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건물 짓는 제도:방과 캉:온돌 제도
내용
3) 온돌 제도
우리나라의 온돌 제도에는 6가지 결점이 있다. 진흙을 쌓아 고랫등[1]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온돌을 만든다. 그런데 돌의 크기나 두께가 본래 고르지 않기 때문에 작은 자갈을 쌓아 네 모퉁이를 괴어 돌의 기우뚱거림을 막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이 뜨거워지면서 진흙이 마르면 자갈이 무너지거나 빠져나갈까 늘 걱정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결점이다.
돌 표면의 오목하게 파인 곳을 두꺼운 흙으로 메우고, 진흙으로 돌 표면을 흙손질하여 평평하게 하기 때문에 불을 때도 고루 따뜻하지 않으니, 이것이 두 번째 결점이다.
방고래가 높고 넓어 불꽃이 서로 이어지지를 못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결점이다.
벽이 성글고 얇기 때문에 평상시의 고충은 벽에 틈이 생기는 데에 있다. 틈이 생기면 바람이 스며들고 불길이 역류하여 새어 나온 연기가 방에 가득해지니, 이것이 네 번째 결점이다.
불목[2] 아래에 번갈아 불을 빨아들이는 불목구멍을 만들지 않아 불이 멀리까지 넘지를 못하고 땔나무 머리에서 구불구불하게 빙빙 도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결점이다.
방 말리는 일에 땔나무 100단을 꼭 써야 해서 10일 안으로 바로 들어가 살기 어려우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결점이다.
게다가 굴뚝을 만드는 방법은 더욱 엉성하다. 대략 굴뚝에 틈이 있으면 한 줄기 바람만으로도 아궁이 하나의 불을 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온돌은 늘 불이 역류하여 방이 두루 따뜻해지지 못할까 걱정되는데, 그 탓은 굴뚝에 있다. 간혹 싸릿대 바구니에 종이를 바르거나 나무판으로 통을 만들어 연기가 새지 않도록 틈이 난 굴뚝에 씌우기도 하지만, 애초 세운 굴뚝의 흙다짐에 틈이 있거나 바구니에 바른 종이가 떨어져 나가거나 나무통에 틈이 생기기라도 하면 굴뚝에서 새는 연기를 막지 못한다. 또 큰 바람이라도 한번 불면 이렇게 만든 보조 연통도 헛것이 된다.《열하일기》[3]
[4]
연암 박지원은 “우리나라 온돌 제도에는 6가지 결점이 있다.”고 했는데, 그 주장이 옳다. 나는 그 주장을 확대하여 다음과 같이 6가지 해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온돌 제도가 이미 잘못되어 땔나무를 낭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도회지 인근에서는 땔나무가 계수나무만큼 비싸[5] 열 식구 사는 집에서 한 해에 100금(金)을 써도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소상인이 얻은 이익이나 농장에서 거둔 소득 중에서 태반을 부뚜막 안에서 다 써 버리니, 그 해로움이 첫째이다.
땔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큰 도회지 교외의 산에서는 도끼가 날마다 사용되어 벤 나무에 난 싹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둘레가 한 아름 되는 재목은 100리를 가도 한 번도 만날 길이 없어서, 부모를 잘 봉양하고 돌아가신 뒤에 장례를 후하게 치르는 일에 마음이 유쾌하지 않으니, 그 해로움이 둘째이다.
땔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사방의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마른 그루터기나 죽은 뿌리까지 파내지 않은 것이 없다. 그 결과 장마라도 한번 만나면 모래와 진흙이 쓸려 내려 도랑에 흙 앙금이 쌓이고 곡식을 덮치니, 그 해로움이 셋째이다.
땔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검소한 집에서는 더러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한방에 살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다툰다.”[6]는 장자(莊子)의 비난을 초래하기도 하고, 더러는 남자가 안채에 살아 “위문할 만하다.”[7]는 《대대례기(大戴禮記)》의 경계를 범하기도 하니, 그 해로움이 넷째이다.
