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머리 다듬는 여러 도구:유리거울
내용
12) 유리거울[玻瓈鏡][1]
유리[玻瓈]는 옥의 이름으로, 원래 서양에서 났다. 명나라의 삼보태감(三保太監) 정화(鄭和)[2]가 서양에 나갔다가 유리 만드는 사람을 데리고 중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중국에 유리가 갑자기 흔해졌다. 지금 연경에서 수입한 유리거울은 모두 석즙(石汁)[3]과 여러 약물을 함께 녹여 가짜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몸체가 타원형이며, 상어가죽으로 갑을 싸서 옻칠한 뒤 가장자리에 황동으로 만든 작은 못을 빙 돌아가며 박은 거울을 ‘오갑경(烏匣鏡)’이라 하는데, 품질을 상급으로 친다. 반면 몸체가 네모나며, 양가죽을 붉게 물들여 갑을 싼 거울은 ‘피갑경(皮匣鏡)’이라 하는데, 품질을 하급으로 친다. 오갑경 중에는 손바닥만큼 작은 것이 있는데, 여행자들이 휴대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금화경독기》
온몸을 다 비출 수 있을 만큼 큰 유리거울을 ‘몸거울(체경)’이라 하는데, 그중 가장 큰 몸거울은 높이가 5~6척, 너비가 3척 정도이다. 강진향(降眞香)[4]으로 받침대를 만들고 여기에 풀과 용, 화초 모양을 아로새긴다. 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운반하기도 어려워 재력이 있는 자가 아니면 장만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서재에 몸거울을 둘 때는 금(錦)이나 단(緞) 직물[5]로 덮개[護衣][6]를 만들어 먼지를 막아야 한다. 다시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로 받침대를 만들고 좌우와 뒤 3면을 모두 널빤지로 담을 만든 다음 앞면에 문짝 2개를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한다. 만약 크기가 작아서 1척 남짓을 넘지 않고, 윗머리에 타원형 구리 고리를 꿴 거울이라면 굳이 받침대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다만 색이 있는 단(緞) 직물로 덮개를 만들어 베갯머리 쪽 벽에 걸어 두어도 된다.《금화경독기》[7]
각주
- ↑ 유리거울[玻瓈鏡]:유리로 만든 거울로, 유리는 석영과 탄산소다, 석회암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다음 급히 냉각해서 만든다. 베네치아인들이 유리판에 주석과 수은의 합금을 얇은 층으로 입혀 거울의 선명도를 높였다.
- ↑ 정화(鄭和):1371~1435. 중국 명나라의 환관이자 무장으로, 영락제(永樂帝, 1360~1424)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에 즉위하자 환관의 우두머리인 태감(太監)의 자리에 올랐다. 영락제의 지시로 1405년에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서아시아 지역 등을 원정했다.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렀다는 설도 있다.
- ↑ 석즙(石汁):돌을 녹인 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다
- ↑ 강진향(降眞香):꼭두서닛과 향나무의 하나로, 계골향(鷄骨香)이나 자등향(紫藤香)이라고도 한다.
- ↑ 금(錦)이나 단(緞) 직물:이 같은 직물에 대해서는 《전공지》 권2 〈길쌈[織紝]〉을 참조 바람.
- ↑ 덮개[護衣]:유리에 먼지가 붙지 않도록 덮어 주는 천으로, 유리의 크기에 따라 덮개의 크기도 달라진다.
- ↑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2,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6), 205~207쪽.