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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연절의 연꽃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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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일소(內觀日疏)175》에 “6월 24일을 관연절(觀蓮節)로 삼는다.”176라 했다. 대개 고금의 연꽃을 감상하는 놀이 가운데 그 풍류와 운치를 기록할 만한 내용이 3가지가 있다. 첫째, 단성식(段成式)177의 《유양잡조(酉陽雜俎)》178에 “위나라 정시(正始)179 연간(240~249)에 정각(鄭慤)180이 삼복(三伏)181에 빈객과 동료들을 데리고 사군림(使君林)182에서 더위를 피할 때에 큰 연잎을 따다가 벼루받침대 위에 놓고 술 3되를 담아두고는, 비녀로 연잎을 찔러 구멍을 내어 연 줄기와 통하게 해놓고, 연 줄기를 위로 코끼리 코처럼 둥그렇게 올려서 돌려가며 빨아마셨다. 이를 ‘벽통배(碧筩杯)’라 한다.”183라 했다. 둘째, 섭몽득(葉夢得)184의 《피서록화(避暑錄話)185》에 “구양수(歐陽修)186가 양주(揚州)187에 있을 때 평산당(平山堂)188을 짓고 매년 여름 한창 더울 때 새벽을 틈타 빈객들을 데리고 가서 노닐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연꽃 1,000여 송이를 따다가 그림이 그려진 화병[畫盆] 100개 정도에 나누어 꽂고 손님들과 서로 사이에 두도록 했다. 술잔 돌리는 차례가 되면 곧 기생을 시켜 한 송이의 꽃을 가져다 손님들에게 돌리면서 차례대로 그 꽃잎을 따게 했다. 그러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그 차례의 손님이 곧 술을 마셨다. 이따금 밤이 이슥하도록 노닐다가 달빛을 배에 가득 싣고서 돌아오기도 한다.”189라 했다. 셋째, 도종의(陶宗儀)190의 《철경록(輟耕錄)》191에 "일찍이 하씨(夏氏)192의 청월당(淸樾堂)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술이 반쯤 취했을 때 활짝 핀 연꽃을 뚝 꺾어다가 그 속에 작은 금 술잔을 놓아두고 노래 부르는 기생에게 명하여 꽃을 받들고서 술을 돌리게 했다. 손님들이 기생에게 나아가 꽃을 받되, 왼손으로는 꽃의 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꽃잎을 벌려 입을 잔에 대고 술을 마신다. 이것을 ‘해어배(解語杯)’193라 한다.”194라 했다. 이상의 세 가지 놀이는 혹 태수(太守)의 풍류에서 나오기도 하고 혹 부호들이 호사스러운 놀이로 경쟁하는 데에서 나오기도 했으니, 산야에 사는 선비들이 어찌 비슷하게 모방할 수 있겠는가. 손님이 꼭 유명 인사나 관료일 필요는 없고 다만 소박한 마음을 가진 예닐곱 사람이 더불어 운자를 뽑아 시를 짓고 청담을 나누면 좋겠다. 화병이 꼭 그림 그려진 화병일 필요는 없고, 그저 거위 목처럼 목이 긴 화낭(花囊, 꽃을 꽂는 주머니)이나 가대(茄袋)195 화낭 10여 개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꽃을 꽂아두어도 좋겠다. 술잔도 꼭 금술잔일 필요는 없고, 그저 나무옹이로 만든 술잔이나 도자기 술잔 가운데 깊이 가 얕은 잔이거나 자그마한 술잔이어도 좋겠다. 술을 돌리는 이도 꼭 기녀일 필요는 없고, 그저 눈매가 맑고 눈이 반짝이는 시골 아이에게 왕발(王勃)196의 〈채련곡(採蓮曲)197〉을 부르게 해 술잔을 권하게 하면 좋겠다. 옛날에 원굉도(袁宏道)198가 지은 〈상정(觴政)199〉에“옥·무소뿔·마노(瑪瑙)200로 잔과 국자를 만들면 상품(上品)이다. 웅백(熊白)201과 서시유(西施乳)202로 안주를 삼으면 별품이다.”203라 했다. 게다가 “겨우 각색 물목들을 조금 갖추어 놓았을 뿐이나, 지방의 빈한한 선비들이 어디에서 이 항목에 맞는 물품들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옹기그릇이나 채소를 담는 그릇이라 하더라도 또한 고상한 운치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204라 했으니, 내가 이에 대해 또 말했던 것이다. 《금화경독기》205<ref>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 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129쪽.</ref><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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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일소(內觀日疏)<ref>내관일소(內觀日疏):《說郛》 卷31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짧은 글. 연꽃 감상 및 연꽃에 대한 시·수선화·학 등을 다룬 잡기이다.</ref>》에 “6월 24일을 <strong>관연절(觀蓮節)</strong>로 삼는다.”