여러 날 불 때지 않아 벌레나 쥐가 벽을 뚫어놓았는데,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불을 때면 그 구멍으로 그을음 섞인 연기가 불을 끌어들여 불길이 벽대(壁帶)[8]【안. ‘벽대’는 벽에 띠처럼 걸쳐 있는 가로 나무이다. 《한서》의 주에 나온다.[9]】까지 뻗쳐 온 집이 다 타 버리니, 그 해로움이 다섯째이다.
온돌을 깔고 흙반죽을 바른 뒤에는 바닥에 종이를 3~4겹 바른다. 종이를 바른 뒤에는 기름 먹인 ‘전후지’(錢厚紙, 동전 두께의 두꺼운 종이)를 풀로 붙이는데, 민간에서 말하는 ‘유둔(油芚)’이 이것이다. 유둔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더욱 심하여 재력이 있지 않으면 쓸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굴뚝 근처는 불꽃이 이르지 못하여 끝끝내 습기를 머금게 되니, 깔아 놓은 유
둔이 얼룩덜룩 썩는다. 사방 10척 넓이를 바꾸려고 유둔 1장(張)을 말아 올리면 온돌 바닥에 발라 놓은 흙이 유둔을 말아 올리는 대로 일어나기 때문에 온돌 전부를 고쳐 깔지 않으면 공사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3년을 고치지 않으면 재가 방고래를 메워 온돌이 쇠처럼 차가워진다. 몇 해에 한 번씩 유둔을 바꾸면 이전의 물건을 버리고 새것을 깔아 귀한 물건을 낭비하는 셈이니,[10] 그 해로움이 여섯째이다.
온돌 하나가 제도를 잃어 모든 이용후생의 도구가 병을 얻지 않는 것이 없으니, 서둘러 온돌제도를 고쳐서 ‘캉’ 제도를 따라야 할 것이다.《금화경독기》[11]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온돌방에 사는 데 익숙해서 지금 하루아침에 제도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 방 제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온돌 깔기만 캉 제도를 본받으면 살기에도 편하고 땔나무도 아낄 수 있다.” 이 말이 참으로 맞는다. 그러나 캉에서 땔나무를 아낄 수 있는 이유는 번갈아 불을 빨아들이는 불목구멍을 만드는 데에 제 기법을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캉의 너비가 10척에 불과하므로 굴뚝과 아궁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불꽃이 쉽게 굴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근세까지 젊고 건장한 사람은 모두 대청에서 살고, 오직 늙고 병든 이들만 따뜻한 방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수백 년 전의 옛 가옥은 5~6량(樑)[12]쯤 되는 큰 집의 잘 꾸민 온돌방이라도 1칸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근세에는 노소와 귀천을 안 가리고 방에 살지 않는 이가 없고, 그릇이나 세간들도 모두 방 안에 늘어놓으니 3~4칸 되는 방이 아니면 무릎조차 들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부뚜막을 많이 설치해서 초저녁에 불을 지펴도 고랫등이 깊거나 방고래가 먼 곳은 불길이 미치지 못할 일이 오히려 걱정된다. 겨울에는 고질적으로 차고 여름 장마에는 습기를 끌어들이는데, 집 안의 젊은이들이나 어린 종들이 그 위에서 자니, 산기편추(疝氣偏墜)[13]나 허릿병, 반신불수의 증세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비록 아궁이, 굴뚝, 번갈아 불을 빨아들이는 불목구멍, 벽돌 놓기 작업에서 한결같이 캉 제도를 따른다 해도 유익함이 없을 것이다. 진정 캉 제도를 본받아 쓰겠다면 먼저 온돌의 길이와 너비를 줄여야 한다. 방구석에서 방문까지의 거리가 영조척(營造尺)[14] 11~12척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금화경독기》[15]
바닥에 벽돌 깔기를 마쳤으면 흙손질도 하지 말고 종이 붙이기도 하지 말며, 바로 벽돌 위에 유둔을 깐다. 그러나 유둔 역시 전체를 다 풀칠하지 말고, 종이가 서로 겹치는 곳과 네 가장자리의 접히는 곳에만 된풀에 메주콩가루를 개어 붙인다. 3년마다 한 번씩 재를 퍼낼 때는 유둔의 한쪽 가장자리만 들추고 개자리를 열어 재를 퍼낸 뒤 다시 앞의 방법대로 벽돌을 덮고 유둔을 붙인다.《금화경독기》[16]
각주
- ↑ 고랫등:구들장을 올려놓는, 방고래와 방고래 사이의 약간 두두룩한 곳.
