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절일의 세부 내용:동제
내용
36) 동제(冬除, 동지 전날)의 밤 새기
육유(陸游)[1]의 《노학암필기(老學菴筆記)》[2]에서 “《태평광기(太平廣記)》[3] 〈노욱전(盧頊傳)〉에 ‘이날 저녁은 동지(冬至)의 제야(除夜)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고 나서야 당나라 사람들이 동지 하루 전날도 ‘제야(除夜)’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4]라 했다. 내가 《세화기려보(歲華記麗譜)》[5]를 살펴보니 “동지 하루 전날에 태수가 빈객들을 이끌고 북문 석어교(石魚橋)를 나가 술과 안주를 마련하고, 불놀이 구경을 마치고서야 천장관(天長觀)[6]에서 저녁 연회를 베푼다. 이 행사는 문언박(文彦博)[7]이 처음 시작했다.”[8]라 했으니, 동지 제야를 명절로 삼은 일은 다만 당나라 사람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금화경독기》[9][10]
각주
- ↑ 육유(陸游):1125~1209.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 32세부터 85세까지 약 50년 동안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사(詩史)에서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켰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망국의 애환을 담은 시를 짓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평화스러운 전원생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적한 시를 짓는 등, 시제가 매우 폭넓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검남시고(劍南詩稿)》가 있다.
- ↑ 노학암필기(老學菴筆記):육유가 만년에 고향인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 경호(鏡湖) 인근에 머물면서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기록한 수필집.
- ↑ 태평광기(太平廣記):중국 한(漢)나라부터 북송(北宋)에 이르기까지 소설·필기·야사 등을 수록한 설화집. 총 50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방(李昉, 925~996) 등 12명의 학자와 문인이 편집에 참여했다.
- ↑ 이날……알았다:《老學菴筆記》 卷8 (《文淵閣四庫全書》865, 69쪽).
- ↑ 세화기려보(歲華記麗譜):중국 원(元)나라 비저(費著)가 지은 저술.
- ↑ 천장관(天長觀):중국 원(元)나라의 도교사원. 처음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며 이름을 바꿔 현재는 백운관(白雲觀)이라 한다.
- ↑ 문언박(文彦博):1006~1097. 중국 북송(北宋) 때의 관리. 자는 관부(寬夫), 시호는 충렬(忠烈), 호는 노공(潞公). 부필(富弼, 1004~1083) 등과 함께 영종(英宗)의 옹립에 공을 세워 추밀사(樞密使)가 되었고 이후 9년 간 재직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시역법(市易法)을 비난하였다가 쫓겨나 지방으로 나갔으나 철종(哲宗)이 즉위하고 구법당(舊法黨)이 부활되자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가 되었다. 전후 50년에 걸쳐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사방의 이민족에게까지 명성을 떨쳤다. 저서로 《노공집(潞公集)》이 있다.
- ↑ 동지……시작했다:《歲華記麗譜》(《文淵閣四庫全書》590, 437쪽).
- ↑ 출전 확인 안 됨.
- ↑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59~5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