<ref>6월……삼는다:《說郛》 卷31下 〈內觀日疏〉(《文淵閣四庫全書》877, 685쪽).</ref>라 했다. 대개 고금의 연꽃을 감상하는 놀이 가운데 그 풍류와 운치를 기록할 만한 내용이 3가지가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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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단성식(段成式)<ref>단성식(段成式):?~?.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이자 학자. 자는 가고(柯古). 박학(博學)으로 인정받을 만큼연구에 정진하여, 비각(秘閣, 궁정 도서관)의 책은 모두 읽었다고 전한다. 상서랑(尙書郞)·강주자사(江州刺史)·태상소향(太常少鄕)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저서로 《유양잡조(酉陽雜俎)》가 있다.</ref>의 《유양잡조(酉陽雜俎)》<ref>유양잡조(酉陽雜俎):중국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수필집. 통행본(通行本)은 전집(前集) 20권, 속집(續集)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한 사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도서·의식(衣食)·풍습·동식물·의학·종교·인사(人事) 등 온갖 사항에 대한 것을 탁월한 문장으로 흥미 있게 기술했다.</ref>에 “위나라 정시(正始)<ref>정시(正始):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3대 황제 조방(曹芳, 232~274)의 연호. 240~249.</ref> 연간(240~249)에 정각(鄭慤)<ref>정각(鄭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 본문에 소개된 벽통음(碧筩飮, 벽통배)의 풍류로 유명하다.</ref>이 삼복(三伏)<ref>삼복(三伏):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세 복날.</ref>에 빈객과 동료들을 데리고 사군림(使君林)<ref>사군림(使君林):중국 위(魏)나라 역성(歷城) 북쪽에 있던 숲 이름. 역성은 전한(前漢)의 경제(景帝) 4년에지어졌는데 근처에 역산[歷山, 천불산(千佛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성 이름을 지었다.</ref>에서 더위를 피할 때에 큰 연잎을 따다가 벼루받침대 위에 놓고 술 3되를 담아두고는, 비녀로 연잎을 찔러 구멍을 내어 연 줄기와 통하게 해놓고, 연 줄기를 위로 코끼리 코처럼 둥그렇게 올려서 돌려가며 빨아마셨다. 이를 ‘<strong>벽통배(碧筩杯)</strong>’라 한다.”<ref>위나라……한다:《酉陽雜俎》 卷7 〈酒食〉(《叢書集成初編》276, 53쪽).</ref>라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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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섭몽득(葉夢得)<ref>섭몽득(葉夢得):1077~1148. 중국 송(宋)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소온(少蘊), 호는 석림(石林). 호부상서(戶部尙書), 강동안무사(江東按撫使), 숭신군절도사(崇信軍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사퇴했다.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사(詞)에 특히 뛰어났다. 저서에 《피서록화》·《석림사(石林詞)》·《석림연어(石林燕語)》 등이 있다.</ref>의 《피서록화(避暑錄話)<ref>피서록화(避暑錄話):중국 송대(宋代) 문장가 섭몽득(葉夢得, 1077~1148)의 저서. 고적(古迹)·전대나 당대의 인물과 그 업적, 한가한 삶의 서정, 경사에 대한 의론 등을 기술했다.</ref>》에 “구양수(歐陽修)<ref>구양수(歐陽修):1007~1072. 중국 북송 때의 정치가·학자·문학가.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육일거사(六一居士). 4세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중에서도 어머니의 교육을 받아 1027년에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 참지정사(參知政事)에까지 승진했으나 왕안석의 혁신 정치에 반대하여 정치에서 물러났다. 고문(古文)을 부흥시키고, 당대(唐代)의 화려한 시풍에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었다.</ref>가 양주(揚州)<ref>양주(揚州):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주시(揚州市) 일대.</ref>에 있을 때 평산당(平山堂)<ref>평산당(平山堂):중국 강소성 강도현(江都縣)에 있는 당실(堂室)의 이름. 