲師,夫子乃始設教於魯,以師道自任;開門授業,洙、泗之間,必别有講肄之所,而非為舊時家塾矣。

人不知而不愠, 不亦君子乎?
【注】慍,怒也。凡人有所不知,君子不怒。
正義曰:「人不知」者,謂當時君卿大夫不知己學有成舉用之也。「不慍」者,鄭注云:「慍,怨也。」詩緜正義引說文同。「君子」者,白虎通號篇:「或稱君子者,道德之稱也。君之為言羣也。子者,丈夫之通稱也。」禮哀公問:「君子也者,人之成名也。」禮中庸記:「子曰:『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上不怨天,下不尤人。』」又論語下篇:「子曰:『莫我知也夫!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正謂己之為學,上達於天,爲天所知,則非人所能知,故無所怨尤也。夫子一生進德修業之大,成括於此章。是故學而不厭,時習也,知也;誨人不倦,朋來也,仁也。遯世不見,知而不悔,不知不慍也,惟聖者能之也。夫子生衰周之世,知天未欲平治天下,故惟守先王之道,以待後之學者。記者因以其言,列諸篇首。
「慍怒」至「不怒」。
正義曰:詩緜傳「慍,恚也。」恚、怒義同。皇疏後一解云:「君子易事,不求備於一人,故為教誨之道,若人有鈍根不能知解者,君子恕之而不慍怒之也。」此即注(집해)義。焦氏循論語補疏:「注言『人有所不知』,則是人自不知,非不知己也。我所知而人不知,因而慍之,矜也。後漢儒林傳注引魏略云:『樂詳字文載,黄初中,徵拜博士。時有博士十餘人,學多褊,又不熟悉,惟詳五業並授。其或難質不解,詳無慍色,以杖畫地,牽譬引類,至忘寢食。』」此亦焦氏就注說證之。實則教學之法,語之而不知,雖舍之亦可,無容以不慍即稱君子。此注所云,不與經旨應也。

二章 ME0102

何曰:“有子,弟子有若。”【《史記ㆍ弟子傳》云:“有若少孔子四十三歲。” 鄭玄曰:“魯人。”】 ○朱子曰:“犯上,謂干犯在上之人。”【又云:“只少有怫戾,便是犯上。”】 ○補曰 作亂,謂弒逆ㆍ畔逆以起難也。春秋之時,作亂者多,時君憂之,而不知所以救藥之術,故有子爲此言。○朱子曰:“務,專力也。本猶根也。” ○補曰 道者,人所由行也。仁者,二人相與也。事親孝爲仁,父與子二人也。事兄悌爲仁,兄與弟二人也。事君忠爲仁,君與臣二人也,牧民慈爲仁,牧與民二人也。以至夫婦朋友,凡二人之間,盡其道者,皆仁也。然孝弟爲之根。○補曰 與者,疑辭。其理無疑,而謂之與者,譏時人未之信也。其辭,若含諷然。
何曰:“本,基也。” ○駁曰 非也。本末一體也,而基猶是不相聯者,故朱子改之。
質疑 孟子曰:“仁義禮智根於心『論語』。” 仁義禮智,譬則花實,惟其根本在心也。惻隱羞惡之心發於內,而仁義成於外。辭讓是非之心發於內,而禮智成於外。今之儒者,認之爲仁義禮智四顆,在人腹中如五臟然,而四端皆從此出,此則誤矣。然孝弟亦修德之名,其成在外,又豈有孝弟二顆,在人腹中如肝肺然哉?程子云:“人性中,曷嘗有孝弟來?” 其意亦謂孝弟成於外而已,非謂人性之中,無可孝可弟之理也。蕭山欲一反其說『論語稽求篇』,堅以孝弟作裏面物,其說又偏矣。孝弟亦仁,仁亦孝弟。但仁是總名,事君牧民恤孤哀鰥,無所不包。孝弟是專稱,惟事親敬兄乃爲其實。故有子謂:“諸仁之中,孝弟爲之本。” 而程子謂:“行仁,自孝弟始。” 未嘗不通。但程子曰:“孝弟謂之行仁之本則可,謂是仁之本則不可。” 此與有子語不合。仁與爲仁,不必猛下分別也。○總之,古之聖王,識務知要,故率天下以孝弟。三王異尙,而尙齒則同。大學養老,天子袒而割牲,執醬而饋,以敎諸侯之弟。【〈祭義〉文】 民於是不好犯上,而禍亂不作,斯大智也。時君不識務,惟制堅甲利兵以禦難,設深文重刑以遏犯上,彼旣無本,將何以事君盡忠,以成仁哉?
引證 《管子》曰:“孝弟者,仁之祖也。”【房玄齡云:“仁從孝弟生,故爲仁祖。”】 ○〈祭義〉曰:“衆之本敎曰孝。仁者,仁此者也,禮者,履此者也,義者,宜此者也。” ○《孝經》曰:“夫孝,德之本也,敎之所由生也。” 敎行,而民焉有不歸仁者乎?○《呂覽》曰:“夫孝弟,三王五帝之本務。”【即君子務本】 ○《後漢ㆍ延篤傳》曰:“功雖顯外,本之者心也,末雖煩蔚,致之者根也。夫仁人之有孝,猶四體之有心腹,枝葉之有根本也。故曰‘夫孝,天之經也,地之義也,人之行也。孝弟也者,其爲仁之本歟’。”【此乃仁孝先後論也,此時已有仁先之說】
麟曰:“有子ㆍ曾子獨以子稱,何也?” 曰:“程子謂‘此書成於有子ㆍ曾子之門人也’。” “柳子謂‘孔子之沒,諸弟子以有子爲似夫子,立而師之。其後不能對諸子之問,乃叱避而退’,則固有常師之號,是以稱子,其說非歟?” “非也。此太史公采雜說之謬,宋子京ㆍ蘇子由辨之矣。孟子謂‘子夏ㆍ子張ㆍ子游以有若似聖人,欲以所事孔子事之’,朱子云‘蓋其言行氣象有似之者,如〈檀弓〉所記子游謂有若之言似夫子之類,是也’,豈謂貌之似哉?宰我ㆍ子貢ㆍ有若智足以知聖人,此孟子之言也。蓋在言語之科,宰我ㆍ子貢之流亞也。盍徹之對,出類拔萃之語,見於《論》ㆍ《孟》,而《論語》首篇所載,凡三章,曰孝悌,曰禮,曰信恭,尤其精要之言也。其論晏子焉知禮,則〈檀弓〉述之矣。《荀子》云,‘有子惡臥而焠掌。’ 可以見其苦學。” 曰:“朱子謂有子重厚和易,其然與?” “吳伐魯,微虎欲宵攻王舍,有若與焉,可謂勇於爲義,非但重厚和易而已。《家語》稱其‘彊識好古道’,其視以魯得之者,有間矣。” 曰:“〈檀弓〉記有子之言,皆可信乎?” 曰:“王 无咎嘗辨之矣。若語子游欲去喪之踊,孺子䵍之喪,哀公欲設撥,對以爲可,皆非也。唯《論語》所載爲是。” ○鏞案 程子之言,不可易也。


三章 ME0103

包曰:“好其言語,善其顔色,皆欲令人悅之,少能有仁也。”【舊本,本作‘鮮矣有仁’,故包注亦多‘有’字
質疑 巧言令色,不是罪惡。特聖人觀人,每見巧言令色者,其人多不能仁,故第言鮮矣。然《春秋傳》,師曠善諫,叔向引《詩》巧言如流以美之,〈大雅〉美山甫之德曰令儀令色。巧言令色,有時乎有好人。‘鮮矣’二字,眞是稱停語。若云絶無,則違於實矣。孔子他日,又曰‘巧言亂德’,此惡言之巧也。〈表記〉曰‘辭欲巧’,此善言之巧也。巧言有善有惡,況令色乎!此只是觀人之法。太宰純謂當與‘剛毅木訥近仁’參看,其言良是。
引證 〈臯陶謨〉曰:“何畏乎巧言令色孔壬?”【《傳》云:“巧言,靜言違。令色,象恭滔天。”[1][2]】 ○孔子曰:“巧言令色足恭,左丘明恥之,丘亦恥之。[3][4]”【〈公冶長〉】 ○梅氏〈冏命〉曰:“無巧言令色便辟側媚,其惟吉士。”


四章 ME0104

馬曰:“曾子,弟子曾參。”【《史記》云:“曾參,南武城人,字子輿,少孔子四十六歲。”】 ○朱子曰:“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傳,謂受之於師。習,謂熟之於己。”
邢曰:“吾每日三自省察己身。”【藤云:“凡三字在句首者,爲三次,如三復〈白圭〉,三以天下讓,是也。在句尾者,爲數目,如君子所貴乎道者三,君子之道三,是也。” ○純云:“朱子見曾子所省偶爾三事,遂謂曾子以此三者日省。”】 ○駁曰 非也。《禮記》曰:“文王朝於王季日三。” 彼蓋以此文例之。然‘子以四敎,文行忠信’,又如‘致五至ㆍ行三無’,【〈孔子閒居〉文】 何必字在句首者,不得爲數目[5][6]
何曰:“言凡所傳之事,得無素不講習而傳之。”【邢云:“凡所傳授之事,得無素不講習而妄傳乎?傳惡穿鑿,故曾子愼之。”】 ○毛曰:“傳曰傳業。《漢ㆍ儒林傳》‘傳業者寢盛’,《後漢》‘甄宇三世皆傳業’,是也。受曰受業。《後漢》‘包子良受業長安’,‘杜撫受業於薛漢’,是也。故‘孰先傳焉’,是傳于人,即〈曲禮〉‘七十老而傳’,亦是傳于人。凡單下一傳字,總是授字。” ○駁曰 非也。傳不習者,學而不習也。傳一字承上接下,可以通用。蕭山謂‘受之於師,不得用傳字’,不亦拘乎?己所不習,何以傳授?不習而傳,理所無也[7]
質疑 《易》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夕惕若者,聖人省察之極工也。朱子謂:“三省,非聖人之事。曾子晚年進德工夫,蓋微有這些子査滓去未盡。” 然湯以六事自責,豈亦査滓有未盡乎?聖人未嘗無省察也


五章 ME0105

補曰 道,導也。古之聖王,導民爲善,以率天下,故謂治爲道。【下篇云:“道之以德。”】 ○包曰:“千乘之國者,百里之國也。古者井田,方里爲井,十井爲乘,百里之國,適千乘也。” ○補曰 敬事,謂慮其始終,度其流弊也。然後行之,無所沮撓,則民信之矣。【〈緇衣〉云:“君子言必慮其所終,而行必稽其所敝,則民謹於言。”】 ○純曰:“節者,限也。如竹之有節,不可踰也。” ○楊曰:“《易》曰,‘節以制度,不傷財,不害民。’【節卦文】 蓋侈用則傷財,傷財必至於害民。故愛民必先於節用。” ○包曰:“使民不妨奪農務。”【邢云:“《左氏傳》云,‘凡土功,龍見而畢。火見而致用,水昏正而裁,日至而畢。’ 〈王制〉云,‘用民之力,歲不過三日。’”】
馬曰:“道,謂爲之政敎。” ○包曰:“道,治也。” ○駁曰 皆非也
馬曰:“《司馬法》,‘六尺爲步,步百爲畝,畝百爲夫,夫三爲屋,屋三爲井,井十爲通,通十爲成,成出革車一乘。’ 然則千乘之賦,其地千成,居地方三百一十六里有畸,惟公侯之封乃能容之,雖大國之賦亦不是過焉。” ○何曰:“融依《周禮》,包依〈王制〉ㆍ《孟子》,義疑,故兩存焉。”
質疑 三句各爲一事,先儒多以爲五事,恐不然也


六章 ME0106

朱子曰:“謹者,行之有常也。信者,言之有實也。” ○補曰 汎,不沈著也。【《說文》云:“汎,浮貌。” 任風波自縱也】 親,密近也。○馬曰:“文者,古之遺文也。”【邢云:“《詩》ㆍ《書》ㆍ《禮》ㆍ《樂》ㆍ《易》ㆍ《春秋》六經,是也。”】
純曰:“謹主於言,信主於心,‘謹而信’一句專戒言語。” ○駁曰 非也。《易》曰:“庸行之謹,庸言之信。” 《集註》不可易也
陸德明云:“讀行,下孟反。” ○駁曰 非也。上五事行之而有餘力,則可以學文也。行,平聲。
毛曰:“姚立方云,‘文非《詩》ㆍ《書》六藝之文。言弟子稍閒,使學字耳。’ 《說文》云,‘文,交畫也。’ 《周官》,‘八歲入小學,保氏只敎以六書使習字。’” ○駁曰 非也。出則弟者,謂出而事其長上,非八歲兒之所能也。汎愛衆亦然。是豈學字之時乎?當從舊說
質疑 汎之訓廣,古無可據。且廣愛衆,非弟子之所能。孔子謂:“於凡人當汎汎然愛之,於仁者當切切然親之。”【純云:“汎愛衆,順德之事也。親仁,求薰陶之益也。”】 非欲廣愛而遍覆也。○又按 夫子之言,雖先行後文,然上五事皆非力役之可充工課者?行之綽有餘力,以其餘力悉以學文,則文不可勝用也。先儒因此過斥文藝,非夫子之本意也。故朱子深戒之


七章 ME0107

孔曰:“子夏,弟子卜商。”【《史記》云:“卜商,衛人也,少孔子四十四歲。”】 ○孔曰:“言以好色之心好賢則善。” ○補曰 致身,謂獻躬於君,不自有也。○朱子曰:“學求如是而已。有能如是之人,苟非生質之美,必由務學之至。” ○ 此章當與下‘博學’章【〈子張〉篇】合觀
引證 《漢書ㆍ李尋傳》云:“聖人承天,賢賢易色。”【論天象云:“少微在前,女宮在後,賢賢易色,取法於此。”】 顔師古云:“尊上賢人,輕略于色。”【易,音異】 ○駁曰 非也。易色,只是以賢者易美色。【若云‘以好賢之心易好色之心’,則亦添出矣】
侃曰:“若欲尊重賢人,則當改易其平常之色,更起莊敬之容。”【伊川云:“見賢而變易顔色。”】 ○駁曰 非也。朱子曰:“孔子兩言‘未見好德如好色’[8][9],《中庸》亦以遠色爲勸賢之事[10],已分曉了。變易顔色,有爲之者,不若易好色之心,方見其也。”【《徐氏筆精》云:“色,指禮貌而言。其次避色,亦指禮貌衰也。”[11][12] ○亦非也】 ○徐奮鵬[13]云:“好色是人心,好賢是道心。人心每用得眞,而道心反冷淡,易色則若轉人心爲道心用也。”
邢曰:“此章論生知美行之事。” ○駁曰 非也。子夏之意,蓋云‘學不過如斯而已’,豈以是爲生知之聖乎?易色則誠於賢賢矣,竭力則誠於親親矣,致身則誠於尊尊矣,有信則誠於交友矣。四者皆誠,學何以加矣?
吳曰:“子夏之言,詞氣之間,抑揚太過。” ○駁曰 非也。孔子曰:“管氏而知禮,孰不知禮?” 詞氣未嘗不抑揚


八章 ME0108

何曰:“人不能敦重,旣無威嚴,學又不能堅固。” ○補曰 主,賓之對也,讀之如居不主奧之主[14][15]。【〈曲禮〉文】 言立心行己,以忠信爲主也。○朱子曰:“友不如己,則無益而有損。” ○鄭曰:“憚,難也。”
孔曰:“固,蔽也。”【邢云:“博聞強識,則不固蔽也。”】 ○駁曰 非也。不重與學不成對頭
侃曰:“孔謂‘固爲弊’。弊,猶當也。言人旣不能敦重,縱學亦不能當道理。” ○駁曰 非也。訓固爲弊,訓弊爲當,又添出道理字,迂回,甚矣。
鄭曰:“主,親也。”【邢云:“凡所親狎,皆須有忠信者。”】 ○駁曰 非也。孔子適衛,主顔讐由家,又主蘧伯玉家,適陳,主司城貞子家。鄭所據者,此也。方論治身之法,忽議客游之術,恐不然也。主者,守也,宗也。
質疑 《說文》云:“憚,忌也,難也。” 汲黯以嚴見憚[16],亦忌之難之之意,非謂武帝恐畏汲黯也。人於改過,亦安有所畏乎?憚改則其情似吝。故曰‘改過不吝’。【徐玄扈云:“過之日長,皆由一點憚心。”】
質疑 毛曰:“‘君子不重’十一字,自爲一章,‘主忠信’三句,自爲一章。此本〈子罕〉篇文,而複簡于此者。今旣注重出,乃不注之此,而反注之〈子罕〉篇,以致威重忠信上下相承處,齟齬不接。” ○ 此說合理。【蘇紫溪云:“威重如田地,忠信如種子,取友如培養,改過如芟刈。” 此又聯貫,作一氣語


九章 ME0109

補曰 終者,親之末也。遠者,親之逝也。愼者,防其有差失,謂喪禮也。追者,若將逮及然,謂祭禮也。民能如是,則其德趣於厚矣。
孔曰:“愼終者,喪盡其。追遠者,祭盡其。”【朱子曰:“愼終者,喪盡其。追遠者,祭盡其。”】 ○駁曰 孔說,非也。子思曰:“喪,三日而殯,凡附於身者,必誠必信,勿之有悔焉耳矣。三月而葬,凡附於棺者,必誠必信,勿之有悔焉耳矣。”【〈檀弓〉文】 此是愼終之義。哭泣之哀,雖亦事親之終事,不可曰愼終。朱子改哀爲禮,以是也。悔不可及,可不愼乎?忽焉其逝,可不追乎?
孔曰:“君能行此二者,民化其德,皆歸於厚。” ○駁曰 非也。民者,人也。民鮮能久[17],民莫不穀[18],豈必下賤者爲民乎?喪祭之禮,通於上下,不必以觀感言也。
侃曰:“靡不有初,鮮克有終[19],終宜愼也。久遠之事,錄而不忘,是追遠也。” ○駁曰 非也。《記》曰:“君子言必慮其所終,而行必稽其所敝,則民謹於言,而愼於行。”【〈緇衣〉文】 愼終然矣,追遠奈何?
陸稼書云:“愼終,指親父母。追遠,不止親父母,凡遠祖皆是。” ○駁曰 非也。祖父死,猶當愼終。大夫ㆍ士不得祭遠祖。其義乖反矣。


十章 ME0110

鄭曰:“子禽,弟子陳亢。【《家語》云:“陳亢,陳人,少孔子四十歲。”】 子貢,弟子,姓端木,名賜。【《史記》云:“子貢少孔子三十一歲。”】” ○補曰 是邦,謂所至之邦,與之,謂不求而自與也。溫,和也。良,善也。恭,驕之反。儉,侈之反。○補曰 讓而得之,謂雖退讓,而終亦得聞也。夫子求之之求,當讀如自求多福之求。【君子未嘗求福,而行善以得福,故曰‘自求多福’】 ○朱子曰:“其諸,語辭。”【桓六年《公羊傳》云:“其諸以病桓與!”】
鄭曰:“抑人君自願與之爲治?” ○駁曰 非也。《易》曰:“臨ㆍ觀之義,或與或求。” 與猶授也。
鄭曰:“言夫子行此五德而得之。” ○駁曰 非也。讓當屬下句讀。堯德曰欽明文思,湯德曰齊聖廣淵,文王曰徽柔懿恭,《左傳》贊八元ㆍ八凱之德,皆四字爲句。子貢美夫子之德,何必五字爲句?子禽疑夫子求而得之,故子貢謂‘夫子讓以得之’,正以破其惑,不可以讓字屬上句讀。
引證 賈誼《新書》曰:“欣𢣤可安,謂之熅。安柔不苛,謂之良。接遇愼容,謂之恭。廣䡊自斂,謂之儉。厚人自薄,謂之讓。”【〈道術〉篇】 ○ 西京官學,皆以讓字屬上句讀,然不敢勉從。《大戴禮ㆍ官人》篇云‘恭儉以讓’,亦與連言者不同。
質疑 子禽之爲孔門弟子,不見正史,而《家語》者僞書,王肅所補以折鄭玄者也。朱子不信《家語》,故疑子禽爲子貢弟子。然凡名載《論語》者,先儒悉以爲孔門弟子,遂使申棖之類從祀聖廟,此斯文之一蔽也。奚但子禽然矣?
考異 石經,抑與作意予,蓋意與億通。【億者,意之也,故曰‘億則屢中’】 億ㆍ抑同音,又抑有意音。故抑戒,謂之懿戒也。予ㆍ與本同字。


