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지:각 절기의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세시 풍속의 총 목록:시골에서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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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2) 시골에서의 놀이[村居樂事]
시골 마을에 살면 사시사철 즐거운 일이 매우 많다. 예를 들면 1월의 잔설 속에서 향기로운 쑥이 새로 돋을 때 양지바른 기슭에 가서 쑥국을 끓여 먹으며 논다. 1월 15일에는 대보름에 달이 밝을 때를 틈 타서 ‘다리밟기’를 한다.
2월 이른 따뜻한 날씨에 두견화(杜鵑花, 진달래)가 처음 피면 화전을 지져 먹으며 논다.
3월 3일 삼짇날에는 ‘답청 놀이’를 한다.
4월에 유엽병(楡葉餠)[1]·장미로 만든 떡·어린 고사리·부드러운 미나리 등은 곧 먹기에 좋으니, 고상한 모임을 열기에 음식들이 알맞다. 4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라 ‘관등 놀이’를 한다. 4월에는 신록이 펼쳐져 화창하기 때문에 짝을 지어 산을 찾을 만하다.
5월에는 서늘한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면서 개를 삶아 먹는 모임[蒸犬會, 증견회]을 한다.
6월 15일은 민간에서는 ‘유두일(流頭日)’이라 한다. 수단(水團)[2]과 연계증(軟鷄蒸, 영계찜)을 먹고 시내에 가서 ‘유두 놀이’[3]를 한다. 6월에는 큰비가 내릴 때 길을 가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 불어난 물을 구경할 만하다.
7월 7일에는 ‘걸교유(乞巧遊)’[4]를 한다. 7월 보름은 민간에서는 ‘백종일(百種日)’이라 하니, 농부들은 농기구를 손에서 놓고 ‘호미씻이 모임[洗鋤會, 세서회]’을 한다. 다음날인 16일 저녁에는 소식(蘇軾)의 고사(故事)[5]를 따라 배를 띄우고 달빛을 감상한다.
8월 15일에는 ‘달구경 모임[翫月會, 완월회]’을 한다.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는 높은 산에 올라 국화를 띄운 술을 마시는데, 맹가(孟嘉)의 고사[6]처럼 모자가 바람에 벗겨지도록 거나하게 마시며 시를 짓고 논다.
10월에는 나복병(蘿葍餠, 무떡)을 찌고 누런 닭과 백주(白酒)[7]를 마련하여 수시로 고아한 모임을 가진다. 또 어깨에 매를 앉히고 개를 끌고서 꿩사냥을 나설 수 있다.
11월 동짓날 밤에는 양기(陽氣)를 맞이하는 모임[迎陽會, 영양회]을 한다. 11월에 길한 밤을 골라서 손님을 초대하여 쌀밥과 연포갱(軟泡羹)[8]을 대접한다.
12월 합매(閤梅)[9]가 처음 필 즈음에 매화를 구경하는 모임[賞梅會, 상매회]을 가진다. 희설(喜雪, 상서로운 눈)이 내리면 눈을 감상하는 놀이를 한다. 《증보산림경제》[10][11]

각주

  1. 유엽병(楡葉餠):느티나무 어린잎을 쌀가루와 버무려 만든 떡. 느티떡이라고도 한다. 《정조지(鼎俎志)》 卷7〈절식(節食)〉 “등석절(燈夕節, 석가탄신일)의 절식” ‘유엽병(楡葉餠, 느티떡)’에 만드는 법이 있다.
  2. 수단(水團):쌀가루, 밀가루 등으로 경단 같이 만들어서 꿀물이나 오미자 물에 담가 먹는 음식.
  3. 유두 놀이: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이다. 동류수에 머리를 감고 궂은일을 털어버리는 불제(祓除)를 지내고, 음식을 차려 먹으며 하는 행위를 통틀어 유두 놀이라 한다.
  4. 걸교유(乞巧遊):중국에서 고대에 7월 7~8일 저녁에 행하던 행사. 음식이나 과일을 차려놓고 직녀처럼 재주 있게[巧] 해달라고 빈다[乞]는 의미에서 칠석을 ‘걸교절’이라고도 한다. 위 “월별 행사” 7월 항목 ‘투교연’주석 참조.
  5. 소식(蘇軾)의 고사(故事):중국 송나라의 문장가인 소식(蘇軾, 1036~1101)이 임술년(壬戌年, 1082) 가을 7월 16일에 적벽(赤壁)에서 당대의 문인들과 뱃놀이를 하며 풍류를 즐겼던 고사. 소식은 이날의 소회를 〈적벽부(赤壁賦)〉라는 명문으로 남겼다.
  6. 맹가(孟嘉)의 고사:중국 진(晉)나라의 선비 맹가(孟嘉)의 풍류에 관련된 고사. 맹가의 자는 만년(萬年)으로, 환온(桓溫)의 참모로서 신임을 받았다. 환온이 중양절에 용산(龍山)에서 주연을 베풀 때 바람이 불어 맹가의 두건이 땅에 떨어졌으나 맹가는 알아채지 못했다. 환온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했다 가, 한참 후 맹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모자를 줍게 한 다음 참석자인 손성(孫盛)에게 맹가를 놀리는 글을 지어 맹가의 좌석에 붙여 두게 했다. 잠시 뒤 맹가가 돌아와 그 글을 보고 곧바로 화답했는데 그 글이 매우 재치있어 모두 감탄했다는 고사가 있다.
  7. 백주(白酒):백미·누룩·밀가루로 빚어 만든 술로, 탁주처럼 쌀알을 뭉개어 체에 걸러내고 만든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문집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타당한 듯하다.
  8. 연포갱(軟泡羹):얇게 저민 두부 꼬치를 기름에 지진 다음 국에 넣어 끓인 음식.
  9. 합매(閤梅):화분에 심어 방 안에서 키우는 매화.
  10. 《增補山林經濟》 卷16 〈山野樂〉 “遊會樂”(《農書》5, 258~260쪽).
  11. 《임원경제지 이운지(林園經濟志 怡雲志)》4,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9), 514~5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