송나라 경력(慶曆) 연간 군수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었는데, 《피서록화》에서 “웅장하고 화려하니 회남(淮南)의 제일가는 당(堂)이다.”라고 표현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중건했다.</ref>을 짓고 매년 여름 한창 더울 때 새벽을 틈타 빈객들을 데리고 가서 노닐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연꽃 1,000여 송이를 따다가 그림이 그려진 화병[畫盆] 100개 정도에 나누어 꽂고 손님들과 서로 사이에 두도록 했다. 술잔 돌리는 차례가 되면 곧 기생을 시켜 한 송이의 꽃을 가져다 손님들에게 돌리면서 차례대로 그 꽃잎을 따게 했다. 그러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그 차례의 손님이 곧 술을 마셨다. 이따금 밤이 이슥하도록 노닐다가 달빛을 배에 가득 싣고서 돌아오기도 한다.”<ref>구양수(歐陽修)가……한다:《避暑錄話》 卷上 (《文淵閣四庫全書》863, 631쪽).</ref>라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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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도종의(陶宗儀)<ref>도종의(陶宗儀):?~1369. 중국 원(元)나라 말 명(明)나라 초의 학자. 절강성(浙江省) 출신이다. 저서로 《서사회요(書史會要)》·《남촌시집(南村詩集)》·《철경록(輟耕錄)》 등이 있다.</ref>의 《철경록(輟耕錄)》<ref>철경록(輟耕錄):중국 원말 명초의 학자 도종의의 저서. 원나라 시대의 법령제도 및 지정(至正, 1341~1370) 말년의 동남(東南) 병란에 관한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서화(書畫)·문예(文藝)의 고정(考訂)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ref>에 "일찍이 하씨(夏氏)<ref>하씨(夏氏):미상. 《철경록(輟耕錄)》에 의하면 중국 절강성(浙江省) 사수(泗水) 물가에 하씨(夏氏)의 청월당(淸樾堂)이 있었다고 한다.</ref>의 청월당(淸樾堂)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술이 반쯤 취했을 때 활짝 핀 연꽃을 뚝 꺾어다가 그 속에 작은 금 술잔을 놓아두고 노래 부르는 기생에게 명하여 꽃을 받들고서 술을 돌리게 했다. 손님들이 기생에게 나아가 꽃을 받되, 왼손으로는 꽃의 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꽃잎을 벌려 입을 잔에 대고 술을 마신다. 이것을 ‘<strong>해어배(解語杯)</strong>’<ref>해어배(解語杯):기생이 바치는 꽃잎 속에 든 술잔. 미녀나 기생을 비유하여 ‘말을 이해하는 꽃[解語花]’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당(唐)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데리고 궁중의 태액(太液) 연못에 나와 가득히 피어 있는 백련(白蓮)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양귀비를 가리키면서, “어떠냐?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알아듣는[解語] 이 꽃에는 당하지 못하겠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ref>라 한다.”<ref>일찍이……한다:《輟耕錄》 卷28 〈解語盃〉(《文淵閣四庫全書》1040, 726쪽).</ref>라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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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세 가지 놀이는 혹 태수(太守)의 풍류에서 나오기도 하고 혹 부호들이 호사스러운 놀이로 경쟁하는 데에서 나오기도 했으니, 산야에 사는 선비들이 어찌 비슷하게 모방할 수 있겠는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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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꼭 유명 인사나 관료일 필요는 없고 다만 소박한 마음을 가진 예닐곱 사람이 더불어 운자를 뽑아 시를 짓고 청담을 나누면 좋겠다. 화병이 꼭 그림 그려진 화병일 필요는 없고, 그저 거위 목처럼 목이 긴 화낭(花囊, 꽃을 꽂는 주머니)이나 가대(茄袋)<ref>가대(茄袋):몸의 좌우에 차는 주머니, ‘빙구자(憑口子)’라고도 하는데 담뱃대·쌈지·빈랑(檳榔)·차·향 같은 것을 넣는다.</ref> 화낭 10여 개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꽃을 꽂아두어도 좋겠다. 술잔도 꼭 금술잔일 필요는 없고, 그저 나무옹이로 만든 술잔이나 도자기 술잔 가운데 깊이 가 얕은 잔이거나 자그마한 술잔이어도 좋겠다. 