十一章 ME0111

孔曰:“父在,子不得自專,故觀其志而已。” ○補曰 道,謂政令施措
侃曰:“一則哀毀[20]之深,豈復識政之是非?故君薨,世子聽冢宰三年[21][22]也。二則三年之內,哀慕在心,事亡如存,則所不忍改也。”【又云:“‘若父政惡,寧可不改乎?’ 答曰,‘冢宰自行政,家相ㆍ邑宰自行事,無關於孝子也。’”】 ○駁曰 非也。嫌其得伸,故行之有漸也。此章,與曾子稱孟莊子之孝,相照。本爲大夫而發,聽於冢宰三年,非本旨也。天子ㆍ諸侯有先君之弊政,禍天下而危宗廟,改之,當如救焚拯溺,豈敢以孝思因循乎?哲宗初年,呂惠卿引此經,以惑君聽,斯又學道者所宜講也。【眞西山云:“武繼文志,則終身無改。宣承厲烈,則不待三年。不如是,則三年無改。”】
引證 曾子曰:“吾聞諸夫子,孟莊子之孝也,其他可能也。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是難能也。”【〈子張〉篇】 ○〈坊記〉:“子云,‘君子弛其親之過,而敬其美。’ 《論語》曰,‘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大戴禮》:“曾子曰,‘父死三年,不敢改父之道,又能事父之朋友。’”【〈曾子本孝〉篇】


十二章 ME0112

補曰 禮之用,謂禮之所施行。小大,猶言上下,謂天子ㆍ諸侯ㆍ大夫ㆍ士也由之,謂由於道。○補曰 有所不行者,將言而轉之也。亦不可行者,旣言而決之也。禮主於嚴而行之以和,猶樂主於和而戒之在流也。
邢曰:“每事,小大皆用禮,而不以樂和之,則其政不行。” ○駁曰 非也。馬注亦無此意,特疏家誤讀耳。後儒欲一反《集註》,還主邢說,分作三節看,大謬也。○《記》曰:“樂勝則流,禮勝則離。” 又曰:“樂由天作,禮由地制,過制則亂,過作則暴。” 皆禮樂相用之義。然其所謂樂,又非鍾鼓琴瑟之謂。○純曰:“〈儒行〉云,‘禮之以和爲貴。’ 正與此同句法,用字爲句,非也。” ○駁曰 非也。〈禮器〉曰‘禮以多爲貴’,‘禮以少爲貴’,〈儒行〉句法,與此同也。豈以是並疑此句乎?體用之說,雖出釋氏,吾家未嘗不言用。《易》曰:“曷之用?二簋可用享。” 〈洪範〉曰:“敬用五事,協用五紀。” 禮之言用,豈有謬乎?〈燕義〉曰:“和寧,禮之用也。” 《史記ㆍ外戚世家》曰:“禮之用,唯昏姻爲兢兢。” 旣有據矣。又何疑乎?
質疑 小大,以位言。《書》曰:“殷罔不小大,好草竊ㆍ姦宄。”【〈微子〉篇】 《詩》曰:“無小無大,從公于邁。”【〈魯頌〉文】 故梅賾作《書》,猶云:“小大戰戰,罔不懼乎非辜。” 此云‘小大由之’,謂上下通行也。聘禮有餼,覲禮有饗,祭禮有旅酬,鄕禮必飮酒,上下諸禮,無一而非‘和爲貴’也。若以爲小事大事,則‘由之’二字不妥帖


十三章 ME0113

何曰:“復,猶覆也。義不必信,信非義也。以其言可反覆,故曰近義。恭不合禮,非禮也。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邢云:“信非義也者,尾生抱柱而死也。” 又云:“巽在牀下[23],是恭不合禮也。”】 ○補曰 因,承上之辭。不失其親,謂獲乎親也。【《中庸》云:“獲乎上有道。”】 宗,尊也。言人能信且恭,因又不失其父母兄弟之親,則其人雖不至於聖賢,亦可以尊而宗之也。〈檀弓〉曰:“天下其孰能宗予?”
質疑 恭未必盡合於禮,然謂之近於禮者,以其能遠恥辱也。信未必盡合於義,然謂之近於義者,以其能言可復也。能此二者,而又能不失其六親之和,則其爲人也,亦可以宗仰而爲之表準也。上二節之義,舊說必不可易。
孔曰:“因,親也。言所親不失其親,亦可宗敬。”【邢云:“所親不失其親者,言義之與比也。旣能親仁比義,有知人之鑒,故可宗敬也。”】 ○駁曰 非也。義與《集注》相近。然‘因不失其親’五字,解之曰‘其所親依者,不失其可親之人’,則迂回添出,猶不分明矣。觀人之法,外行雖善,宜觀內行。能信能恭,皆接人之外行也。外行旣善,內行亦備,則其人可宗也。《中庸》曰:“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 親戚不悅,不敢外交,古人之義也。不失其親者,孝順輯睦之謂也,何必崎嶇然外求乎?顔讐由ㆍ蘧伯玉ㆍ司城貞子,恐與此經無涉
引證 〈表記〉曰:“仁之難成久矣,人人失其所好,故仁者之過,易辭也。子曰,‘恭近禮,儉近仁,信近情。敬讓以行,此雖有過,其不甚矣。夫恭寡過,情可信,儉易容也。以此失之者,不亦鮮乎?’” ○ 此文,正與有子說同意。硜硜之信,君子小之[24],然猶近於義,恭而無禮,其敝也勞[25],【亦孔子之言】 然猶近於禮也。且孔子曰:“恭以遠恥。” 又曰:“恭則不侮。” 恭者,本所以遠恥辱之物也。唯信亦然,又何必增補一善,然後方可以踐言而遠恥乎?
《陳書ㆍ王元規傳》:“元規八歲而孤,隨母依舅氏,往臨海郡,時年十二。郡土豪劉瑱資財巨萬,以女妻之,元規母欲許之。元規泣請曰,‘姻不失親,古人所重,豈得久安異壤,輒婚非類?’ 母感其言而止。”【〈儒林傳〉】 ○荻云:“因與姻ㆍ婣,古字通用。” ○駁曰 非也。禹娶於塗山,晉文公娶於狄,皆不可宗乎?將必朱陳爲法乎?


十四章 ME0114

孔曰:“有道,有道德者。正,謂問其是非。” ○ 食與居,皆所以養小體[26]也。先言此者,明克己[27]在先。

참조: 好學[28]


十五章 ME0115

補曰 可也,許之而未深然之辭也。切,割也,琢,斲也,此麤治之工也。磋磨,所以爲滑,其工精也。無諂無驕,去惡也,其工麤。樂與好禮,爲善也,其工精。○朱子曰:“往者,其所已言。來者,其所未言。”【《詩ㆍ衛風ㆍ淇奧》之篇】
邢曰:“骨曰切,象曰磋,玉曰琢,石曰磨。” ○駁曰 非也。此本《爾雅ㆍ釋器》文。【毛萇亦引之】 然骨不能無磋,象不能無切。玉不磨,雖琢無用,石不琢,欲磨不得。《爾雅》一物一名,本是謬義。精麤之義,始發於朱子,其見度越千古。若非精麤之喻,則此經問答,泊然無味,終不可解
孔曰:“往,告之以貧而樂。來,答之以切磋琢磨。” ○駁曰 非也。往,如已過之境。來,謂未然之事。往,已著者也。來,未顯者也。貧樂富禮,有跡可見,道學精麤,其理至微,聞此知彼,非敏不能。此之謂告往而知來也。
考異 〈坊記〉:“子云,‘貧而好樂,富而好禮,衆而以寧者,天下其幾矣?’” ○《史記ㆍ弟子傳》云:“貧而樂道,富而好禮。” ○《後漢書ㆍ東平憲王傳》:“《論》云,‘貧而樂道,富而好禮。’”【純云:“石經,‘樂’下有‘道’字,見明 仲和卿《四書備考》ㆍ皇侃《義疏》及我國博士家古本《集解》,皆同。”】 ○ 《集解》再引孔註,皆云貧而樂道,古本疑有此字。然只一樂字有深味


十六章 ME0116

邢曰:“凡人之情,多輕易於知人。” ○補曰 患不知人之賢也。
王肅曰:“但患己之無能知。”【此注見皇本】


「爲政」 ME02


一章 ME0201

補曰 政者,正也,【六書之諧聲】 發號施令,正百官以正萬民者也。○補曰 德者,直心也,【字義然[29]】 身先孝弟,率天下以仁者也。子曰:“道之以德,有恥且格。” ○補曰 北辰即北極,天之樞也。以無星點,故謂之辰也。南極亦天樞,不言南極者,夫子生於中國,北極出地,南極所不見也。居其所,謂北極一點,正當子午線,眞南北之位也。○補曰 共者,同也。北辰居正[30],斡旋天樞,而衆星隨轉,與北辰同運,故曰共之也。【〈王制〉云:“與衆共之。”】 ○補曰 政者,上之所以正民。正己而後物正,隨敎化而同轉,【民遷善】 故以北辰喻之。
包曰:“德者無爲,猶北辰之不移,而衆星共之。”【邢云:“淳德不散,無爲化淸,則政善矣。《漢書ㆍ天文志》曰,‘中宮天極星。其一明者,泰一之常居也,旁三星,三公,環之匡衛十二星,藩臣,皆曰紫宮。’”】 ○邢曰:“衆星共尊之。” ○駁曰 非也。淸淨無爲,即漢儒黃ㆍ老之學,晉代淸虛之談,亂天下壞萬物,異端邪術之尤甚者也。文帝用此道,釀成七國之亂。惠帝崇此術,召致五胡之禍。曾謂吾家大聖,亦以無爲爲法乎?夫無爲則無政。夫子明云爲政,儒者乃云無爲,可乎,不可乎?孔子曰:“無爲而治者,其舜也與!夫何爲哉?恭己正南面而已矣。”【〈衛靈公〉】 此謂‘舜得二十二人,各授以職,天下以治,當此之時,惟當恭己南面’。所以極言人國之不可不得人,而贊歎歆羨之意,溢於辭表,其言抑揚頓挫,令人鼓舞。後之儒者,誤讀此文,遂謂‘堯ㆍ舜之治,主於無爲’。於是以賈誼爲喜事,以汲黯爲知道,以魏相ㆍ丙吉爲大臣,而庸陋蔑劣之徒,尸位竊祿,務持大體,以文其短,使萬機百度腐爛頹墮,莫之振起,皆此毒中之也。嗚呼!豈不悲哉?余觀奮發事功,莫如堯ㆍ舜。五載一巡,比年受朝,詢事考言,天下旣紛紛矣。重之以鑿山瀹水,濬畎疏澮,立敎明刑,制禮作樂,誅凶退佞,以至上下草木鳥獸,莫不擇人授任,計功責成。其用心用力,可謂健矣。孔子親定典ㆍ謨,明知此事,安得誣之曰無爲哉?凡言無爲而治者,皆異端邪說,非吾家之言也。然且北辰本無星點,故《爾雅ㆍ釋天》云:“北極謂之北辰。” 郭璞曰:“北極,天之中,以正四時。”【邵康節云:“地無石之處,皆土也。天無星之處,皆辰也。”】 旣無星點,其移與不移,本無可論。若云中宮泰一,是爲北辰,則其圈雖小,日夜旋轉,不恒其居,曷謂泰一有常居乎?【朱子曰:“北辰是天之樞紐,不可無記認。所以就其旁取一小星,謂之極星。極星亦動,只他近辰,雖動不覺。如射糖盤子[31],北辰便是中央樁子,極星便是近樁點子。雖隨盤轉,緣近樁子,便得不覺。” ○沈存中云:“始以管窺極星,不入管,後方見極星在管弦上轉。”】 漢儒誤解此經,遂以中宮泰一,封爲天皇大帝,其注郊ㆍ柴諸祭,皆以皇天上帝,號之曰泰一神,侮慢瀆亂,不可復言,而三公ㆍ六官ㆍ羽衛ㆍ藩臣,碧落之上,闢一朝廷,指云衆星環拱北極。皆以此經衆星共之一語,戴之爲本,豈不謬哉?聖人設喻,無不親切,若云端拱無爲,譬如北辰,則猶之可也,今爲政以德,明明有爲,安得以泰一之常居不動,取之爲譬乎?總之,政也者,正也。聖人所操約,故重言複言,總只一貫,究其歸趣,無不沕合。齊景公問政於孔子。孔子曰:“君君,臣臣,父父,子子。” 此所謂爲政以德也。季康子問政於孔子。孔子對曰:“政者,正也。子率以正,孰敢不正?” 此謂正己而物正也。子曰:“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從。” 子曰:“苟正其身矣,於從政乎何有?不能正其身,如正人何?” 哀公問政。孔子曰:“政者,正也。君爲正,則百姓從政矣。君之所爲,百姓之所從也,君所不爲,百姓何從?” 孟子曰:“一正君而天下正矣。” 董子曰:“正君心以正百官,正百官以正萬民。” 皆是此說,奚獨於此,別以不移無爲,爲爲政之法乎?居其所者,正子午之線也。北極正子午之線,斡旋天樞,而滿天諸星,與之同轉,無一星之敢逆,無一星之或後,此所謂衆星共之也。人君居正,爲政以德,而百官ㆍ萬民,罔不率從與之同和,正與北辰ㆍ衆星之事,如合符契,取譬之意,顧不在是乎?環拱,何謂也?○紘父云:“子張問政。子曰,‘居之無倦。’ 正與居其所而無爲者相反。何夫子論政,若是其無恒乎?謬矣。”
許石城云:“說者泥注‘無爲’二字,遂謂‘爲政’二字純落空,不幾柱下漆園之致乎?” ○蘇紫溪云:“德是修身爲本也。身正而天下國家皆正,故譬如北辰居所而衆星共,不必添無爲意。” ○方孟旋云:“北辰之譬,謂其建極,何有無爲民歸的說話?” ○邵端簡云:“傳注增了無爲一語,添得文人學士許多障碍。” ○毛大可云:“案《晉書》,武帝作〈耕籍詔〉有云‘朕思與萬國以無爲爲政’。此一語,實當時儒臣變亂儒說,參易聖經,大啓惠帝荒政及淸談虛無,神州陸沈之漸。” ○ 明儒之論,已如此矣
潘岳〈籍田賦〉曰:“若湛露之晞朝陽兮!衆星之拱北辰也。”【共作拱】 ○駁曰 非也。共,不可作拱。然且拱者,斂手也。【徐鉉云:“兩手大指相拄也。”】 〈玉藻〉云:“垂拱。” 〈擅弓〉云:“右拱。” 《左傳》云:“拱璧。” 《孟子》云:“拱杷之桐梓。” 秦繆公云:“爾墓之木拱矣。”【僖三十二年】 皆是斂手沓手之義。環拱者,六書家之所未聞也。衆星環拱北辰,將何爲哉?【《集注》云:“共,向也,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


二章 ME0202

補曰 詩三百十一篇,其六笙詩[32]也,其五商頌也。笙詩本亡,商頌前代之詩,故不在數,詩惟三百篇也。【星湖先生云】 ○韓愈曰:“蔽,猶斷也。”【見《筆解》】 ○邢曰:“思無邪,〈魯頌ㆍ駉〉篇文。” ○補曰 詩三百,皆賢人所作,其志正,故曰‘思無邪’一句,可以斷之也。
包曰:“蔽,猶當也。” ○鄭曰:“蔽,塞也。”【見《釋文》】 ○駁曰 非也。《左傳》哀十八年,引〈夏書〉曰:“官占惟能蔽志,昆命于元龜。” 杜注云:“蔽,斷也。”【梅賾亦從之】 韓文公蓋據是也。
包曰:“歸於正。”【邢云:“詩之爲體,論功頌德,止僻防邪,大抵皆歸於正。”】
駁曰 非也。思無邪者,謂作詩之人,其心志所發,無邪僻也。若以其歸趣功用,謂之無邪,則思一字不可訓也。司馬遷謂‘三百篇皆賢聖所作’,此有承之言也,然[33]故孔子刪而正之,以爲聖經。若作詩者原是淫邪之人,何得其言名之曰聖經?必不然矣。


三章 ME0203

補曰 道,導也。古之聖王,導民爲善,以爲民師,所謂堯ㆍ舜率天下以仁也。政者,法制,所以正民也。○補曰 齊,上平也。【《說文》云:“齊者,禾麥吐穗上平也。”】 刑以罰惡,禮以防濫,如物有雜出,而翦以齊之也。○朱子曰:“苟免刑罰,無所羞愧,不敢爲惡,而爲惡之心未嘗亡。” ○補曰 德,孝弟也。《書》曰‘敬敷五敎[34]’,即道之以德也。諸侯皆用諸侯之禮,大夫皆用大夫之禮,士ㆍ庶人亦然,即所謂齊之以禮也。○補曰 格,通作假[35],謂感化也。《書》曰:“格于上下。” 又曰:“格則承之庸之。” 《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36]。” 皆感通之意也。【葛屺贍云:“格者,乃感格之義。”】
孔曰:“政,謂法敎。” ○駁曰 非也。敎者,道之以德也
包曰:“德,謂道德。” ○駁曰 非也。道德何物?今人認德字元不淸楚,讀聖經遇德字,茫然不知爲何物,第以淳厚渾朴,不辨淸濁者,爲有德意,欲以此箇氣象,坐理天下,庶幾萬物自然歸化,而當局臨事,不知從何處著手,豈不迂哉?此天下所以日腐爛而莫之新也。德者,篤於人倫之名,孝弟慈是已。《禮》曰:“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及至‘治國平天下’章,乃以孝弟慈爲本,孝弟慈非明德乎?〈堯典〉曰:“克明峻德,以親九族。” 峻德非孝弟乎?《孝經》曰:“先王有至德要道,以順天下。” 至德非孝弟乎?先王之道,身先孝弟以率天下。此之謂道之以德,德非模糊漫漶之物也。然道之以德,亦用刑,《書》曰:“伯夷降典,折民維刑。”【〈呂刑〉文】 謂先敷五典,而其不率敎者,折之以刑也。《周禮ㆍ大司徒》:“以鄕八刑糾萬民。” 其目則不孝不弟不睦不婣之類也。〈康誥〉以不孝不友爲元惡大憝,刑玆無赦。斯皆道之以德,不在刑法中論。
何曰:“格,正也。” ○駁曰 非也。有恥且正,不成文。【格之訓正,本出趙岐《孟子注》[37]
質疑 《集注》曰:“格,至也。民恥於不善,而又有以至於善也。” ○ 格之爲字,首見于〈堯典〉。格于上下者,謂上感天心,下感民心也。梅氏之註,訓格爲至,則須連上光字,乃成文也[38]有恥且格,若訓爲至,則亦必增‘於善’二字,乃得成文,恐不如直訓孚感之爲簡捷也。大抵免者,外面之苟免也。格者,中心之孚格也。今必以有恥爲觀感,而訓格爲至,則語脈上重而下輕,頓減精神,恐不然也。【蔡注〈說命〉云:“功格于皇天。” 亦必添一功字】
引證 《禮記ㆍ緇衣》篇,子曰:“夫民,敎之以德,齊之以禮,則民有格心。敎之以政,齊之以刑,則民有遯心。”【鄭玄云:“假,來也。”】 ○ 格心,謂感化之心。遯心,謂逭罪之心。
引證 《孔叢子》云:“仲弓問刑敎。孔子曰,‘古有禮,然後有刑,是以刑省。今無禮以敎,而齊之以刑,刑是以繁。《書》曰「伯夷降典,折民維刑」,謂先禮以敎之,然後繼以刑折之也。夫無禮則民無恥,而正之以刑,故民苟免。’ 又曰,‘以禮齊民,譬之於御則轡也。以刑齊民,譬之於御則鞭也。執轡於此而動於彼,御之良也。’”【〈刑論〉篇】 ○ 《孔叢子》,僞書也。


