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문방아제:그을음 반죽하기
일반적으로 그을음을 섞는 일은 깨끗하고 밀폐된 작은 방 안에서 해야지,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해서는 안 된다. 아교 그릇을 기울여 그을음의 중심부에 한참 동안 붓고 아교가 저절로 흘러들어 가게 한 뒤에 여럿의 힘을 들여 재빨리 섞는다. 반죽이 윤기가 나고 광택이 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맥반(麥飯, 보리를 갈아서 익힌 밥)처럼 될 정도로 섞는데, 반죽할 때 소리가 나야 좋은 아교다. 처음 아교를 만들 때는 품질이 하등인 그을음을 섞고, 두 번째는 중등인 그을음을 섞고, 가장 마지막에는 상등인 그을음을 섞는다. 옛날 먹 제조법에서는 일반적으로 그을음 1근에 아교 1근을 사용했다. 지금은 물을 섞은 아교 1근(=16냥)을 사용한다. 이때 물과 아교의 비율은, 물이 12냥을 차지하고 아교가 4냥을 차지하니, 이것이 옛 먹에 비해 품질이 좋지 않은 이유이다.
가사협(賈思勰)의 먹 만드는 법에 “그을음 1근에 아교 5냥을 사용한다.”[1]라 했는데 이 비율 역시 항상 좋지는 않다. 아교가 많이 들어간 먹은 오래 보관하는 데 유리하고, 아교가 적게 들어간 먹은 금방 쓰는 데 유리하다. 먹 만드는 장인은 먹을 빨리 팔려고 하기 때문에 아교를 적게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역수(易水)[2]의 해씨(奚氏)[3]와 흡주(歙州)[4]의 이씨(李氏)[5]를 보면 이들은 모두 아교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먹을 간수할 때에 아교가 많이 들어간 먹을 싼 종이는 누렇고, 아교가 적게 들어간 먹을 싼 종이는 덜 누렇다. 아교의 힘이 이를 통해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교를 많이 사용하면 그을음반죽이 반드시 되고, 되면 반죽하기 어렵다. 아교를 적게 넣어 그을음반죽이 부드러우면 먹 상태가 좋고, 단단하면 먹이 갈라진다. 칠(漆)과 함께 섞을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을음 1근에는 생칠(生漆) 3돈·숙칠(熟漆) 2돈으로 맑은 즙을 내서 아교에 넣고 골고루 치댄 뒤, 먹 만드는 법대로 그을음과 섞는다. 조열지 《묵경》[6]
깨끗한 그을음 1근을 저울로 재서 백자동이에 넣고, 동이는 탁자 위에 놓는다. 달여서 녹인 아교 약즙을 뜨거울 때 면포로 거르고 그을음의 중심부에 붓는다. 이어서 재빨리 손으로 골고루 섞으면서 넣어주되, 고운 모래와 같은 상태가 되도록 섞어준다. 이때 반죽이 차라리 마를지언정 축축하지 않게 한다. 반죽을 빚어 공 모양으로 만드는데, 만약 동이 바닥에 그을음과 아교가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으면 곧바로 끌 같은 연장으로 떼고 손으로 이겨서 공 모양의 반죽과 합치고, 이 반죽을 베로 함께 싼 뒤 시루에 넣고 찐다. 큰 먹은 개어 반죽하기가 가장 어렵다. 그러기에 반죽을 부드럽게 해야만 한다. 반죽이 단단하면 마르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손으로 빚어 만드는 그을음반죽과 무늬를 새겨 만드는 그을음반죽은 반쯤 부드럽게 해야 좋다. 먹틀[印脫]에 넣는 그을음반죽은 매우 부드러워야 좋다. 그을음반죽이 단단하면 먹틀에서 빼내기가 어렵고, 먹이 먹틀에 꽉 채워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씻으면 광택이 도는 먹의 반죽도 부드러워야 한다. 중요한 점은 반죽을 잘 주무르는 데 있으니, 많이 주무르면 먹에 흠결이 없다. 마땅히 1월·2월·3월·9월·10월·11월에 만들어야 하며, 나머지 달은 먹을 만들기에 알맞은 달이 아니다. 《묵법집요》[7]
- ↑ 그을음……사용한다:《齊民要術》 卷9 〈筆墨〉 “合墨法”(《齊民要術校釋》, 683쪽).
- ↑ 역수(易水):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강 이름.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나는 형가(荊軻, ?〜B.C. 227)를 역수에서 전송했다.
- ↑ 해씨(奚氏):?~?. 중국 당나라 말기의 유명한 묵장(墨匠)인 해내(奚鼐)와 그의 후손들을 말한다. 해내의 아들 해초(奚超)도 유명한 묵장으로 아들 해정규(奚廷珪)와 함께 전란을 피해 역수를 건너 흡주(歙州)로 이주했고, 주변의 좋은 소나무들을 이용해서 훌륭한 먹을 만들었다. 그의 아들은 중국 5대10국시대 남당의 마지막 왕인 이욱(李煜)으로부터 ‘묵무관(墨務官)’ 벼슬과 ‘李’씨 성을 받아 ‘이정규(李廷珪)’가 되었다.
- ↑ 흡주(歙州):고대 중국의 지명으로 휘주(徽州)·신안(新安)이라고도 한다. 현재 안휘성(安徽省) 남부와 신안강(新安江) 상류에 있었으며, 송(宋)나라 휘종(徽宗) 선화(宣和) 3년(1121)에 흡주를 휘주로 바꿨다.
- ↑ 이씨(李氏):전설적인 묵장 이정규(李廷珪)와 그의 후손들을 말한다.
- ↑ 《墨經》 〈和〉(《叢書集成初編》 1495, 9~11쪽).
- ↑ 《墨法集要》 〈捜煙〉(《叢書集成初編》 1496,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