술을 돌리는 이도 꼭 기녀일 필요는 없고, 그저 눈매가 맑고 눈이 반짝이는 시골 아이에게 왕발(王勃)<ref>왕발(王勃):650~676. 중국 당(唐)나라 초기의 시인. 자는 자안(子安). 강주(絳州) 용문(龍門) 출신이다.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이며, 특히 5언 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다.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 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던 중,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했다. 양형(楊炯, 650~695 추정)·노조린(盧照隣, 635~689 추정)·낙빈왕(駱賓王, 619~687) 등과 함께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린다. 저서로 시문집인 《왕자안집(王子安集)》 등이 있다.</ref>의 〈<strong>채련곡(採蓮曲)</strong><ref>채련곡(採蓮曲):왕발(王勃)의 시로, 붉은 연꽃을 여인의 홍조 띤 뺨에 비유하고 못과 풍광을 노래하는 중에 수자리 살러 간 남편은 돌아올 기약이 없고 남편을 기다리며 연을 캐는 고운 아낙의 일은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음을 노래한 시이다.</ref>〉을 부르게 해 술잔을 권하게 하면 좋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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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원굉도(袁宏道)<ref>원굉도(袁宏道):1568~1610. 중국 명(明)나라의 문학가. 자는 중랑(中郎)·무학(無學),호는 석공(石公)·육휴(六休). 복고운동을 주장했다. 고문사파에 의한 의고운동에 반대해 시의 진수는 개성의 자유로운 발로이며 격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형 원종도(袁宗道)·동생 원중도(袁中道)와 함께 ‘삼원(三袁)’으로 일컬어지며,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공안파(公安派)로 불린다. 저서로 《원중랑집(袁中郞集)》이 있다.</ref>가 지은 〈상정(觴政)<ref>상정(觴政):술 마시는 상대·자세·장소·예절·안주·도구 등에 대해 원굉도가 자세히 기술한 글. 나중에는 술자리에서의 규칙[酒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ref>〉에“옥·무소뿔·마노(瑪瑙)<ref>마노(瑪瑙):석영, 단백석(蛋白石), 옥수(玉髓)의 혼합물. 화학 성분은 송진과 같은 규산(硅酸)으로, 광택이 있고 때때로 다른 광물질이 스며들어 고운 적갈색이나 흰색 무늬를 띠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은 보석이나 장식품으로 쓰고, 그 외에는 세공물이나 조각의 재료로 쓴다.</ref>로 잔과 국자를 만들면 상품(上品)이다. 웅백(熊白)<ref>웅백(熊白):곰의 등에 있는 흰 지방. 원굉도는 〈상정(觴政)〉에서 일품 안주로 선합(鮮蛤, 날조개)·조감(糟蚶, 조개요리) 다음으로 웅백(熊白)·서시유(西施乳)를 꼽았다.</ref>과 서시유(西施乳)<ref>서시유(西施乳):복어의 정소(精巢). 색깔이 우윳빛을 띠므로 서시유(西施乳)라 했다.</ref>로 안주를 삼으면 별품이다.”<ref>옥……별품이다:《說郛續》 卷38 〈觴政〉(《續修四庫全書》1192, 35쪽).</ref>라 했다. 게다가 “겨우 각색 물목들을 조금 갖추어 놓았을 뿐이나, 지방의 빈한한 선비들이 어디에서 이 항목에 맞는 물품들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옹기그릇이나 채소를 담는 그릇이라 하더라도 또한 고상한 운치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ref>겨우……되겠는가:위와 같은 곳.</ref>라 했으니, 내가 이에 대해 또 말했던 것이다. 《금화경독기》<ref>출전 확인 안 됨.</ref><ref>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 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44~548쪽.</ref><br/><br/>
  
  
 
[[분류: 한양도성타임머신]][[분류: Event]][[분류: 행사]][[분류: 관연절]][[분류: 임원경제지]][[분류: 이운지]] [[분류: 절신상락]] [[분류: 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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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3일 (목) 15:33 기준 최신판

관연절의 연꽃 감상

《내관일소(內觀日疏)[1]》에 “6월 24일을 관연절(觀蓮節)로 삼는다.”[2]라 했다. 대개 고금의 연꽃을 감상하는 놀이 가운데 그 풍류와 운치를 기록할 만한 내용이 3가지가 있다.