四章 ME0204

補曰 志,謂有定向。立,謂安不動。【〈學記〉云:“強立而不反,謂之大成[39]。”】 不惑,謂見理明確,無攸迷也。【下篇云:“智者不惑。”】 知天命,謂順帝之則,窮通不貳也。【《孟子》云:“殀壽不貳,修身以俟之,所以立命也[40]。”】 耳順,謂言不逆耳,【逆于耳,則拂于心】 和順積中,雖非理之言,無所逆耳也。○補曰 道心爲之主,而人心聽命,則從心所欲,爲從道心之所欲,故不踰矩也。若衆人從心所欲,則爲從人心之所欲,故陷於惡也。【〈曲禮〉云:“欲不可從。”】 矩,正方之器。【上下四方,均齊方正者】 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所謂從心所欲不踰矩也。
鄭曰:“耳聞其言,而知其微旨。” ○駁曰 非也。其言,誰之言也?必於孔子之上,更有神聖大人,賢於孔子,然後可曰‘孔子耳聞其言,而知其微旨’,未知孔子同時有此人否。若云‘聽衆人之言,知其微旨’,則衆人所言,本無精微蘊奧,何必六十始知其旨?若云‘聖人聲入心通,忽聞滄浪之歌,即悟自取之義[41]’,【陳氏云】 則子貢聞貧樂富禮之說,即悟切磋琢磨之義,未嘗非耳順。子貢少孔子三十一歲,少年也。子貢少年耳順,孔子六十,企而及之,豈可通乎?知天命者,達天德也。其級至高,而所謂耳順,又在其上,耳順豈易言哉?毀譽榮辱之來,凡逆耳之言不能不拂其心,若深知天命,渾融純熟,則毀譽榮辱,無可以動其心者。無可以動其心,則無可以逆其耳,此之謂耳順也。後世言聖人者,皆推而尊之,爲神異恍忽之人,邈然不可見其所成者爲何事。聖人則固尊矣神矣,於我了無分矣,慕聖何爲?此聖人之所以不作,而道之所以終晦也,噫!
蘇紫溪云:“此所謂矩,即虞帝之執中[42],文王之順則[43]也。”


五章 ME0205

孔曰:“懿子,魯大夫仲孫何忌。【事見定六年】 懿,諡也。”【邢云:“溫柔賢善曰懿。”】 ○邢曰:“無違,言無得違禮[44]。” ○鄭曰:“樊遲,弟子樊須。”【《史記》云:“樊須,字子遲,齊人,少孔子三十六歲。”】 ○邢曰:“樊須爲夫子御車也。” ○朱子曰:“孟孫,即仲孫也。【杜預《公子譜》云:“仲慶父弑君,故改爲孟。[45] ”】是時三家僭禮,故夫子以是警之。然語意渾然,又若不專爲三家發者。”【許氏云:“三家僭禮,如視桓楹[46]設撥[47],葬禮之僭也,八佾舞於庭,歌〈雍〉以徹,祭禮之僭也。”】
侃曰:“言行孝者,每事順從,無所違逆也。” ○駁曰 非也。事父母,有幾諫[48]之義,安得每事皆從無違之義?樊遲問之,孔子答之,一問一答,了然明白,猶有異說,紛然更起,不亦難乎?
齊氏曰:“昭二十四年,孟僖子將卒,屬說與何忌於夫子,使學禮焉。時孔子年三十四。樊遲御,必在哀十三年魯以幣召還之後,時孔子年七十矣。僖子歿已久,而懿子猶問孝,可謂賢矣。使懿子不違其親之命,悉如孔子所敎,則僖子之心慰矣。”【毛云:“僖子令何忌學禮。不違親者,盡禮之謂也。‘幾諫’章曰,‘又敬不違。’”】 ○駁曰 非也。無違,非不違親命也。夫僖子命何忌使之學禮,而何忌不遵父命,不肯學禮,則其答懿子之問,曰‘不違親命’,可也。及樊遲質問之時,答之曰‘生事死祭’,必無是也,必將曰‘孟僖子使孟孫學禮於我,孟孫不遵其命,故我告之如是’。今也不然。內含其不遵父命之罪,外拈其宜遵父命之理,答之以生事死祭,非深文乎?懿子當時元不學禮,則是自絶于孔子也,絶孔子三十餘年,忽來問孝,有是理乎?‘無違’二字,孔子自言自注,不必枉生猜疑,自作啞謎也。
引證 王充《論衡》曰:“毋違者,禮也。孝子亦不當違親之欲。孔子言毋違,不言違禮,懿子聽孔子之言,獨不爲嫌於毋違志乎?樊遲問‘何謂’,孔子乃言‘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使樊遲不問,‘毋違’之說遂不可知也。懿子之才不過樊遲,樊遲不曉,懿子必能曉哉?” ○純曰:“夫子之誨人也,‘不憤不啓,不悱不發’。〈學記〉曰,‘君子之敎喻也,道而弗牽,強而弗抑,開而弗達。’ 又曰,‘語之而不知,雖舍之可也[49]。’”


六章 ME0206

馬曰:“武伯,懿子之子仲孫彘。【事見哀十七年】 武,諡也。【《諡法》:“剛強直理曰武。”】 言孝子不妄爲非,唯疾病然後使父母憂。”【邢云:“疾病之外,不得妄爲非法,貽憂於父母。”】
王充《論衡》云:“武伯善憂父母。故曰‘惟其疾之憂’。”【謂父母之事,子不必輒皆憂歎,惟親癠乃憂之】 ○駁曰 非也。然則不孝子也。
質疑 馬說固善。然爲人子者,不謹其身,或沈於酒色,或傷於風露,以生疾病,以貽父母之憂者多矣。朱子新說[50],未嘗不通,後儒力加非毀,妄矣。


七章 ME0207


孝 주석서 비교


孔曰:“子游,弟子言偃。”【《史記》云:“言偃,吳人,少孔子四十五歲。”】 ○補曰 養,謂左右奉養。【非飮食之謂】 ○包曰:“犬以守禦,馬以代勞,皆養人者。”【邢云:“犬馬皆能養人,但畜獸無知,不能生敬。”】 ○補曰 養而不敬,無以自別於犬馬也。【〈祭義〉云:“曾子曰,‘孝有三,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
邢云:“能養,謂能以飮食供養。” ○駁曰 非也。○毛曰:“〈旣夕禮〉‘養者皆齊’,〈文王世子〉‘玄而養’,此侍疾也。世無疾困饗飮食者。〈檀弓〉云,‘事親,左右就養。’ 注作扶持。事君事師,亦曰就養,則未聞君就食于臣,師可往敎,如近世延師供饍者。然後知養之爲奉侍,非飮食也。若《孝經》‘親生之膝下,以養父母’,則初生孩幼,豈供菽水[51]?”
何曰:“人之所養,乃至於犬馬,不敬則無以別。《孟子》曰,‘食而不愛,豕畜之,愛而不敬,獸畜之。’” ○駁曰 非也。○徐仲山曰:“犬馬能事人,故曰能。【能者,奇之也】 若人養犬馬,何能之有?【事之常】 幾見有人而不能餵畜者乎?”
引證 〈坊記〉曰:“小人皆能養其親,君子不敬,何以別?” ○ 小人,謂氓隷也,君子,謂貴人也。小人對犬馬,君子對人子,文例正與此經同。皆能者,亦奇之也。
引證 曾子曰:“衆之本敎曰孝,其行曰養。養可能也,敬爲難,敬可能也,安爲難。”【見〈祭義〉】 ○ 此本〈曾子大孝〉篇文。【《大戴禮》】
引證 唐 馬周上疏云:“臣少失父母,犬馬之養,已無所施。” ○宋 王豐甫〈辭免起復表〉云:“犬馬之養未伸,風木之悲[52]累至。” ○ 二文皆遵包義。


八章 ME0208

補曰 色難,謂事親能愉色乃爲難。【朱子云:“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 ○〈祭義〉文】 ○補曰 弟子,卑幼之稱。先生,尊長之稱也。服,躬任也,如牛服軛然。【〈考工記〉云:“兩軛之間,謂之衡任。”】 饌,陳列也。凡長幼同會,有事,則卑幼者例服其勞,有酒食,則尊長所食,例先陳設,此鄕黨之恒禮也。子事父母,當於恒禮之外,別有婉容愉色。若但用長幼之恒禮,則曾是以爲孝乎?曾,詞之舒也。【《說文》云】
包曰:“色難者,謂承順父母顔色乃爲難。” ○駁曰 非也。陳氏云:“此說,添‘承順父母’字,方可解。”
馬曰:“先生,謂父兄。” ○駁曰 非也。夫子之言,明明以父母別於先生,而親子別於弟子,欲於長幼恒禮之外,別求其婉容愉色。先儒乃以父兄當先生,則其言晦彩,極矣。世有親父而名之曰先生,親子而名之曰弟子者乎?
馬曰:“饌,飮食也。” ○駁曰 非也。〈士冠禮〉曰:“筮饌于西塾。” 〈士昏禮〉曰:“醯醬饌于房中。” 《儀禮》諸篇,凡言饌者,皆陳列之義也。今訓飮食,可乎?
吳程曰:“曾舊音增,《集註》讀如字。” ○程復心曰:“曾音層,與曾謂泰山之曾同音。《釋文》,嘗也。又不料之詞,反詞也。”【孫奕《示兒編》云:“曾字,除人姓及曾孫外,今學者皆作層字音讀。然經史並無音,止當音增。”】 ○ 〈大雅〉云:“曾是彊禦,曾是掊克,曾是在位,曾是在服。曾是莫聽。”【又云:“曾莫惠我師。”】 《孟子》云:“爾何曾比予於是?” 皆與嘗義不同,亦非反辭。《說文》以爲‘辭之舒’者近是。曾孫之曾,本是層累之意,而讀之爲增。獨於‘曾是’之曾,讀之爲層,恐不必然。


九章 ME0209

孔曰:“回,弟子,姓顔,字子淵。”【《史記》云:“魯人,少孔子三十歲。年二十九,髮盡白,早死。”】 ○朱子曰:“不違者,意不相背,有聽受,無問難。” ○補曰 退而省者,顔子退而孔子省之也。○純曰:“私者,公之對。孔門弟子以進見孔子爲公,其他朋友相與,謂之私。” ○孔曰:“察其退還與二三子說繹道義,發明大體。” ○補曰 發如花之含蘤而吐英也。《易》曰:“含章可貞,以時發也[53]。”【夫子之言簡嚴如含蘤,顔子發其旨如吐英】
金履祥曰:“‘吾與回言終日’六字爲句。” ○駁曰 非也。‘言終日’三字,詞理不活。‘與回言’爲句,‘終日不違’爲句,然後讀之瀏亮
質疑 燕居獨處,但當默然端坐。其足以發,不足以發,夫子何以知之?私者,朋友之私講也。曾子亦有此事。子曰:“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是不違也。退而答門人之問曰:“夫子之道,忠恕而已。” 此亦足以發也。


十章 ME0210

補曰 視,或無心,【《大學》曰:“心不在焉,視而不見。”】 觀,必有意,【《易》有曰‘闚觀’[54]】 察,尤其詳密者也。○補曰 以,因也。【〈邶風〉云:“何其久也?必有以也。 [55]”】 由,經也。【何云:“觀其所經從。”】 安,止而不遷也。【《孟子》曰:“敢問所安。[56]”】 凡觀人之法,每作一事,須觀其始所因者何故,中所經者何道,終所止者何處,【邢云:“察其所安處。”】 則人無所匿其情也。○孔曰:“廋,匿也。”
引證 《大戴禮》云:“考其所爲,觀其所由,察其所安,以其前占其後,以其見占其隱。”【〈文王官人〉篇】 ○ 朱子訓以作爲,蓋據《大戴禮》也。然《大戴禮》雜引爲文,本無精義。【《穀梁傳》云:“常事曰視,非常曰觀。”】


十一章 ME0211

何曰:“溫,尋也。” ○邢曰:“〈中庸〉云,‘溫故而知新。’ 鄭注云,‘溫讀如燖溫之溫,故學之熟矣。後時習之謂之溫。’”【《左傳》哀十二年,公會吳于槖臯,太宰嚭請尋盟。子貢對曰:“盟可尋也,亦可寒也。” 賈逵注云:“尋,溫也。” 又〈有司徹〉云:“乃燅尸俎。” 是尋爲溫也】 ○朱子曰:“故者,舊所聞。新者,今所得。” ○補曰 可以爲師,謂師之爲職,頗可爲也。舊學旣冷,今以敎人之故,得溫故而知新,非益我之事乎?人可以爲師矣。
何曰:“尋繹故者,又知新者,可以爲人師。”【邢云:“溫故知新,則可爲人師。”】 ○駁曰 非也。〈有司徹〉‘乃燅尸俎’之注曰:“古文燅皆作尋。”【謂孔壁《儀禮》】 《記》或作燖,《春秋傳》曰:“若可燖也,亦可寒也。”【又〈郊特牲〉‘腥爓’之注云:“爓,或作燖。”】 殊非紬繹之義也。○又按 師道甚廣,不可但以溫故一事許之爲師。邢疏揷一則字,其義,非也。舊學旣冷,每以誨人之故,得溫故而知新,孔子利此而爲言也


十二章 ME0212

朱子曰:“器者,各適其用,而不能相通。”【程子云:“若一才一藝則器也。”】 邢曰:“舟楫以濟川,車輿以行陸,反之則不能。”

十三章 ME0213

周孚先曰:“行之於未言之前,言之於旣行之後。”
質疑 子游問孝,告之以敬,則程子曰:“子游能養,而或失於敬。” 子夏問孝,告之以色,則程子曰:“子夏少溫潤之色。” 子貢問君子,告之以先行其言,則范氏曰:“子貢之患,在於易言。” 雖箴砭之言,本欲中病,然旣無明驗,恐難質言。審如是也,顔淵問仁,而告之以克己,顔子爲不能克己之人,原憲問恥[57],而告之以無道,原憲爲仕於亂邦之人。將顔子之不遠復[58],原思之貧而樂[59],皆過實之言乎?子路問政,而告之以無倦[60],子路問事君,而告之以犯顔[61]。夫子路有兼人之勇,以之爲政,惟恐其過於奮發,以之事君,惟恐其過於敢諫,而夫子不惟不攻其病,又從而勉其所有餘,將病不添乎?諸如此類,恐不必一槪論也。
侃曰:“君子之言,必爲物楷。故凡有言,皆令後人從而法之也。” ○駁曰 非也。


十四章 ME0214

補曰 周,密也。【《說文》云】 比,並也。【並古作夶_,又比古作夶,義相通也】 皆親暱之名,然周密以心言,比並以力言。君子有同德之人未嘗不以心親密,而不以勢力相結,小人有勢利之交未嘗不並力樹黨,而不以心義相固。此其別也。
孔曰:“忠信爲周,【邢云:“〈魯語〉文。”】 阿黨爲比。” ○駁曰 非也。所引雖好,義不明也。〈魯語〉之云‘忠信爲周’,亦謂忠信之人乃有親密。又《管子》曰:“先王貴周。周者,不出于口,不見乎色[62]。”【房玄齡云:“深密不測曰周。”】 〈堯曰〉篇曰:“雖有周親,不如仁人。” 周親者,至密之親屬也。《詩》曰:“比物四驪。” 比者,齊其力也。【鄭箋云】 〈大射儀〉曰:“遂比三耦。” 比者,校其力也。【鄭注云】 〈王制〉曰:“必察小大之比。” 其義亦然。〈牧誓〉曰:“比爾干。” 亦謂其同力者相並也。○又按 文十八年《左傳》云:“帝鴻氏有不才子,頑嚚不友,是焉比ㆍ周[63]。”【杜云:“比,近也。周,密也。”】 比ㆍ周,皆親暱之名。【〈晋語〉趙宣子曰:“吾聞事君者,比而不黨。夫周以擧義,比也,擧以其私,黨也。”】 分而言之,則乃有君子ㆍ小人之別,猶〈大學〉用‘驕泰’二字[64],並爲傲亢之名,而《魯論》分而言之,則君子泰而不驕,小人驕而不泰也。○侃曰:“周是博遍之法,故謂爲忠信。比是親狎之法,故謂爲阿黨。” ○孫綽云:“理備故稱周,無私故不比也。” ○駁曰 非也。博遍者,汎愛之謂也。若然,將謂君子惟有汎愛之法,而都無親密之人乎?苟如是也,不幾於愛無差等乎?周者,密也。比者,並也
引證 〈緇衣〉篇,子曰:“大臣不親,【節】 而邇臣比矣。”【鄭注云:“比,私相親也。”】 ○ 《周禮ㆍ夏官ㆍ形方氏》:“使大國比小國。” 此《易》所謂親諸侯也。比,豈必私相親乎?比者,並力也。


十五章 ME0215

補曰 學,謂徵之於載籍。【義見下】 思,謂研之於自心。【推究之】 罔,受欺也,【《孟子》云:“君子難罔以非其道。”】 殆,危也。不究本末,而輕信古書,則或墮於誣罔,【皇疏云:“誣罔聖人之道。”】 不稽古先,而輕信自心,則所知者危殆,【其邪正ㆍ是非末可定,故危也】 二者不可偏廢也。
包曰:“學不尋思其義,則罔然無所得。”【邢云:“旣從師學,則自思其餘蘊。若不思,則罔然無所得。”】 ○駁曰 非也。孔子曰:“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衛靈公〉】 孔子思而無益,則舍之而已。其將學之於何處乎?學,謂稽考典籍以徵先王之道,非從師受書之謂也。【李紘父云:“〈中庸〉有博學愼思之目[65]。博學者,博涉群書之謂也。若受師之謂學,則‘博學’二字不可解。”】 漢儒注經,以考古爲法,而明辨不足,故讖緯邪說,未免俱收。此學而不思之弊也。後儒說經,以窮理爲主,而考據或疎,故制度名物,有時違舛。此思而不學之咎也。○又按 罔之爲字,從网從亡,罔者,亡也。【六書之諧聲】 忽然亡失謂之罔。包所謂罔然無所得,非曰無據受書不讀,忽然忘之者?此是童穉之習,聖人所戒,豈在是乎?【〈少儀〉云:“衣服在躬,而不知其名,爲罔。” 王氏云:“學而不思則罔,當如此罔字。”】
何曰:“不學而思,徒使人精神疲殆。” ○駁曰 非也。疲怠則有之,疲殆何謂也?只憑一己之私見,不考先王之成憲,則必流而爲異學,此聖人所以危之也。
許敬菴云:“學而不思,則有冥行,思而不學,則墮玄想。” ○ 上節深中古學之病,下節深中今學之病。