- ↑ 불목:온돌방 아랫목의 가장 따뜻한 자리. 아궁이가 가까워서 불길이 많이 가는 곳이다.
- ↑ 《熱河日記》, 〈渡江錄〉 “七月初五日”.
- ↑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섬용지》1, 118~120쪽.
- ↑ 땔나무가……비싸:《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3에 다음과 같은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 “초나라의 곡식은 옥보다 비싸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비싸다. (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 ↑ 며느리와……다툰다:《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나오는 “방에 빈 곳이 없으니, 며느리와 시어미가 다툰다.(室無空虛, 則婦姑勃蹊.)”는 문구에서 나왔다.
- ↑ 위문할 만하다:남자가 벼슬이 없은 지 오래되어 땔나무 구할 돈이 없어서 안채에 들어가 사니 위문할 만하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예기집설(禮記集說)》 권122의 “子云:‘孝以事君, 弟以事長, 示民不貳也. 故君子有君, 不謀仕, …’”에 대한 주석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유래한다. “경원보씨가 ‘임금이 있으면 벼슬하기를 꾀하지 않지만 임금이 없으면 3개월이 지나서 위문할 수 있다.’고 했다.(慶源輔氏曰:“有君則不謀仕, 無君則三月可弔也.”)” 또 《맹자》 〈등문공〉 하에도 다음과 같이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주소가 물었다. ‘옛날의 군자도 벼슬했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벼슬했다. 〈전〉을 보면, ‘공자께서는 3개월 동안 섬기는 임금이 없자 당황해 하면서 국경을 나갈 때 반드시 예물을 챙기셨다’고 했는데, 공명의는 ‘옛사람은 3개월 동안 섬기는 임금이 없으면 위문한다.’고 했다.(周霄問曰, “古之君子仕乎?” 孟子曰, “仕. 傳曰, ‘孔子三月無君則皇皇如也. 出疆必載質.’” 公明儀曰:“古之人三月無君則弔.”)”
- ↑ 벽대(壁帶):기둥과 기둥 또는 벽선에 띠처럼 가로질러 벽체의 뼈대 또는 문틀이 되는 가로재의 총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인방(引枋)이라 한다. 위치에 따라 상인방(上引枋), 중인방(中引枋), 하인방(下引枋)으로 분류하며, 줄여서 상방, 중방, 하방이라 한다.
- ↑ “壁帶, 壁之橫木, 露出如帶者也.” 《前漢書》 卷97 下 〈外戚列傳〉 67 下.
- ↑ 귀한……셈이니:원문의 ‘暴殄天物’을 옮긴 것으로, 이 말은 《상서(尙書)》 〈무성(武成)〉에 나온다. “今商王受無道, 暴殄天物, 害虐烝民.”
- ↑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섬용지》1, 120~123쪽.
- ↑ 5~6량(梁):건물의 앞뒤 방향 규모는 도리의 개수로 표현하는데, 5량가 이상이면 규모를 갖춘 큰 집에 해당한다. 5량가는 처마도리, 중도리, 종도리를 모두 갖춘 최소 규모이다.
- ↑ 산기편추(疝氣偏墜):한쪽 고환이나 음낭이 커져 아래로 처지면서 아픈 증상.
- ↑ 영조척:목공과 건축에 사용하던 자. 《임원경제지 섬용지》 권4 〈도량형 도구〉 “자” 부분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 ↑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섬용지》1, 123~125쪽.
- ↑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섬용지》1,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