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복식 도구:이부자리:이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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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1) 이불 [衾]<ref>이불[衾]:직사각형 모양으로 사람이 잠잘 때 덮어 몸을 보호하는 침구.<br/> | <strong>1) 이불 [衾]<ref>이불[衾]:직사각형 모양으로 사람이 잠잘 때 덮어 몸을 보호하는 침구.<br/> | ||
− | [[파일:이불(삼재도회).jpg|100픽셀|섬네일|이불(삼재도회)| | + | [[파일:이불(삼재도회).jpg|100픽셀|섬네일|이불(삼재도회)|왼쪽]] |
[[파일:솜이불(국립민속박물관).jpg|200픽셀|섬네일|솜이불(국립민속박물관)|가운데]] | [[파일:솜이불(국립민속박물관).jpg|200픽셀|섬네일|솜이불(국립민속박물관)|가운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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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의 “금(衾)과 주(裯)를 안고”<ref>《毛詩正義》 卷1 〈召南〉 “小星”(《十三經注疏整理本》, 113쪽).</ref>라는 구절에 대해 〈모전(毛傳)〉”<ref>〈모전(毛傳)〉:한(漢) 초기의 학자 모형(毛亨, ?~?)이 《시경》을 연구하여 《시고훈전(詩誥訓傳)》을 짓고 이를 모장(毛萇)에게 주었는데, 《시경》에 모형이 전(傳)을 달았기 때문에 ‘모전(毛傳)’이라 한다. 후한의 정현(鄭玄, 127~200)이 전(箋)을 달고, 당의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소(疏)를 단 《모시정의(毛詩正義)》가 지금까지 전해진다.</ref>에서는 주(裯)를 홑이불[衾]로 보았고, 정현은 또 금(衾)을 홑이불로, 주(裯)를 침대를 덮는 휘장으로 보았는데, 누가 옳은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두껍거나 얇거나, 홑이거나 겹이거나 모두 금(衾)이라 부르고 주(裯)라는 명칭을 다시는 쓰지 않는다. | 《시경》의 “금(衾)과 주(裯)를 안고”<ref>《毛詩正義》 卷1 〈召南〉 “小星”(《十三經注疏整理本》, 113쪽).</ref>라는 구절에 대해 〈모전(毛傳)〉”<ref>〈모전(毛傳)〉:한(漢) 초기의 학자 모형(毛亨, ?~?)이 《시경》을 연구하여 《시고훈전(詩誥訓傳)》을 짓고 이를 모장(毛萇)에게 주었는데, 《시경》에 모형이 전(傳)을 달았기 때문에 ‘모전(毛傳)’이라 한다. 후한의 정현(鄭玄, 127~200)이 전(箋)을 달고, 당의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소(疏)를 단 《모시정의(毛詩正義)》가 지금까지 전해진다.</ref>에서는 주(裯)를 홑이불[衾]로 보았고, 정현은 또 금(衾)을 홑이불로, 주(裯)를 침대를 덮는 휘장으로 보았는데, 누가 옳은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두껍거나 얇거나, 홑이거나 겹이거나 모두 금(衾)이라 부르고 주(裯)라는 명칭을 다시는 쓰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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