十六章 ME0216

范曰:“攻,專治也。”【〈考工記〉有攻木之工ㆍ攻金之工】 ○補曰 端者,緖也。【揚子《方言》云:“緖,南楚或曰端。”】 異端,謂不纘先王之緖者也。【〈魯頌〉云:“纘太王之緒。”】 百家衆技,凡不在性命之學ㆍ經傳之敎者,皆異端。雖或有補於民生日用者,若專治此事,斯亦有害於君子之學也。【非謂楊ㆍ墨ㆍ佛ㆍ老之類】 ○也已,語辭。
邢曰:“異端,謂諸子百家之書。【侃云:“異端,謂雜書。”】 異端之書,或秕糠堯ㆍ舜,戕毀仁義。”【何云:“善道有統,故殊塗而同歸,異端不同歸也。”】 ○駁曰 非也。孔子之時,老ㆍ莊ㆍ楊ㆍ墨未立門戶,【眞西山云:“老聃ㆍ楊朱ㆍ墨翟,皆與孔子同時,特以洙ㆍ泗之敎方明,其說未得肆耳。”】 非如後世三敎鼎立,出奴入主[66],則孔子所指,非謂是也。若此異端,爲今之所謂異端,則治此事者爲亂賊,不可但曰斯害也已,擊此道者爲儒宗,不可謂之斯害也已。二者無所當矣。斯害也已者,輕輕說也,輕輕禁之,非大聲疾言以禁之也。異端,豈今之所謂異端乎?樊遲請學稼,孔子斥之爲小人。衛靈公問陳於孔子,對曰軍旅之事未嘗學。夫兵農之學,亦經世之實務,君子不可以不知,然學者專治此事,其於身心性命之學,終有些害。此夫子所以輕輕說弊,欲其旁通,不欲其專治也。所謂異端,不過如斯。
陸象山云:“孔子時,佛敎未入中國,雖有老子,其說未著,異端,何指佛ㆍ老?有人問我異端者。我對曰,‘子先理會得同的一端,則凡異此者,皆爲異端。’”
質疑 攻之爲專治,其在〈考工記〉,原有確據。楊ㆍ墨之無父無君,老ㆍ佛之慢天侮聖,罪大惡極,神人所憤,豈待專治而後有害?異端之非今之異端,明矣。○袁了凡曰:“蔡虛齋謂‘孔子時無楊ㆍ墨,異端不該指楊ㆍ墨ㆍ佛ㆍ老’,極是。”
引證 《韓詩外傳》云:“序異端,使不相悖。” ○《家語ㆍ辯政》篇云,子貢問於孔子曰:“昔者齊君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節財。魯君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諭臣。葉公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悅近而來遠。三者之問一也,而夫子應之不同。然政在異端乎?”【明 吳嘉謨所注《家語》本作‘豈爲政之道在於多端乎’】 ○《晉書ㆍ杜預傳》云:“預奏曰,‘古之刑書,銘之鍾鼎,鑄之金石,所以遠塞異端,使無淫巧也。’” ○杜預〈春秋左氏傳序〉曰:“推變例以正褒貶,簡二傳而去異端,蓋丘明之心志也。” ○范甯〈穀梁傳序〉云:“釋《穀梁傳》者,引《左氏》ㆍ《公羊》,以解此傳,文義違反,斯害也已。” ○任昉作〈王儉集序〉云:“攻乎異端,歸之正義。” ○劉勰《文心雕龍ㆍ序志》云:“周公設辨,貴乎體要,尼父陳訓,惡乎異端。” ○ 此諸文,漢ㆍ晉先儒,不以異端爲楊ㆍ墨ㆍ佛ㆍ老之類
考異 朱子〈答汪尙書書〉云:“君子反經而已,經正斯無邪慝。今惡邪說之害,正而攻之,則適所以自敝而已。” ○ 朱子於《集注》,訓攻爲專治,於此書,以攻爲攻擊,二說異也。【毛云:“攻,本攻擊之攻,不知朱子注《論語》,何以作專治解也。” ○孫奕《示兒編》云:“攻,如攻人之惡之攻。”】
明 太祖皇帝云:“攻去其異端,斯其害止此。”【已,止也】


十七章 ME0217

孔曰:“由,弟子仲由,字子路。”【《史記》云:“子路,卞人,少孔子九歲。”】 ○邢曰:“子路性剛,好以不知爲知,故此抑之。”
引證 《荀子ㆍ子道》篇,子曰:“由,志之。吾告汝。奮於言者華,奮於行者伐。夫色智而有能者小人也。故君子知之曰知之,不知曰不知,言之要也。能之曰能之,不能曰不能,行之至也。”【上文云:“子路盛服,見於孔子。子曰,‘由,是倨倨者,何也?夫江始出於岷山,其源可以濫觴,及其至于江津,不舫舟不避風,則不可以涉。非惟下流水多邪?今爾衣服旣盛,顔色充盈,天下且孰肯以非告汝乎?’ 子路趨而出,改服而入,蓋自若也。”】 ○《韓詩外傳》同。○《家語ㆍ三恕》篇云:“色智而有能者小人也。故君子知之曰知,言之要也,不能曰不能,行之至也。言要則智,行至則仁,旣仁且智,惡不足哉?”


十八章 ME0218

鄭曰:“子張,弟子顓孫師。”【《史記》云:“顓孫師,陳人,少孔子四十八歲。”】 ○鄭曰:“干,求也。” ○朱子曰:“祿,仕者之俸也。” ○補曰 聞,謂得之於師友。見,謂得之於書籍。○呂氏曰:“疑者,所未信,殆者,所未安。” ○補曰 聞未必無殆,見未必無疑。有聞而行之者,有見而言之者,皆互文也。闕,空也。【門無扉,中央闕然爲道曰闕】 ○包曰:“疑則闕之,其餘不疑,猶愼言之,則少過。” ○程子曰:“尤自外至,悔自內出。” ○補曰 言必人聞,故尤成於外,行或獨知,故悔發於內。○鄭曰:“言行如此,雖不得祿,亦得祿之道。”
정현이 말했다. “자장은 공자 제자인 전손사이다. 【사기에 이르기를, “전손사는 진 땅 사람으로, 공자보다 48세가 적다.”라고 하였다.】” ○정현이 말했다. “干은 구함이다.” ○주희가 말했다. “祿은 벼슬하는 자의 봉록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보충한다. “聞은 스승과 벗에게서 얻는 것을 이르고, 見은 서적으로부터 얻는 것을 이른다.” ○여대림이 말했다. “疑라는 것은 아직 자신하지 못하는 바이고, 殆라는 것은 아직 온당하게 여기지 못하는 바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보충한다. “듣는 것에도 온당치 못하게 여기는 바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보는 것에도 의심나는 바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듣고 이를 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보고 이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문의 내용은) 모두 호문이다. 闕은 비워놓음이다. 【문에 문짝이 없이 중앙이 텅 비어어 길이 된 것을 闕이라고 한다.】” ○포함이 말했다. “의심스러우면 이를 비워두고(제쳐두고), 그 나머지 의심스럽지 않은 것조차 오히려 삼가서 말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정자가 말했다. “尤(허물함)는 바깥으로부터 이르고 悔(뉘우침)는 안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다음과 같이 보충한다. “말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듣게 되므로 허물이 밖에서 이루어지고, 행동은 혹 자기 스스로만 알 (수 있)기에 후회가 안에서 일어난다.” ○정현이 말했다. “말과 행동이 이와 같다면, 비록 봉록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이것이) 바로 봉록을 얻는 도이다.”

質疑 君子未嘗不欲仕,特求之以道,所謂夫子之求,異乎人之求也。孔子曰:“學也祿在其中,耕也餒在其中。”【〈衛靈公〉】 ○純曰:“程子云,‘若顔ㆍ閔則無此問矣。’ 殊不知顔ㆍ閔未嘗不欲仕,特不受不義之祿耳。子張雖以此爲問,亦豈肯受不義之祿者哉?”
【질의】 군자는 벼슬하지 않고자 한 적이 없으나, 다만 구하기를 도로써 하니, (이것이) 이른 바 부자의 구함은 다른 사람의 구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배움이란 봉록이 그 가운데 있고 경작이란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다.”라고 하였다.(《논어 위령공》) ○다자이 슌다이가 말했다. “정자가 이르길, “안연과 민자건과 같은 경우라면 이런 물음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안연과 민자건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다만 불의한 봉록을 받지 않았을 뿐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자장이 비록 이것을 질문으로 삼았지만, 어찌 불의한 봉록을 기꺼이 받고자 한 자이겠는가?”


十九章 ME0219

包曰:“哀公,魯君諡。”【〈魯世家〉云:“哀公名蔣,定公之子。《諡法》,‘恭仁短折曰哀。’”】 ○補曰 服,心伏也。○朱子曰:“稱孔子對曰者,尊君也。” ○補曰 擧,擡也。【高擧之】 錯,安置也。【奠器於地也。《儀禮》云:“豆錯俎錯。”】 直,謂正人也。枉,謂不賢者也。諸,語辭。賢者在上,不賢者在下,則擧直而錯於枉也。不賢者在上,賢者在下,則擧枉而錯於直也。譬如施榘以正物,榘直而物枉,則可以正之,榘枉而物直,則不可以正之也。
包曰:“擧正直之人用之,廢置邪枉之人。”【邢云:“廢置諸邪枉之人,則民服。廢置諸正直之人,則民不服。”】 ○駁曰 非也。錯者,器物之奠地也。訓置則可,訓廢置,何據乎?諸者,語辭。《易》曰:“藉用白茅。” 孔子曰:“苟錯諸地則可矣。” 錯諸地ㆍ錯諸枉,同一文法,今也訓諸爲衆,可乎?○王應麟《考異》云:“孫季和謂,‘擧直而加之枉之上,則民服,枉固服於直也,擧枉而加之直之上,則民不服,直固非枉之所能服也。’”【若諸家解,何用二諸字?○又見《瑯琊代醉編》】
引證 〈顔淵〉篇云:“樊遲問知。子曰,‘擧直錯諸枉,能使枉者直。’ 子夏曰,‘富哉,言乎!舜有天下,選於衆,擧臯陶,不仁者遠矣,湯有天下,選於衆,擧伊尹,不仁者遠矣。’”
引證 〈繫辭〉云:“擧而錯之天下之民,謂之事業。” ○〈樂記〉云:“禮樂之道,擧而錯之天下,無難矣。” ○案 錯者,錯其所擧也。諸家以‘擧錯’二字爲對文,非矣。


二十章 ME0220

孔曰:“季康子,魯卿季孫肥。康,諡。”【《諡法》:“安樂撫民曰康。”】 ○補曰 勸,謂民自興起以進其德藝也。○包曰:“莊,嚴也。” 補曰 莊者,政令無戲慢也。○包曰:“君能上孝於親,下慈於民,則民忠矣。” ○補曰 善,賢能也。
質疑 莊ㆍ嚴,古相通。故包注,訓莊爲嚴。然端莊異於嚴猛。故《集註》改之曰:“容貌端嚴。” 然惟容貌端嚴,則又歸於色莊。色莊內荏[67],君子戒之,其義恐偏也。
包曰:“擧用善人。” ○荻曰:“善對不能,善猶能也。”【純曰:“如善射ㆍ善御ㆍ善書ㆍ善畫之善。”】 ○駁曰 包注固謬,純義亦偏也。善於德行,以敎其不能孝弟之民,未嘗非擧善,純獨以技藝言,其義亦偏也。荻說無病。


二十一章 ME0221

補曰 爲政,謂專主一國之政 。【義見下】 有政,謂庶官分掌之政 。○補曰 《書》,《逸書》。【孔壁本無之】 ○包曰:“孝乎惟孝,美大孝之辭。” ○補曰 施,延也。【音易。〈大雅〉云:“施于孫子。”】
包曰:“或人以爲,居位乃是爲政。”【又云:“所行有政道,與爲政同。”】 ○駁曰 非也。爲政者,手執政柄之謂。《春秋傳》多言爲政,如曰‘趙 宣子爲政’,【宣元年】 曰‘我死,子必爲政’。【昭二十年,鄭 子產事】 卿大夫非一人,而爲政者必上卿之長者一人而已。由是推之,凡主事者皆謂之爲政,如《左氏傳》所謂疇昔之羊,子爲政,今日之事,我爲政,【宣二年】 是也。若仕者皆得爲政,是亂其國也。【已上,純之言】 備位之仕,亦各有政。故《書》曰:“施於有政。” 蓋以爲政ㆍ有政,天淵不侔,故孔子自居有政,以當爲政 。若以備位之仕,皆名爲政,則孔子未嘗不有政,或人不當以不爲政問之也。有政者,猶《書》所云有位[68]ㆍ有土[69],明亦任職居官之名。 《集注》以爲一家之政,恐不然也
引證 《白虎通》云:“孝乎惟孝,友于兄弟。” ○潘岳〈閒居賦〉云:“孝乎惟孝,是亦拙者之爲政也。” ○夏侯湛〈昆弟誥〉云:“孝乎惟孝,友于兄弟。”【陶淵明〈卿大夫孝傳贊〉ㆍ張耒〈淮陽郡黃氏友于泉銘〉,皆有‘孝乎惟孝’句】 ○唐 王利貞〈幽州石浮圖頌〉云:“孝乎惟孝,忠爲令德。” ○宋 張齊賢〈曾子贊〉云:“孝乎惟孝,曾子稱焉。”【《太平御覽》引《論語》,亦以‘孝乎惟孝’作句】 ○毛曰:“《集註》誤以‘孝乎’作句,則未有旣出‘《書》云’,而可以攙口語二字于經文上者。”【或疑孝乎惟孝不可解,閻潛丘曰:“此與《禮》云‘禮乎禮’ㆍ《漢書》‘肆乎其肆’ㆍ韓愈‘文醇乎其醇’相同,言孝之至也。故曰美大孝之詞。”】 ○ 漢ㆍ魏ㆍ唐ㆍ宋皆於孝乎惟孝,連而不斷,則梅賾僞案,益復昭著。蕭山猶不覺悟其失,豈但攙口已哉?【梅氏〈君陳〉篇,無‘孝乎’二字[70]袁了凡云:“昭公是兄,定公是弟,季孫晏然逐其兄而立其弟,孝友之道泯,故夫子云然。”


二十二章 ME0222

包曰:“大車,牛車。【朱子云:“平地任載之車。”】 小車,駟馬車。【朱子云:“田車ㆍ兵車ㆍ乘車。”】 輗者,轅端橫木,以縛軛。【邢云:“駕牛領。”】 軏者,轅端上曲鉤衡。【邢云:“以駕兩服馬領者。”】” ○補曰 車與牛本是二物,其體各別,不相聯接。惟以輗軏固結而聯接之,然後車與牛爲一體,牛行而車亦行,所以喻信也。我與人本是二人,不以信固結之,則亦無以行。【東陽 許氏云:“輗軏是車與牛馬接處,信是己與人接處。” 此喻最切】

二十三章 ME0223

朱子曰:“王者易姓受命爲一世。【陳云:“此與三十年爲一世之世不同。”】 子張問‘自此以後十世之事可前知乎’。” ○補曰 因,仍也,襲也。【《孟子》云:“爲高必因丘陵。”】 仍遵其經禮,【禮制之大者】 少變其儀文。【禮節之小者】 其所損ㆍ所益,具在典籍,【孔子之時,夏ㆍ殷禮未盡亡】 可按而知也。禮者,一王之典章法度。○補曰 夏禮未盡善,故殷雖因之,而有所損益。殷禮猶未盡善,故周雖因之,而又有所損益。典章法度,至周而大備,盡善盡美,無可損益。有王者興,必一遵周禮,百世不變,故曰‘其或繼周者,雖百世可知也’。若王者不興,雜亂妄作,茫無定準,則其變不可知,故曰其或。其或者,未定之辭。
孔曰:“文質禮變。” ○馬曰:“所因,謂三綱五常。所損益,謂文質三統。”【邢云:“《尙書大傳》曰,‘王者一質一文,據天地之道。’”】 ○駁曰 非也。夏尙忠,殷尙質,周尙文,本出於董仲舒《春秋繁露》,【《漢書ㆍ杜歆傳》云:“殷因於夏尙質,周因於殷尙文。” 又云:“漢承周ㆍ秦之敝,宜抑文尙質。”】 而文質遞變之說,已起於伏生《書大傳》。【《白虎通》云:“王者一質一文者,何所以承天地順陰陽?陽極則陰受,陰極則陽受,明二陽二陰不能繼也。”】 漢儒論三代之治,率以是爲話柄。然其說自相予盾,不可究詰。忠也者,渾融誠確之名,【朱子云】 其爲質,無以上矣。殷何不變之以文,而疊承之以質也?一文一質,已不驗矣。聖王之得天下也,惟求第一等道理,可以久行而無弊者,爲之垂法而已,不顧吾之利害。惟一文一質,膠守定例,如一晝一夜之不得移易,有是理乎?夫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斯不獨聖人知之,夫人之所能知也。何湯與武王獨不知此,立國垂法,或則尙質,或則尙文,有若屈到之芰ㆍ曾晢之棗,不覺嗜慾之偏勝乎?漢儒謂‘周道文勝,當矯之以質’。於是毀禮廢樂,一遵秦轍,使堯ㆍ舜ㆍ三王之治不復於斯世,皆文質之說,有以誤之也。孔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八佾〉篇】 孔子不以文爲病,確言從周,何漢儒獨以是病之也?周人之禮,斟酌二代,損益修潤,傳之百世,行之無弊。故孔子論王道則曰:“吾從周。” 論來世則曰:“其或繼周者,雖百世可知。” 若代周而興者,又須損益變改,而後可以爲國,則一世之事尙難前知,況於百世乎?〈檀弓〉云:“殷旣封而弔,周反哭而弔。孔子曰,‘殷已愨,吾從周。’” 〈中庸〉云:“吾說夏禮,杞不足徵也,吾學殷禮,有宋存焉,吾學周禮,今用之,吾從周。” 孔子屢言從周,爲其行之百世而無弊也。何乃欲無故而紛更之乎?此二千年來斯文之巨蔀也。○又按 三綱五常是人倫,非邦禮,馬氏以此而當禮,不亦拗乎?或損質益文,或損文益質,則文質之謂損益,可也。所謂三統,有革無沿,何以謂之損益也?
引證 〈大傳〉曰:“立權ㆍ度ㆍ量,考文章改正朔,易服色殊徽號,異器械別衣服,此其所得與民變革者也。其不可得變革者則有矣。親親也,尊尊也,長長也,男女有別,此其不可得與民變革者也。” ○ 註疏諸家所據,皆此文也。然經云‘所損益可知’,而若據此文,則其所不損益可知,其所損益不可知也。豈可引之以爲釋乎?
質疑 《集注》云:“五常謂仁義禮智信。” ○袁了凡云:“禮不是言三綱五常。君臣父子夫婦,乃生人大倫。仁義禮智信,乃人生本性,如何說得做禮?所損益亦不是三統,寅丑子之建,乃天時一定,如何說得做損益?止文質之說近之。”【純云:“按〈泰誓〉云‘狎侮五常’,五常字始見於此。孔傳云,‘輕狎五常之敎,侮慢不行。’ 〈舜典〉云,‘愼徽五典。’ 孔傳云,‘五典,五常之敎,父義ㆍ母慈ㆍ兄友ㆍ弟恭ㆍ子孝。’ 然則五常即五典也。自班固謂仁義禮智信爲五常,邢疏ㆍ朱注皆依之,蓋非古訓也。”】 ○ 袁說明確,但以文質爲近之,則仍於經旨無所悟也。
吳無障曰:“夫子此時,欲損周之文,益以夏ㆍ商之忠質,此大主意也。”【郭靑螺同意】 ○駁曰 非也。孔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孔子滿口贊歎,質言從周,而誣之曰‘孔子欲損周之文’,不亦武乎?能知周禮之美者,雖百王代興,必無損益,故孔子自信其百世可知。若損益變改如雲霞之起滅,則明日之事,猶不可知,況於百世乎?
引證 〈禮器〉曰:“三代之禮一也。民共由之,或素或靑,夏造殷因。”【此下論立尸ㆍ坐尸之禮】
引證 《史記》,叔孫通曰:“夏ㆍ殷ㆍ周之禮,所因損益可知者,謂不相復也。” ○ 不相復,則無可知之道。孔子何以謂之百世可知也?