첫째, 단성식(段成式)[3]의 《유양잡조(酉陽雜俎)》[4]에 “위나라 정시(正始)[5] 연간(240~249)에 정각(鄭慤)[6]이 삼복(三伏)[7]에 빈객과 동료들을 데리고 사군림(使君林)[8]에서 더위를 피할 때에 큰 연잎을 따다가 벼루받침대 위에 놓고 술 3되를 담아두고는, 비녀로 연잎을 찔러 구멍을 내어 연 줄기와 통하게 해놓고, 연 줄기를 위로 코끼리 코처럼 둥그렇게 올려서 돌려가며 빨아마셨다. 이를 ‘벽통배(碧筩杯)’라 한다.”[9]라 했다.
둘째, 섭몽득(葉夢得)[10]의 《피서록화(避暑錄話)[11]》에 “구양수(歐陽修)[12]가 양주(揚州)[13]에 있을 때 평산당(平山堂)[14]을 짓고 매년 여름 한창 더울 때 새벽을 틈타 빈객들을 데리고 가서 노닐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연꽃 1,000여 송이를 따다가 그림이 그려진 화병[畫盆] 100개 정도에 나누어 꽂고 손님들과 서로 사이에 두도록 했다. 술잔 돌리는 차례가 되면 곧 기생을 시켜 한 송이의 꽃을 가져다 손님들에게 돌리면서 차례대로 그 꽃잎을 따게 했다. 그러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그 차례의 손님이 곧 술을 마셨다. 이따금 밤이 이슥하도록 노닐다가 달빛을 배에 가득 싣고서 돌아오기도 한다.”[15]라 했다.
셋째, 도종의(陶宗儀)[16]의 《철경록(輟耕錄)》[17]에 "일찍이 하씨(夏氏)[18]의 청월당(淸樾堂)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술이 반쯤 취했을 때 활짝 핀 연꽃을 뚝 꺾어다가 그 속에 작은 금 술잔을 놓아두고 노래 부르는 기생에게 명하여 꽃을 받들고서 술을 돌리게 했다. 손님들이 기생에게 나아가 꽃을 받되, 왼손으로는 꽃의 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꽃잎을 벌려 입을 잔에 대고 술을 마신다. 이것을 ‘해어배(解語杯)[19]라 한다.”[20]라 했다.
이상의 세 가지 놀이는 혹 태수(太守)의 풍류에서 나오기도 하고 혹 부호들이 호사스러운 놀이로 경쟁하는 데에서 나오기도 했으니, 산야에 사는 선비들이 어찌 비슷하게 모방할 수 있겠는가.
손님이 꼭 유명 인사나 관료일 필요는 없고 다만 소박한 마음을 가진 예닐곱 사람이 더불어 운자를 뽑아 시를 짓고 청담을 나누면 좋겠다. 화병이 꼭 그림 그려진 화병일 필요는 없고, 그저 거위 목처럼 목이 긴 화낭(花囊, 꽃을 꽂는 주머니)이나 가대(茄袋)[21] 화낭 10여 개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꽃을 꽂아두어도 좋겠다. 술잔도 꼭 금술잔일 필요는 없고, 그저 나무옹이로 만든 술잔이나 도자기 술잔 가운데 깊이 가 얕은 잔이거나 자그마한 술잔이어도 좋겠다. 술을 돌리는 이도 꼭 기녀일 필요는 없고, 그저 눈매가 맑고 눈이 반짝이는 시골 아이에게 왕발(王勃)[22]의 〈채련곡(採蓮曲)[23]〉을 부르게 해 술잔을 권하게 하면 좋겠다.

