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복식 도구:쓰개:털모자

pung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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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1) 털모자 [毳帽][1]
서민[齊民]들이 쓰는 쓰개로, 양털로 만든다. 남자는 자주색 모자를 쓰고 여자는 검은색 모자를 쓴다. 겨울에 이마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쓰개다.《금화경독기》
우리나라에서 쓰는 털모자는 모두 중후소(中後所)[2]에서 만든 것이다. 모자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쉬워 양털만 있다면 나라도 만들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치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일 년 내내 양고기 맛을 모른다. 우리나라 온 지역의 남녀 인구수가 수백만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데, 사람들이 털모자 하나씩을 쓴 뒤에야 겨울을 날 수 있다면, 해마다 동지사행(冬至使行)[3]의 황력재자관(皇曆齎資官)[4]이 가지고 가는 은화가 10만 냥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10년을 통틀어 계산하면 백만 냥이나 된다. 털모자는 한 사람이 겨울 3개월 동안만 쓰는 물건이니, 봄이 된 뒤에 해어지면 버리게 된다. 천 년을 가도 망가지지 않을 은을 겨울 3개월만 쓰면 해어져서 버릴 털모자와 바꾸고, 산에서 캐내는 한정된 자원인 은을 한번 갔다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 곳에 보내 버리니, 어쩌면 이토록 생각이 없단 말인가?《열하일기》 [5][6]


각주

  1. 털모자[毳帽]: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모자
  2. 중후소(中後所):심양(瀋陽)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던 성읍으로, 연행 사신의 중간 숙박처 중 한 곳이었다.皇:저본・《熱河日記・馹汛隨筆
  3. 동지사행(冬至使行):매년 초겨울에 동지사(冬至使)를 연경(지금의 북경)에 보내 황제가 하사하는 황력을 받아 오게 하는 사행이다.
  4. 황력재자관(皇曆齎咨官):중국에서 반포하는 역서(曆書)를 받아 오기 위해 해마다 파견하던 관리이다. 동지에 중국의 황제로부터 역서를 받아 돌아오면 정월이 지나는데, 그때부터 다시 인쇄하여 나눠 준다면 정초가 훨씬 지나게 된다.(남문현, 《장영실과 자격루》,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15쪽) 그러므로 조선은 자체적으로 달력을 미리 만들어 반포할 준비를 해 두고 중국에서 사신이 황력을 가져오면 황력과 조선의 달력을 비교하여 바로 반포했기 때문에, 황력과 관련하여 자문을 구하고 달력을 가지고 오는 관리를 파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5. 《熱河日記》 〈馹汛隨筆〉 “7月22日".
  6.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 2,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5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