二十四章 ME0224

朱子曰:“非其鬼,謂非其所當祭之鬼。【又云:“如天子祭天地,諸侯祭山川,大夫祭五祀,庶人祭其先。上得以兼乎下,下不得以兼上也。”】 諂,求媚也。”
鄭曰:“人神曰鬼。【邢云:“大宗伯掌天神ㆍ地示ㆍ人鬼之禮[71]。”】 非其祖考而祭之者,是諂求福。” ○毛曰:“《左傳》曰,‘神不歆非類,民不祀非族。’【狐突語】 正指人鬼。【如漢祀欒公[72],吳祀蔣侯[73],蜀祀武安王類】 故衛成公遷都帝丘,欲祀夏相,【啓之孫】 甯武子止之曰,‘不可。杞ㆍ鄫何事?’【僖三十一年】 又鄭伯請釋泰山之祀而祀周公,【隱七年】 皆願祀他鬼之證。〈祭法〉,‘人死曰鬼。’ 官師以王父爲鬼,庶人父死即爲鬼。若謂非鬼,即天地ㆍ山川之祭,如季氏旅泰山類,【見小注】 則未聞天神稱天鬼,泰山神稱泰山之鬼。” ○駁曰 非也。天神ㆍ地示ㆍ人鬼,其名雖別,字得相通,故神字從示。《中庸》贊鬼神之德,明指郊禮[74],則天神有時乎稱鬼。周禮五祀,明屬地示,而〈晉語〉史嚚之言,乃以蓐收謂之天神。【魏獻子以蓐收爲五祀之神】 《楚辭ㆍ九歌》有山鬼,《關尹子》有土鬼,魑魅魍魎本是山林之怪,而字皆從鬼。即孔子敬鬼神而遠之,不應祖考亦在所遠。鄭公偏執〈大宗伯〉一文以注此經,原屬拗曲,乃蕭山從而實之,豈不謬哉?甯武ㆍ狐突皆云‘神不歆非類’,然魯展禽之言曰‘有虞氏郊堯’,【見〈魯語〉】 〈祭法〉云有虞氏郊嚳而宗堯,周禮並祀五帝。【堯ㆍ嚳之於虞人,五帝之於周人,非祖考】 殷湯以前,祀柱爲稷,殷湯以後,祀棄爲稷,歷世不變,至今遵之,豈必祖考而後,乃在祀典?重ㆍ該ㆍ修ㆍ熙,少皥之四叔也,黎與句龍ㆍ顓頊,共工之子也,列爲五祀,三代共之。【見昭二十九年,魏獻子之言】 若非其祖考,而不敢祭鬼,則三代聖王皆謟矣。甯武ㆍ狐突之言,蓋謂無功無德,不在祀典,非族非類,無所感召,則不可以祀之也。豈謂非祖不祭,如鄭公之義哉?總之,王公大夫,各有祭典,祭典所許,是其鬼也,祭典所禁,非其鬼也。《集注》,何可易矣?
引證 〈曲禮〉曰:“非其所祭而祭之,名曰淫祀。淫祀無福。”【鄭云:“妄祭神不饗。”】 ○ 〈曲禮〉所言,非專指人鬼。


「八佾」 ME03


一章 ME0301

補曰 季氏,公子季友之後也。【桓公庶子三人,長曰慶父,次曰牙,次曰友】 ○朱子曰:“佾,舞列也。” ○馬曰:“天子八佾,諸侯六,卿ㆍ大夫四,士二[75]。【隱五年《左傳》文】 八人爲列,八八六十四人。” ○朱子曰:“此事尙忍爲之,則何事不可忍爲?”
馬曰:“魯以周公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季桓子僭於其家廟舞之。” ○毛曰:“予作《大小宗通繹》,得解此書。蓋魯爲宗國,以周公爲武王母弟,得稱別子[76],爲文王之宗。《禮》,‘別子立宗,當祀別子所自出。’【見〈大傳〉】 因立文王廟于魯,【見《史記》】 爲周公之所自出,名出王廟。【見《左傳》】 夫祭文王而可以不用天子禮樂也乎?其用天子禮樂者,以出王故,其祭出王者,以宗子故也。三桓爲魯桓公子,季友以適子而爲宗卿,亦得祭所自出,而立桓公一廟。漢儒不解,有謂公廟設于私家者。【〈郊特牲〉】 此正三桓所自出之廟,以三桓並桓出,故稱三家之堂,以季氏爲大宗,故又獨稱季氏。其所以用天子禮樂者,以桓公故,而桓公得用之者,以文王用之,而群公以下皆相沿用之。” ○駁曰 毛說半是半非也。其云‘三家之僭,由於祭桓’,可也。其云‘魯公之僭,由祭文王’,未必然也。蕭山於大小宗之學,自以爲發前人之所未發,而稽之經典,左乖右舛,一不相合。其言曰:“慶父ㆍ叔牙妾出,故年雖長,而不得爲大宗,季友嫡出,故序雖末,而得爲大宗,爲三家之所共宗。” 其言似是,實則非也。〈大傳〉曰:“有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 此謂公子,雖有多人,各自爲宗,不相統攝,故公子之子ㆍ公子之孫,得以其後公子者,奉之爲宗。而當公子之身,貴不相降,無可爲宗,故曰‘無宗亦莫之宗者,公子是也’。特用鄭玄誤注〈大傳〉,此義不明。【詳見余《禮箋》[77] 然不必據經,直以事理推究之,亦其說立破,何也?公子有三人,其一嫡二庶,如三桓者,立其嫡爲大宗,如蕭山之說可也。若三人皆庶,則孰爲大宗?其將曰立長乎,則庶固有大宗者矣。《禮》曰:“爲人後者,後大宗也。” 先儒謂‘小宗無後當絶’[78],則孟孫ㆍ叔孫皆無後,當絶。仲嬰齊ㆍ叔孫豹又何爲紛然立後乎?庶固有大宗者矣,何況天子之子?各受其封,各自爲國,立一大宗,使自統率,則凡諸侯多小宗也。國君猶不得爲大宗,有是理乎?且其說有必不可通者,周旣以周公適子,立之爲大宗,及至隱公之世,妾子承統,蔡ㆍ衛ㆍ曹ㆍ滕,其肯尊之爲大宗乎?魯以季友爲適子,立之爲大宗,及至悼子之世,【季孫叔之庶子紇】 妾子承統,孟孫ㆍ叔孫,其肯尊之爲大宗乎?貴嫡賤庶,旣若是其已甚,則庶之承嫡,猶奉爲宗,無是理矣。滕人曰:“吾宗國魯先君。”【見《孟子》[79]】 蕭山據此,謂諸姬以魯爲宗。然同姓之國,皆稱爲宗,故滕ㆍ薛爭長,公使羽父請曰:“周之宗盟,異姓爲後。”【隱十一】 同姓之盟,謂之宗盟,則同姓之國,豈非宗國乎?【〈晉語〉,舟之僑以虞爲宗國】 至於出王之廟,國國有之,故衛莊公禱于祖曰‘敢昭告于皇祖文王’,【見〈晉語〉】 衛亦有文王廟矣。鄭祭厲王,夔祀鬻熊,【僖廿六】 鄫祭夏 相,【僖三十一】 豈必此輩盡屬嫡出?天子之子,雖不分封,但有采邑,祭其出王,故《周禮》,都宗人祭其祖王,致福于國。鄭注云:“王子弟立其祖王之廟。” 祖王者,出王也。何必嫡出,而後方立出王之廟乎?至漢,猶有此義,漢法,諸侯王各於其國立帝廟。【見《漢書》】 其非嫡出者,未嘗禁也。蔡ㆍ衛ㆍ曹ㆍ滕,旣宗大周,退又宗魯,則是二天子也。孟孫ㆍ叔孫,旣宗公室,又宗季氏,則是二國君也。亂天下者,非此法乎?三桓之家,各有桓廟,皆以〈雍〉徹,故曰 ‘三家者以〈雍〉徹’。若惟季氏祭桓,則書之曰‘三家者以〈雍〉徹’,有是理乎?特以季氏之僭甲於三家,旣以〈雍〉徹,又八其佾,故孔子先誅其所獨,後譏其所同。今乃以季氏爲三家,三家爲季氏,混同汨亂,無所區別,可乎?然所謂佾舞ㆍ〈雍〉徹,又非特祭桓用之,仲慶ㆍ叔牙ㆍ季友之祭,亦皆用之,故孔子之言慘怛如此。若惟祭桓用之,則三家之罪無所浮於魯君矣。孔子之義本諱國惡,焉敢曰‘是可忍,孰不可忍’?成王令魯祭周公以天子之禮,故魯人於其群公之廟,僭用八佾,群公之廟,僭用八佾,故季氏於桓公之廟,亦用八佾,而遂以是舞舞於季友之庭。蕭山之說,豈不半是而半非乎?其云三家之僭由祭出公,可也。其云魯邦之僭由祭文王,非也。
邢云:“經但云季氏,馬知是桓子者,以孔子與桓子同時。” ○駁曰 非也。季氏之僭,不自桓子始也。昭二十五年《左傳》云:“秋,將禘於襄公,〈萬〉者二人,【舞於公者,只二人】 其衆〈萬〉[80]於季氏。【舞工皆往季氏家】” 子家駒之論八佾,亦在是年,昭公之孫于齊,亦在是年,【孔子亦於是年適齊】 當是年者,季平子也。【即季孫意如】 孔子之歎,明在是年,豈可以桓子當之乎?【桓子即平子之子季孫斯】
邢曰:“諸侯用六者,六六三十六人,大夫四者,四四十六人,士二者,二二四人。【杜預ㆍ何休說如此】 服虔以用六爲六八四十八人,大夫四爲四八三十二人,士二爲二八十六人。今以舞勢宜方,行列旣減,即每行人數亦宜減,故同何ㆍ杜之說。” ○駁曰 非也。魯衆仲之言曰:“舞者,所以節八音而行八風。”【隱五年】 不以八列,無以應八音。故六者,六八也,四者,四八也,二者,二八也。鄭人以女樂二八賂晉侯,非其驗乎?〈招魂賦〉云:“二八侍宿,射遞代些。” 又云:“二八齊容,起鄭舞些。” 二二四人,何以舞矣?
邢曰:“人之僭禮,皆當罪責,不可容忍。季氏以陪臣僭天子,最難容忍。故曰‘是可容忍,他人更誰不可忍也’?” ○駁曰 非也。章首曰‘孔子謂季氏’,明所怪者季氏心術,非人之所忍爲也。若如邢說,當云子曰。
引證 《公羊傳》曰:“昭公將弑季氏,告子家駒曰,‘季氏爲無道,僭於公室,久矣。吾欲弑之,何如?’ 子家駒曰,‘諸侯僭於天子,大夫僭於諸侯,久矣。’ 昭公曰,‘吾何僭矣哉?’ 子家駒曰,‘設兩觀乘大路,朱干ㆍ玉戚以舞〈大夏〉,八佾以舞〈大武〉,此皆天子之禮也。’”【昭二十五年】 ○ 魯以八佾舞於諸公之廟,故謂之僭天子。由是推之,季氏八佾之舞,明在季友之庭,豈但桓公廟哉?
引證 〈祭統〉曰:“昔者周公有勳勞於天下,周公旣沒,成王ㆍ康王追念周公而欲尊魯。故賜之以重祭。【節】 朱干ㆍ玉戚以舞〈大武〉,八佾以舞〈大夏〉,此天子之樂也。康周公,故以賜魯也。” ○ 此漢儒之所作也。若成王賜之,則子家駒何以咎公室乎?非矣。【成王旣賜,則康王無更賜之理。〈祭統〉乃云‘成ㆍ康賜之’,其言之無所據,可知也】
引證 《晉書》云:“庾亮欲黜王導,謀之郗鑒。鑒不從。亮啓鑒曰,‘是而可忍,孰不可忍?’”【又崇德大后,廢帝爲東海王,其詔亦云:“是而可忍,孰不可懷?”】 ○《隋書》,煬帝征高句麗,詔曰:“擁塞道路,拒絶王人,無事君之心,豈爲臣之禮?此而可忍,孰不可容?” ○《明史》,正德間,司空張巓,以三關良民倚宦官作盜,上封事曰:“是可隱忍不發,則誰當發者?” ○ 此說久有師承,然謬矣。


二章 ME0302

馬曰:“三家,謂仲孫ㆍ叔孫ㆍ季孫。” ○朱子曰:“〈雍〉,〈周頌〉篇名。” ○補曰 徹,祭畢而去器也。《周禮》云:“卒食,以樂徹。”【〈天官ㆍ膳夫〉文】 ○朱子曰:“天子宗廟之祭,歌〈雍〉以徹,是時三家,僭而用之。相,助也。辟公,諸侯也。” ○包曰:“穆穆,天子之容貌。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邢云:“《周禮ㆍ樂師》云,‘及徹,帥學士而歌徹。’ 鄭玄云,‘徹者,歌〈雍〉。’ 又〈小師〉云,‘徹歌。’ 鄭云,‘於有司徹而歌〈雍〉。’ 是知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也。”】
毛曰:“季氏是宗卿,爲大宗所自出,亦立桓公一廟,名出公廟,遂于祭桓公時,亦歌此詩。蓋但知祭所自出,而不知所出之有不同也。”【又云:“慶父ㆍ叔牙一酖一縊,皆季友一人所爲。季文ㆍ季武,何人肯以成季與共仲ㆍ僖叔並坐而擬三天子?亦必無之事。”】 ○駁曰 非也。若三家共一廟,以奉桓公,則謂其廟曰‘三家之堂’,猶之可也。先叙其事曰‘三家者以〈雍〉徹’,非文例也。且佾舞ㆍ〈雍〉徹,其事相同,而於佾則專責季氏,於〈雍〉則並擧三家,筆法乎,變例乎?斯皆求其說而不得,胡乃堅執乖拗之論,重言複說,不知止乎?始云‘妾子不得立出公廟’,猶恐其說之不立,終又云‘慶父ㆍ叔牙一酖一縊,不得有廟’,【見毛氏他說】 此又麤豪強觜,非多學人之言也。據《左傳》,成季使鍼季酖之,曰:“飮此,則有後於魯國。不然,死且無後。” 飮之,歸及逵泉而卒,立叔孫氏。【莊末年】 閔公旣弑,共仲乃縊。然季子推親親之恩,欲同之叔牙,存孟氏之族,故略其罪,不書殺。慶父子孫終爲孟氏。【閔二年孔疏】 故公孫敖得嗣爲世卿,【即穆伯】 公孫敖旣卒,魯人立文伯,【公孫敖之子穀】 傳于惠叔,【文伯之弟難】 以傳于仲孫蔑。【文十四】 兩家子孫,嗣位世爵,繩繩不絶,具在史冊。夫惟慶父ㆍ叔牙有廟有家,而後孟孫ㆍ叔孫得爲世卿,今乃曰‘一酖一縊,不得立廟’,可乎?公孫敖之歸葬也,魯固不許以卿禮葬矣,孟孫之以〈雍〉徹也,亦豈必魯人許之乎?【毛云:“卿葬且不許,許其作天子祭耶?”】 斯皆無理雜話,不足辨也。若惟桓公之祭,纔以〈雍〉徹,而慶父ㆍ叔牙ㆍ季友之祭,不敢用之,則雖亦竊禮而不中,孔子必不至譏罵如此。
引證 〈郊特牲〉曰:“諸侯不敢祖天子,大夫不敢祖諸侯,而公廟之設於私家,非禮也。由三桓始也。” ○ 公族之祭出公,不獨三桓然也。孔悝有出公之祏,【見《左傳》】 子期有平王之祀,【祭出王也。見〈楚語〉】 人皆然也。魯有周廟,而疑三家之有桓廟,可乎?〈郊特牲〉,非信文也。
質疑 成王令以天子之禮祭周公,未嘗以天子之禮賜魯邦。【《呂氏春秋》云:“魯 惠公使宰讓請郊廟之禮樂于周,周 平王使史角往賜之。”】 楊升菴作〈魯之郊禘辯〉,其言明核,不可易也。【見余《春秋說》】 ○又按 無知妄作者,愚夫ㆍ愚婦之謂也。三家之罪,豈可曰無知妄作乎?孔子之言,慘怛嚴峻,無所恕也。
引證 子曰:“兩君相見,【節】 客出以〈雍〉,徹以〈振羽〉。”【見〈仲尼燕居〉。疏云:“客出,歌〈雍〉詩,徹器,歌〈振鷺〉之詩。”】 ○ 古人用樂,雖天子之詩,或爲諸侯之用,此三家之所以僭也。


三章 ME0303

補曰 仁者,人倫之成德。仁爲之本,而禮樂由之以生。【〈儒行〉云:“禮節者,仁之貌也。歌樂者,仁之和也。[81]”】 不仁則其本亡矣,【孟子以孝弟爲仁義,曰:“禮之實,節文斯二者。樂之實,樂斯二者。”[82]】 奈此禮樂何?○邢曰:“如,奈也。”
包曰:“言人而不仁,必不能行禮樂。”【邢云:“禮樂資仁而行。” 】 ○ 仁者,忠孝之成名。禮自履此而生,樂自樂此而生,仁爲之質,而禮樂爲之文也。【曾子曰:“仁者,仁此者也。禮者,履此者也。樂自順此生,刑自反此作。”[83]】 如季氏者,躬蹈不仁,猶欲行禮而奏樂,以成其文,而可得乎?【謂旅泰山,舞佾,歌〈雍〉類】 如此何者,末如之何也。謂不仁者之於禮樂,雖欲襲而取之,末如之何也。【文例如桓魋其如予何[84]


四章 ME0304

鄭曰:“林放,魯人。” ○補曰 本,謂制作之本意也。禮,通指吉凶也。喪,專指凶禮也。○包曰:“易,和也。” ○補曰 禮本何爲而作也?民生有欲,不以禮節之,則奢侈亡度,故權於奢儉之中,爲之禮。邪淫之人,朝死而夕忘之,故權於易戚之中,爲之喪禮。【使不肖者企而及之】 過儉過戚,雖亦不中,制禮者之本意,在此而不在彼也。故曰‘得中則大善,如不得中,寧儉寧戚’。○ 林放問禮,亦以三家僭禮而發。蓋佾舞ㆍ〈雍〉徹,皆禮也。三家惟知盛禮以尊祖,不知制禮之本意,此林放之所以問也。季氏之佾舞ㆍ〈雍〉徹,皆由於不能抑奢,此孔子之所以答也。附言喪禮者,以此喻彼,非雙言之也
정현: 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 보충: '본'은 (예를) 제작한 본뜻을 이른다. '예'는 길례와 흉례를 통틀어 가리키고, '상'은 흉례만을 전적으로 가리킨다.
포함: '이'는 화락함이다. 보충: 예는 본래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가? 사람이 살아감에 욕심이 있으므로 예로써 이를 절제하지 않으면 사치하여 법도를 잃게 된다. 때문에 사치와 검소의 중도를 저울질하여 예를 만든 것이다; 간사하고 음탕한 사람은 (부모가) 아침에 돌아가셔도 저녁이면 이를 잊어버린다. 때문에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짐과 슬퍼함의 중도를 저울질하여 상례를 만든 것이다. [불초한 자로 하여금 발돋움하여 미치도록 한 것이다] 지나치게 검소함과 지나치게 슬퍼함은 비록 역시 중도에 맞지 않지만, 예를 제작한 자의 본뜻은 여기(儉戚)에 있지 저기(奢易)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중도를 얻는다면 가장 훌륭하고, 만일 중도를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검소하고 차라리 슬퍼한다.'라고 한 것이다.
내 생각에, 임방이 예를 물은 것은 역시 삼가가 예를 참람하였기에 (이러한 물음이) 나온 것이다. 대개 팔일무와 '옹'을 연주하면서 철상하는 것은 모두 예이다. 삼가는 오직 예를 성대히 하여 조상을 높이는 것만 알고, 예를 제작한 본뜻은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임방이 질문한 까닭이다. 계씨가 팔일무를 추고 '옹'으로 철상한 것은 모두 사치를 억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니, 이것이 공자께서 답하신 바이다. 사예를 덧붙여 말한 것은 이것으로 저것을 비유한 것이지, 쌍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質疑 奢與易,未必爲文。儉與戚,未必爲質。惟制禮者之本意,憂在奢ㆍ易,而不在儉ㆍ戚,故夫子明之。且林放問禮之本,非問禮之質也。況周之方衰,禮壞樂崩,憂在文滅,不在文勝。又從而抑其文,則文無遺矣,豈聖人之志乎?
질의: '사'와 '이'는 꼭 '문'이 되는 것은 아니며, '검'과 '척'은 꼭 '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제작한 자의 본뜻은, 근심하는 바가 '사'와 '이'에 있지 '검'과 '척'에 있지 않다. 때문에 공자께서 이를 밝히신 것이다. 또한 임방이 예의 '본'을 물은 것은 예의 '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하물며 주나라가 바야흐로 쇠퇴하여 예와 악이 붕괴하였으니, 근심은 '문'이 사라지는 데 있었지 '문'이 우세해지는 데 있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이어서 '문'을 억제한다면 '문'은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어찌 성인의 뜻이었겠는가?