옛날에 원굉도(袁宏道)[24]가 지은 〈상정(觴政)[25]〉에“옥·무소뿔·마노(瑪瑙)[26]로 잔과 국자를 만들면 상품(上品)이다. 웅백(熊白)[27]과 서시유(西施乳)[28]로 안주를 삼으면 별품이다.”[29]라 했다. 게다가 “겨우 각색 물목들을 조금 갖추어 놓았을 뿐이나, 지방의 빈한한 선비들이 어디에서 이 항목에 맞는 물품들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옹기그릇이나 채소를 담는 그릇이라 하더라도 또한 고상한 운치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30]라 했으니, 내가 이에 대해 또 말했던 것이다. 《금화경독기》[31][32]

  1. 내관일소(內觀日疏):《說郛》 卷31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짧은 글. 연꽃 감상 및 연꽃에 대한 시·수선화·학 등을 다룬 잡기이다.
  2. 6월……삼는다:《說郛》 卷31下 〈內觀日疏〉(《文淵閣四庫全書》877, 685쪽).
  3. 단성식(段成式):?~?.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이자 학자. 자는 가고(柯古). 박학(博學)으로 인정받을 만큼연구에 정진하여, 비각(秘閣, 궁정 도서관)의 책은 모두 읽었다고 전한다. 상서랑(尙書郞)·강주자사(江州刺史)·태상소향(太常少鄕)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저서로 《유양잡조(酉陽雜俎)》가 있다.
  4. 유양잡조(酉陽雜俎):중국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수필집. 통행본(通行本)은 전집(前集) 20권, 속집(續集)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한 사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도서·의식(衣食)·풍습·동식물·의학·종교·인사(人事) 등 온갖 사항에 대한 것을 탁월한 문장으로 흥미 있게 기술했다.
  5. 정시(正始):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3대 황제 조방(曹芳, 232~274)의 연호. 240~249.
  6. 정각(鄭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 본문에 소개된 벽통음(碧筩飮, 벽통배)의 풍류로 유명하다.
  7. 삼복(三伏):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세 복날.
  8. 사군림(使君林):중국 위(魏)나라 역성(歷城) 북쪽에 있던 숲 이름. 역성은 전한(前漢)의 경제(景帝) 4년에지어졌는데 근처에 역산[歷山, 천불산(千佛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성 이름을 지었다.
  9. 위나라……한다:《酉陽雜俎》 卷7 〈酒食〉(《叢書集成初編》276, 53쪽).
  10. 섭몽득(葉夢得):1077~1148. 중국 송(宋)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소온(少蘊), 호는 석림(石林). 호부상서(戶部尙書), 강동안무사(江東按撫使), 숭신군절도사(崇信軍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사퇴했다.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사(詞)에 특히 뛰어났다. 저서에 《피서록화》·《석림사(石林詞)》·《석림연어(石林燕語)》 등이 있다.
  11. 피서록화(避暑錄話):중국 송대(宋代) 문장가 섭몽득(葉夢得, 1077~1148)의 저서. 고적(古迹)·전대나 당대의 인물과 그 업적, 한가한 삶의 서정, 경사에 대한 의론 등을 기술했다.
  12. 구양수(歐陽修):1007~1072. 중국 북송 때의 정치가·학자·문학가.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육일거사(六一居士). 4세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중에서도 어머니의 교육을 받아 1027년에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 참지정사(參知政事)에까지 승진했으나 왕안석의 혁신 정치에 반대하여 정치에서 물러났다. 고문(古文)을 부흥시키고, 당대(唐代)의 화려한 시풍에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었다.
  13. 양주(揚州):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주시(揚州市) 일대.
  14. 평산당(平山堂):중국 강소성 강도현(江都縣)에 있는 당실(堂室)의 이름. 송나라 경력(慶曆) 연간 군수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었는데, 《피서록화》에서 “웅장하고 화려하니 회남(淮南)의 제일가는 당(堂)이다.”라고 표현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중건했다.
  15. 구양수(歐陽修)가……한다:《避暑錄話》 卷上 (《文淵閣四庫全書》863, 631쪽).
