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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얇은 편을 만든 다음 후추를 거칠게 부수어 함께 노구솥에 넣는다. 단 샘물을 써서 2~3번 끓도록 달여 사기항아리 안에 담아둔다. 여기에 흰가루(시상)가 많이 생긴 좋은 곶감을 넣고 아가리를 봉하여 하룻밤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먹을 때마다 백밀(白蜜, 흰꿀)을 타고 잣을 띄워 상에 올린다. 《옹치잡지》 <ref>출전 확인 안 됨. </ref>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얇은 편을 만든 다음 후추를 거칠게 부수어 함께 노구솥에 넣는다. 단 샘물을 써서 2~3번 끓도록 달여 사기항아리 안에 담아둔다. 여기에 흰가루(시상)가 많이 생긴 좋은 곶감을 넣고 아가리를 봉하여 하룻밤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먹을 때마다 백밀(白蜜, 흰꿀)을 타고 잣을 띄워 상에 올린다. 《옹치잡지》 <ref>출전 확인 안 됨. </ref>
 
   
 
   
전여성(田汝成)<ref>전여성(田汝成) : 1503~1557. 중국 명나라의 문인. 자는 숙화(叔禾). 저서로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 · 《서호유람지여(西湖遊覽志餘)》 가 있다. </ref>의 〈희조락사(煕朝樂事)〉 <ref>희조락사(煕朝樂事) : 전여성이 서호(西湖) 일대를 유람하며 느낀 감상을 적은 글. 그의 저서 《서호유람지 여》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ref>를 살펴보면 “정월 초하루에 측백나무꼬챙이에 곶감을 꿰어 큰 귤[大橘]로 받들고 가서는, ‘모든 일이 크게 길[大吉]하라[百事大吉, 백사대길].’라고 말한다.”<ref>정월……말한다 : 《西湖遊覽志餘》 卷20 〈煕朝樂事〉(《文淵閣四庫全書》 585, 543쪽). </ref>고 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남에게 음식을 보낼 때는 반드시 곶감을 쓰는데, 대개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금화경독기》 <ref>출전 확인 안 됨.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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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성(田汝成)<ref>전여성(田汝成) : 1503~1557. 중국 명나라의 문인. 자는 숙화(叔禾). 저서로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 · 《서호유람지여(西湖遊覽志餘)》 가 있다. </ref>의 〈희조락사(煕朝樂事)〉 <ref>희조락사(煕朝樂事) : 전여성이 서호(西湖) 일대를 유람하며 느낀 감상을 적은 글. 그의 저서 《서호유람지여》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ref>를 살펴보면 “정월 초하루에 측백나무꼬챙이에 곶감을 꿰어 큰 귤[大橘]로 받들고 가서는, ‘모든 일이 크게 길[大吉]하라[百事大吉, 백사대길].’라고 말한다.”<ref>정월……말한다 : 《西湖遊覽志餘》 卷20 〈煕朝樂事〉(《文淵閣四庫全書》 585, 543쪽). </ref>고 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남에게 음식을 보낼 때는 반드시 곶감을 쓰는데, 대개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금화경독기》 <ref>출전 확인 안 됨.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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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9일 (목) 13:47 기준 최신판

밀양시병 만들기

3) 밀양시병(蜜釀柹餠, 수정과의 일종) 만들기(밀양시 병방)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얇은 편을 만든 다음 후추를 거칠게 부수어 함께 노구솥에 넣는다. 단 샘물을 써서 2~3번 끓도록 달여 사기항아리 안에 담아둔다. 여기에 흰가루(시상)가 많이 생긴 좋은 곶감을 넣고 아가리를 봉하여 하룻밤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먹을 때마다 백밀(白蜜, 흰꿀)을 타고 잣을 띄워 상에 올린다. 《옹치잡지》 [1]

전여성(田汝成)[2]의 〈희조락사(煕朝樂事)〉 [3]를 살펴보면 “정월 초하루에 측백나무꼬챙이에 곶감을 꿰어 큰 귤[大橘]로 받들고 가서는, ‘모든 일이 크게 길[大吉]하라[百事大吉, 백사대길].’라고 말한다.”[4]고 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남에게 음식을 보낼 때는 반드시 곶감을 쓰는데, 대개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금화경독기》 [5]

각주

  1. 출전 확인 안 됨.
  2. 전여성(田汝成) : 1503~1557. 중국 명나라의 문인. 자는 숙화(叔禾). 저서로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 · 《서호유람지여(西湖遊覽志餘)》 가 있다.
  3. 희조락사(煕朝樂事) : 전여성이 서호(西湖) 일대를 유람하며 느낀 감상을 적은 글. 그의 저서 《서호유람지여》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4. 정월……말한다 : 《西湖遊覽志餘》 卷20 〈煕朝樂事〉(《文淵閣四庫全書》 585, 543쪽).
  5. 출전 확인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