引證 《易》曰:“山上有雷,小過。君子以行過乎恭,喪過乎哀,用過乎儉。” ○ 過乎哀,過乎儉,未嘗非過。是故曰與曰寧。寧也者,執兩非而擇其輕之辭。
인증: 《주역》에서 "산 위에 우레가 치는 것이 '소과'이다. 군자는 이로써 행동은 공손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상례는 슬퍼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씀씀이는 검소함에서 지나치게 한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슬퍼함에서 지나치게 하고, 검소함에서 지나치게 하는 것도 '지나침'이 아닌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보다는'이라고 하시고, '차라리'라고 하신 것이니, '차라리'라는 것은 두 가지 잘못된 것을 가지고서 그 중에 덜한 것을 고르는 말이다.

引證 子路曰:“吾聞諸夫子,喪禮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祭禮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檀弓〉文】 ○ 子路之言,別是一義。非此經之所宜引,范氏誤引之。【楊氏引汙尊抔飮,亦非此經之本旨】
인증: 자로가 말하길, "내가 선생님께 들으니, 상례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는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남음이 있는 것이 나으며; 제례는 공경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는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공경이 남음이 있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예기 단궁의 문장이다] 내 생각에, 자로의 말은 별도로 하나의 의미이니 이 경문에 마땅히 끌어다 붙여야 하는 바는 아니다. 범씨(범조우)가 잘못 가져온 것이다. [양씨(양시)는 '와준부음(웅덩이를 동이로 삼고 손으로 물을 떠마신다)'을 인용하였는데, 역시 이 경문의 본뜻이 아니다]


五章 ME0305

包曰:“諸夏,中國。【公牧云:“中國之稱諸夏,猶外夷之稱諸夷。”】 亡,無也。” ○補曰 夷狄,謂用夷狄之道也。諸夏,謂用諸夏之法也。君不君,臣不臣,是亦夷狄而已。安於夷狄,而苟保君位,不若遵先王之法,修華夏之禮,而不保其君位也。昭公二十五年,祭于襄公,舞列不備,【只二人】 而舞工盡赴季氏,以舞〈大武〉。【衆〈萬〉于季氏[85]】 昭公怒,欲誅季氏,【議於子家駒】 事敗,公奔齊,【見《左傳》】 孔子亦適齊。【見《史記》】 魯遂無君,國人皆咎昭公。孔子明其不然曰:“與其君不君臣不臣,安於夷狄,而苟保君位,不若誅亂討賊,以修諸夏之法,而失其君位也。” 其在國人,與其安此賊而有君,反不若明此義而無君也。○紘父云:“是篇自首章至此章,以及下章,皆孔子在齊,論季氏之罪者。”
포함: '제하'는 중국이다. [公牧(尹鍾心)이 이르길, "'중국'을 '제하'라고 칭하는 것은 '외이'를 '제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무'는 없다이다.
보충: '이적'은 이적의 도를 사용함을 가리키고, '제하'는 제하의 법을 사용함을 가리킨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이는 또한 '이적'일 따름이다. 이적(의 도)를 편안하게 여기면서 구차하게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선왕의 법을 준수하고 화하(중국)의 예를 닦으면서 군주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는 것만 못하다. 소공 25년에, 양공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춤추는 대열을 갖추지 못하였으니, [2명뿐이었다.] 무공들이 모두 계씨에게 가서 〈大武〉를 추었다. [무리가 계씨에게서 춤을 추었다] 소공이 노하여 계씨를 죽이려 하였는데, [子家駒에게 의논하였다] 일이 실패하자 소공이 제나라로 달아났으니, [《좌전》에 보인다 (소공27년)] 공자 또한 제나라로 갔다. [《사기》에 보인다 (공자세가)] 노나라가 마침내 군주게 없게 되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소공을 허물하였다. 공자가 그렇지 않음을 밝히며 말하길,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서 이적의 도를 편안히 여기며 구차히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난신적자를 벌하여 제하의 법을 닦다가 군주 자리를 잏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난신적자들을 편안히 여기며 군주가 있는 것은 도리어 이런 의리를 밝히고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한 것이다.
紘父(李綱會): 이 편은 첫 장에서부터 이 장 및 다음 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자가 제나라에 있으면서 계씨의 죄를 논한 것이다.

邢曰:“夷狄雖有君長,而無禮義,中國雖偶無君,若周ㆍ召共和之年[86],而禮義不廢。故曰‘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 ○駁曰 非也。孔子欲居九夷,夷狄非其所賤。況罪累不明,而無故斥之曰‘汝之有君,不如我之亡君’,豈有味之言乎?周ㆍ召共和,此是千百年僅一有之事。孔子據此以自多,有是理乎?
형병: 이적은 비록 군장이 있기는 하더라도 예의가 없고, 중국은 비록 우연히 마치 주공ㆍ소공이 공화 정치를 하던 때처럼 군주가 없기는 하더라도 예의가 폐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적이 군주가 있는 것은 제하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반박: 아니다. 공자는 구이에 거하고자 하였으니, 이적은 천하게 여기신 바가 아니다. 하물며 죄가 분명하지 않은데 무고하게 배척하여 말하기를, '너희가 군주가 있는 것은 우리가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어찌 의미 있는 말이겠는가? 주공ㆍ소공의 공화 정치는, 이는 천 년 백 년에 겨우 한 번 있었던 일인데, 공자가 이에 근거하여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신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質疑 程子曰:“夷狄有君長,不如諸夏之僭亂,無上下之分。” ○ 《史記》云:“刺繡文,不如倚市門。” 不如者,抑此美而羨彼醜之辭也。古人云:“不義之富貴,不如守道之貧賤。” 此經文例,正亦如此。若云‘夷狄之美,勝於諸夏之醜’,則不應以不如爲言。
질의: 정자가 말하길, “이적조차도 군장이 있으니, 제하가 참란하여 도리어 상하의 구분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史記》에 이르길, "수를 놓는 것이 시장에 의지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不如'라는 것은 아름다운 이쪽을 억누르고 못난 저쪽을 부러워하는 말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의롭지 못하게 부귀한 것은 도를 지키면서 빈천함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이 경문의 문법은 바로 이와 같다. 만일 "이적의 아름다움이 제하의 못남보다 낫다."는 말이었다면, '불여'를 가지고 말해서는 안 된다.
王充《論衡》云:“此言夷狄之難ㆍ諸夏之易也。” ○駁曰 非也。不知何說。
왕충의 《論衡》: 이 말은 이적에서의 어려움과 제하에서의 쉬움을 말한 것이다.
반박: 아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皇明大政紀》云:“高皇帝曰,‘夷狄,禽獸也,無仁義禮智之道。孔子蓋謂中國雖無君長,人亦知有禮義,勝於夷狄之有君長者。宋儒乃謂中國之人不如夷狄,謬矣。’”
《皇明大政紀》: 고황제가 이르길, '이적은 금수이니, 인의예지의 도가 없다. 공자는 대개 중국은 비록 군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또한 예의가 있음을 알기에 이적이 군장이 있는 경우보다 낫다고 하신 것인데, 송유들이 도리어 중국인이 이적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잘못되었다.'라고 하였다.
陸聚岡云:“夷狄有君,只是各部落有所約束號令,不要說得太好。諸夏之亡,指當時臣之僭上。言亡者,有而若亡也。” ○駁曰 非也。
陸聚岡(陸伯明): 이적에게 임금이 있다는 것은 그저 각 부락에 약속과 호령이 있는 것이니, 너무 대단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제하에 임금이 없다는 것은 당시 신하들이 윗사람을 참람한 것을 가리킨 것이니, 없다고 말한 것은 있지만 없는 듯하다는 말이다.


六章 ME0306

馬曰:“旅,祭名。”【邢云:“《周禮》,‘國有大故,則旅上帝及四望。’ 鄭注云,‘故,謂凶災。旅,陳也,陳其祭事以祈焉,禮不如祀之備也。’”】 ○補曰 旅者,陳告也,如今之告由祭。【《書》云:“蔡ㆍ蒙旅平。” 又云:“九山刊旅。”】 ○馬曰:“禮,諸侯祭山川在其封內者。今陪臣祭泰山,非禮也。【邢云:“陪,重也。”】 冉有,弟子冉求,【《史記》云:“冉求字子有,少孔子二十九歲。” 鄭玄曰:“魯人。”】 時仕於季氏。” ○朱子曰:“救,謂救其陷於僭竊之罪。” ○包曰:“神不享非禮。林放尙知問禮,泰山之神反不如林放邪?欲誣而祭之。”
마융: '旅'는 제사 이름이다. [형병: 《周禮》에서는 '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上帝 및 四望(五嶽, 四鎭, 四瀆)에게 旅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정현주에서는 '故는 흉재를 가리키고, 旅는 진설하는 것이다. 제사를 진설하여 비는 것인데, 사(祀)처럼 예가 갖추어지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보충: '旅'라는 것은 진설하여 아뢰는 것이니, 지금의 告由祭와 같다. [《書》에 이르기를, '蔡ㆍ蒙旅平'이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九山刊旅'라고 하였다.] ○마융: '禮'에 제후는 봉토 내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법인데, 지금 배신이 태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형병: '陪'는 '거듭'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 염구인데, [《史記》에 이르기를, '염구는 자는 자유이며, 공자보다 29세가 어렸다.'라고 하엿고, 정현은 '노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계씨에게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주자: '救'는 참람되이 훔치는 죄에 빠지는 것을 구한다는 말이다. ○포함: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는다. 임방도 오히려 예를 물을 줄 알았는데, 태산의 신이 도리어 임방만도 못하겠는가? 속여서 제사지내고자 한 것이다.

補曰 曾謂泰山不如林放者,言季氏視泰山太輕也。【純云:“謂者,季氏謂也。”】 ○ 旅,亦禮也。有事而旅於山,其志欲行禮也。僭其君而行其禮,豈制禮之本意乎?林放於禮,猶求其本,泰山之神反不如乎?《周禮ㆍ大宗伯》云:“國有大故,則旅上帝及四望。” 是時魯邦別無大故,【冉子仕季氏,在定公十年以後】 惟墮費逐不狃,係季氏家大事,豈足以旅于望乎?大非禮也。
보충: '태산이 임방만 못하다는 것인가'라는 것은 계씨가 태산을 너무 경시하였다는 말이다. [다자이 슌다이: '謂'라는 것은 계씨가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旅제사 또한 예이다. 일이 있어 산에 旅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 뜻이 예를 행하려는 것이다. 그 군주를 참람하여 그 예를 행한다면 어찌 예를 제정한 본뜻이겠는가? 임방은 예에 있어 오히려 그 근본을구하였는데 태산의 신이 도리어 그보다 못하겠는가? 《周禮ㆍ大宗伯》에 이르기를, "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上帝 및 四望(五嶽, 四鎭, 四瀆)에게 旅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이 때에 노나라는 별달리 大故가 없었고, [염구가 계씨에게 벼슬한 것은 정공 10년 이후이다.] 다만 비읍을 함락하여 公山弗狃를 쫓아낸 것은 계씨 집안과만 관계된 대사이니,[87] 어찌 사망에 旅제사를 지내기에 충분하겠는가? 크게 예가 아닌 것이다.

荻云:“魯有大故,當旅泰山,而魯君有疾若他故,不能親臨,使季孫攝主。於是季孫侈其禮物,故孔子非其奢也。” ○駁曰 非也。禮物豐薄,緦ㆍ小功之察也。以陪臣而祭山川,告其私故,非奢乎?若攝則非僭矣。
오규 소라이: 노나라에 大故가 생기면 마땅히 태산에 旅제사를 지내야 하고, 노나라 군주에게 질병 및 다른 변고가 있어 직접 임할 수 없으면 계손씨로 하여금 대신하여 주관하게 한 것이다. 이에 계손씨가 예물을 사치스럽게 하였으므로, 공자께서 그 사치스러움을 잘못이라 여긴 것이다. ○반박: 아니다. 예물의 풍성함과 소박함은 (상복에 있어서) 緦麻인지 小功인지에서 드러나는 문제이니, 배신으로서 산천에 제사지내면서 사사로운 변고를 고유하는 것이 사치가 아니겠는가마는, 만일 대신 주관한 것에 해당한다면 참람은 아닐 것이다.

揚子《方言》云:“曾,何也。湘ㆍ潭之原,荊之南鄙,謂何爲曾。” ○ 曾者,舒辭。在有意無意之間,《方言》未必與此經合。
양웅의 《方言》: '曾'은 '어찌'이다. 湘水ㆍ潭水의 原濕 지대와 荊 땅 남쪽 변방에서는 '何'를 일러 '曾'이라고 하였다. ○내 생각에, '曾'이라는 것은 어조사이니 뜻이 있는 것과 뜻이 없는 것의 중간에 있어 《方言》이 꼭 이 경문과 합치된다고 할 수는 없다.


七章 ME0307

朱子曰:“揖讓而升者,〈大射〉之禮,耦進三揖而後升堂也。”【邢云:“〈大射〉云,‘耦進竝行,當階揖,及階揖,升堂揖。’”】 ○補曰 下,謂不勝也。凡軍事,勝曰下之。【〈樂毅傳〉云:“下齊七十餘城,惟莒ㆍ即墨未下。” 〈項羽本紀〉云:“外黃未下。”】 射禮,不勝者飮酒,是下而飮也。爭者,讓之反。今升而讓其階,飮而讓其爵,君子之爭也。【馬云:“多算飮少算,君子之所爭。”】
주자: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간다는 것은, 《儀禮ㆍ大射》의 예에, ‘짝을 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후에 당에 오른다.’라는 것이다. [형병: 《儀禮ㆍ大射》에서 이르기를, '짝을 지어 나란히 나아가되, 섬돌을 마주해 읍하고, 섬돌에 이르러 읍하고, 당에 올라 읍한다.‘라고 하였다.]
보충: '하(下)'는 이기지 못한 것이다. 무릇 군사에 있어, 이기는 것을 '下之'라고 한다. [《史記ㆍ樂毅列傳》에 이르기를,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시켰는데, 오직 莒ㆍ即墨은 함락되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史記ㆍ項羽本紀》에 이르기를, "外黃은 함락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射禮에 있어, 이기지 못한 자는 술을 마시니, 이것이 지면 마신다는 것이다. '다툼(쟁)'이라는 것은, '양(사양함)'의 반대인데, 지금 올라가면서는 계단(에 먼저 오르기를) 사양하고, 마시면서는 술잔을 사양하는 것이 군자의 다툼이다. [마융이 이르기를, "점수가 많은 사람이 점수가 적은 사람더러 마시게 하는 것이 군자가 다투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王曰:“射於堂,升及下,皆揖讓而相飮。”【邢云:“飮射爵之時[88],揖讓升降。”】 ○侃曰:“〈射儀〉云,‘禮初,主人揖賓而進,交讓而升堂。及射竟,勝負旣決,下堂猶揖讓,不忘禮。’ 故云‘揖讓而升下’也。” ○駁曰 非也。七字一句,詞不成文。【升降之謂之升下,亦無文例】 ○又按 射禮有升而飮,無降而飮,則下而飮,非降而飮也。變降言下,亦無是理。
왕숙: 당에서 활을 쏨에,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모두 읍하고 사양하면서 서로 마시게 한다. [형병: 射爵을 마실 때 읍하고 사양하며 오르고 내린다.] ○황간: 〈射儀〉에 이르기를, "활쏘는 예에서 처음에 주인이 손님에게 읍하여 나아가고, 서로 사양하며 당에 오른다. 활쏘기가 끝나 승부가 결정된 후에 당을 내려와서도 여전히 읍양하여 예를 잊지 않는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읍하고 사양하며 오르내린다."라고 한 것이다. ○반박: 아니다. 일곱 글자가 한 구절이 되면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르고 내리는 것을 일러 升下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런 식으로 글을 짓는 법이 없다.] ○또 내 생각에, 활 쏘는 예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는 것은 있지만 내려와서 마시는 것은 없으니, '下而飮'은 내려와서 마신다는 것이 아니다. '降'을 바꾸어 '下'라고 할 리가 없다.

質疑 或問:“下而飮,是下堂飮否?” 程子曰:“古之罰爵,皆在堂下。” 又問:“唯不勝,下飮否?” 曰:“恐皆下堂,但勝者飮不勝者也。”【見《二程全書》】
질의: 어떤 사람이 묻기를, "'下而飮'은 당을 내려와서 마셨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옛날의 벌작은 모두 당 아래에서 하였다."라고 하셨으며, (어떤 사람이) 또 묻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만 내려와서 마시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아마도 모두 당을 내려오긴 하는데, 다만 이긴 사람이 이기지 못한 사람을 마시게 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二程全書》에 보인다.]

