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xMinistriesOfJoseo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red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 ||
− | {{Blockquote|<big> | + | {{Blockquote|<big>「남소에서 감회를 쓰다(南所寫懷)」<ref>남소(南所)는 오위(五衛)의 위장(衛將)이 숙위(宿衛)하던 위장소(衛將所)의 하나로,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과 경희궁의 개양문(開陽門) 안에 있었는데, 궁궐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남소라 불렸다.</ref><br/><br/> |
'''晨光騰紫闕, 峩弁趨彤墀'''<br/>궁궐에 새벽빛 밝아오니 고관들 조정으로 달려가네.<br/><br/> | '''晨光騰紫闕, 峩弁趨彤墀'''<br/>궁궐에 새벽빛 밝아오니 고관들 조정으로 달려가네.<br/><br/> | ||
'''老卒鉥前塗, 舍我南廂陲'''<br/>늙은 병졸이 앞길을 인도하여 나를 남쪽 전각 끝에 두었네.<br/><br/> | '''老卒鉥前塗, 舍我南廂陲'''<br/>늙은 병졸이 앞길을 인도하여 나를 남쪽 전각 끝에 두었네.<br/><br/> | ||
'''懸盾警夜所, 植鎩句陳司'''<br/>야간 경계하는 처소에서 방패 들고 구진(句陳)의 관소<ref>구진(句陳)의 관소: 궁궐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을 말한다. 구진은 별자리 이름으로 자미궁(紫微宮)을 호위하는 별이다.</ref>에서 창을 세웠네.<br/><br/> | '''懸盾警夜所, 植鎩句陳司'''<br/>야간 경계하는 처소에서 방패 들고 구진(句陳)의 관소<ref>구진(句陳)의 관소: 궁궐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을 말한다. 구진은 별자리 이름으로 자미궁(紫微宮)을 호위하는 별이다.</ref>에서 창을 세웠네.<br/><br/> | ||
+ | '''列帥盡虎頭, 酣戰眞雄姿'''<br/>줄지어 선 장수는 모두 범의 두상<ref>범의 두상: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어린 시절 관상가가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로 날아서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ref>이요 싸움에 익숙하니 참으로 씩씩한 자태로다.<br/><br/> | ||
+ | '''駑材眷蒭豆, 僚底摧雙眉'''<br/>노둔한 사람은 말먹이나 돌보며 동료들 밑에서 두 눈썹 내렸네<br/><br/> | ||
+ | '''東瞻騎省峙, 北矖粉署危'''<br/>동쪽을 바라보면 병조가 우뚝하고 북쪽을 바라보면 분서(粉署)<ref>분서(粉署): 하얗게 벽을 칠한 관청이라는 뜻으로 중국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인데, 우리나라는 의정부 및 중앙 관서를 뜻한다.</ref>가 높다랗네.<br/><br/> | ||
+ | '''銅龍狀蠖略, 金馬光陸離'''<br/>동룡문은 나아갈 듯한 모습이요 금마문은 눈부시게 번쩍거리네.<br/><br/> | ||
+ | '''昔我雲翮矯, 今何金骨緇'''<br/>나도 예전엔 높이 나는 새처럼 굳셌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승려처럼 나약해졌나.<br/><br/> | ||
+ | '''將星耀華髮, 擁甲如貙貔'''<br/>대장은 백발이 빛나고 맹수 같은 갑사를 거느리네.<br/><br/> | ||
+ | '''平生嗜文術, 浪讀古人詩'''<br/>나는 평생 문장 좋아하여 그저 고인의 시만 읽었네.<br/><br/> | ||
+ | '''從此學投筆, 六弢綜正奇'''<br/>이제부터 투필(投筆)<ref>투필(投筆): 붓을 던진다는 말로, 종군(從軍)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명장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글씨를 써 주는 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붓을 던지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다면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에 나아가 공을 세워 봉후가 되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만 종사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니, 훗날 서역(西域)에 나아가 공을 세워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ref>을 배워서 『육도(六韜)』의 정기(正奇)<ref>정기(正奇): 병법(兵法)의 용어로서, 정면으로 접전을 벌이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매복(埋伏)이나 기습(奇襲)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을 ‘기(奇)’라고 한다.</ref>를 다스려야지. | ||
+ | <br/><br/> | ||
</big> | </big> | ||
|출처=}} | |출처=}} |
2020년 10월 1일 (목) 21:38 판
목차
육조거리와 출퇴근 풍경
「남소에서 감회를 쓰다(南所寫懷)」[1] 晨光騰紫闕, 峩弁趨彤墀 |
||
출처: |
호조 서리 이윤선의 업무와 일상
예조 낭관 권상일의 장생전 수리 일지
병조에서 이조의 낭관으로, 윤기의 이상과 현실
육조 당상, 그 빛과 그늘
봉심과 회창 그리고 가옥조사, 출장을 빙자한 외유
연지와 누정, 휴식과 위안의 공간
주석
- ↑ 남소(南所)는 오위(五衛)의 위장(衛將)이 숙위(宿衛)하던 위장소(衛將所)의 하나로,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과 경희궁의 개양문(開陽門) 안에 있었는데, 궁궐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남소라 불렸다.
- ↑ 구진(句陳)의 관소: 궁궐을 호위하는 금군(禁軍)을 말한다. 구진은 별자리 이름으로 자미궁(紫微宮)을 호위하는 별이다.
- ↑ 범의 두상: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어린 시절 관상가가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로 날아서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 ↑ 분서(粉署): 하얗게 벽을 칠한 관청이라는 뜻으로 중국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인데, 우리나라는 의정부 및 중앙 관서를 뜻한다.
- ↑ 투필(投筆): 붓을 던진다는 말로, 종군(從軍)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명장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글씨를 써 주는 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붓을 던지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다면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에 나아가 공을 세워 봉후가 되어야지, 어찌 오래도록 필연(筆硯) 사이에만 종사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니, 훗날 서역(西域)에 나아가 공을 세워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 ↑ 정기(正奇): 병법(兵法)의 용어로서, 정면으로 접전을 벌이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매복(埋伏)이나 기습(奇襲)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을 ‘기(奇)’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