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깐깐함' 그리고 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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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제 10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칼'에 게재된 소설가 '이혜경'의 심사평이다.

총평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그 작가가 쓴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 때, 그건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고유의 빛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갱신을 위해 애쓰는 작가들의 면모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소설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작가들의 노고는 수전 손택의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한 대목을 떠올리게 했다. 문학이 '자의식이고, 회의고, 양심의 거리낌이고, 깐깐함'이라면, 어쩌면 거짓이 득세하는 시기야말로 문학이 제 본분을 찾기에 알맞은 때가 아닌가 싶었다. 예심을 거쳐온 작품들이 저마다 보여주는 '깐깐함'이 그래서 더 든든하고 고마웠다."

심사평

권여선 『팔도기획』

"정해진 구도에 안주하던 사무실 사람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떠난 인물이 남긴 여파가 여운을 남긴다. 인물들의 개성도 잘 살아있고, 이 실용의 시대에 고답적인 그러나 근원적인 질문에 천착하는 뚝심도 미더웠다."

박성원 『하루』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한 세계를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보여준다."

"평범한 하루, 소소한 우연이 그물의 날줄과 씨줄처럼 엮이며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우린 맡은 일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작중 화자들의 말은, 맡은 일에만 몰두하기에도 벅찬 세상에서, 각자가 그 '맡은 일'에 몰입하는 동안 우리가 잊거나 잃은 게 무엇인지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손홍규 『투명인간』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일 뿐 집안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가장을 기다리며 한 농담이 투명인간 놀이로 이어지고,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진 놀이는 결국 '투명인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기며 살아도 썩 불편하지 않"은 그런 관계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승우 『칼』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해온 작가의 특장에 비교적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 편이다."

"아버지에게는 자신을 위협하는 가해의 도구로 받아들여지는 칼이, 그 칼을 품은 아들에게는 자기 존재를 휩쓸어버릴 듯 강력한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라는 일화를 통해, '칼'로 대변되는 방어기제 없이는 타자와 만나기 어려운 우리의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