射禮ㆍ投壺禮,凡勝飮不勝,本是奉養,不是罰責。故飮者奉觴曰:賜灌。勝者跪請曰敬養。[89]其意若曰 ‘射之不中,恐有疾病,以此酒奉養也。’ 《詩》云:“發彼有的,以祈爾爵。”【〈賓筵〉詩】 此之謂也。勝者方奉養之不暇,遑云罰乎?《周禮ㆍ春官》:“小胥掌學士之徵令,觵(굉)其不敬者。” 此方是罰爵。《詩》云:“兕觥其觩。”【〈周頌ㆍ絲衣〉文】 鄭箋謂之罰爵。古之王者,與君臣燕飮,陳其兜觥,以警失禮者。然且罰爵,未嘗飮之於堂下。故晉平公飮酒,杜蕢入寢,歷階而升,酌曰 ‘曠飮斯,’ 又酌曰 ‘調飮斯。’ 又酌,堂上北面坐飮之。降,趨而出。【見〈檀弓〉】 罰爵之必升飮如是也。惟鄭注〈鄕射禮〉其‘卒觶ㆍ受觶’之節,有‘罰爵’二字。此謬誤之甚者,何足爲據?
내 생각에, 활 쏘는 예와 투호의 예에서 무릇 이긴 사람이 이기지 못한 사람을 술을 마시게 하는데, 본래 이는 봉양이지 벌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시는 사람은 술잔을 받들어 말하기를 賜灌이라고 하고 이긴 사람은 무릎을 꿇고 청하기를 敬養이라고 하니, 그 뜻은 마치 "활을 쏘아 맞히지 못하면 혹시 병이 날까 두려워 이 술로 봉양합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詩ㆍ小雅ㆍ賓之初筵》에 이르길, "저 과녁을 맞혀 네게 술을 마시게 할 수 있기를."이라고 한 것은 이를 가리킨다. 이긴 사람은 바야흐로 봉양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벌할 겨를이 있겠는가? 《周禮ㆍ春官》에서는 "小胥의 職은 학사들의 징벌을 관장하니, 불경한 자에게 술을 내린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벌작이다. 《詩ㆍ周頌ㆍ絲衣》에 "외뿔소 술잔이 굽어 있네."라고 하였는데, 鄭箋에서는 이것을 일러 벌작이라고 하였다. 옛날의 王者들은 군신과 더불어 연회를 하며 술을 마실 때 외뿔소 술잔을 진설해두어 이로써 예를 잃는 자를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벌작은 당하에서 마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晉平公이 술을 마실 때 杜蕢가 침소에 들어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술을 따르며 말하기를, "師曠아, 이 술을 마셔라."라고 하고는, 또 술을 따라 말하기를, "李調야, 이 술을 마셔라."라고 하고는, 또 술을 따라 당상에서 북쪽을 향해 앉아 이 술을 마시고는 내려와서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간 것이다. [《禮記ㆍ檀弓》에 보인다.] 벌작은 반드시 (당에) 올라 마셨음이 이와 같다. 오직 정현의 〈鄕射禮〉 주에서만 "卒觶ㆍ受觶" 두 구절에 주석을 달면서 ‘罰爵’ 두 글자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오류가 심한 것이니 어찌 족히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八章 ME0308

朱子曰:“此,逸詩也。”【謂非〈衛風ㆍ碩人〉篇】 ○補曰 倩,美好也。【《說文》云:“若草木之葱蒨。”】 盼,目黑白分明也。【《玉篇》云】 ○朱子曰:“素,粉地,畫之質也。絢,采色,畫之飾也。”【馬云:“絢,文貌。”】 ○補曰 姿色本美,故巧笑ㆍ美目,皆成華采,若素地以爲絢也。○朱子曰:“繪畫之事,後於素。〈考工記〉曰,‘繪畫之事,後素功。’” ○朱子曰:“禮必以忠信爲質,猶繪事必以粉素爲先。” ○楊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禮器〉文】 苟無其質,禮不虛行,此繪事後素之說也。” ○補曰 起,猶興也,謂其言足以興起也。
주자: 이것은 일시이다. [〈衛風ㆍ碩人〉 [90]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보충: 倩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초목이 울창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盼은 눈의 흑백이 분명한 것이다. [《玉篇》의 말이다.] ○주자: 素는 색칠하는 지면으로 그림의 바탕이며, 絢은 채색으로 그림의 꾸밈이다. [마융: 絢은 문채나는 모양이다.] ○보충: 자태와 빛깔이 본래 아름답기에, 巧笑ㆍ美目이 모두 華采를 이루는 것이니,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하는 것과 같다. ○주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바탕보다 뒤에 온다. 《周禮ㆍ考工記》에 이르기를, '繪畫之事,後素功'이라고 하였다.[91] ○주자: 예는 반드시 충신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니, 그림 그리는 일은 반드시 흰 바탕을 우선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시: 단맛은 조미를 받아들이고 흰 색은 채색을 받아들인다. 충신한 사람은 예를 배울 수 있다. [《禮器ㆍ禮器》의 글이다.[92]] 만일 그 바탕이 없다면 예가 공으로 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이 繪事後素가 말하는 바이다. ○보충: 起는 興과 같으니, 그 말이 족히 흥기시킬 만하다는 것이다.

馬曰:“上二句在〈衛風ㆍ碩人〉,下一句逸。” ○或曰:“下一句,夫子所刪。” 朱子曰:“此句最有意義,反見刪哉?且〈碩人〉四章皆七句,不應此章獨多一句,必別自一詩,今逸矣。” ○ 衣錦褧衣,無逝我梁,《詩》之同句者多矣。
마융: 위의 두 구는 《詩經ㆍ衛風ㆍ碩人》에 있고, 아래 한 구는 일시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아래 한 구를 공자께서 산삭하신 것이다."라고 하니, 주자가 말하길, "이 구가 가장 의의가 있는데 도리어 산삭을 당했단 말인가? 또한 〈衛風ㆍ碩人〉 편의 네 장은 모두 일곱 구로 되어 있는데 이 장만 유독 한 구가 더 많을 리 없으니 틀림없이 따로 하나의 시였다가 지금은 없어진 것일 것이다." ○내 생각에, '衣錦褧衣'[93]나 '無逝我梁'[94]처럼 《시경》에는 구절이 같은 것이 많다.

鄭曰:“繪,畫文也。凡繪畫,先布衆色,然後以素分布其間,以成其文。喻美女雖有倩盻美質,亦須禮以成之。” ○駁曰 非也。此是鄭本來謬義,旣誤〈考工〉,又誤此經。朱子是改是正,而鄭注之誤,未及辨破。今淺學小儒,乃以〈考工〉鄭注奉之爲經,以擊朱子之說,不亦妄乎?
정현: 繪는 무늬를 그리는 것이다. 무릇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여러 색깔을 칠한 다음 흰 색을 그 사이에 분포시켜서 무늬를 완성한다.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여성이 비록 예쁜 입맵시와 흑백이 또렷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더라도 역시 예로써 완성해야 하는 것과 같다. ○반박: 아니다. 이는 정현이 본래 뜻을 오해한 것이다. 이미 《周禮ㆍ考工記》의 '繪畫之事,後素功'의 뜻을 오해하였고, 또 이 경문의 뜻도 오해한 것이다. 주자가 이를 고쳐서 바로잡았지만 정현 주석의 잘못을 변론하여 깨뜨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요즘 세상의 학문이 얕은 변변찮은 유생들이 마침내 《周禮ㆍ考工記》의 정현 주를 받들어 경으로 삼아 주자의 설을 공격하니 망령된 것이 아니겠는가?

引證 〈考工記〉云:“畫繢之事,雜五色。【節】 靑與赤謂之文,赤與白謂之章,白與黑謂之黼,黑與靑謂之黻,五采備謂之繡。【節】 凡畫繢之事,後素功。” ○鄭曰:“素,白采也。後布之,爲其易漬汚也。” ○鄭司農說以《論語》曰:“繢事後素。” ○ 素功者,今之所謂粉本也。每見畫工將施靑赤美采,必先作粉地,然後乃用丹碧,古今不能異也。〈考工記〉,白采曰白,素功曰素,兩相分別,字法不混,鄭乃以素功爲白采,非誤註乎?畫工之畏漬汚,最在靑赤,蓋以其色彌鮮者,其惜彌切也。今有人敎畫工以繪畫之事,曰‘先靑赤而後粉白’,未有不投觚擲筆而去者,鄭注而可宗乎?
인증: 《周禮ㆍ考工記》에 이르길, "그림 그리는 일은 오색을 섞어서 한다. (중략) 청색과 적색을 섞은 것을 文이라고 하고, 적색과 백색을 섞은 것을 章이라고 하고, 백색과 흑색을 섞은 것을 黼라고 하고, 흑색과 청색을 섞은 것을 黻이라고 하며, 五采를 갖춘 것을 繡라고 한다. (중략)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마련한 뒤에 한다./흰색을 나중에 한다." ○정현: 素는 흰색인데, 나중에 바르는 것은 쉽게 물들기 때문이다. ○정사농(鄭司農, ?~83)은 (주례 고공기의 이 구절을) 《論語》에서 繢事後素라고 했다는 것을 가져와서 설명했다. ○내 생각에, 素功이라는 것은 지금 말하는 粉本(흰색 분을 칠한 바탕)이라는 것이다. 화공들이 청색, 적색 등의 아름다운 채색을 칠하려고 할 때를 보면, 반드시 먼저 흰 바탕을 만들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붉거나 푸른 안료를 사용하니 고금이 다르지 않다. 〈考工記〉에서는 흰색 채색은 白이라고 하고 흰색 분칠한 바탕은 素라고 하여 두 가지가 서로 분별되어 글자의 용법이 혼동되지 않고 있는데, 정현이 오히려 素功을 白采로 여겼으니 잘못 주석한 것이 아니겠는가? 화공들이 물들까 걱정하는 것이 제일 심한 것은 푸른색과 붉은색이니 어떤 것의 색깔이 더욱 석명할 수록 아끼는 것이 더욱 절실한 법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화공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가르치면서 '먼저 청색, 적색을 칠하고 나중에 흰색을 칠해라.'라고 한다면 붓을 던지고 가버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정현의 주석을 종주로 삼을 수가 있겠는가?

引證 〈禮器〉曰:“先王之立禮也,有本有文。忠信,禮之本也。義理,禮之文也。無本不立,無文不行。”
인증: 《禮器ㆍ禮器》에서는 "선왕이 예를 세울 때 근본이 있고 무늬가 있었으니 충신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무늬이다. 근본이 없으면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행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九章 ME0309

朱子曰:“杞,夏之後。【東樓公,禹之苗裔也。武王封之於杞】 宋,殷之後。【微子,紂之庶兄。武王封之於宋】 徵,證也。文,典籍也。獻,賢也。”【〈虞書〉云:“萬邦黎獻。”】 ○補曰 能言,明世無能言之者。孔子博學,故能言之,然無徵不信。若使杞ㆍ宋有文有獻,則必與夫子所言相合。故曰‘吾能徵之’。吾能徵者,自信之辭也。
包曰:“徵,成也。” ○鄭曰:“我不以禮成之者,以此二國之君文章ㆍ賢才不足故也。”【邢云:“杞ㆍ宋之君闇弱,故不足以成之。”】 ○駁曰 非也。
藤曰:“兩之字,連下爲句。” ○駁曰 非也。之杞ㆍ之宋,蓋據〈禮運〉然,而非也。
引證 子曰:“吾說夏禮,杞不足徵也,吾學殷禮,有宋存焉,吾學周禮,今用之,吾從周。”【〈中庸〉文】 ○子曰:“我欲觀夏道,是故之杞,而不足徵也。吾得《夏時》焉。我欲觀殷道,是故之宋,而不足徵也。吾得《坤乾》焉。”【〈禮運〉文】


十章 ME0310

補曰 禘,宗廟時祭之名,【〈祭義〉云:“春禘秋嘗。”】 本是王者之禮,【義見下】 魯僭而用之也。灌與祼通,【六書之諧聲】 將迎牲,酌鬱鬯灌於地,以求神也。○補曰 禘祭之禮,旣灌,升歌〈淸廟〉,朱干ㆍ玉戚以舞〈大武〉,【〈明堂位〉ㆍ〈祭統〉】 此天子之歌舞也。旣灌而往,此僭乃著,孔子不欲觀也。
보충: 禘는 종묘에서 지내는 時祭의 명칭이니, [《禮記・祭義》에서는 "봄에는 禘제사, 가을에는 嘗제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본래는 王者의 예인데, [의미가 아래에 보인다] 노나라가 참람하여 이를 사용하였다. 灌은 祼와 통하니, [六書의 諧聲에 해당한다.] 희생을 맞이하려 할 때 울창주를 따라 땅에 부어 신을 구하는 것이다. ○보충: 禘제사의 예는 울창주를 부어 강신한 뒤에, 당에 올라가 《詩・周頌・淸廟》[95]를 노래하고서 朱干과 玉戚으로 〈大武〉를 춤추니, [《禮記・明堂位》[96]《禮記・祭統》] 이것은 천자의 가무이다. 울창주를 따른 이후로 이러한 참람함이 이에 드러났으므로 공자가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孔曰:“禘祫之禮,爲序昭ㆍ穆。故毀廟之主及群廟之主,皆合食於太祖。【邢云:“鄭玄曰,‘魯禮,三年喪畢,而祫於太祖。明年春,禘於群廟。’”】 旣灌之後,列尊卑,序昭穆。【邢云:“降神之後,始列木主,以尊卑陳列,太祖東鄕,昭南鄕,穆北鄕。”】 而魯逆祀,躋僖公,亂昭穆,故不欲觀之。【邢云:“〈魯語〉云,‘將躋僖公。宗有司曰,「非昭穆也。」弗忌曰,「我爲宗伯,明者爲昭,其次爲穆,何常之有?」’”】”
공안국: 禘제사와 祫제사의 예는 昭穆을 차서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毀廟의 신주 및 群廟의 신주를 모두 태조의 묘에서 합사하는 것이다. [형병: "정현은 '노나라의 예에 삼년상이 끝나면 태조에게 祫제사를 지내고, 이듬해 봄에 群廟에 禘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울창주를 부은 후에 尊卑의 차례에 따라 昭穆을 차서하는데, [형병: "강신한 후에 비로소 木主를 차례로 두기를 존비에 따라 진열하는데, 태조는 동향, 소는 남향, 목은 북향이 된다."] 노나라는 순서를 거슬러 제사지내어 僖公을 올려 昭穆을 어지럽혔으므로 (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다. [형병: 《國語・魯語》에서는 "희공을 올리려 하니 宗伯의 有司가 말하길 '昭穆(의 예가) 아닙니다.'라고 하니, 대부인 弗忌가 말하길, '내가 宗伯인데, (덕이) 밝은 자가 昭가 되고 그 다음이 穆이 되는 것이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駁曰 非也。(...) 孔說,非矣。○然則孔子之不欲觀,何哉?禘之旣灌,將迎牲矣,牲旣繭栗,不欲觀者一也。【僭】 將升鼎矣,鼎又全烝,不欲觀者二也。【僭】 饗之以樂,【〈祭義〉云:“禘有樂而嘗無樂。”】 升歌淸廟,【見〈祭統〉】 其詩曰‘濟濟多士,秉文之德’,不欲觀者三也。【僭】 朱干ㆍ玉戚以舞〈大武〉,【見〈祭統〉】 不欲觀者四也。【僭】 (...)
○ 반박: 아니다. (...) 공안국의 설은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禘제사에서 술을 따라 강신하고 난 뒤에 희생을 맞이하려 할 때, 희생에 繭栗(소의 뿔이 밤이나 누에고치만큼 나온 소)을 사용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이고, [참람된 것이다] 장차 당에 올라 鼎(희생을 담아 올리는 제기의 일종)을 올릴 때에 鼎은 또 全烝으로 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이며, [참람된 것이다] 풍악을 울려 흠향하게 하고 [《禮記・祭義》에서는 "禘제사는 음악을 연주하고 嘗제사는 연주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당에 올라가 淸廟를 노래하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훌륭한 선비들이 문왕의 덕을 잡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세 번째 이유이며, [참람된 것이다] 朱干과 玉戚으로 〈大武〉를 추었으니 이것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네 번째 이유이다. [참람된 것이다]

質疑 灌之爲禮,在迎尸之前,則祭之始也。魯之君臣,雖無誠意,未必甫灌而即懈。且懈怠之人,無祭不懈,則不必禘之旣灌,其懈特甚。孔子之不欲觀,恐不在是也。
질의: 灌이라는 예는 尸位를 맞이하기 전에 하는 것이니 제사의 시작인 것이다. 노나라의 군신들이 비록 誠意가 없었다 하더라도 겨우 灌을 하자마자 곧바로 나태해졌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또한 나태한 사람이라면 어느 제사에서건 나태하지 않음이 없으니 꼭 禘제사에서 灌을 이미 했기 때문에 나태함이 특히 심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자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里仁」 ME04


「公冶長」 ME05


「雍也」 ME06


「述而」 ME07


「泰伯」 ME08


「子罕」 ME09


「鄕黨」 ME10


「先進」 ME11


「顏淵」 ME12


「子路」 ME13


「憲問」 ME14


「衛靈公」 ME15


「季氏」 ME16


「陽貨」 ME17


「微子」 ME18


「子張」 ME19


六章 ME1906

邢曰:“博,廣也。” ○補曰 篤,固也。切,割也,刻也。近者,也。○補曰 汎博其學,則不滯於陋,堅固其志,則不流於俗。○補曰 問之如刻割,則所知者,思之自本身,則所悟者。○補曰 仁者,人倫之至也。能是四者,則孝弟忠信,不能不勉,仁在其中矣。言知者必行
孔曰:“廣學而厚識之。”【邢云:“志,識也。”】 ○何曰:“切問者,切問於己所學未悟之事。近思者,思己所未能及之事。汎問所未學,遠思所未達,則於所習者不精,所思者不解。” ○純曰:“切,迫近也。學問之道,非其所而問焉,則君子不對,雖對不以實。迫而問之,則君子不敢不對以實。近思者,即其所居而思也。” ○駁曰 非也。諸說皆荒雜,以志爲識,尤謬。
引證 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事君能致其身,與朋友交,言而有信,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 ○ 此章彼章,同出一子夏之口。‘賢賢’章謂人能孝弟忠信,則其學可知,學在其中矣。‘博學’章謂人能學問思辨,則其仁可知,仁在其中矣。兩章相反如黑白,而其實相合如符契。子夏之意,蓋云知者必行,行者必知。天下無不學而能仁者,亦無能仁而不學者。兩章合觀,其旨乃明,各觀其一,其言似偏。