  16. 도종의(陶宗儀):?~1369. 중국 원(元)나라 말 명(明)나라 초의 학자. 절강성(浙江省) 출신이다. 저서로 《서사회요(書史會要)》·《남촌시집(南村詩集)》·《철경록(輟耕錄)》 등이 있다.
  17. 철경록(輟耕錄):중국 원말 명초의 학자 도종의의 저서. 원나라 시대의 법령제도 및 지정(至正, 1341~1370) 말년의 동남(東南) 병란에 관한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서화(書畫)·문예(文藝)의 고정(考訂)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
  18. 하씨(夏氏):미상. 《철경록(輟耕錄)》에 의하면 중국 절강성(浙江省) 사수(泗水) 물가에 하씨(夏氏)의 청월당(淸樾堂)이 있었다고 한다.
  19. 해어배(解語杯):기생이 바치는 꽃잎 속에 든 술잔. 미녀나 기생을 비유하여 ‘말을 이해하는 꽃[解語花]’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당(唐)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데리고 궁중의 태액(太液) 연못에 나와 가득히 피어 있는 백련(白蓮)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양귀비를 가리키면서, “어떠냐?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알아듣는[解語] 이 꽃에는 당하지 못하겠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0. 일찍이……한다:《輟耕錄》 卷28 〈解語盃〉(《文淵閣四庫全書》1040, 726쪽).
  21. 가대(茄袋):몸의 좌우에 차는 주머니, ‘빙구자(憑口子)’라고도 하는데 담뱃대·쌈지·빈랑(檳榔)·차·향 같은 것을 넣는다.
  22. 왕발(王勃):650~676. 중국 당(唐)나라 초기의 시인. 자는 자안(子安). 강주(絳州) 용문(龍門) 출신이다.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이며, 특히 5언 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다.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 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던 중,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했다. 양형(楊炯, 650~695 추정)·노조린(盧照隣, 635~689 추정)·낙빈왕(駱賓王, 619~687) 등과 함께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린다. 저서로 시문집인 《왕자안집(王子安集)》 등이 있다.
  23. 채련곡(採蓮曲):왕발(王勃)의 시로, 붉은 연꽃을 여인의 홍조 띤 뺨에 비유하고 못과 풍광을 노래하는 중에 수자리 살러 간 남편은 돌아올 기약이 없고 남편을 기다리며 연을 캐는 고운 아낙의 일은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음을 노래한 시이다.
  24. 원굉도(袁宏道):1568~1610. 중국 명(明)나라의 문학가. 자는 중랑(中郎)·무학(無學),호는 석공(石公)·육휴(六休). 복고운동을 주장했다. 고문사파에 의한 의고운동에 반대해 시의 진수는 개성의 자유로운 발로이며 격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형 원종도(袁宗道)·동생 원중도(袁中道)와 함께 ‘삼원(三袁)’으로 일컬어지며,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공안파(公安派)로 불린다. 저서로 《원중랑집(袁中郞集)》이 있다.
  25. 상정(觴政):술 마시는 상대·자세·장소·예절·안주·도구 등에 대해 원굉도가 자세히 기술한 글. 나중에는 술자리에서의 규칙[酒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26. 마노(瑪瑙):석영, 단백석(蛋白石), 옥수(玉髓)의 혼합물. 화학 성분은 송진과 같은 규산(硅酸)으로, 광택이 있고 때때로 다른 광물질이 스며들어 고운 적갈색이나 흰색 무늬를 띠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은 보석이나 장식품으로 쓰고, 그 외에는 세공물이나 조각의 재료로 쓴다.
  27. 웅백(熊白):곰의 등에 있는 흰 지방. 원굉도는 〈상정(觴政)〉에서 일품 안주로 선합(鮮蛤, 날조개)·조감(糟蚶, 조개요리) 다음으로 웅백(熊白)·서시유(西施乳)를 꼽았다.
  28. 서시유(西施乳):복어의 정소(精巢). 색깔이 우윳빛을 띠므로 서시유(西施乳)라 했다.
  29. 옥……별품이다:《說郛續》 卷38 〈觴政〉(《續修四庫全書》1192, 35쪽).
  30. 겨우……되겠는가:위와 같은 곳.
  31. 출전 확인 안 됨.
  32.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 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44~5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