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수송 기구: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여러 기구:거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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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 거중기[1]

선대 왕 갑인년(정조 18년, 1794년) 수주(隋州)[2]에 성을 쌓을 때 거중기 한 대를 놓았다. 그제도는 다음과 같다. 다리가 4개에 가로 들보 1개를 이고, 그 아래에는 유량(游梁)[3] 2개를 달았으며, 좌우에 각각 물레를 두고는 굵은 삼줄로 물건을 매단다. 좌우에 나눠 선 일꾼들이 힘껏 물레를 돌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린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지을 때는 이 기구가 없어서는 안 된다.《금화경독기》[4][5]

각주

  1. 거중기:이 기구는 정조가 화성을 건설할 때 사용한 것이다. 정조가 《고금도서집성》에 있는 《기기도설》을 다산 정약용에게 하사하자, 정약용이 이를 참고하여 거중기 제작법과 이용법을 자세히 기록했다. 《고금도서집성》은 서유구의 부친인 서호수가 중국에 사행으로 갔다 오면서 사온 책인데, 서유구가 거중기에 대한 내용을 소략하게 적은 이유는 《기기도설》을 열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원경제지-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섬용지 해제>, 909~910쪽 참조.
    정약용이 그린 거중기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거중기(《여유당전서》).png
    거중기(기기도설).png
  2. 수주(隋州):지금 경기도 수원시 일대.
  3. 유량(游梁):도르래가 설치된 들보.
  4. 출전 확인 안 됨.
  5.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3,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7), 165~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