「堯曰」 ME20




주석, Footnote

  1. 靜은 謀요 滔는 漫也니 言共工自爲謀言이나 起用行事而違背之하고 貌象恭敬이나 而心傲很이 若漫天하니 言不可用이니라. 《尙書正義》
  2. 靜言庸違者는 靜則能言이나 用則違背也라 象恭은 貌恭而心不然也라 滔天二字는 未詳이라 與下文相似하니 疑有舛誤라. 《書集傳》
  3. ‘巧言‧令色‧足恭’者, 孔以爲 “巧好言語, 令善顔色, 便僻其足, 以爲恭.” 謂前却俯仰, 以足爲恭也. 一曰 “足, 將樹切.” 足, 成也, 謂巧言‧令色, 以成其恭, 取媚於人也. 《論語注疏》
  4. 足는 過也라. 《論語集注》
  5. ① 平聲: 세 가지(皇侃, 朱熹, 丁若鏞) ② 平聲: 세 번(仁齋) ③ 去聲: 여러 번(楊伯峻)
  6. ② 관련: 三仕爲令尹 (...) 三已之(《論語》〈公冶長〉), 三思而後行(《論語》〈公冶長〉) , 三分天下有其二(《論語》〈泰伯〉), 三嗅而作(《論語》〈鄉黨〉), 三復白圭(《論語》〈先進〉) 등
  7. ① V+O(不習을 傳하다; 何晏, 皇侃, 邢昺, 毛奇齡) ② V+V(傳하고서 不習하다; 朱熹, 丁若鏞)
  8. 子[ㅣ] 曰 吾未見好德이(을) 如好色者也케라 《論語》〈子罕〉
  9. 子[ㅣ] 曰 已矣乎ㅣ라 吾未見好德[을] 如好色者也케라 《論語》〈衛靈公〉
  10. 去讒遠色며 賤貨而貴德은 所以勸賢也 《中庸章句》〈第二十章〉
  11. 賢賢易色注, 訓易其好色之心, 是矣。然與下文事父母能竭其力, 語意不類, 葢遇賢人, 必極其禮貌以敬之, 色指禮貌而言, 論語云其次避色, 亦指禮貌衰也。色力身信, 皆自已身上事。一說謂輕易女色而不以為重, 亦通。
  12. 공자가 말하기를, “현자는 천하에 도가 없으면 피하고, 그다음은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았으면 피하고, 그다음은 예모가 쇠하였으면 피하고, 그다음은 말을 어기는 것을 보면 피한다.〔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하였다. 《論語》〈憲問〉
  13. 徐奋鹏(约1560年-1642年)??
  14. 為人子者,居不主奧,坐不中席,行不中道,立不中門。《禮記》〈曲禮 上〉
  15. 室西南隅爲奧 《論語集注》
  16. 汲黯字長孺,濮陽人也。其先有寵於古之衛君也。至黯十世,世為卿大夫。以父任,孝景時為太子洗馬,以嚴見憚。《漢書》〈張馮汲鄭傳〉
  17. 子曰:「中庸其至矣乎!民鮮能久矣!」 《中庸》
  18. 民莫不穀、我獨于罹 《詩經》〈小弁〉, 民莫不穀、我獨何害 《詩經》〈蓼莪〉, 民莫不穀、我獨何害 《詩經》〈四月〉
  19. 《大雅》〈蕩〉
  20. 五十不致毀,六十不毀,七十唯衰麻在身,飲酒食肉,處於內。 《禮記》〈曲禮上〉
  21. 君薨커든(커시든) 百官[이] 總己하야 以聽於冢宰三年이니라(이러니라) 《論語》〈憲問〉
  22. 孔子ㅣ 曰 君薨커시든 聽於冢宰하나니 《孟子》〈滕文公上〉
  23. ䷸ 九二 巽在牀下ㅣ니 用史巫紛若면 吉코 无咎리라
  24. 言必信며 行必果ㅣ(면) 硜硜然小人哉나 抑亦可以爲次矣니라 《論語》〈子路〉
  25. 恭而無禮則勞고 愼而無禮則葸고 勇而無禮則亂고 直而無禮則絞니라 《論語》〈泰伯〉
  26. 孟子曰:「從其大體為大人,從其小體為小人。 (중략) 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物交物,則引之而已矣。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此天之所與我者,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此為大人而已矣。」 《孟子》〈告子上〉
  27. 己者,我也。我有二體,亦有二心,道心克人心,則大體克小體也。一日克己,謂一朝奮發用力行之。 《論語古今注 12-1》
  28. 子曰:“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敏於事而愼於言,就有道而正焉,可謂好學也已。”《論語》〈學而〉
    子曰:「十室之邑,必有忠信如丘者焉,不如丘之好學也。」 《論語》〈公冶長〉
    公問:「弟子孰為好學?」孔子對曰:「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論語》〈雍也〉
    子曰:「由也,女聞六言六蔽矣乎?」對曰:「未也。」「居!吾語女。好仁不好學,其蔽也愚;好知不好學,其蔽也蕩;好信不好學,其蔽也賊;好直不好學,其蔽也絞;好勇不好學,其蔽也亂;好剛不好學,其蔽也狂。」 《論語》〈陽貨〉
    子夏曰:「日知其所亡,月無忘其所能,可謂好學也已矣。」 《論語》〈子張〉
  29. 북극성
  30. 射糖盤子。此亦未詳其義。然以其取譬北辰天樞之義推之。中國人造飴糖時。用輪盤子。當中作軸穿定小柱而運之。其盤子四面旋繞而軸常在中不動。如磨石狀。故譬衆星之四面旋繞而北辰獨居其所不動耶。 《葛庵集 答申明仲》
  31. 《시경》에 편명만 있고 사(辭)가 없는 〈남해(南陔)〉, 〈백화(白華)〉, 〈화서(華黍)〉, 〈유경(由庚)〉, 〈숭구(崇丘)〉, 〈유의(由儀)〉 등 6편의 생시(笙詩)를 가리킨다. 이 시를 생시라고 부르는 것은 《의례(儀禮)》에 이 6편을 생(笙)으로 연주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朱熹를 비롯한 宋代의 학자들은 소리만 있고 가사가 없는 시라고 보았으나, 星湖는 이 설을 반박하고 본래 시가 있었는데 없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星湖僿說 卷25 六笙詩》 《최석기, 星湖 李瀷의 學問精神과 詩經學, 1994, pp.198-203.》
  32. 衍文으로 보인다.
  33. 帝曰 契아 百姓이 不親하며 五品이 不遜일새 汝作司徒니 敬敷五敎호되 在寬하라
  34. 木長皃。以木長別於上文長木者。長木言木之美。木長言長之美也。木長皃者、格之本義。引伸之長必有所至。故釋詁曰。格、至也。抑詩傳亦曰。格、至也。凡尚書格于上下、格于藝祖、格于皇天、格于上帝是也。此接於彼曰至。彼接于此則曰來。鄭注大學曰。格、來也。凡尚書格爾衆庶、格汝衆是也。至則有摩杚之義焉。如云格君心之非是也。或借假爲之。如雲漢傳曰假至也、尚書格字今文尚書皆作假是也。有借格爲庋閣字者。亦有借格爲扞垎字者。從木。各聲。古百切。古音在五部。 《說文解字注》
  35. 子曰:「鬼神之為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夫微之顯,誠之不可掩如此夫。」 《中庸》
  36. 惟大人이아 爲能格君心之非니 《孟子》〈離婁上〉 趙氏曰 適은 過也요 間은 非也라 格은 正也라
  37. 曰若稽古帝堯혼대 曰放勳이시니 欽明文思安安하시며 允恭克讓하샤 光被四表하시며 格于上下하시니라 《尚書》〈堯典〉
  38. 强立, 臨事不惑也. 不反, 不違失師道。 鄭玄 《禮記注》
  39. 鏞案 凡世間之事,期短則心急,故其用功疾,期遠則心緩,故其用功徐。惟君子立命之法,不問殀壽,俛焉日有孶孶,常修以俟之。 丁若鏞 《孟子要義》
  40. 有孺子[ㅣ] 歌曰 滄浪之水[ㅣ] 淸兮어든(여) 可以濯我纓이오 滄浪之水[ㅣ] 濁兮어든(여) 可以濯我足이라하야늘 孔子[ㅣ] 曰 小子아 聽之하라 淸斯濯纓이오 濁斯濯足矣로소니 自取之也ㅣ라하시니라 《孟子》〈離婁上〉
  41. 堯[ㅣ] 曰 咨爾舜아 天之曆數ㅣ 在爾躬하니 允執其中하라 《論語》〈堯曰〉
  42. 帝謂文王하시되 予懷明德의 不大聲以色하며不長夏以革하고 不識不知하야 順帝之則이라하시다 《詩經》〈皇矣〉
  43. 言行孝之道,無得違禮也。 《論語注疏》
  44. 八月,癸亥,公薨于路寢,子般即位,次于黨氏。冬,十月,己未,共仲使圉人犖,賊子般于黨氏,成季奔陳,立閔公。 《春秋左傳》〈莊公三十二年〉
  45. 季康子之母死,公輸若方小,斂,般請以機封,將從之,公肩假曰:「不可!夫魯有初,公室視豐碑,三家視桓楹。般,爾以人之母嘗巧,則豈不得以?其母以嘗巧者乎?則病者乎?噫!」弗果從。《禮記》〈檀弓下〉
  46. 孺子𪏆之喪,哀公欲設撥,問於有若,有若曰:「其可也,君之三臣猶設之。」顏柳曰:「天子龍輴而槨幬,諸侯輴而設幬,為榆沈故設撥;三臣者廢輴而設撥,竊禮之不中者也,而君何學焉!」 《禮記》〈檀弓下〉
  47. 幾諫者,不敢直諫,但以微意諷之使喻也。 《論語古今注》〈里仁〉
  48. 記問之學,不足以為人師。必也聽語乎,力不能問,然後語之;語之而不知,雖舍之可也。
  49. 人子體此, 而以父母之心爲心, 則凡所以守其身者, 自不容於不謹矣, 豈不可以爲孝乎?
  50. 啜菽飲水盡其歡,斯之謂孝。 《禮記》〈檀弓下〉
  51. 樹欲靜而風不止,子欲養而親不待也。 《韓詩外傳》〈卷九〉
  52.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周易》〈坤卦六三〉
  53. 闚觀,利女貞。 《周易》〈觀卦六二〉
  54. 何其處也요 必有與也ㅣ로다 何其久也오 必有以也ㅣ로다 《詩經》〈邶風旄丘〉
  55. 昔者[애] 竊聞之호니 子夏子游子張(은) 皆有聖人之一體하고 冉牛, 閔子, 顔淵(은) 則具體而微라하니(라하더시니) 敢問所安하노이다 《孟子》〈公孫丑上〉
  56. 憲問恥。子曰:「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矣?」子曰:「可以為難矣,仁則吾不知也。」 《論語》〈憲問〉
  57. 子曰:「顏氏之子,其殆庶幾乎?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也。易曰:『不遠復,无祇悔,元吉。』」 《繫辭下》
  58. 原憲,宋人,字子思。少孔子三十六歲,清淨守節,貧而樂道。 《孔子家語》〈七十二弟子解〉
  59. 子路問政。子曰:「先之,勞之。」請益。曰:「無倦。」《論語》〈子路〉
  60. 子路問事君。子曰:「勿欺也,而犯之。」 《論語》〈憲問〉
  61. 愛人甚而不能利也,憎人甚而不能害也。故先王貴當,貴周。周者不出于口,不見于色,一龍一蛇,一日五化之謂周,故先王不以一過二,先王不獨舉,不擅功。 《管子》〈樞言〉
  62. 昔帝鴻氏有不才子하니 掩義隱賊하야 好行凶德하고 醜類惡物하야 頑嚚不友를 是與比周하니 天下之民謂之渾敦이라하고, 《左傳》〈文公十八年〉
  63. 是故君子有大道,必忠信以得之,驕泰以失之。《禮記》〈大學〉
  64.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中庸章句 20章》
  65. 入者主之, 出者奴之。 韓愈 〈原道〉
  66. 子[ㅣ] 曰 色厲而內荏을 譬諸小人컨댄 其猶穿窬之盜也與ㅣㄴ뎌 《論語》〈陽貨〉
  67. 嗚呼!先王肇修人紀,從諫弗咈,先民時若。居上克明,為下克忠,與人不求備,檢身若不及,以至于有萬邦,茲惟艱哉!敷求哲人,俾輔于爾後嗣,制官刑,儆于有位。 《尚書》〈商書 伊訓〉
  68. 王曰:「吁!來,有邦有土,告爾祥刑。在今爾安百姓,何擇,非人?何敬,非刑?何度,非及?兩造具備,師聽五辭。五辭簡孚,正于五刑。五刑不簡,天于五罰;五罰不服,正于五過。五過之疵:惟官,惟反,惟內,惟貨,惟來。其罪惟均,其審克之! 《尚書》〈周書 呂刑〉
  69. 君陳,惟爾令德孝恭。惟孝友于兄弟,克施有政。命汝尹茲東郊,敬哉!
  70. 大宗伯之職:掌建邦之天神、人鬼、地示之禮,以佐王建保邦國。 《周禮》〈春官ㆍ宗伯〉
  71. 使於齊,未還,漢召彭越,責以謀反,夷三族。已而梟彭越頭於雒陽下,詔曰:「有敢收視者,輒捕之。」布從齊還,奏事彭越頭下,祠而哭之。吏捕布以聞。上召布,罵曰:「若與彭越反邪?吾禁人勿收,若獨祠而哭之,與越反明矣。趣亨之。」方提趣湯,布顧曰:「願一言而死。」上曰:「何言?」布曰:「方上之困於彭城,敗滎陽、成皋閒,項王所以(遂)不能[遂]西,徒以彭王居梁地,與漢合從苦楚也。當是之時,彭王一顧,與楚則漢破,與漢而楚破。且垓下之會,微彭王,項氏不亡。天下已定,彭王剖符受封,亦欲傳之萬世。今陛下一徵兵於梁,彭王病不行,而陛下疑以為反,反形未見,以苛小案誅滅之,臣恐功臣人人自危也。今彭王已死,臣生不如死,請就亨。」於是上乃釋布罪,拜為都尉。 《史記》〈季布欒布列傳〉
  72. 《搜神記》曰:蔣子文者,廣陵人也。嗜酒好色,常自謂己骨清,死當為神,漢末為秣陵尉,逐賊至於鍾山之下,賊擊傷額,因解綬以縛之,有頃遂死,及吳先主之初,其吏見文於道,乘白馬,執白羽扇,侍從如平生。文曰:我當為此土地神也。為吾立祠,不爾,使蟲入耳為災,吳主以為妖言,後果有蟲入人耳,皆死,醫不能治,又云,不祠我,將有大火,是歲數有大火,吳主患之,封為都中侯,加印綬,立廟堂,改鍾山為蔣山,以表其靈也。 《藝文類聚》〈靈異部下〉
  73. 子曰:「鬼神之為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 夫微之顯,誠之不可揜如此夫。」
  74. [傳]九月에 考仲子之宮하고 將萬焉하야 公問羽數於衆仲한대 對曰 天子用八하고 諸侯用六하고 大夫四하고 士二니이다 夫舞는 所以節八音而行八風이라 故自八以下니이다 公從之하야 於是初獻六羽하니 始用六佾也라
  75. "별자(別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제후의 별자 외에 처음 터전에 옮겨 온 별자와 처음 벼슬을 받은 별자가 있다. 처음 옮겨 왔다는 것은 여러 성씨 중에 타지(他地)에서 옮겨 온 자를 본국의 옮겨 오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다. 처음 벼슬을 받았다는 것은 서인(庶人)이 이 지역에서 발신(發身)하여 경대부가 된 이를 벼슬하지 않은 자와 구별하는 것이니 모두 별자라고 칭한다. 소(疏)에서는 갖추어 설명하지 않았으나 이는 모두 백대토록 신위를 옮기지 않는 불천위(不遷位) 시조(始祖)가 되니, 마땅히 보충하여야 한다." [別子有三。諸侯別子之外。有始遷始爵。始遷者庶姓之移自佗方者。別於本國不來者也。始爵者庶人之起於是邦爲卿大夫。別於不仕者。皆稱別子也。疏說未備。此皆爲百世不遷之始祖也。當補。]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
  76. 大宗ㆍ小宗之辨 ○已下十條,與喪期無涉。然立後一事,須通古今之變,故牽連編錄 喪禮四箋 卷十一 / 喪期別 五
  77. "〔변의〕 대종(大宗)은 군도(君道)와 같아서 비록 백대 이후라도 후사를 세워야 하지만, 소종(小宗)은 조(祖)가 위에서 신위가 옮겨지면 종(宗)이 아래에서 바뀌니 4대 이후에는 마땅히 파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자식으로 후사를 세우는 것은 인륜의 큰 변례이니 진실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하지 말아야 한다. 종이 비록 끊어지더라도 차장(次長)의 후손이 그 제사를 맡아 받들면 바로 종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증손이나 현손이 들어가 대를 잇는다면 그 부친과 조부는 비록 태어나서 종자가 된 적이 없다 할지라도 통서가 이미 옮겨지게 된다. 곁가지가 줄기가 된다는 의론 같은 것은 단지 서자가 종자가 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전문(傳文)에서는 단지 “대종의 후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하휴(何休)의 설은 다시 평할 가치도 없다. 후세에 이 의리를 깨닫지 못하고 대종, 소종을 막론하고 모두 양자를 들여 후사를 세우니 잘못이다. 《통전》에서 “적손이 죽은 뒤에 차자(次子)의 아들이 조부의 통서를 전중(傳重)받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의리를 잘 터득한 것이다." [大宗如君道。雖百世當立後。至小宗。祖遷於上則宗易於下。四世之後當罷者也。立後。人倫之大變。苟非不獲已者。不必爲也。宗雖絶。次長之後當奉其祀。而便成宗孫。若曾玄入承則其父若祖雖未嘗生爲宗子。統旣移矣。如旁枝達榦。只視作宗子而已矣。傳文只云後大宗則何休之說無容改評也。後世不達此義。無論大小宗。皆立後則誤矣。通典云嫡孫亡後次子之子可得傳祖重。深得此義。] 성호전집 제38권 / 잡저(雜著) 儀禮經傳喪服志疑
  78. 然友ㅣ 反命하야 定爲三年之喪한대 父兄百官이 皆不欲曰 吾宗國魯先君도 莫之行하시고 吾先君도 亦莫之行也하시니 至於子之身而反之ㅣ 不可니이다 且志[애] 曰 喪祭 從先祖ㅣ라하니 曰 吾有所受之也ㅣ니이다 《孟子 滕文公 上》
  79. 碩人俁俁 公庭萬舞 《詩 邶風 簡兮》
  80. 溫良者,仁之本也;敬慎者,仁之地也;寬裕者,仁之作也;孫接者,仁之能也;禮節者,仁之貌也;言談者,仁之文也;歌樂者,仁之和也;分散者,仁之施也;儒皆兼此而有之,猶且不敢言仁也。其尊讓有如此者。 《禮記》〈儒行〉
  81. 孟子曰:「仁之實,事親是也;義之實,從兄是也。智之實,知斯二者弗去是也;禮之實,節文斯二者是也;樂之實,樂斯二者,樂則生矣;生則惡可已也,惡可已,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 《孟子》〈離婁上〉
  82. 曾子曰:「身也者,父母之遺體也。行父母之遺體,敢不敬乎?居處不莊,非孝也;事君不忠,非孝也;蒞官不敬,非孝也;朋友不信,非孝也;戰陳無勇,非孝也;五者不遂,災及於親,敢不敬乎? 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眾之本教曰孝,其行曰養。養,可能也,敬為難;敬,可能也,安為難;安,可能也,卒為難。父母既沒,慎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仁者,仁此者也;禮者,履此者也;義者,宜此者也;信者,信此者也;強者,強此者也。樂自順此生,刑自反此作。」 《禮記》〈祭義〉
  83. 子曰:「天生德於予,桓魋其如予何?」 《論語》〈述而〉
  84. 將褅於襄公,萬者二人,其眾萬於季氏。 《左傳ㆍ昭公二十五年》
  85. 召公、周公二相行政,號曰「共和」。共和十四年,厲王死于彘。 《史記ㆍ周本紀》
  86. 公山弗擾ㅣ 以費畔하야 召ㅣ어늘 子ㅣ 欲往이러시니 子路ㅣ 不說曰 末之也已니 何必公山氏之之也ㅣ시리잇고(ㅣ리잇고) 子[ㅣ] 曰 夫召我者(ㅣ) 而豈徒哉리오 如有用我者댄 吾其爲東周乎인뎌 《論語》〈陽貨〉
  87. 三耦及衆射者皆升飲射爵於西階上。 《儀禮ㆍ大射》
  88. 命酌曰:「請行觴。」酌者曰:「諾。」當飲者皆跪奉觴,曰:「賜灌」;勝者跪曰:「敬養」。 《禮記ㆍ投壺》

  89. 碩人其頎、衣錦褧衣。
    齊侯之子、衛侯之妻、東宮之妹、邢侯之姨、譚公維私。

    手如柔荑。
    膚如凝脂。
    領如蝤蠐。
    齒如瓠犀。
    螓首蛾眉。
    巧笑倩兮。
    美目盼兮。

    碩人敖敖、說于農郊。
    四牡有驕、朱幩鑣鑣、翟茀以朝。
    大夫夙退、無使君勞。

    河水洋洋、北流活活。
    施罛濊濊、鱣鮪發發、葭菼揭揭。
    庶姜孽孽、庶士有朅。
  90. 凡畫繢之事,後素功。
  91. 君子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茍無忠信之人,則禮不虛道。是以得其人之為貴也。
  92. 〈衛風ㆍ碩人〉, 〈鄭風ㆍ丰〉
  93. 〈邶風ㆍ谷風〉, 〈小雅ㆍ小弁〉
  94. 於穆清廟、肅雝顯相。濟濟多士、秉文之德。對越在天、駿奔走在廟。不顯不承、無射於人斯。
  95. 季夏六月,以禘禮祀周公於大廟,牲用白牡;尊用犧象山罍;郁尊用黃目;灌用玉瓚大圭;薦用玉豆雕篹;爵用玉琖,仍雕,加以璧散璧角;俎用梡嶡;升歌《清廟》,下管《象》;朱干玉戚,冕而舞《大武》;皮弁素積,裼而舞《大夏》。昧,東夷之樂也;《任》,南蠻之樂也。納夷蠻之樂於大廟,言廣魯於天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